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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텔라의 마음공부 >
미주현대불교 창간 33주년 기념 행사
문광스님 초청 L.A. 법회
“한류를 만드는 한국인은
어떤 사람들인가?”
글 | 스텔라 박
미주현대불교가 창간 33주년을 맞아 문광스님 초청, 미주 순회강연회를 열었다. 문광스님은 8월 3일 산호세를 시작으로, 8월 6일에는 LA, 그리고 8월 14일에는 뉴욕과 뉴저지에서 ‘한류의 원천은 무엇인가?’ ‘한류를 만드는 한국인은 어떤 사람들인가’ 라는 주제로 담론을 펼쳤다.
특히 8월 6일 오후 4시 LA 한국교육원 강당에서 있었던 강연회는 UCLA의 한국학연구소와 불교학연구소를 돕기 위한 모금행사를 겸해 진행됐다. 미주현대불교는 지난 호 커버스토리에서 UCLA의 한국불교 강좌와 연구가 자신의 정년퇴직과 함께 중단되는 것을 막고자 370만 달러의 연구기금을 약정한 로버트 버스웰과 크리스티나 커스웰 교수 부부 이야기를 집중 보도한 바 있다. 이날 강연회에 참가한 로버트 버스웰 교수 부부는 UCLA 한국 불교 연구 석좌교수 자리를 마련하고자 기부를 결정하게 된 이야기를 나누며 한인 동포들, 그리고 나아가 한국의 불자들도 이 뜻깊은 일에 동참해줄 것을 당부했다.
로버트 버스웰 부부에 이어 무대에 오른 문광스님은 “교수 직을 떠나면서 한국불교를 강의하는 후임 교수의 맥을 잇기 위해 통큰 기부를 한 버스웰 교수 부부는 위대한 무주상보시를 실천한 것”이라며 감사를 표했다.
강연 전날 문광스님은 전 세계 한국학 연구의 중심이 되는 UCLA의 한국학연구소를 방문했다. UCLA는 한국을 제외하고는 전 세계에서 가장 한국학 프로그램이 잘 되어 있는 학교로 한국학 교수 숫자만도 14명이 넘는다. 뿐만 아니라 UCLA에는 한국학연구소와 불교연구소를 설립하고 한국불교를 전문으로 가르쳤던 버스웰 교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가 지난 6월 말 은퇴하고 나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국불교 전문 교수가 없기에 한국불교 박사과정 연구자들이 들어오기가 힘들어진다. 설사 내년에 석좌 교수 직이 생긴다 하더라도 조교수의 위치이기 때문에 대학원생을 바로 뽑을 수가 없다. 종신교수가 되고 나야 지도학생을 뽑을 수 있기 때문에 내년에 석좌 교수 자리가 마련된다고 해도 5년이 지난 후에야 한국불교학을 전공하는 박사 과정 학생을 뽑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한국불교 프로그램이 가장 막강한 UCLA에 약간의 공백이 생기게 생겼다. 현재 가장 시급한 일은 하루라도 빨리 UCLA에 한국불교 전공 석좌 교수를 모셔와 이 공백을 줄이는 것이다.
문광스님은 로버트 버스웰 교수 부부가 ‘지눌 한국불교 석좌 교수’ 직을 마련해 앞으로도 UCLA에서 한국불교의 맥이 이어지도록 거액을 기부한 것에 대해 감사함을 표하며 동포사회에서도, 한국에서도 기금 모금에 동참하기를 독려했다. 문광스님은 또한 로버트 버스웰 교수가 신설할 한국불교 석좌교수직에 자신의 이름이 아닌, 지눌 스님의 이름을 붙인 것에 대해 ‘진정한 무아 정신의 실천’이라며 감사를 표했다.
스님은 좌중을 압도하는 특유의 언변으로 집중도 높은 강연을 펼쳤다. 문광스님은 연세대학교에서 중어중문학으로 학사와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동국대 선학과와 불교학과 학사를 거쳐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탄허스님 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는 동국대 HK 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다음은 그날 강연을 거의 원음을 살려 옮긴 것이다.
미주지역의 한국 동포들이 대한민국의 국가대표로 잘 살아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다녀보니 미국의 땅은 어마어마합니다. 이런 땅을 가지고 전 세계 패권국가가 되지 못한다면 문제 아닌가 라고 생각될 정도로 비옥하고 좋은 땅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땅에서 한국의 대표 주자로 잘 살아주셨기 때문에 한국이 오늘날처럼 발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낮에 버스웰 교수를 만나 대화를 나눴는데 제가 탄허학 박사 1호라고 하니까 교수님께서 직접 번역하신 보조국사의 <보조법어> 전서 번역본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버스웰 교수 말씀이 <보조법어>를 최초로 현토하여 번역 유포한 분이 탄허스님이라고도 하셨습니다. 맞습니다. <보조법어>는 한암스님이 근대에 처음으로 흩어져 있던 내용을 편찬하여 현토를 달았고 탄허스님이 그 내용을 번역해 널리 보급하고 <보조법어>라는 말을 처음으로 만들어 내셨습니다. 버스웰 교수님이 추진하고 있는 한국불교 석좌교수 직의 이름도 지눌입니다. 버스웰 교수는 이어 한국 불교에 있어 보조국사 지눌이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가를 말씀해주셨습니다.
저는 출가 후 한국 불교를 연구하면서 불교의 더 넓은 저변 확대를 위해 불교학 대신 한국학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이나 LA 한인 사회의 기독교 세력이 워낙 큰 지라 한국불교라는 주제로 저서를 낼 경우 잠재 독자의 반을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재작년부터 불교신문에 한국학 에세이를 기고하기 시작해 한국인 자신도 잘 모르고 있는 우리의 정신에 대해 질문을 던져왔습니다. 전 세계인들이 한류를 통해 우리나라를 흠모하게 될 때 한국의 정신, 한국의 근본사상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질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무엇이 한국의 정신인지 대답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번 강연의 제목을 ‘한류의 근원은 무엇인가.’ 한류를 만드는 한국 사람들은 어떤 사람인가’로 정했습니다.
그런데 한국 불교를 빼고 한국의 정신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숭유억불 정책을 썼던 조선 500년을 가지고 한국의 정신을 모두 얘기할 수는 없습니다. 고구려, 삼국시대를 이어 조선시대, 그 이후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한국 불교의 위대하고 거대한 힘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분석해 전 세계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현대적 언어로 설명해줄 때, 전세계인들은 한국의 정신에 대해 정확히 알게 될 것입니다.
제가 박사학위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한 이유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동국대 불교학과 박사 과정에 들어갔다가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한국학을 공부해보니 그 핵심에 한국 불교가 있더라고요. 진정한 한국의 정신을 알고자 하는 모든 한국인과 전 세계인들이 이런 공부를 통해 한국의 정신인 한국 불교를 알게 될 것입니다. 한류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것을 기뻐하면서도 그 한류의 근원이 한국학이며, 한국학의 기본에 한국불교가 깔려있음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세계 역사를 보면 중국, 일본, 몽고, 로마, 영국, 소련, 미국 등이 전 세계를 지배했던 날이 있었습니다. 한국도 전 세계인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날이 한 번은 올 것입니다. 한류는 한국이 전 세계를 지배할 전조현상에 불과합니다. 10여 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는 “한류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미국 주류사회에서는 한류를 별로 인정하지 않는다.”, “한류의 기세는 곧 꺾일 것이다.” 라고 말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때부터 한류가 얼마나 앞으로 세계를 지배할 것인가를 내다본 이들이 있습니다. 마치 태풍이 오기 전, 멀리서 먹구름이 몰려오는 모습처럼 말입니다. 한류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었습니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한국의 문명은 아직까지 전 세계에 한 번도 제 모습을 제대로, 본격적으로 보여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사상으로부터 시작되지 않습니다. 우리들도 영어를 공부할 때에는 팝송을 배우고 할리웃 영화를 보면서 시작했었죠? 또한 홍콩 느와르 영화를 보면서 중국 문화권에 대한 관심을 키우기 시작했었습니다.
그렇게 그 나라의 노래를 듣고, 드라마를 보고, 음식을 먹고, 언어를 배우다가 그 나라에 가고 싶어 방문하고, 그 나라에 관한 학문을 하게 되고, 사상과 역사를 공부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한국이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하면, 세계인들은 한국이 동아시아에서 일본이나 중국처럼 남을 해치지 않고 평화를 사랑하고 원리원칙대로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한국이 앞으로 세계 문화의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될 때에는 역사적으로 세계를 재패했던 여느 나라들처럼 폭력으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평화롭게 살아온 조상님들의 음덕이 있기에, 우리는 문화의 힘으로. 화합과 조화의 세계를 노래하는 방식으로 세계를 이끄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래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정치적 외교적 역량이 성숙돼 국제적으로 떠오를 때에는 일본처럼 옆 나라를 침공해서 무력으로 하지 않을 겁니다. 중국도 인접한 나라들이 대부분 중국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계적으로 큰 힘을 가진 나라가 되었을 때, 전 세계인들은 아마도 박수를 쳐주며 “한국이 그렇게 된다면 좋지. 한국은 다른 나라를 해치지 않으면서, 행복하고 즐겁게 해주니까. 한국이 무언가를 한다면 우리는 무조건 응원한다.”라고 말하지 않을까요? 그들의 자녀들에게도 “한국의 노래 들어봐, 한국의 영화를 보렴. 한국 관련 행사가 있다면 참석해봐. 한국을 한 번 방문해봐.” 이렇게 권유하는 나라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봉준호 영화화 단정성 문화
언젠가부터 한국인들이 만들어놓은 드라마와 영화를 전 세계인들이 보고 있습니다. <오징어게임>, <빠친코>, <기생충>이 전 세계 문화예술계를 강타하며 이제 본격적으로 전 세계인들이 한국의 대중문화를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BTS가 여러 차례 빌보드 1위에 올랐습니다. 이제 전세계는 한류 (한국 문화와 예술)를 거역할 수 없게 됐습니다.
오늘 봉준호의 영화를 불교적으로 한 번 분석해보겠습니다. 봉준호의 영화인 <기생충>의 장르가 무엇인지, 전 세계인들이 궁금해했습니다. 영화란 장르적 특성이 있어야 하는데 <기생충>은 도대체 어디에 속하는 장르인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코미디적 요소가 있는가 하면 스릴러적 요소도 있고, 액션, 멜로적 요소도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봉준호 장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우리의 특수한 상황을 소재로 쓴 우리의 스토리가 전 세계인들이 공감하는 보편적 주제가 됐습니다. 그만큼 한국이 이제 세계적인 국가가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즉, 한국의 영화는 등장인물만 한국인이지, 내용은 전세계에서 동일하게 일어나는 이야기란 얘기입니다.
바로 이런 것들이 단전성 문화의 특징입니다. 전 세계에 벌어지는 모든 양상들이 한국에서 반드시 일어나고, 한국에서 융합되어 만들어진다는 것이죠. 이를 불교에서는 통불교론이라고 합니다. 세계에서 모든 것이 유입되는데 한국에 들어오면 융합되고 정리가 되어 하나의 결론이 나는 양상이 생기는 겁니다.
봉준호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선인과 악인이라는 구분, 주연과 조연의 구분이 모호한데 이는 불교에서의 무상과 무아를 보여줍니다. 영원히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이 아니고 늘 변한다는 얘기인데, 그게 리얼한 현실 아닌가요? 그리고 영원한 행복도 부자도 없다는 것, 무상하게 끊임 없이 변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가 하면 20-30분마다 장르가 교차됩니다. 희로애락이 고정돼 있지 않다는 것이 영상으로 표현돼 나타납니다. 모든 것이 인연하여 일어나고 사라집니다.
한국인의 감정에 가장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정(情)’입니다. 초코파이 포장지에도 ‘정(情)’이라고 쓰여 있죠. 희한하게 중국에 수출될 때는 ‘정(情)’ 자를 ‘어질 인(仁)’자로 바꾼답니다. 중국인들은 정(情)을 그리 좋아하지 않고 인(仁)을 숭상합니다.
한국인은 정(情)이 많다고 하죠. 정(情)은 조선시대,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의 대상이었습니다. 사단(四端)은 ‘인의예지(仁義禮智)’로 좋은 성품에 해당됩니다. 칠정(七情)은 희로애구애오욕(喜怒哀懼愛惡欲)의 7가지 감정입니다. 조선시대 내내 논쟁했던 것이 과잉된 감정, 즉 인간의 욕심과 번뇌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 것인가의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봉준호 영화에 보면 이 칠정(七情)이 다 나옵니다. 봉준호 장르가 다양한 양상을 나타내는 이유는 희로애구애오욕, 칠정(七情)이 고루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희(喜), 즉 기쁨을 다루는 코미디가 있고, 노(怒), 즉 분노를 다루는 액션이 있으며, 애(哀), 즉 슬픔을 다루는 비극적 양상이 있고, 구(懼), 즉 두려움을 다루는 스릴러적 요소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애(愛), 즉 사랑을 다루는 멜로가 있고 오(惡), 즉 무서움을 다루는 호러적 요소도 있습니다. 그리고 욕(欲), 현실을 뛰어넘는 욕망을 다루는 판타지가 있습니다.
이렇게 칠정이 총망라된, 통합적인 양상으로 영화에 나타납니다. 어떤 하나의 장르만 있는 게 아니라, 웃겼다가 울렸다가 무서웠다가 하다 보니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를 보면 인간의 모든 감정을 다 느낄 수 있는 것이죠. 인생이라는 것도 진지하지만은 않잖아요. 그 가운데 해학과 풍자, 골개, 유쾌함이 있습니다. 웃겨야 할 상황이 아닌데 갑자기 웃기는 장면이 등장하면서 허를 찔러요.
한 프랑스 영화 평론가가 이런 게 도대체 뭐냐고 봉준호 감독에게 물었는데 이에 대한 봉준호 감독의 답변이 “그걸 ‘삑사리’라고 합니다.” 였답니다. 그랬더니 그 영화 평론가가 “삑사리의 미학”이라는 기사를 썼더군요. 그 영화 평론가는 이어 “삑사리가 무엇입니까? 왜 삑사리를 하는 건가요?” 라고 되물었답니다. “영화 만들다가 실수한 것 아닌가요?” 라는 질문에 봉준호 감독은 “그것이 리얼한 현실”임을 얘기했습니다. 마치 장례식장에서 모두 슬프고 엄숙하게 있다가 갑자기 웃긴 일이 발생했을 때 웃을 수 있는 것이 인생이라는 얘기입니다. 가장 리얼한 인생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자 한 것이 바로 한국형 장르의 등장인 것입니다.
미국이나 서구의 영화에서는 모든 현실을 하나의 양상으로 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히어로(Hero)가 등장합니다. 슈퍼맨, 배트맨, 어벤져스 등 초월적인 히어로가 등장해서 세계를 구원하고 지켜줍니다. 그러나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에는 히어로가 없습니다. 대신 불성을 가진 휴먼, 각자의 휴매너티, 마음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보통 사람의 보통 말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집단지성과 마음에서 나오는 근본적인 것이 드러납니다.
그럼 이런 것들이 어떻게 불교와 연결될까요? ‘성현지학(聖賢之學)은 심성이이(心性而已)다’ 라고 했습니다. 즉 “모든 성현의 학문은 마음(心)과 성품(性) 둘뿐이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마음은 <대승기신론>에서 진여문과 생멸문 둘로 나뉩니다. 진여문을 불교적인 것에서 유교로 설명한다면 성품(性)이고, 생멸문 즉 일어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는 것을 유교로 얘기하면 정(情)입니다. 이 일어났다 사라졌다 하는 마음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가 바로 마인드풀니스, 즉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입니다.
마음에는 진여의 마음이 있고 생멸의 마음이 있습니다. 진여의 마음은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은 무심의 마음입니다. 무심의 마음을 사단(四端)이라고 하고, 성품(性)이라 하여 영원히 좋은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무심이 유지되지 않습니다. 외부적인 연기, 즉 반연에 의해 감정이 일어납니다. 감정이 일어날 때, 이를 어떻게 조절해 중용에 맞출 것인가가 유교의 핵심 쟁점이었습니다.
‘희로애락지미발 위지중(喜怒哀樂之美發 謂之中)
발이개중절 위지화(發而皆中絶 謂之和)
중야자 천하지대본야(中也者天下之大本也)
화야자 천하달도야(和也者天下達道也)
치중화 천지위언 만물육언(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
“희로애락이 나타나지 않은 상태를 ‘중(中)’이라하고, 중에서 나타나 절도에 맞음을 ‘화(和)’라한다. 중(中)은 천하의 크나큰 근본이요, 화(和)는 천하가 이르러야 하는 바, 중화에 다다름은 하늘과 땅이 자리잡고 만물이 생육되는 기본이요, 도의 모습이다.”
즉 마음이 일어나기 전의 텅 빈 자리가 ‘중(中)’이요, 일어난 마음을 돌이켜 다시 생각이 끊어진 자리로 보내는 것이 ‘화(和)’입니다. 이는 바로 사마타와 위빠사나 아닌가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이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마음을 가만히 분석해 보면, 진여문, 즉 아무 생각이 없이 지속되는 삼매의 상태가 있지만, 동시에 생멸문, 즉 외부적 조건이나 사건에 의해 한 생각과 감정이 일어나는 상태가 있습니다. 이처럼 “끊임없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마음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중생심의 해결법입니다.
현대에 들어 이런 마음의 문제가 급격하게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전 세계인들이 삼매를 닦는 집중훈련을 하기도 하고, 관찰을 하는 위빠사나 수행을 하기도 하게 되었고, 전세계적으로 마인드풀니스가 퍼져나간 것입니다. 이것을 버스웰 교수가 제게 준 영역본 <보조법어>에서는 ‘정혜쌍수’라고 합니다. 선정과 지혜를, 진여문과 생멸문을 함께 닦는다는 것입니다. 이 둘을 합한 것이 마음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수행법은 생각과 감정, 즉 정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다룹니다. 염불은 한 생각 일어났을 때, 일어난 생각으로 벗을 삼지 않고, 바로 다른 생각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다라니와 화두참선도 생각이 일어났을 때 이 생각을 바로 칼로 끊어내고 화두를 챙기는 것입니다. 한 생각 일어나는 것을 그대로 생각하지 않고 넘어가는 이것을 삼매수행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혜는 무엇인가요. 혜 즉 지혜는 관, 관찰하는 것입니다. 이 감정이 어떻게 일어났는가를 관찰해, 정 즉 영원한 감정이나 생각이란 없음을, 그리고 더 나아가 본래 일어난 바가 없음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예를 들었던 봉준호 장르의 영화에서 계속적으로 장르가 바뀐다는 건 리얼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하루 종일 화를 내는 사람은 없습니다. 인간의 리얼한 마음은 한 가지 감정을 계속 유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국 영화가 인기가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영화에 나타나는 모든 감정의 양상이 계속 흐름을 타고 일어났다 사라지면서 이어집니다. 끊어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유주상속합니다.(상속이란 불교 유식학 용어입니다.)
끊임없이 흐르며 계속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는 마음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두 가지 답 중 하나가 ‘정(情)이고 다른 하나가 혜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고 스스로 정진하여 어떻게 닦아야 할 것인가, 가장 근본적으로, 그리고 가장 정확하게 말씀해주신 분이 고려시대의 보조 지눌국사입니다. 그리고 그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정리한 것이 정혜쌍수입니다.
어떻게 마음을 다스릴 것인가에 대한 우리 민족의 토론은 조선시대에까지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퇴계와 율곡 등 조선의 유학자들이 열띠게 토론했던 ‘사단칠전논쟁’이 바로 그것입니다. ‘호락논쟁’은 희노애락의 감정이 어느 정도까지 일어나지 않아야 근본성품인가를 더 깊이 탐구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마음이 끊어져 무심이 됐다면 어느 정도까지 무심이 되어야 하는가?, 어느 정도까지 가면 견성인가를 가지고 논쟁을 했고, 이것이 바로 ‘돈오점수 돈오돈수 논쟁’입니다.
한국인은 진여문과 생멸문, 즉 인간의 두 가지 마음을 어떻게 닦아나갈 것인가 하는 심학적 형태의 논쟁을 끊임 없이 해왔습니다.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 고려, 조선, 근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영원한 주제는 마음이었습니다.
최근 4차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해 정보화사회에서 산업화사회로 전환되고, 이젠 인공지능이 출현하기 시작하면서 엄청난 혼란이 왔습니다. 그러나 4차 산업 혁명 아니라 100차 산업혁명이 온다 해도 인류의 마지막 혁명은 마음 혁명입니다. 마음을 해결하지 않고서 인간은 영원히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혜암 큰스님은 늘 “내 마음의 본체, 내 근본을 모르면서 무슨 행복이 있고 자유가 있나. 물질적 풍요가 무슨 행복을 주나”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마음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 바로 한국의 문화 예술입니다. 한국인이 가지고 있던 이와 같은 깊이 있는 문제의식들, 논쟁했던 문제들, 한국불교가 늘 다루고 있었던 문제들이 삶과 의식 속에 녹아 있다가 우리도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드라마로 나오고 노래로 나오고 영화로 나왔던 것입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사랑받는 한류의 기본 바탕 즉 본질을 알려면 한국 불교의 역사와 한국인의 마음이 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전 세계인들은 한국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한류를 분석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한국 스포츠의 저력과 선(禪)
우리 한국인이 잘 하는 스포츠는 양궁과 골프입니다. 이는 모두 멘탈 게임이죠. 양궁과 골프를 할 때도 우리는 진여문과 생멸문을 경험합니다. 골프를 칠 때, 마지막 18홀에서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무심의 상태가 되어야 하는데 마음이 흔들립니다. 부담이 되고 몸에 힘이 들어갑니다. 그럴 때 생멸문이 일어나는 이 마음을 마음이 일어나지 않은 근본자리인 진여문으로 돌리는 것이 위빠사나입니다.
전 세계 10위 여성 골퍼들 중에는 거의 항상 한국의 선수들이 들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마음을 어떻게 잘 다스리는가 하는, 한국적 전통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한두 명의 선수가 뛰어난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한국인이 잘 하는 스포츠를 보면 모두 부동심과 무심으로 하는 선(禪)과 같은 운동들입니다.
양궁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부터 한국의 선비들은 예의범절을 갖추어 수행으로 활을 쏘았습니다. 향사례(鄕射禮)는 단순히 활 쏘는 기예를 뽐내는 행사가 아니라, 선비들이 정지(正志)하는 예(禮)와 연고덕행자(年高德行者)를 존숭함으로써 향촌의 질서와 안정을 이루려는 의도가 깔린 향촌 교화 의식의 하나였습니다.
우리 민족을 동이족이라고 합니다. 동쪽에 살고 있는 활 잘 쏘는 민족이라는 말입니다. 활을 잘 쏘려면 외부적인 조건에 관계 없이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바람이 불거나 말거나, 응원하는 소리가 들리거나 들리지 않거나, 상관 없어야 합니다. 활을 쏴야 하는 마지막 순간에 마음에 부담감이 생기거나 말거나 내 마음이 부동심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싸움인 것입니다.
골프, 양궁 등 정신 집중이 필요한 스포츠 분야에서 한국인이 그렇게 뛰어나다는 것은 진여문 즉 본래의 무심을 유지하는 공부를 잘 할 뿐만 아니라, 생멸문 즉 마음이 일어났다 사라졌다 하는 것도 잘 다스리고 관리를 한다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지눌의 표현대로라면 정혜쌍수를 잘 하기 때문에 스포츠도 잘 하는 것입니다.
저는 조선시대의 유교가 불교와 관계 없다고 보지 않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심학으로 보고 있습니다. 조선은 외유내불, 즉 겉은 유교이지만 속은 불교였던 나라입니다. 그런 만큼 조선의 유학에도 불교적 요소들이 있습니다. 성리학, 주자학의 특징은 내부에 불교, 화엄, 선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산 정약용도 이렇게 말했고, 일본에는 오규 쇼라이가 그렇게 말했고 중국에서는 대진이 그렇게 말했었습니다. 성리학을 양파 껍질 까듯 벗겨놓고 보면 그 안에 불교가 있습니다.
조선의 성리학은 근본 유학과 불교가 만난 것입니다. 유교에 도교와 불교가 융합된 것, 회통의 정신이 발현된 것이 성리학입니다. 한민족의 회통의 역사는 오래됐습니다. 조선의 선비들이 행했던 향사례에서, 활을 잘 못 쏜 선비는 자신보다 활을 잘 쏜 선비에게 술을 바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보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활을 잘 쏘신 것을 보니 마음 수행이 깊은 것 같습니다.” 라며 한 잔을 올린 것입니다.
그런데 전 세계에서 마음 다스리기를 가장 잘 하는 것이 한국의 여성들입니다. 전 세계에서 정혜쌍수,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가장 잘 하는 것이 한국의 여성인 것입니다. 남성이 못하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한국의 남성들보다 여성들이 더 잘 하는 것은 너무도 분명합니다.
BTS, 발심한 범부는 완벽한 부처
BTS의 탄생은 평범한 범부심에서 나왔습니다. 보조국사의 “발심한 범부는 완벽한 부처님과 같다.”는 사상이 체화한 것이 BTS입니다. 마이클 잭슨처럼 스타로 태어난 7명이 모여서 나온 게 아니라, 평범한 개인들의 아름다운 마음이 드러나, 여래가 출연한 것입니다.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아무도 막을 수 없다.”는 내용의 가사를 쓰면서 자기 속에 있는 아름다운 마음이 나왔고 그 마음을 아미들이 읽어줬습니다. BTS는 힘들어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함께 위로해주는 마인드들이 모였고 그 마음에 감동한 팬클럽 아미가 형성되어 전 세계에 퍼진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아민정음이라는 것이 생겨났습니다. 아민정음은 아미들의 훈민정음이라는 뜻인데요. 아미들은 BTS가 노래를 하면 그 발음을 영어 스펠링으로 적어 공유하며 한국어로 BTS 노래를 따라부릅니다. BTS의 노래를 한국어로 따라하지 못하면 아미가 아닙니다. 아민정음이 적혀 있는 뮤직비디오를 보면 첫 줄에 BTS의 한국어 가사가 나오고 그 밑에는 로마자로 옮겨 적은 한국어 발음이 나오며, 가장 아래 줄에 한국어 가사의 뜻을 해석한 영어 번역이 나옵니다. 이렇게 3가지의 가사가 BTS의 노래 가사에는 실리게 되는데 이를 전 세계 사람들이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류가 퍼지면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데 한국어에 대한 강력한 수요에는 BTS의 영향력이 절대적입니다. 그동안 한국어를 공부하겠다는 전 세계인들의 숫자는 지속적으로 늘었지만, 지금처럼 뜨거운 한국어 열풍을 일으킨 일등공신은 BTS입니다.
어쩌면 영어권 사람들 중 한국어를 공부한 사람들이 제 강의 중 괜찮은 것들을 알아서 번역해서 올리는 날이 곧 올지도 모릅니다. 한류 프로그램들은 한국어를 배운 외국인들이 자원해서 자막을 올리고 있습니다. 한국어로 마음을 다룬 강좌들을 그렇게 번역해 올리는 날도 머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BTS의 음악을 듣고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저 역시 준 아미가 되었습니다. 요즘의 동영상을 보니 BTS 멤버들도 조금 나이가 들었더군요. 그런데 데뷔 초기부터 BTS를 사랑했던 사람들은 얼마나 간절할까요?
몸으로 돌아와 힘빼고 수행하자
산호세에서 서해안으로 죽 따라 오면서 캘리포니아 땅을 보니 기절하겠더라고요. 탄허스님이 김제 출신인데요, 만경읍 인근에 지평선 중학교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지평선이 보이는 곳이 그리 많지 않아요. 그런데 탄허스님께서 태어나신 김제평야는 지평선이 보이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와 대단하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캘리포니아에 와 보니, 만경 뜰이 수천 개가 쭉 깔려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 정도라면 전 세계인들을 모두 먹여살릴 수도 있는 규모의 땅입니다.
우리나라 땅이 뻥튀기가 되어 미국이나 중국 같은 땅을 가졌다면, 우리는 이 정도 수준으로는 안 할 것입니다. 훨씬 더 잘 했겠죠. 이 정도 땅을 가지고 전 세계 1위를 못한다면 어쩌자는 것입니까. 미국은 전 세계인에게 땅 한 평씩 나눠줘도 될 만큼 어마어마한 땅이 있고 심지어 그 땅이 기름지고 비옥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땅에서는 사람이 넉넉하고 여유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싸울 필요도 없습니다.
풍수지리에서 나쁜 땅이라고 하는 것을 한국인들은 고쳐 씁니다. 그러다보니 지혜가 더욱 발달합니다. 좁고 작은 땅에서 연구하는 사람이 더 많은 연구 결과를 냅니다. 작은 집에서 많은 사람이 살 때 거기에서 인물이 나는 법입니다. 사람은 적은데 집만 넓으면 우울증이 오기 딱 좋습니다. 작은 곳에서 연구해 나온 것이 넓은 곳에서 한 연구보다 더 정밀할 수 있는데, 우리의 정신 문명에서의 논쟁과 한국학의 역사는 바로 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 불교, 한국 유교 할 것 없이 한국학의 역사는 인간의 마음을 궁극까지 파고 들어가서 연구를 하고 그것을 토대로 수련을 했다는 것입니다. 조선조에서 가장 중요했던 사상은 “수신이 근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일만 잘 하면 되지” 가 아닙니다. 우리사회는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느냐, 얼마나 깔끔하게 살아왔느냐는 것을 끊임없이 요구하는데, 이는 바로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학(大學)에 보면 “격물치지, 성의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格物致知 誠意正心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 라는 팔조목이 나옵니다. 이치를 알기 위해서는 그 사물에 다가가야 한다는 것이 격물(格物), 앎을 이룬다는 것이 치지(致知), 마음이 발하는 바를 성실하고 진실되게 하는 것이 성의(誠意), 몸을 관장하는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이 정심(正心)입니다. 몸을 닦아나가는 것이 수신(修身), 집을 가지런히 하는 것이 제가(齊家),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치국(治國), 평화롭고 살기 좋은 세계를 이루는 것이 평천하(平天下)입니다.
왜 마음을 바르게 하기 위해 수신을 근본이라고 했을까요? 대학의 구절들을 설명하는 수없이 많은 주석이 있는데 그 중 좋은 주석들은 “마음을 닦아서 몸을 닦으려면 몸도 새롭게 수련을 해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마음으로야 뭘 못 하겠어요? 마음으로는 늘 등산을 하고 있잖아요. 하지만 몸이 하지 않으면 끝입니다. 에베레스트보다 높은 산이 문지방 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음은 항상 바르게 하고 있고, 등산도 하고 수련도 하고 있어요. 하지만 몸이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몸이 근본입니다. 모든 수행은 몸을 바탕으로 하는 것입니다. 마음과 몸이 함께 가야지 마음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이 몸은 끊임없이 늙어가고 변하고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이 생멸문에 일어났다 사라지고 좋아졌다 나빠졌다 하는 몸을, 항상성이라고 하는 진여문으로 보내고 유지하려면 수행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정혜라고 하는 것은, 즉 사마타와 위빠사나는 가만히 놔두면 되는 것이 아니라 쌍수, 함께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닦는 것뿐만 아니라 몸도 닦아야 합니다. 이렇게 마음과 몸을 닦는 방대한 수행을 해주지 않으면 열반에 도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국인들은 일어났다 사라지는 마음을 끊임없이 바라보는 공부를 계속 하여,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현대화,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 이 모든 세월 동안 풍파를, 전 세계에 일어나는 변화를, 몸과 마음으로 겪으며 이겨내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이 작은 땅덩이를 가지고 경제적으로도 눈부신 성장을 이뤄냈고, 이제 문화로도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한류를 창조해 내어 전 세계에 우뚝 선 것은 우리들의 마음을 닦아왔던 힘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는 미국에 계신 한인 동포 여러분들이 있습니다.
한국은 이제 중요한 순간을 직면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각국이 자국 중심주의를 주장하며 성장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우리 한국은 통일이 되어야 합니다. 남과 북이라는 몸이 통일되기 전에 남과 북이라는 마음이 통일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국 내에서도 정치 경제 지역 종교적으로 극단적인 양분 현상을 보이고 있는데 이것이 21세기 한국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생각됩니다.
저는 이번에 샌프란시스코 지역을 방문하면서 미국 땅에 젠(Zen) 열풍을 불러일으킨 스즈키 순류 선사가 세운 조동종 사찰(San Francisco Zen Center)을 탐방했습니다. 그 사찰 건너편에는 일본인 커뮤니티 교회가 있더군요. 일본인들은 미국에 와서 불교를 믿든 기독교를 믿든 하나의 일본 타운 안에서 하나로 조화롭게 살고 있었습니다.
선정력과 위빠사나 능력, 정혜를 모두 닦았던 우리 민족은 너무 똑똑하고 능력있고 힘이 있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우리가 이뤄야 할 것이 바로 조화와 화합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야 지금 전 세계에 불고 있는 한류가 오래도록 지속되면서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 평화와 조화와 행복을 줄 수 있는 일류국가가 될 것입니다.
탄허스님께서는 “대한민국이 앞으로 전 세계의 정신 수도의 장이 될 것이다.”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우리는 불교가 전파돼 들어오면 가장 진지하게 불교를 수행했고, 유교가 들어오면 가장 진지하게 공부했던 국민입니다. 그렇게 쌓아온 선도, 불교, 유교, 기독교까지 완벽하게 펼치려면 이제 조화를 이루고 화합하고 서로 함께 마음을 나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혜 종고 선사의 <서장(書狀)>에 보면 “생력처(省力處)가 득력처(得力處)”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는 “힘을 뺀 것이 힘을 얻은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수행도 스포츠도 마찬가지입니다. 힘을 빼야 합니다. 골프 선수도, 야구 투수도, 농구 선수도, 참선하는 수행자도, 정치인도 모두 힘을 뺄 줄 알아야 합니다.
통일 역시 힘이 빠져야 합니다. 생각이 많고 욕심이 많으면 어렵습니다. 내 것을 주장하면 힘이 들어가게 됩니다. 저도 처음 참선할 때, 힘을 빼지 못해서 엄청 고생했습니다. 저는 평생 부드러운 것을 경험하지 못하며 살아왔었습니다. 그러다가 출가하여 “견성성불해야지”, 일념삼매, 화두를 붙잡아야지” 라며 앉아서 힘을 주며 용을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선원에서 손빨래를 하던 중, 제가 너무 힘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때서야 “빨래도 힘을 빼지 못하면서 어찌 이 공부를 하겠다는 건가?” 라는 깨달음이 들더군요.
힘을 뺀다는 것이 다른 말로 하면 무심입니다. 그런데 힘 빼는 것은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끊임 없이 해야 합니다. 지금 매일 운동을 하고 있는데, 매일 하다 보니 어느날 힘이 빠져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생각해보세요. 처음 운전 면허를 딸 때, 얼마나 힘이 들어가 있었나요. 하지만 지금은 노래도 듣고 전화 통화도 하면서 힘을 빼고 운전할 수 있잖아요. 삼천배를 해야 힘 빠진 삼배를 할 수 있게 됩니다. 매일 매일 해야 어느 순간 힘이 빠지는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매일 매일 내가 하는 수행을 하면 됩니다.
이렇게 한국의 문화, 한류에 대해 ‘정혜쌍수’ 라는 측면에서 얘기해봤습니다. 쌍으로 닦는다고 하니까 너무 애쓰며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매일 매일 조금씩, 힘을 빼고 하시면 됩니다.
오늘 UCLA 석좌 교수를 초빙하기 위한 모금에 참여한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 강연을 듣는 분들이 이 모금운동에 참여해 LA 한인 동포들의 원력이 우리나라 전체, 전 세계로 퍼져 한류의 근원이 밝혀지고 전 세계인들이 한국인의 정신 문명을 사랑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65만 구독자가 보고 있는 BTN 불교 방송에서 이 내용이 방송되면서 한국의 불자들도 기금 모금에 참여하시며 미국 땅에서 한국 불교가 면면히 이어져 가는데 동참해주시기를 다시 한 번 당부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스텔라 박은 1980년대 말, 연세대학교에서 문헌정보학과
신학을 공부했으며 재학시절에는 학교신문인 연세춘추의
기자로 활동했다. 미국으로 건너와 지난 20년간 한인 라
디오 방송의 진행자로 활동하는 한편, 10여 년 동안 미주
한인 신문에 먹거리, 문화, 여행에 관한 글을 기고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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