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경제학] 이상한 상식이 전 세계에 ‘이상한 나라의 경제’를 구축했다. 이상한 상식은 결국 이 이상한 경제 체제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이상한 나라 안에 있을 때는 그 나라가 얼마나 이상한지 깨닫지 못한다. 숲 밖으로 잠깐 나와, 우리가 살고 있는 이상한 나라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내려다보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매년 2월이면 밸런타인데이가 찾아온다. 연인들끼리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이다.
그런데 1천 원짜리 초콜릿을 사면, 이 가운데 20원만이 초콜릿의 재료인 카카오 생산 농장으로 간다는 보고가 있다. 실제로 초콜릿용 카카오가 많이 생산되는 서아프리카 지역에 가보면, 열한 살, 열두 살짜리 어린이들이 농장에서 일하고 있다. 이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일을 한다. 초콜릿 업체들이 카카오를 너무 싼 값에 구매해서, 가장이 직접 일하거나 다른 사람을 고용해서 카카오 농사를 지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싼값에 어린이를 동원해 카카오를 재배할 수밖에 없다.
국제인권단체에서 모두 금지하고 있는 아동 노동이 농장마다 버젓이 벌어진다. 연인들 사이의 달콤한 사랑 뒤에는, 학교에 가지 못하고 저임금 노동을 해야 하는 열두 살 어린이들이 있는 것이다.
최근 밸런타인데이에는 늘 ‘착한 초콜릿’이 화제에 올랐다. 제 3세계 카카오 생산 농가를 배려한 ‘공정무역’ 초콜릿을 사기 위해 연인들이 몰려들었다. 공정무역 초콜릿이란, 카카오 농가에 공정한 대가를 지불하면서 만든 초콜릿이다. 최소한 카카오 재배 농가에 아동 노동이 사라지고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있도록 만든다는 목표로 만들어진 초콜릿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밸런타인데이, 연인에게 초콜릿을 주면서 ‘이 초콜릿은 값싼 서아프리카 카카오를 구매해서 저임금의 중국 공장에서 만든, 경제적인 초콜릿이야’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누구나 이렇게 말하고 싶어 한다. ‘이 초콜릿 안에 내 마음이 있어. 그 마음 안에는 가난한 카카오 농가 어린이들이 학교에 갈 수 있게 도우려는 뜻도 들어 있어. 받아줘.’
애덤 스미스는에 ‘우리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등의 박애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이기심 때문’이라고 썼다. 그의 논리를 연장하면, 푸줏간 주인이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것도 지역 주민의 박애심 때문이 아니라 값싸고 좋은 고기를 먹고자 하는 소비자의 이기심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요즘 밸런타인데이 언저리에 서아프리카 카카오 생산자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이유는 달라졌다. 그것은 한국 연인들의 이타심 때문이다. 그 이타심이 깃든 ‘공정무역 초콜릿’ 소비 때문이다.
공정무역은 경제적 효용뿐 아니라 윤리적 가치도 함께 고려해 소비하는 ‘윤리적 소비’의 일종이다. 소비자는 ‘효용’을 얻기 위해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한다. 경제학 원론에서 가르치는 소비의 본질이다. 그런데 여기에 ‘효용’은 오랫동안 ‘화폐로 환산될 수 있는 당장의 만족’인 것처럼 해석됐다. 그래서 유통업체들은 가장 싼 값에 제품을 들여와 가격경쟁력을 갖추려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비용 절감 경쟁을 벌이다 보니 화학물질이 첨가되어 건강이나 안전 문제가 생기고, 공장에서 오염물질을 배출하며 환경을 파괴하고, 아동 노동이 성행하는 등 인권 및 노동 문제가 발생했다.
그런데 그 구도를 바꾼 것이 미국 사회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이다. 베블런은 저서에서 19세기 당시의 상류사회를 비판하면서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과시적 소비란 다른 사람에게 높은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실제로 필요 없는 제품을 비싼 값을 주고 사들이는 행위를 뜻한다.
여기서부터 사람은 반드시 당장의 경제적 만족 때문에 소비하는 것만은 아니며, 다른 동기에 의해서도 소비한다는 이론이 성립한다. 이는 ‘사회적 소비(social consumption)’라고 통칭되며, 소비자는 과시적 동기뿐 아니라 이타적 동기 등 다양한 사회적·도덕적 동기에 따라 소비할 수 있다는 논증의 여지가 열리게 된다. 이 가운데 특히 건강, 환경, 사회 등 윤리적 동기로 소비 의사결정을 내리는 행위를 ‘윤리적 소비’라고 한다.
photo, ⓒ 2011 윤리적 소비 공모전 누리꾼 인기상 후보작 <소비의 싹> 서진영
한국에서의 윤리적 소비는 크게 건강, 환경, 사회 세 영역으로 분류한다.
‘건강’은 웰빙 소비 트렌드가 속하는 영역이다. 과거 소비자는 최대한 낮은 가격에 가장 많은 양의 제품을 소비하려고만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소비하면 소비자 자신의 장기적 건강에도 해롭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때 ‘웰빙’이 떠올랐다. 무항생제니 유기농이니 저농약이니 하는 말이 소비 의사결정에 변수로 작용했다. 장기적 건강을 고려한 소비가 시작된 것이다.
‘환경’ 영역에는 저탄소·저에너지 제품 사용, 재활용 제품 사용, 동물 보호 제품 소비 등 친환경 소비가 이에 속한다. 나의 건강뿐 아니라 자연 환경 전체의 건강을 생각하며 소비 의사를 결정하는 흐름이다. 이러한 친환경 소비는 윤리적 소비라는 개념이 쓰이기 이전부터 활발하게 실천되었는데, 다음 세대를 위해 환경을 고려하고 자원 분배를 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소비를 말한다. 친환경 소비의 핵심은 자연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고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으로, 이때의 자연은 단순히 환경뿐 아니라 그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동물, 식물 등 모든 생명체를 포함한다.
‘사회’ 영역에는 인권이나 노동 문제를 고려한 소비가 포함된다. 나의 웰빙뿐 아니라 이웃의 웰빙까지 생각하며 소비하는 흐름이다. 여기서 나온 키워드로는 로컬 푸드, 공정무역을 꼽을 수 있다. 로컬 푸드 운동은 그 지역에서 생산된 제품을 그 지역의 주민이 소비하는 것이다. 로컬 소비를 하면 자신이 먹는 식품이 어디에서 어떻게 생산 되었는지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유통 마진의 거품을 뺄 수 있다. 지역의 재화와 서비스를 구입함으로써 지역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며, 다양한 지역의 생산을 활성화하고 지역공동체의 연대를 강화시킨다. 나아가 이동 거리를 좁혀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도 기여한다. 농산물 직거래, 농민 장터, 지역 급식 운동 등이 이에 해당한다.
공정무역은 생산자에게 ‘가장 싼 값’이 아닌 ‘공정한 값’을 지불하는 것으로, 세계화로 인한 자원을 헐값으로 착취당하는 제3세계 노동자를 위한 대안무역이다.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직거래, 공정한 가격, 건강한 노동, 환경 보전, 생산자의 경제적 자립 기반을 만들어주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커피, 초콜릿 같은 식품에서 의류, 신발, 가방 등의 공산품과 공정 여행까지 범위를 넓혀가는 중이다.
처음 ‘건강’ 영역에서 시작된 윤리적 소비는, 대량 소비와 대량 폐경 소비로 확장됐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서, 소비자들은 이웃을 생각한 소비 의사결정을 내리기 시작한다.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려면 환경만 보호해서는 부족하며, 빈곤과 불평등 같은 사회문제를 치유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윤리적 소비가 ‘사회’ 영역까지 확장되는 과정이다.
과거 윤리적 소비는 비윤리적 기업의 제품을 사지 않는 보이콧(boy-cott)에서 시작됐다. 1990년대 파키스탄 협력업체들이 아동 노동으로 ‘나이키’ 축구공을 생산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어난 대규모 불매 운동이 그 사례다. 그러나 요즘은 책임 있는 기업의 제품을 더 사자는 바이콧(buy-cott)으로까지 확장되어 있다. 제품을 선택할 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고려하는 소비자가 점점 늘고 있다는 사실은 여러 조사에서 확인된다.
이를 포착한 경영학에서는 이미 사회 마케팅, 공익 마케팅과 같이 고객의 이타심에 호소하는 마케팅 전략을 연구하고 있기도 하다. 윤리적 소비자들은 사회적기업이나 사회책임 경영이 확산될 수 있는 소비 시장을 만드는 시장 선도자들이이기도 하다. 공정무역 하나만 해도, 2009년 전 세계 거래량이 6조 원에 이르는 시장이 형성됐다. 공정무역 혜택을 입는 제3세계 생산자 수는 120만 명이다.
‘윤리적 소비’는 한마디로 경제적 이해관계를 넘어서서 이타적 의도를 소비 의사결정에 투영하는 행위를 말한다. 돈이 아닌 다른 가치가 있다는 사실은 이렇게 경제와 연결된다. 윤리가 소비자들의 지갑을 여는 방향을 바꾸면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