|
겨울이 벗어나려 꾸무럭대고 있다. 지난 주엔 느닷없이 봄날이어 공연히 싱숭거리게 하더니 정작 설렘 한발 들여놓으면 다시 겨울 분위기를 잡고 만다. 하긴, 2월은 사람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깜냥이 좀 있었지. 얼었다 녹았다 젠체하다가 슬그머니 봄을 밀어넣어 주셨으니까. 그게 마지막 겨울 가는 모습이라고 그간의 세월동안 조금 배운 바 있는지, 이런 잠시의 흔들림에 이젠 속지 않게 되었다. 그게 좋은 건지 서운한 건지 실은 잘 모르겠다. 사람들은 어떻게 세월을 드실까?
남도로는 눈 한번 나려주시지 않은 야속한 겨울이었다. 따뜻해서 좋을 때도 있었지만 그닥 매력적인 겨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따스함이 기다려지는 것은 겨울이라는 웅크림에 대한 외로움 털기에 있겠다. 겨울은 온돌방 자체가 고독이다. 훌훌 털어버리듯 어서 마음의 봄에 시계를 맞춰야 한다. 그게 계절에 앞서는 자들이 길게 그 계절을 나는 방법이다. 헤프게 사랑할 것이다. 긴 기다림에 지쳤던 마음 되살려 반드시 가슴을 뜯으며 앙탈부릴 것이다. 흙에게 그럴 것이다.
곧 매화나무에 물이 오르고 이내 꽃눈이 돋겠지. 곧 그 향기가 세상을 혼미하게 하고 이내 그들이 앞다투어 오겠지. '곧'과 '이내', 오직 한 글자로 봄을 말하라면 '곧'이라고 하고, 두 글자로 하라면 '이내'라 말하련다. 곧 돌아오고 이내 만나니, 두 단어는 봄이 오는 과정을 꾸며주는 계절의 앞잡이가 되겠다. 이 두 성급한 부사들이 어릿어릿 설렘을 묻혀 놓았기에 봄은 눈을 뜨는 것이다. 여인들은 매화나무에 봄눈이 얼마만큼 뜨였나를 살피고 매화나무는 여인들이 나를 보러 올까, 기다리는 것이다. 그 둘의 접속 사이에 이 부사들이 기웃거린다. 그러다 서로의 다가감에 놀라 벙긋, 마침내 꽃눈이 제 할일 해버리는 것이다. 2월은 '곧'과 '이내'의 달, 아직 조금 더 기다려야 할 때 우리는 그렇게들 수선스럽게 논다. 그게 2월이다.
'비진도'라는 어여쁜 섬으로 바닷길 거닐었다. 되뇌일수록 그 이름 참 마음에 들었다. 신비스럽고 보배로운 섬이라는 것이 얼추 그려지는 이름이지 않은가. 비진도는 두 개의 섬이 연결되어 있어 흔히 여자의 가슴가리개를 닮은 섬이라 한다. 설레는 가슴을 살짝 가려주니 비진도도 2월이랑 비슷할까. 누구는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하다 하겠고, 누구는 사랑하는 여인처럼 아득하다 할 것이다. 또 누군가는 제 안에 숨겨둔 외로움으로 걸어 들어가게 하는 섬. 걸어서 그 속살을 열면 봄이 성큼 다가올까. 용기를 내어 가슴가리개를 열어젖히련다.
통영시 한산면 비진도. 섬들이 물러나고 다가오는 속에 납작한 섬을 일러 한산섬이라 하였다. 섬과 섬을 오가는 갈매기 사이로 물빛은 푸르러, 아직 시린 2월이었다. 선착장에서 갈매들과 함께 배를 띄운지 40여분만에 비진도 내항에 닿았다.
내항에 내리면 단란한 집들이 나타난다. 바다를 향한 양지바른 곳에 노파들이 삼삼오오 나앉아 시금치를 다듬는 마을. 시금치는 겨울 서리와 바닷바람에 달달하게 맛이 올랐을 것이지만 내려오는 길에도 선뜻 사지 못했다. 제법 많은 봉지 3개를 5,000원에 파셨기 때문이다. 싼 값에 사면 좋지 않냐고 하겠지만, 글쎄다. 겨우 그 돈 주고 그 분의 하루를 산다는 게 염치없었던 것인지, 비슷한 위도의 남쪽 섬에서 겨울마다 그것을 만지작거리는 부모님이 밟혀서였는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마을엔 1박2일에서 다녀갔다는 풋풋한 벽화도 있었다. 아직 그려지지 않은 작은 벽들은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인지 깨끗하게 칠해져 있었다. 순간 미지의 깨끗함으로 남겨진 빈 벽면이 더 순수해 보이는 건 왜였을까. 벽화를 그렸던 사람이 이래도 되는 것이냐 묻겠지만, 요즘은 어딜가나 벽화가 너무 흔한 것 같다. 차라리 아예 그냥 두거나 아주 작은 민들레 하나만큼의 그림이라면 어떨까. 바다라면 반짝이는 모래에 작은 소라 하나 귀를 기울이게 하거나.. 빈 벽에 아주 작은 영토를 마련하는 것은 오히려 무심히 지나치지 못하게 하는 작은 붙잡음일 것도 같고, 소박하게 자신만의 색깔을 찾는 조용한 은둔도 나름 괜찮을 것 같아서이다.
봄이 오는 것은 바람 끝이기도 하고 여인의 옷자락 끝이기도 한다지만, 뭐니뭐니해도 봄은 흙속에서 먼저 온다. 땅 속 저 깊은 곳 가만 두지 못하고 자꾸만 흙을 만지는 사람에게 조금 더 일찍 온다. 비진도의 살가운 흙에서 발갛게 고구마를 캐내고 싶었다. 마을 초입에서 만난 어느 부지런하지만 수줍음 많은 어르신도 땅을 둥글게 공글리고 계셨다. 그 속에 뭐가 들었길래 그렇게 집을 지어 주냐고 했더니, 땅두릅이 잘 나오도록 흙살을 돋우는 중이라신다. 자세히 보니 여기저기 메마른 줄기들이 누워 있다. 아마도 잘라낸 대를 포근히 덮어줘야 거름도 먹어 튼실해지는가보다. 자꾸만 흙을 만지고 싶어지는 이 손....
바깥섬(미인도)으로 들어서면 본격적으로 동백나무와 후박나무가 터널길을 만들어준다. 터널 입구엔 이 길을 '비진도 산호길'이라 이름했다. 왜 산호길인지 의문이 들었지만 이곳이 바다려니, 하며 걷는다. 내항에서 느끼지 못한 적당한 고졸함이 이 동백숲 사이로 언뜻언뜻 비친다. 숲에 솔깃해지기 좋은 시간이니 이내 뒤처져서 걷기로 한다.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오면 조촐하지만 제법 편안하다.
돌담이 눈에 띄어 고개를 드니 거기 빛바랜 낡은 양철문과 제법 운치가 있는 돌계단, 말없이 저를 흩뜨려놓은 동백이 서 있다. 그 모습은 빈집 같기도 하고 그냥 긴 외출 같기도 하다. 둘러보니 작은 돌담 구역이다. 이 구간을 지배하는 건 돌담과 동백 사이에 펼쳐진 어떤 고색함이다. 마침 뒤처지니 잠시 혼자의 시간이 주어지고 그 짧은 고요 속에서 이 마을엔 아무도 살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인가도 별로 없었지만, 그 적요함이 어딘지 달랐다. 그러나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고요함이었기에 나는 적요함이나 괴괴함 보다는 고색함을 느꼈다. 가끔은 이렇게 진짜 혼자는 아니고 뒤처져서 바라보는 혼자의 시간을 가지는 게 좋을 듯하다.
비진암이라는 암자의 표지가 있었지만 이곳 또한 빈 절집이다. 돌담길이 이끌어주는대로 절집 기웃거리는데, 이미 그 몸짓에서 빈집의 외로움이 깊었다. 사람도 없는 돌담길이 나작하고 둥근데 그들은 어딘지 제 멋대로이면서 조화로웠다.
우연히 그 이름을 목격한 것도 순전히 돌담길 덕분이다. 키낮은 돌담과 어린 후박나무 사이로 누군가 반듯하게 '슬픈치'라 써놓았던 것이다. 나무의 이름을 뜻할까, 뒷말이 지워진 것일까, 짐작을 할 수 없는 사이에서도 언뜻언뜻 이 공간의 힘이 슬펐다.
푸른 겨울나무 사이엔 떠나간 사람의 흔적을 찾아 슬픈 목소리로 애닯게 우는 어린 풀벌레가 있었다. 여치나 풀무치처럼 그 풀벌레의 이름은 '슬픈치'. 추운 겨울에만 울기에 아무도 그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 목소리 너무 구슬퍼 한번 들은 이라면 슬픔을 가눌 수 없게 되고 시름시름 앓기까지 한다. 그 슬픈치의 목소리를 들을까봐 서둘러 그 자리를 피한다. 봄을 기쁘게 맞고 싶은 간명한 이유에서다. 내가 스스로 만들어 본 슬픈치 전설에 함부로 빠지지 않기 위해....나, 서둘러 자리를 피한다.
바다에서 헐벗은 몸으로 올라선 기진한 길이 꼬리를 감추며 모퉁이를 돌아간다.
끝말잇기를 하듯 살짝 치고 빠지는 길.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언니께서 지혜와 끈기로 잡았다는 팔뚝보다 굵은 장어를 닮았다.
꿈틀대는 그 보약이 얕은 웅덩이에 갇혀 허우적대는 것을 혼자 힘으로 어렵게 어렵게 잡아,
그 푸짐한 것을 여러 이웃에게 다정히 나누어주었다는 푸짐한 이야기처럼 펄펄 살아뛰는 길이다.
세상이 마르지 않았다는 이야기의 골자처럼, 섬 속으로 깊어가는 사이 햇살이 나타난다. 그 꼬리를 붙잡는다.
'슬핑이치'라는 바위의 이름은 결국 '슬픈치'를 다시 불러오게 한다.
'치'란 해안에 불거진 단애를 뜻하였는데, 슬핑이란 말이 슬피이, 슬피 하다가
어느 결에 '슬픈치'로 변하였던 것으로 추정해 본다.
그러나 아무것도 정확한 것은 없다. 더구나 이 바위는 '갈치바위'라는 쉬운 이름이 있었다.
갈치바위가 갈치처럼 생겨서도 아니고 태풍이 불어올 때 파도에 실려온 갈치떼들이
이곳 소나무에 걸쳐진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었으니, 맘먹고 허세를 부렸더랬다.
그렇다면 '슬핑이치'는 어떤 연유가 있을까?
우선 '설핀치'라고 하는, 짜임새가 거칠고 성긴 모양의 치가 있었다는데,
안내문구에선 그것이 이 배경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선인들의 기록을 빌려 '설풍치'라는 이름이 있으며,
이는 정초 북풍에 눈보라가 휘날릴 때 툭 튀어나온 이 등마루가 은세계를 이루었다 하며
조금 더 신비스런 분위기의 '설풍치'에 기대는 느낌이었다.
갈치바위든 슬핑이치든, 뜻모를 이름 속에 어딘지 허세의 전설이 그득하였다.
나는 그저 '슬픈치'는 풀벌레 울음이라며 잠시 휴식을 갖는다.
설핑이치를 바라보기 좋은 곳에 이르니 '노루여'라는 절벽이 바다로 내닫고 있다. 이곳 선유봉 일대에는 노루가 많이 살았었는데, 노루가 벼랑에 떨어지면 사람들은 바다로 가 노루를 건졌다고 한다. 노루의 발톱을 닮아 '노루여'인가 보다. 노루가 바다에 빠지며 허우적대는 것처럼 파도가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멀어질수록 내려다보이는 설핑이치는 거친 투실함을 감춰 비로소 '설풍치'란 이름에 어우러지는 듯하다. 그러나 희게 눈을 이고 푸른 바다를 내려다보았다면 조금 더 슬픈 느낌이겠다.
비진도를 가장 아름답게 조망할 수 있는 미인도 전망대에 다다르니 둘인듯 하나인 섬이 에메랄드 빛에 하얀 살결을 내밀었다. 왜 산호길인지가 저 바다를 보니 알 것 같다. 뽀얀 속살을 애무하는 바다는 유난히 즐거워 보인다. 아마도 비진도를 일러 가슴가리개에 비교한 이상, 그 즐거운 상상은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긴 침묵의 겨울동안 산행을 하지 못했던 만큼 이 겨울의 말미를 얼마나 학수고대 했는지 모른다. 섬 트래킹이 힘들지는 않았으나 바깥세계로 나오기까지가 무척 힘들었던 겨울이었다.
여행이란 그저 좋다. 예전에는 무언가를 얻고 무언가를 바라보고 무언가에서 새로워졌기에 여행이 좋은 줄 알았는데, 이제는 무념의 내가 어느 낯선 곳에 잠시 나온 그것으로도 홀가분하다. 유명하지 않아도 좋다. 나를 바깥 세상에 내보내는 그 행위만으로도 나의 여행은 행복하다. 나도 모르게 내
배낭에 꼭 붙어서 내마음을 잠시 엿본 낙엽처럼 세상의 모든 공간이동은 행복하다.
비진도 내항으로 돌아나오는 길에는 '해노는 섬집'이 있다. 아마도 민박을 하는 집인 듯했다. '해뜨는 섬집'보다 훨씬 여행하는 집 다웠다.
외항을 벗어나면서 바라보는 이 지점에서는 맞은편의 선유봉이 삼각형으로 보인다. 집터 앞에 붓끝처럼 삼각형으로 솟은 봉우리가 있다면 그 가문에서는 문장으로 이름을 떨치는 이가 태어난다고 하는데, 조지훈 종택이나 영랑생가, 고산 윤선도 종택에 가보면 문필봉이 앞에 있다고 한다. 예로부터 최고의 문필봉은 문장이 출중하여 과거 급제하고 부귀와 명예가 널리 알려진다고 하는데, 선유봉은 중격의 품위는 갖추었기에 학문을 연구하는 자가 올라 산의 기운을 담기가 좋다고 하였다. 문장을 구하는 자, 이 사진으로 좋은 기운 받기를 권한다.
아름다운 통영에선 섬 하나하나를 엮어 '바다백리길'이라 불렀다. 이곳 비진도와 함께 미륵도, 한산도, 연대도, 매물도, 소매물도가 그들이다. 나는 아직 이 섬들 중에 처음으로 이 비진도에 닻을 내린 셈이다. 숱한 사람들이 마치 천만 영화를 본 관객처럼 당연하게 미륵산 케이블카를 다녀오는데도 나는 아직 가보지 못했으며, 지난 한산섬 산행에도 어인 일로 동참하지 못하였다. 연대도, 매물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기필코 올해 이 나머지의 섬들을 다녀올 구상 중이다. 특히 소매물도 정도는 어서 가야하지 않겠나 하는 조바심과 싸울 정도다. 그것도 5월이 가장 적기라고 귀띔을 하니, 파릇한 봄을 가만 두지 않을 공상을 즐거이 하고 있는 것이다.
약 5시간 동안 쐬었던 비진도 바닷바람. 바다에 담긴 섬일수록 봄이 빠르다. 아직 매화는 일렀어도 봄은 벌써 와있다. 마음으로 맞았기 때문인지 벌써 한창이다. 내일이면 흙속에 감추어진 봄을 살짜기 들춰볼까 한다. 누가 나에게 너무 앞서가지 말라는듯 영동지방에 폭설을 내렸다고 한다. 그 눈의 절반의 절반도 못본 사람들이 앞다투어 남도의 눈산을 찾는다지만, 이미 봄이 와버린 마당에 눈산, 깔끔하게 포기히기로 했다. 대신 숭숭대는 가슴에다 한껏 산호빛 바다를 들였다.
첫댓글 사진과 곁들인 글맛이 좋습니다. 나도 오늘 금원산 휴양림을 다녀왔지요. 눈꽃 속에 가섭사지마이삼존불을 뵙고 왔는데. 저 빈 법당을 오르고 싶군요.^6^
선생님..감사^^
금원산 휴양림에 있다는 가섭사지 마애삼존불? 이름이 조금 낯설군요.
저 법당은 절터만 무심히 남았기에 혼자 가면 슬픈지가 울어서 못돌아오실 걸요.^^
2월,
곧 올 것이며
이내 만나리라
설렙니다^^
봄버들 읽으면 항상 그 노래..
버들잎 외로운 이정표 밑에
길을 가는 나그네... 가사는 모르겠고.
굳세어라 금순아?
나만 그런가?
ㅋㅋ
@ㅋi 스 근데.. 굳세어라 금순아가 아닌가보네.
그 노래 아시는 분.
금순이 찾으니 이 가사가 아님.ㅋㅋ
돌~~ 멋지다!
초록 바다가 아름다운
좋은 길 걷고 오셨네요.
나오는 배 시간이 맞던가요?
네~ 뱃시간 안에 충분히 놀멍쉬멍 할 수 있어요.
오전 11시 들어가서 오후 5시 배로 나왔는데 딱 좋았습니다.
하루에 3번 운행인데 첫 배가 아침 7시였고 다음이 11시였습니다.
참고로 그 배는 또 소매물도까지 간다고 했는데
소매물도 가기는 거제도에서 가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빈 벽면이 더 순수해 보이는 건 왜였을까.
꽉 찬것보다 여백이 있는것이 좋더구나. 나이 들면서 더욱,
지나치게 야무지고 똑똑해 보이는 것 보다 여유를 가진 모습이 좋다라고나 할까?
그리고, 굵은 장어를 닮은 길, 펄펄 살아뛰는 길, 표현 참 좋다. 문학적 표현이라 말하고 싶구나.
예쁜 기행수필 잘 읽었다.
비진도는 가슴가리개의 섹시함보다는 모래시계로 바라보곤 했지요. 내가 한산면에 근무할 때요. 비진도도 관할이었지. 상사의 미움받아 귀양갔으나 내 공직생활 최고로 행복한 날로 기억된다오. 애틋하게 느껴지는 선유봉, 테니스, 석양의 바다에서 횟감과 술잔들... 18년의 세월이 너무 빠르게 흘렀군 ㅠ
모래시계.. 그건 너무나 아름다운 비유입니다. 왜 저는 그런 안목이 없었을까요? 생각이 음탕한 게 그만 들켰나이다. ^~^
시인은 원래 유배를 가야 하고 조정의 미움도 받아봐야 한다더니...
그 유배객과 한산섬, 너무 부러운데요. 섬이 자꾸만 좋아집니다. 아,,,, 섬 고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