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연혁
선산(善山)은 경상북도 서쪽에 위치 해 있으며 현재 구미시(龜尾市) 선산읍 일대의 옛 지명이다. 신라 눌지왕 때 일선군(一善郡) 또는 병정현(竝井縣)이 설치되었다가 757년(경덕왕 16)에 숭선군(崇善郡)으로 개칭하였고 군위현(軍威縣)과 효령현(孝靈縣)·부림현(缶林縣) 등을 관할하였다. 995년(고려 성종 14) 선주(善州)로 개편되었다가 1018년(현종 9)에 상주의 속현이 되었다. 1143년(인종 21)에 일선현(一善縣)으로 승격되었다가 후에 선주(善主)로 다시 승격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선산군(善山郡)으로, 1415년에는 선산도호부(善山都護府)로 승격되었다. 화의(和義)라는 별호가 있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대구부 선산군이 되고, 1896년 경상북도로 이속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선산면이 신설된 이래 1979년에는 선산면이 선산읍으로 승격하였고, 1995년에는 선산군이 구미시에 통합 되었다.
성씨의 역사
선산곽씨(善山郭氏)의 선계(先系)는 중국 주나라 왕손 곽목(郭穆)이라고 알려져 있다. 곽목의 후손 곽경(郭鏡)이 고려 때 우리나라에 건너와 포산군(苞山君)에 봉해져 포산곽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그 뒤 고려 중기에 곽경의 13세손으로 선산군에 봉해진 뒤 선산으로 이거한 곽우현(郭佑賢)이 선산곽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곽우현은 고려시대에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 문하시중 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를 지냈다. 곽우현의 손자 곽원(郭元)은 상장군(上將軍)과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냈고, 9대손 곽윤성(郭允誠)은 예의판서 겸 동지밀직사(禮儀判書兼同知密直司)를 지냈다.
분적종 및 분파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곽씨의 본관은 현풍(玄風), 청주(淸州), 선산(善山), 해미(海美), 봉산(鳳山), 여미(餘美) 6개 본이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청주곽씨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가 곽경(郭鏡)을 시조로 하는 현풍곽씨에서 분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주곽씨는 신라 때 시중(侍中)을 지낸 곽상(郭祥)을 시조로 하고 있다.
선산곽씨는 현풍곽씨의 분적종이지만 중간 세계가 실전되어 연대와 세수에 차이가 있어 족보를 따로 간행하고 있다. 1743년(영조 19)에 발행된 선산곽씨 계해보(癸亥譜)에 의하면, 원래 선산곽씨는 포산곽씨, 즉 현풍곽씨와 합보(合譜)하여 본관을 포산으로 했으나 1781년(정조 5)에 간행된 임인보(壬寅譜)부터 곽우현을 시조로 삼았다고 한다.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선산곽씨는 1,743가구 총 5,603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