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기억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치매가 진행되며 점차 딸들도, 아내도,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도 기억하지 못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는 것은 한 인간이 산 채로 풍화되어 사라져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 같았습니다.
아빠가 가족들과 주변 지인들을 잊어가는 그 모습이 슬프기보다도 아빠 스스로를 잃어가는 그 현실이 더 아팠던 것 같아요. 아빠는 여전히 우리 앞에 존재하나, 부존재하는 존재처럼 느껴졌습니다. 치매라는 건 당사자에게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참으로 깊은 상실감을 주는 무서운 병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가족이 느꼈던 상실만큼 아빠를 오래 알아왔던 분들께서 느꼈을 상실도 크시리라 생각합니다. 아빠의 사라진 기억 속에는 분명 여러 지인분들과 함께 나눴던 시간들이 있었을 테지요. 그 소중한 기억의 한편을 일방적으로 가지고 가버리시다니요. 오랜 인연분들께서 느꼈을 아쉬움과 섭섭함, 슬픔, 원망 그리고 어쩌면 분노마저 모두 이해합니다.
어쩌면 기억이라는 것은 한 사람의 삶 그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 조문객분들이 들려주신 아빠에 대한 이야기와 사진, 기사, 기억들을 통해 우리 가족은 잘 몰랐던, 아빠마저 잊은 수많은 기억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흘러간 시간 속에 잊히고, 흩어져 있던 기억의 조각들이 마침내 하나로 모여 비로소 아빠의 삶을 완결 짓는구나... 우리 가족은 아빠의 죽음을 통해 아빠의 삶을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고인 김대식을 기억하게 해주시고, 떠나는 마지막 길을 배웅해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어려운 자리를 함께 해 주시고 격려해 주신 덕분에 마지막까지 고인을 잘 모실 수 있었습니다. 조문객분들께서 남겨주신 아빠에 대한 기억들은 우리 가족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간 아빠 곁을 든든하게 지탱해준 서울대 외교학과 동기, 동문, 정영회, 문우회, 가오리의 소중한 인연들, 수유리 야학, 한두레 및 마당극판의 선후배, 전북 부안의 인연, 동아일보 사우회, 대우학술총서를 함께 만든 사람들, 북한산방, 경주 남산 자락의 인연, 민들레 모임... 그외 일일이 열거하지 못한 많은 분들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빠는 한줌 재가 되었지만, 여러분들이 남겨주신 아빠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우리 가족의 마음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을 겁니다.
김대식의 죽음이 아닌 삶을 생각하며
이연형, 김민, 김진, 김인 올림
첫댓글 울림을 주는,
부고(9/13)의 답례글인데도,
최근 글(9/18; 전어축제) 위에 게재되네요
<naver 문제>
* 부고에 댓글다는 것은 불가<용량 초과>
처음 부고 접하고 고교 앨범까지 확인했지만 누구인지 전혀 기억이 나지않았는데 위의 글을 읽고 곰곰히 생각하니 대학시절 만난 사실을 알게되니 새삼 많은 시간이 기억을 흐리게 합니다
늦었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