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거룩하고 복된 주의 날에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성도님께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입니다.
이전에 일본의 아베 총리가 종군위안부의 실체를 부인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종군위안부 문제를 증거할만한 문서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자 한 일본여성이 일본정부와 아베 총리를 비꼬면서 신문에 기고했는데 그 내용이 이렇습니다. ‘성폭행범이 범행문서 남기는 것을 봤느냐? 폭행당한 피해자만으로도 증거는 충분한데 폭행범의 범행계획일지 따위의 증거가 뭐가 필요하느냐?’ 도둑질도 가져간 물건과 본 사람과 그리고 도둑이 남긴 지문이나 씨씨티브에 찍힌 영상이 증거이지, 도둑질할 계획서나 일기가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라고 했습니다. 범행계획 문서가 없다고 그런 일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부활에 대한 계획서까지도 다 남기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수차례에 걸쳐 인자는 사람들에게 잡혀서 죽임당하고 삼 일만에 다시 살아날 계획을 말씀하셨고 갈릴리에서 다시 만나자고 했습니다. 구약에 여러 선지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예언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뜬금없이 일어난 일이 아니며 시편과 선지자의 글로 미리 말씀하신 계획에 따라 진행된 것입니다. 성경의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부활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부활을 전하면서 예수님은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셨다고 했습니다. 고전15:3입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화면) 죽음도 ‘성경대로’, 부활도 ‘성경대로’입니다.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했는데 이것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보고서를 작성한 것입니다. 누구에게 보내는 보고서이냐면 바로 데오빌로 각하, 즉 왕에게 보내는 보고서입니다. 데오빌로는 당시에 로마제국 도미티안 황제의 조카인데, 유다지역을 다스린 헤롯왕처럼 안디옥 지역을 다스리는 분봉왕이었습니다. 누가는 원래 이 데오빌로의 하인이자 주치의였는데 불치병을 치료한 대가로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이후에 데오빌로 왕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보냈던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기록했다면 사도행전은 사도들이 어떻게 복음을 전파했는지를 기록했습니다. 이 글은 보고서로 작성되었기에, 그것도 수신자가 왕이기에 절대 거짓을 기록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처럼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라고 했습니다.
4절에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라고 했는데 행1:3을 보시면 ‘확실한 많은 증거’라고 했습니다.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내서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즉 누가는 확실한 많은 증거로써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고 보고서 두 편을 작성한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에 대한 확실한 많은 증거를 통해 우리의 믿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증거’라고 쓴 헬라어가 ‘테크메리온’인데 이 말은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증거’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도록 확증하셨고 또 부활하심에 대하여도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증거를 남겼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에게 확실한 증거가 무엇이겠습니까. 그 사람을 보았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어떤 이는 함께 길을 걸어갔고 대화도 했다는 것입니다. 대화만 한 것이 아니라 함께 잡수시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제자는 못 박힌 손과 발을 만져보고 창에 찔린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이게 다시 살아난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 후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람들에게 여덟 번이나 나타나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살아나셨는데 보았다는 증거가 한두 번이 아니라 여덟 번입니다. 각각 다른 시간과 다른 장소에서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여덟 번 나타나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한 사람이 한 번만 본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여덟 번이나 보았으며 한 사람씩 본 것이 아니라 여러 명이 함께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는 ‘테크메리온’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이 단어보다 더 명확한 단어를 찾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3년간 사역하실 때도 수많은 표적과 기사들을 행하셨는데 이 증거에 대하여 요한의 표현대로하면 다 기록하여 남길 수 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요21:25입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이것은 예수님이 사역을 하는 동안에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낸 증거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표적과 기사보다 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증명한 것이 바로 부활이라는 것입니다. 행17:31입니다.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부활은 예수님이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한 확실한 표적으로 모든 사람이 의심할 여지없이 믿도록 하는 증거가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복음서마다 예수님의 부활을 각각 다르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여인들이 새벽에 찾아갔을 때 빈 무덤인 것, 파수꾼이 시체가 없어진 것을 총독에게 보고한 것, 그리고 예수님이 직접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을 말했습니다. 마가복음은 빈 무덤, 그리고 예수님이 여인들과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을 말합니다, 누가복음은 빈 무덤과 예수님이 엠마오로 가던 누가와 글로바에게 나타나신 것, 그리고 사도들에게 나타났고 사도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리우셨다는 것까지 기록합니다. 요한복음은 빈 무덤과 여인들과 제자들에게 나타나심, 그리고 도마에게 나타나셔서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신 것, 그리고 디베랴 바다에서 일곱 제자에게 나타나심 등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이렇게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예수님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 것이 예수님 부활 후 대략 30년쯤 되었을 때입니다. 당시에 사도 바울은 부활을 목격한 자들이 절반은 살아있고 절반은 죽었다고 기록한 것을 보면 만일 증인들이 다 죽고 나면 부활이 거짓이 될 수 있겠다 싶어 성령의 감동을 받아 기록했던 것입니다. 즉 신약성경은 예수님 부활 후 몇 백 년이 지나서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입으로 전해오던 것을 모아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직접 부활을 목격한 증인들이 한 세대가 바뀌기 전, 즉 확실한 증거가 사라지기 전에 기록한 것입니다.
이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 외에 고대의 문학이나 역사를 볼 때 다른 신화나 설화들은 모두 그 일이 일어난 후 몇 백 년이 지나서 기록되었습니다. 이에 반하여 예수님의 일생과 부활을 기록한 복음서는 예수님의 활동 후 불과 이삼십 년 뒤에 즉시 기록되었다는 점입니다. 고대문학의 효시로 불리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나 ‘오디세이’도 몇 백 년이 지나서 기록한 것입니다. 그 외 로마나 유대의 역사가들이 기록한 글들이 모두 그러합니다. 이에 반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기록은 그 제자들이 직접 기록했고 그것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육성으로 직접 듣고 죽음과 부활을 목격한 자들이 살아있는 동안에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전15:4이하에서 이렇게 증거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목격자들이 다 죽고 난 다음에 기록되었다면 얼마든지 사건을 조작할 수 있습니다. 조작해도 증인이 다 죽었으니 알 수 없으니까요. 그러나 증인이 뻔히 살아있는데 거짓을 기록한다면 다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증인들이 살아있는 동안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래서 거짓이 아닌 사실로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사실입니다.
이들이 부활을 사실 그대로 기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증거가 또 있습니다. 부활을 처음 목격한 증인들이 모두 여자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이 동일하게 증거합니다. 당시에 여인들은 증인이 되지 못했습니다. 여자와 아이들은 사람 수를 헤아릴 때에 들어가지도 못했으니까요. 그런데 하나같이 여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더니 돌문이 열려 있고 무덤은 비어있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부활을 꾸며내어 전하려고 했다면 여인들을 증인으로 내세울 일은 없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여인들이 아니라 아주 유명한 사람이 보았다고 강조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각 복음서마다 동일하게 여인들이 첫 목격자로 등장합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이 조작되지 않고 사실 그대로 기록되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들의 증언이 조금씩 다릅니다. 여인들의 증언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습니다. 이 또한 사실을 전했다는 반증입니다. 이들이 목격한 것을 전할 때 전하는 내용이 완전히 일치한다면 이들이 입을 맞춰 사건을 조작했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아주 작당하고 단체로 거짓말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인들이 전하는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은 이들이 서로 입을 맞춘 것이 아니라 부활 자체를 말하는 것에는 틀림이 없고 단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로 조금씩 기억의 차이가 있었던 것입니다. 서로 기억이 조금 다를 수 있고 관점에 따라 본 것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돌문이 옮겨져 있었고 무덤이 비어있었고 예수님이 부활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세계에서 변호를 가장 잘 해서 기네스북에 오른 변호사가 있습니다. 미국 예일대 법대생들이 롤모델로 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얼마나 변호를 잘 했느냐면 그가 맡은 사건을 연속으로 승소한 기록이 245번입니다. 그러니까 245전 245승입니다. 이 정도면 기네스북에 오를 만 하지 않습니까. 이 변호사가 사건만 맡으면 확실한 증거를 찾아 승소했던 것입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기사작위를 받았으며 대법원장에 오르기도 한 리오넬 루쿠라는 변호사입니다. 당시에 어떤 사람이 그에게 부탁했습니다. 당신이 이런 대단한 실력으로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밝혀보라고 했습니다. 그는 무신론자였기에 예수님의 부활이 허구임을 밝혀보려고 자료를 찾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몇 년이 지났습니다. 그가 밝힌 결론이 이러합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증거가 너무 압도적이어서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는 증거(테크메리온)로써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세계 최고의 변호사가 전한 고백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경배드립니다. 우리 모두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섬기며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