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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면 꼭 생각나는 시가 있습니다. 단풍 든 숲 속... 두 갈래 길에서... 과연 어느 길로 걸어 가볼까 고민할 때...
그렇습니다. 바로 국민시나 다름없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죠. 너무나 유명해서 다들 잘 알지만...
대부분 금아 선생의 번역편을 알고 있는 편이죠. 하지만 다양한 번역이 있답니다. 각각이 배스킨 라빈스 맛 처럼
색다른 맛을 느낄수 있죠. 제 전공도 영시이고, 번역도 제 일의 일부이긴 한데... 제 번역을 올리기는 부끄럽군요.
워낙 대가들의 역작이라 제 건 군더더기가 될 뿐... 그런데 여러 분들은 어느 분의 번역이 더 마음에 와 닿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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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역시 이런 말이 나올까봐 떨고 있었는데... 아니 동가사랑님! 동기끼리 좀 봐주시지 않고... 대가들에게 제가
어떻게 감히 끼일 수 있겠습니까? 300자 제약을 핑계삼아 제 졸역을 슬쩍 끼워봅니다. 그저 웃지는 말아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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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oad Not Taken by Robert Lee Frost [1874~1963]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And be one traveller, long I stood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uth;
Then took the other, as just as fair,
And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
Because it was grassy and wanted wear;
Though as for that the passing there
Had worn them really about the same,
And both that morning eqully lay
In leaves no step had trodden black.
Oh, I kept the first for another day!
Yet knowing how way leads on to way,
I doubted if I should ever come back.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
I took the one less travel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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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천득 역
피천득(1910 ~ 2007) 호는 금아(琴兒). 상하이 호강대 영문학 졸. 전 서울대학교 영문학 교수(1946년~1974)
가지 않은 길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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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길 역
김종길(1926~ ,본명 김치규) . 경북 안동 생, 고려대 영문과 졸. 1992년 고려대 교수 정년 퇴임(현 고려대 영문과 명예교수)
가지 않은 길
노랗게 물든 숲 속 두 갈래 길을
다 가 보지 못할 일이 서운하여서,
풀섶 속에 길이 구부러지는,
눈 닿는 데까지 오래오래
우두커니 선 채로 바라보았네.
그리곤 나는 갔네, 똑같이 좋고,
사람이 밟지 않고 풀이 우거져
더 나을지도 모르는 다른 길을,
사람이 별로 다니쟎기론
두 길은 실상 거의 같았네.
그리고 두 길은 다 그날 아침
밟히쟎은 가랑잎에 덮혀 있었네.
아 첫째 길은 훗날 가리고 하고!
길은 길로 이어짐을 알았기에
돌아오진 못하리라 생각했건만.
세월이 오래오래 지난 뒤에
나는 한숨 지으며 이야기하리.
두 길이 숲 속에 갈라져 있어
사람이 덜 다닌 길을 갔더니
그 때문에 이렇게도 달라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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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종 역
정현종(1939~ ) 서울생, 연세대 철학과 졸. 전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1982~2005), 시인
걸어 보지 못한 길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더군요.
몸이 하나니 두 길을 다 가 볼 수는 없어
나는 서운한 마음으로 한참 서서
잣나무 숲 속으로 접어든 한쪽 길을
끝간 데까지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또 하나의 길을 택했습니다. 먼저 길과 똑같이 아름답고,
아마 더 나은 듯도 했지요.
풀이 더 무성하고 사람을 부르는 듯했으니까요.
사람이 밟은 흔적은
먼저 길과 비슷하기는 했지만,
서리 내린 낙엽 위에는 아무 발자국도 없고
두 길은 그날 아침 똑같이 놓여 있었습니다.
아, 먼저 길은 한번 가면 어떤지 알고 있으니
다시 보기 어려우리라 여기면서도.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
나는 한숨 지으며 이야기하겠지요.
"두 갈래 길이 숲 속으로 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
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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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승걸 역
천승걸 (1941~ ) 전남목포생, 서울대 영문과 졸. 전 서울대 영문과 교수, 서울대 명예교수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나는 두 길을 갈 수 없는
한 사람의 나그네라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덤불 속으로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풀이 더 우거지고 사람 걸은 자취가 적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을 걸음으로 해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입니다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 적어
아무에게도 더럽혀지지 않은 채 묻혀 있었습니다.
아, 나는 뒷날을 위해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다른 길에 이어져 끝이 없었으므로
내가 다시 여기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에선가
한숨을 쉬며 이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갈라져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것으로 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라고.
아오스팅 졸역
노랗게 물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답니다.
안타깝게 나는 두 길을 다 가볼순 없었죠.
한 사람의 나그네일 뿐인지라. 나는 한참 서서
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 보았답니다.
한 길이 덤불 속으로 꺾여 접어든 데까지.
그러다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답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무성하여 발에 밟힌 흔적이 적었답니다.
하지만 내가 그 길을 걸어감으로 해서
그 길도 먼저 길과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날 아침 두 길은 똑같이 덮혀 있었답니다.
아무도 밟지 않아 더렵혀지지 않은 낙엽에...
아, 나는 훗날을 위해 한 길은 남겨 두었답니다.
길은 길로 이어져 끝이 없음을 알고 있기에
다시 여기 돌아오진 못하리라 여기면서도...
세월이 오래오래 흐른 뒤에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 지으며 이 이야기를 하겠지요.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나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덜 다닌 길을 택하였다고,
그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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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오스팅님. 이방 가족휴게방맞나요? 전혀 휴게가 안되네요 ㅋㅋㅋ.며칠 전부터 갑자기 격이 너무 올라버려서. 두리번 두리번. 제가 좋아하는 시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번역이 있었네요. 아직 다 음미를 못했지만, 그림을 그리다보니 느낌들이 많이 다르네요. 아직은 피천득 선생님 번역이 익숙해있어서인지 편안합니다. 실은 2002년 몇 년만에 서울생활이 시작되었는데, 동네 애들이 너무 거칠어 어쩔까하다가 그 날부터 사는 아파트 엘레베이터에 제가 손수 쓴 시를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남들 다 잘 때 예쁜 종이를 골라서 시집에서 시를 베끼고 그림을 그리고. 매일 새벽녁에 스카치테이프로 엘리베이터와 우리집 현관문에 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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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일맘님, 프로스트나 워즈워스의 시는 우리네 정서와도 잘 맞는것 같습니다. 두 분 다 계관시인인 셈인데 워즈워스는 산업혁명을 보았고 프로스트는 케네디 취임식 축사를 했으니 자국이 세계 최강에 올라가는 것을 본 분들이네요.
선진국이란게 정치경제력 뿐만이 아니라 문화와 예술의 힘이란 것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인데... 우리는... 요즘 우리 아이들이 시를 읽을까요? 진정으로 즐기면서 그림을 그릴까요? 용일맘님의 스카치테이프 전쟁이 바로 문화 투쟁이요 선진국 운동 아닐까요...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저도 정말 좋아했었지요..
예전 출근길에 맨날 아름다운 길을 보게 되면서도. 가지못한 길이 있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보니, 그 길이 새도로로 파헤쳐져서 아스라히~~~~~~;;
다시는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만 덩그러니 더해졌지요..
도서관에서 책고르다 책제목에 혹하여 박완서의 소설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도 읽었구..ㅎㅎ
근디.. 아오스팅님께서는 어떻게 번역하셨을까~ 그 시가 알고 싶다~~~^^
동가사랑님 그거시 알고싶다 숙제는 위에^^... 박완서님의 "심심하고 왜 사는지 모르겠을 때도 위로받기 위해 시를 읽는다."라는 구절 참 와 닿습니다. 시나 그림이나 음악이나... 예술에는 자연과 더불어 치유의 힘이 있으니... 박선생님은 " 나 좀 살려줘, 비명을 지르며 뛰어내리고 싶게 시간은 잘도 가는구나."라면서도 "신이 나를 솎아낼 때까지는 이승에서 사랑받고 싶고, 필요한 사람이고 싶고, 좋은 글도 쓰고 싶으니..."라고 했는데...암투병의 고통 속에서 처절하게 글을 쓰시면서 분명 스스로도 위안을 받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번역은 역시.. 시의 맛을 다르게 하는군여^^^^
근원은 같으나하되.. 번역자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있네요..
아오스팅님의 번역
원작을 우리말의 아름다움으로 자연스럽게 빚어내어
마음에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오게 합니다.
정서의 습자지에.. 물처럼 촉촉히 흡수됩니다...
전자에 비해 감동의 크기가 전혀 손색없는 수작인 것 같네요..
앞으로는 아오스팅님의 작품을 애송할까 합니다
동기님, 과찬 감사합니다. 위의 대가분들 중 김치규(김종길) 선생님은 사실 제 은사의 은사님이신데
(대령숙수님 표현으로는 사조님) 함께 하는 자리에서는 감히 기도 못펴고 숨 죽이고 있기만 했지요.
동기님 수작이라니 너무 과찬이시고...워즈워스의 시집이랑 영시 번역본 몇 편 낸적이 있긴 했지만
대가들에 비할 바가 못되는 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시 동기님 제 마음을 잘 아십니다.
번역이 반역이란 말도 있지만 제2의 창작이기도 하죠. 번역에 따라 참으로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한 번 그 맛을 보자고 올렸는데.. 정서의 습자라는 표현! 와 정말 우리 동기님이 숨은 시인 이었군요.
"가지 않은 길" 피천득선생님에 글이 머리속에 생각 납니다.
저의 짧은 소견에서는~ 위에서 내려갈수록 번역이 쉽게 되어있네요
시대가 흐를수록 그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달라 질거라고 생각됩니다.
아오스팅님의 글이 가장 현대 판입니다.
요즘 아이들이 읽기 좋은 것 같아요~
잊고 살아가는 저에게 다시금 되새기게 해 주셨어 감사합니다.
창진엄니님의 번역시기에 대한 말씀 아주 좋은 지적입니다. 일부러 그렇게 배열 했었죠. (제 졸역은 물론 논외고요) 앞서 금아선생님의 일화를 굳이 말씀드린 이유는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뉴턴이 이런 말 하지 않았습니까?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 것 뿐"이라고... 예전 대가분들의 역작이 있으니 용기를 내어 본 것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
오는 주말에는 춘천에 갔다 오려 한다. 소양강 가을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 저 끝구절의 묘한 인연!
아 나도 주말에 아들과 만나고 싶다. 함께 춘천에 가서 소양강 가을경치를 보고싶다!
와, 아오스팅님 또 숙제를 주셨으니 ..그러고 보니 피천득선생님의 국어가 조금 어색한 것도 같고, 아마도 너무 직역을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나 싶기도 하고. 아 님이 훨씬 문장이 이해하기가 쉽네요. 노란 숲 속에/ 노랗게 물든 숲 속에,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다시 여기 돌아오지 못하리라 여기면서도...아 님이 저자가 생략한 숨어있는 뜻을 찾아 의미를 충실히 옮기신듯. 계관시인의 간판처럼 영국이나 미국이나 문명발전과 예술이보조를 같이한듯, 그래도 워즈워드는 1780년대부터 시작된 세계의 공장이라는 천지가 개벽하는 영국에서 어떻게 그렇게 하늘과 꿈과 무지개를 그릴 수 있었는지...
용일맘님, 금아선생님이야 워낙 독보적인 분이신데... 언어는 살아있는 존재라 시대와 더불어 변화를 하니... 후생은 선배를 참조할수 있는 점도 있고... 석사 때의 전공이 낭만주의 영시(윌리엄 블레이크)인지라 워즈워스 당대의 시대상에 관해 조금 읽은 적이 있긴 합니다. 낭만주의가 인간의 상상력을 중시하기에 이성의 소산인 과학, 산업, 기술과 당시의 산업화에 상당히 비판적(특히 블레이크 - 제 논문의 주제의 하나이기도 했군요)이었죠. 상상력이 구원이라고 볼 정도였습니다. 워즈워스는 자연이 주는 치유력에 끌렸지요. 우리도 한 번 잘살아 보세라는 산업화는 잘산다는 본질에 대한 성찰의 부족으로 한계를 노정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