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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하나님께 영광(시 24:1-10)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은 대림절 첫째 주일입니다.
대림절이란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건져주시고, 우리에게 새생명을 주고, 더 풍성한 삶을 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기다리며, 묵상하는 절기입니다.
페니 크로스비는 생후 6주부터 95세까지, 앞을 보지 못한 상태로 한평생을 살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로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크로스비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도다. 주 안에 기쁨 누림으로 마음의 풍랑이 잔잔하니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찬 288장)라고 노래했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이심을 믿을 때, 우리는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고,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제목으로, 시편 24편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시편 24편의 머리말을 보면, “다윗의 시”라고 되어 있어서, 이 시편을 다윗이 지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2절 말씀입니다.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경을 통하여, 참으로 많은 믿음의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과 동행했던 에녹, 방주를 만들었던 노아, 모리아 산에서 아들 이삭을 바쳤던 아브라함,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야곱, 애굽으로 팔려갔던 요셉, 사자굴에 던져졌던 다니엘,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던 요나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의 주인공들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말씀의 사람, 순종의 사람, 믿음의 사람, 기도의 사람, 찬양의 사람들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닮고 싶은 사람, 따르고 싶은 사람,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그 많은 믿음의 사람들 가운데, 누구를 우리의 신앙의 기준으로 삼아야 할까요?
우리의 신앙의 기준은 아브라함도 아니고, 다윗도 아니고, 솔로몬도 아니고, 오직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신앙의 기준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라고 말씀하셨을 때, 유대인들은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고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다”라고 외쳤습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을 그들의 신앙의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라고 선포했습니다.
우리는 육신적으로 말하면 이방인이지만, 영적으로 말하면,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원래부터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라고 고백했는데, 그 고백이 바로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유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어느 한쪽에 치우친 편협한 신앙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쳐서는 안됩니다. 정도를 걸어야 합니다.
간혹, 자신의 신앙을 자랑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살짝 자기 자랑 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너무 지나쳐서, 신앙의 자만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그 누구보다도, 나의 신앙이 최고다”라는 헛된 자만심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유대인들은 “나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다”라고 하는 편협한 신앙에 빠졌습니다.
영적 맹인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그들은 안주하고 말았습니다. 신앙 성장이 멈추고 말았습니다. 자만심에 빠져, 어떤 테두리 안에 자기를 가두어 버렸습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틀을 깨야 합니다. 테두리를 벗어나야 합니다.
“내가 최고다”라는 자만의 틀을 깨야, 올바른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구약을 읽어도, 예수님을 만나야 하고, 신약을 읽어도,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성경 속에서, 아브라함을 만나도, 야곱을 만나도, 다윗을 만나도, 바울을 만나게 되어도, 우리는 절대 예수님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아무리 많이 성경을 읽었다 할지라도, 기도를 많이 한다 할지라도, 헛된 일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이심을 만나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것이구나”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러분! 다윗은 “다 여호와 하나님의 것입니다.”라고 선포했습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 땅에 살아갈 수밖에 없지만, 하루하루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입장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누구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를 죽음과 멸망의 자리에서 구원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원래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였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누구인가를 알았다고 한다면,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를 알았다고 한다면,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어떤 삶이어야 합니까?
3-6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우리는 하나님의 산에 올라야 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거룩한 곳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산에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버지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에 오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산에 올라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다윗이 쓴 또다른 시편인 15편을 보면,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믿음의 사람 다윗은 항상 “주님, 누가 주님의 장막에서 살 수 있겠습니까? 누가 주님의 거룩한 산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라는 고민을 했습니다. 그 고민 끝에, 다윗은 “깨끗한 삶을 사는 사람,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 마음으로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장막에서 살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러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주님의 거룩한 산에 머무를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다윗은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며, 누가 그 거룩한 곳에 들어갈 수 있느냐?”라고 스스로 질문하며, 스스로 대답하기를,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산에 오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다윗은 하나님의 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손이 깨끗해야 한다. 마음이 청결해야 한다.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않아야 한다. 거짓 맹세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거룩한 사람, 우상 숭배하지 않는 사람,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산에 오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절대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3절과 4절에 기록된 내용을 보고서,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깨끗하고 거룩한 사람들만이, 그들의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완벽한 사람들만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솔직히 말해,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의 공로로, 자기의 의로움으로, 하나님 산에 올라가, 하나님을 뵐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선행이나 공로를 쌓아야 하지만, 그 선행이나 공로로 구원받은 것은 아니라고 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행위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와 있습니다. 무슨 이유일까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자신있게 설 수 있을만큼 우리가 완벽하기 때문입니까?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정결하고, 순수하고, 순결하고, 거짓이 없기 때문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의 자리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집이라고 고백하는 교회에 나와, 하나님 앞에 앉아 있는 것입니까?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은 나의 거룩함도 아니요, 나의 깨끗함도 아니요, 나의 순수함과 순결함도 아니요, 나의 무결함도 아니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우리의 거룩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나아갔다가, 보좌에 앉아 계시는 하나님을 보고서,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 6:5)라고 고백했던 이사야 선지자의 고백처럼, 우리 또한 하나님 앞에 제대로 설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볼품없는 우리가, 깨끗하지 못하고, 거룩하지 못하고, 항상 다른 마음을 품고 있고, 늘상 거짓말하는 우리가, 하나님의 산에 오를 수 있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하나님 곁을 떠났던 우리들이, 주님의 부르심을 듣고, 이 자리에 나온 것입니다.
성경의 인물 가운데, 가장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아마 야곱일 것입니다. 야곱이 자녀들 문제로 인하여, 힘들어 할 때, 하나님께서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창 35: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우리들도 언제든지, 기쁜 일을 만나든지, 힘든 일을 만나든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감사함으로,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7-10절 말씀입니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
얼마나 장엄하고 영광스러운 묘사입니까? 누가 들어오기에, 문들을 향하여, 머리를 들라고 할까요? 활짝 열린 영원한 문들을 통과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영광의 왕이 누구십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째 되는 날 부활하셨고, 승천하실 때에, 하늘의 영원한 영광의 문을 통과하여, 하나님의 나라로 다시 들어가셨습니다.
다윗이 고백하고 있는, “영광의 왕”, “강하고 능한 여호와”, “전쟁에 능한 여호와”, “만군의 여호와”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지금 대림절을 맞이했습니다.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을 기다립니다. 더 나아가, 다시 오실, 재림의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영광의 왕이신 예수님을 기다리고, 그리고, 우리 마음 안으로, 모셔들여야 합니다.
“나는 손이 깨끗하지 못하고, 마음도 순결하지 못하고, 거짓말도 많이 해서, 하나님의 산에 오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하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영광의 왕이신 예수님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려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대림절을 맞이한 우리는 영광의 왕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땅에 다시 오실 영광의 왕을 맞이할 준비를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신랑을 맞이하기 위하여,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던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처럼, 이 땅에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준비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대림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성탄의 계절, 우리의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영광의 왕이신 주님을 모셔 들이고, 예수님께서 왜 이 땅에 오셨는가를 깊이 생각하고, 묵상하는 날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깊이 묵상함으로,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여, 주님 오심을 기다리오니,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에게 크신 은총을 베풀어 주옵소서.
우리의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주셔서, 오직 주님만을 모시고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이 험한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