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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과 경칩 사이
한 주간 동안 변화무쌍한 계절의 변화를 겪었다. 봄비인지 겨울비인지 모를 비 소식을 여러 날 들어야 했고, 급기야 대설주의보로 이어지더니 밤새 큰 눈이 내렸다. 겨울 어느 날보다 많은 눈이 쌓였다. 새벽 걸음이 기분 좋았다. 발자국 없는 텅 빈 눈 쌓인 거리를 밟는 즐거움은 누린 사람만 안다. 어쩐지 밤새 눈 내리는 소리가 하얗게 들렸다. 아침에 창문으로 본 전봇줄마다 줄줄이 쌓인 눈의 무게감으로 출렁인다.
입춘(立春)이 지난 지 여러 날인데 저절로 연상되는 송창식의 ‘밤눈’을 흥얼거리자니 다시 겨울의 추억으로 되돌아갈 듯하다. “까마득히 먼 데서 눈 맞는 소리 흰 벌판 언덕에 눈 쌓이는 소리”는 과연 어떤 바스락일까? 아내는 때아닌 겨울눈 아래에 갇혀 버린 어린 봄꽃들이 등산객에게 밟힐 새라 낯선 주문을 왼다. “수리산의 눈들아, 어서 녹아라.” 시절보다 일찍 봄맞이를 나온 노루귀와 복수초가 그 아래에서 봄 숨을 쉬는 중이다.
겨울 한복판에 걷기도를 할 때마다 늘 봄을 노래하였다. 걷기도는 너무 이른 봄 마중이기도 하다. 눈길을 피해 다니고, 겨울비도 맞지만, 어김없이 봄이 오는 소리도 들었다. 애창곡 ‘강이 풀리면’은 호젓한 곳에서 냅다 목청 돋우어 부르는 주제가이다.
“강이 풀리면 배가 오겠지/ 배가 오면은 임도 오겠지/ 임은 안 타도 편지야 탔겠지/ 오늘도 강가서 기다리다 가노라// 임이 오시면 설움도 풀리지/ 동지섣달 얼었던 강물도/ 제멋에 녹는데 왜 아니 오시나/ 오늘도 강가서 기다리다 가노라”
‘입춘과 경칩(驚蟄) 사이’에 우수(雨水)가 있다. 아직은 정월 한복판이지만 이미 사람들의 마음마다 봄이 기웃거린다. 산 너머로 이른 비와 함께 봄이 찾아와 대지와 도시를 적신다. 응달에 남은 잔설마저 죄다 녹이는 우수에 내리는 비는 그래서 겨울비가 아닌 봄비이다. 시인 두보(杜甫)는 이 때를 가리켜 ‘好雨知時節’(호우지시절), 곧 “좋은 비는 때와 철을 안다”고 하였다. 그 역시 봄을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시를 닮은 영화 ‘호우시절’도 있다. 시인 송찬호 역시 우수를 노래하였다. “키 큰 봄비는/ 작년에도 왔던 비/ ... 키 작은 봄비는/ 올봄에 새로 오는 비...”(봄비).
칼 푀르스트는 <일곱 계절의 정원>에서 일 년을 일곱 계절로 구분하였는데, 봄을 둘로 나누어 이 맘 때를 초봄으로 불렀다. 아마 겨울과 봄 사이 경계에 낀 ‘입춘과 경칩 사이’ 기후대일 것이다. 그 한복판에 있는 우수는 눈이 녹아서 비나 물이 된다는 의미이니, 곧 날씨가 풀린다는 뜻이다. 이제 기러기는 더 북쪽으로 날아가고, 강남 갔던 제비는 봄 비행에 설레일 것이다. 이즈음이면 봄기운이 감돌고, 어린싹들은 기지개를 켤 준비동작을 한다. 말 그대로 얼음장 밑으로 봄이 오는 것이다.
초봄은 사순절 기간이다. <몰트만 자서전>에서 몰트만은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른 봄에 우리는 부활절의 횃불을 뛰어넘으며 ‘겨울이여, 안녕’이라고 노래하였다.” 어린 위르겐들의 봄맞이 의례와 같았다. 사순절 절기 역시 겨울과 봄의 경계에 있다. 사람들은 부활절과 함께 비로소 완연한 봄이 왔음을 느낀다. 노란 꽃들의 합창을 귀따갑게 들을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
실은 봄은 계절의 변화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장-밥티스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언제나 봄입니다”라고 하였는데, 봄은 사계절 모두에 잠재해 있는 셈이다. 또 교황 요한 23세는 떼제공동체를 가리켜 “떼제는 교회의 조그마한 봄”이라고 자랑하였다. 공동체는 카톨릭과 개신교회가 함께 하는 에큐메니칼 청년공동체인데, 봄은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이루어가는 제5의 계절이기도 하다.
꼭 ‘입춘과 경칩 사이’가 아니더라도, 여전히 사람들은 ‘서울의 봄’, ‘아랍의 봄’처럼 흥분한 심정으로 봄을 기다린다. ‘서풍의 노래’(퍼시 비시 셸리)는 1931년 함석헌이 <성서조선>에 처음 소개한 장시인데 “나를 몇 번이나 엎어진 데서 일으켜 준 시”라고 하였다. 이렇게 마무리된다. “예언의 나팔을 불어라! 오오, 바람이여. 겨울이 오면 어찌 봄이 멀 것이랴.” 서풍(西風)은 겨울에서 봄이 멀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바람이다. 서풍은 변화와 자유의 상징, 희망의 바람이다. 그런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새 봄을 꿈꾸고, 또 손꼽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