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연수
2009년 단편소설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으로 이상문학상, 2007년 단편소설 〈달로 간 코미디언〉으로 황순원문학상, 2005년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로 대산문학상, 2003년 소설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로 동인문학상, 2001년 장편소설 《꾿빠이, 이상》으로 동서문학상….
2000년 이후 한국의 주요 문학상들을 2년에 하나씩 받은 소설가 김연수(39)의 화려한 궤적을 역순으로 밟아봤다. '독창적 서사 기법의 실험' '폭넓은 인문학 소양에 바탕을 둔 지적(知的) 재미'란 비평가들의 찬사가 이어져 왔다. 그런가 하면 '지나치게 주석(註釋)이 많아 현학적이다' '소설이 삶의 우연에 너무 의존한다'라는 일부 지적도 있었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수상 경력만 놓고 본다면, 그는 1970년대 이후 박완서·황석영·이문열·신경숙 등 다관왕(多冠王)의 계보를 잇는 우리 시대의 스타 작가다.
하지만 김연수는 "비평가들의 사랑을 많이 받더라도 독자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불행한 소설가"라며 웃는다. 경기도 일산경찰서 건너편의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내 소설의 독자는 3~4만명으로 생각보다 많은 편이고,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나길 바랄 뿐"이라고 했다. '소설적 재미는 없는데 문장 소비만으로도 위로받을 수 있는 소설'이라는 평을 올리는 독자들이 있기 때문에 작가로서 행복하다는 것이다. "1970~80년대 선배 작가들의 시대는 '국민작가'가 필요했고, 개인의 성장에서 '필수' 과목이었던 문학이 오늘날 '선택' 과목으로 전락했다. '투사 작가'와 '지식인 작가'가 사라진 시대에 놓인 우리 세대(1970년대 초 출생) 작가들은 '나'하고 취향이 맞는 사람을 겨냥해 소설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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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과 CD가 꽉 들어찬 집필실에서 주로 오전에 작업하는 작가 김연수. “내 소설을 읽은 독자가‘세상이 달라져 보 인다’고 하면 작가로서 가 장 기분 좋은 일”이라고 말 했다./김건수 객원기자 kimkahns@chosun.com
작가로서 김연수의 위상은 장편소설에서 더욱 빛난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이상(李箱)의 삶을 재구성한 《꾿빠이, 이상》(2001년)을 비롯해 1991년 강경대군 치사 사건 이후 분신정국 때 청춘을 보낸 '포스트 386세대'를 대변한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2006년), 1930년대 간도에서 항일혁명가들이 노선 차이 때문에 서로 일본의 첩자로 몰아 500명이나 살해한 '민생단 사건'을 재구성한 《밤은 노래한다》(2008년)에 이르기까지 김연수는 심층 취재와 자료 수집을 거쳐 한 올 한 올 짜낸 장편소설들을 잇달아 내놓았다.
문학평론가 김치수는 계간 〈문학수첩〉 여름호에 발표한 글을 통해 "간도 이주민들에게 보다 큰 고통을 준 것은 항일 독립운동의 기치를 내건 여러 세력 간에 이념적인 차이 때문에 일어난 갈등과 반목과 투쟁과 살육의 체험이었다는 것을 《밤은 노래한다》는 증언해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현재 김연수는 계간 〈창작과 비평〉 봄 호부터 새 장편소설 《바다 쪽으로 세 걸음》을 연재하고 있다. 《꾿빠이, 이상》은 이상(李箱)의 임종에 대한 기록, 《밤은 노래한다》는 와다 하루키의 책에서 본 민생단과 김일성의 기록에서 각각 착상을 얻었듯이, 새로 쓰는 《바다 쪽으로 세 걸음》은 임진왜란 당시 에스파냐 신부(神父)가 만난 조선인 소년들에 대한 짧은 기록에서 출발한 역사소설이다. 그는 "역사 사건을 전부 개인의 눈으로 재현하고, '왜 이 사람들이 그런 일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이해하려는 '윤리적 태도'란 잣대를 갖고 글을 쓴다"고 말했다.
지난 1993년 시인으로 등단한 김연수는 2001년부터 전업작가로 살고 있다. "영어소설 번역 등을 통해 3개월치 생계비를 마련해 놓은 상태가 돼야 새 소설을 쓴다"고 한 그는 "작가로서 내 이름에 대한 기대치 때문에 이제는 함부로 번역을 할 수도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자전거·마라톤·기타·사진… 취미로 가득 찬 '청춘'
"우리 세대도 내년이면 마흔인데 지난 20년 동안 항상 '청년 작가'로 불려왔다. 4·19세대 문인들은 우리 나이 때 벌써 문단의 어른이었는데 말이다."
1971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난 소설가 김연수는 "우리 세대 작가들의 관심사는 이 기나긴 청춘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것이었다"라며 웃었다. 문학사적으로 주어진 긴 청춘을 누리기 위한 김연수의 취미생활은 다양하다. 자전거로 7번 국도를 종단한 적도 있고, 마라톤 대회에도 나갔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철인 3종 경기에 도전해볼까 했는데, 그러고 나면 소설 한 줄 못 쓸 것 같아 포기했다"고도 말했다. 일산 문인들을 모아놓고 연말 송년회에서 전기기타 연주회를 열었고,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사진 솜씨도 수준급이다. 홍상수 감독의 최근 개봉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 비록 단역이지만 '인기 영화감독'으로 출연해 4번 정도 화면에 나왔다.
김연수는 작가 중에서도 유난히 책 욕심이 많다. 작업실과 집에 수북하게 책을 쌓아놓고 살다 보니, 정작 필요한 책을 찾지 못해 도서관들을 뒤지기 일쑤다. "가령, 역사소설에서 '꽃이 바람에 휘날렸다'는 문장을 쓸 때 그 꽃 이름을 알기 위해 관련 시대와 지역에 관한 문헌을 찾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