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저희를 모든 악에서 구하시고 한평생 평화롭게 하소서.
주님의 자비로 저희를 언제나 죄에서 구원하시고 모든 시련에서
보호하시어,복된 희망을 품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
다리게 하소서.
-‘로마 미사 전례서,영성체 예식,126,주님의 기도에 이어 바치는 기도-
Ⅶ.“악에서 구하소서”
2850우리 아버지께 드리는 이 마지막 청원 역시 예수님께서 하신 기도에 포함되어 있다.“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이들을 악에서 지켜 주십사고 빕니다”(요한17,15)이 간청은 우리 각자에게 개인적으로 관계되는 것이나,‘우리’가 온 교회와 일치하여 언제나 모든 인류 가족의 해방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주님의 기도는 끊임없이 우리를 구원경륜의 차원에 눈뜨게 한다.죄와 죽음의 비극에 모두가 관련되어 있는 우리의 상호 관계가 변하여,그리스도의 신비체 안에서의 연대성과‘모든 성인의 통공’으로 전환된다.
2851이 청원에서,악은 추상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한 위격,곧 사탄,악마,하느님께 대항하는 천사를 가리킨다.‘악마’(dia-bolos)는 하느님의 계획과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룩된 하느님의‘구원 사업’을 ‘가로막는’자이다.
2852“처음부터 살인자로서,...거짓말쟁이이며 거짓의 아비”(요한8,44)인 그는,“사탄이라고도 하는 자,온 세계를 속이던자”(묵시12,9)인데,그로 말미암아 죄와 죽음이 세상에 들어왔고,또 그의 결정적인 패배로 온 인류가“죄와 죽음의 수렁에서 건져질”것이다.“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하느님에게서 태어나신분께서 그를 지켜 주시어 악마가 그에게 손을 대지 못합니다.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이고 온 세상은 악마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압니다”(1요한5,18-19).
여러분의 죄를 없애 주시고 잘못을 용서해 주신 주님께서는 여러분과 싸우는 마귀 의 계교에서 여러분을 보호하고 지켜 주시어,언제나 악을 발생시키곤 하는 원수 가 여러분을 불시에 공격하지 못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그러니 하느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악마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 적하겠습니까?”(로마8,31).
2583예수님께서 당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자유로이 당신을 죽음에 내맡기시던 그‘시간’에,“이 세상의 우두무리”에 대한 승리가 한 번에 결정적으로 이루어졌다.이것은 이 세상이 심판을 받는 것이며, 이 세상의 우두무리가“쫓겨나는”것이다.그는“여인을 쫓아가지만”(묵시12,13),그 여인을 잡지 못한다.곧,성령의“은총을 가득히 받으신”새 하와는 죄와 죽음의 부패에서 보호받는다(평생 동정이신 지극히 거룩하신 천주의 성모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와 승천).그러자“용은 여인 때문에 분개하여,여인의 나머지 후손들과 싸우려고 떠나갔습니다”(묵시12,17).그렇기 때문에 성령과 교회는“오십시오,주 예수님!”(묵시22,17.20)하고 기도한다.예수님의 재림은 우리를 악에서 구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2584우리는 악에서 구해 주시기를 청하면서,또한 악의 세력이 주도하거나 선동하는 현재와 과거와 미래의 모든 악에서 해방시켜 주시기를 기도한다.이 마지막 청원에서 교회는 세상의 모든 괴로움에 대하여 아버지께 호소한다.인류를 짓누르는 악에서 구원해 주시기를 비는 교회는 평화의 귀중한 선물과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끗끗한 인내의 은총을 간청한다.이렇게 기도하으로써,교회는 신앙의 겸손 안에서“죽음과 저승의 열쇠를 쥐고 계시는”(묵시1,18),“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느님”(묵시1,8)이신 그분 안에,그분을 머리로 하여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이 이루는 일치에 앞당겨 참여하는 것이다.
(남산 둘레길 02/03)
마침 영광송
2855“주님께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있나이다.”하는 마침 영광송은,주님의 기도에서 드리는 첫 세 가지 청원을 포괄적으로 다시 되풀이한다.곧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고,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아버지의 구원 의지가 힘차게 드러나기를 청하는 것이다.그러나 이 같은 재청원은 하늘 나라의 전례처럼,흠숭과 감사의 형태를 취한다.이 세상의 권력자가 나라와 권능과 영광, 이 세가지를 가졌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주장했었는데, 주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아버지이시며 우리 아버지이신 하느님께 이 세 가지를 돌려 드리신다.그리고 마침내 구원의 신비가 결정적으로 완성되고 하느님께서 만물을 완전히 지배하시게 될 때,아버지께 그 나라를 넘겨 드리실 것이다.
2856“그런 다음 기도가 끝나면,그대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이 기도 안에 포함된 모든 것이‘그대로 이루소서’(fiat)라는 의미인‘아멘’이라고 말하여 동의를 표합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 발췌) -끝-
하느님의 자애가 한결같은데
권세가야,너는 어찌하여 악을 자랑하느냐?
거짓을 일삼는 자야
너는 파멸을 꾸미고
네 혀는 날카로운 칼과 같구나.
너는 선보다 악을,
의로움을 말하기보다 속임수를 더 사랑하는 구나.
(시편52,3-5)
이 절에서는 하느님의 자애와 권세가의 거만한 태도가 대조를 이룬다.“권세가”는 권력자들의 집단에 속한다(시편4,3;12,2;49,3참조).그는 가난한 이들,의인들,그리고 신실한 이들,곧 주님께 충실한 이들의 적이다.한느님을 자랑하지 않고 자신의 악행을 거만스럽게 자랑하는 그는 진정한 용사가 아니다.그는 하느님의 능력이 아닌 자신의 능력을 믿는다.
이 절은 권세가의 악행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거짓을 일삼는자”는 거짓말하고 속임수를 쓰는 사람이다.“날카로운 칼”은 혀의 치명적인 힘에 대한 직유법으로 쓰였다.혀를 위험한 무기에 비유하는 것은 일반적이다(57,5:64,4참조).여기서 혀는 남을 괴롭히거나 파괴할 수 있는 힘을 나타낸다.혀에 죽음과 삶이 달려있다(잠언18,21).
권세가는 왜곡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그는 선보다 악을 더 사랑한다(미카3,2).그래서 그의 삶은“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라”(시편34,15)고 하시는 한느미의 뜻과 모순된다.지혜서(잠언14,16ㄱ)와 예언서(아모5,15)에 다르면 선을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는 것이 인생의 가장 높은 이상이다.예언자들은 이런 가치의 혼동을 호되게 비판한다(이사5,20;미카3,2참조).예수님은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요한3,19-20)고 말씀하셨다.여기서“의로움”과 “속임수”가 대조를 이룬다.‘의로움’은‘옳은 말’또는‘진실’이며‘속임수’는‘거짓말’을 가리킨다(시편119,29;잠언12,17;16,13참조).그러므로 그는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서 의로운 사람을 모함하는 자이다.
시편 52편의 전체적 의미:시편52편은 거만한 부자들에게 훈계하고 있다.시인은 하느님이 악인들을 없애버리신다는 믿음을 천명한다.거만한 악인들의 자랑은 의인들에게 부정적인 모델이다.왜냐하면 의인들은 하느님의 자애에 의지하고 그분을 신뢰하기 때문이다.성급하고 독설적으로 자랑을 일삼는 이들은 남을 괴롭히는 말을 하며 대혼란을 일으키기를 좋아한다.그들은 악행을 저르면서 강하다고 생각하지만 하느님은 그들을 파멸시키실 것이다.그들은 자기들의 부에 의지하고 하느님을 의지하지 않는다.다른 이들을 파멸시킨 이들은 하느님에 의해 생명의 땅에서 제거될 것이다.이 시편의 주제는 하느님의 자애와 인간의 폭력이다.인간은 폭력을 계획하고 일삼지만 하느님의 자애는 영원하다.
이 시편은 두 가지 메시지를 전해준다.하나는 강한 자들의 수치스런 몰락으로 의인들이 이를 보고 하느님의 역사를 알게 되리라는 것이고,다른 하나는 하느님의 집에 있는 올리브 나무 같은 신실한 자들이 든든하고 오래도록 열매를 맺으며 살리라는 것이다.이 시편의 핵심은 자신보다 하느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올리브 나무는 은유는 그 나무를 심고 기르는 사람의 돌봄에 의지하도록 한다.나무는 움직일 수 없기에 스스로 물가로 갈 수 없다.나무는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정원사에게 온전히 의존해야만 한다.좋은 땅에 심긴 나무는 생명의 물길을 따라 깊이 뿌리를 내린다.우리가 하느님의 집에 심긴 올리브 나무라면 하느님의 자애에 의지하여 그분이 베풀어 주시는 생명수의 원천으로 뿌리를 깊이 내릴 때 싱싱하고 풍부한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시편42-89편)
“공간정치는 이렇듯 건조물들이나 시설들 사이의 직접적인 대비,용도 변경과 개조를 통한 상징성의 전복,이질적인 건조물 사이의 연상작용 유발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한다.해방 후 일본인들의 중심지였던 혼마치(本町)에 충무공의 시호를 따서 충무로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나 중국인들의 중심지였던 고카네초(黃金町)에 을지문덕의 성을 따 을지로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공간정치다.
그런데 사람의 인지 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이런 인위적 관계 설정은 건조물들로 구축된 물리적 공간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추상적 개념어들로 구축된 관념의 공간 안에서도 이루어진다.단어 사이의 관계를 반복해서 유포하면,인간이 세상을 인지하는 기본 단위인‘개념’도 왜곡할 수 있다.근래 한국 사회 일각에서 평화,인권,복지,평등 등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닌 단어들을‘종북 從北’이라는 新造단어와 연결시키는‘관행’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다.그 의도를 간파하지 못하면,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평화,인권,복지,평등을 적대시하는 ‘反인간적 인간’이 될지도 모른다”(본문 309쪽)
좋은 것 아끼지 마세요
옷장 속에 들어있는 새로운 옷 예쁜 옷
잔칫날 간다고 결혼식장 간다고
아끼지 마세요
그러다 그러다가 철 지나면 헌옷 되지요
마음 또한 아끼지 마세요
마음속에 들어있는 사랑스런 마음 그리운 마음
정말로 좋은 사람 생기면 준다고
아끼지 마세요
그러다 그러다가 마음의 물기 마르면 노인이 되지요
좋은 옷 있으면 생각날 때 입고
좋은 음식 있으면 먹고 싶을 때 먹고
좋은 음악 있으면 듣고 싶을 때 들으세요
더구나 좋은 사람 있으면
마음속에 숨겨두지 말고
마음껏 좋아하고 마음껏 그리워하세요
그리하여 때로는 얼굴 붉힐 일
눈물 글썽일 일 있다한들
그게 무슨 대수겠어요!
지금도 그대 앞에 꽃이 있고
좋은 사람이 있지 않나요
그 꽃을 마음껏 좋아하고
그 사람을 마음껏 그리워하세요
(아끼지 마세요/나태주)
늘 행복한 날만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