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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동창회 연회비 보내주시면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정성스럽게 보내주시는 총동창회 연회비는 아래와 같이 동문 여러분을 위해 사용됩니다.
동기회비와 별도로 총동창회 연회비가 필요합니다
1. 동문 친목강화를 위한 행사에 사용됩니다.
등산대회, 바둑대회, 테니스대회, 골프대회, 농구대회 지원, 정기총회, 이사회 등 개최 및 지원
2. 동문 연결 및 정보 교환에 사용됩니다.
월간 ‘큰그릇’ 발간으로 동문소식 전달 및 동문상호 연결
‘큰그릇’ e-book 및 스마트폰 앱으로 서비스 제공
총동창회 홈페이지(http://www.yongsango.net) 유지 관리
3. 모교 지원 및 발전 사업 추진
장학재단 사업(장학금 지급, 우수학생 해외연수) 외 교사 격려
학생 특별활동 등 각종 행사 지원
4. 총동창회 사무국 운영
동문들에게 행정 서비스. 인건비, 통신비 등
용산고등학교동창회 발전과 모교 후원을 위해 사용되는 총동창회 연회비 납부에 동문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후원을
기대합니다.
연회비 납부 : 국민은행 055237-04-005315 용산고등학교 동칭회(성명, 횟수 기재 바랍니다.)
칼럼 | 장종범·21회·전 체육 교사
그래, 운동과 자연을 즐기며 살련다.
어릴 때부터 열심히 해오던 운동이 결국에는 나의 직업으로 연결될 줄은 미처 몰랐다. 입학한 대학에서 갑자기 어려워진 집안 형편에도 럭비선수로서의 4년이 졸업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을 주었다.
또 ROTC 동료들이 서로 가기를 꺼리는 기갑병과를 택해서 신나는 탱크 소대장 생활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도 운동을 좋아했던 성격이 한몫을 했다.
이제 약 40년 가까운 교직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재야로 돌아와 생활하고있다. 여러 가지 회한과 상념에 젖어도 보지만, 가끔 연락 오면 술잔을 함께 나누며 같이 늙어가는 제자들이 있기에 추억에 보람이라는 글씨를 덧씌울수가 있다.
아들 같은 친구들과 체육관에서 배드민턴 경기를 하면서 슬슬 고장이 나가는 내 신체에 한숨도 쉬어보지만, 그래도 50대 후반에 힘든 고비를 넘기고 살아났기에 하늘에 감사하며 열심히 땀을 흘려본다.
수명이 전보다 길어져서 요즘 웰빙보다 웰다잉에 관심이 많아진다.
학생들에게 가르친 대로만 살았으면 너무도 건강한 신체를 지녔어야 하지만, 그렇게 잘되면 병원은 문을 닫아야겠지.
그래도 50대 초반서부터 시작한 캠핑활동이 그나마 나의 탈출구 역할을 해주고 있으니 다행이다. 요즘은 일년 중 거의 두 달을 밖에서 자고 있으니 외박의 달인(?)이라도 되는가 싶다.
자연 속에서 여러 가지 활동도 하고, 맛난 음식도 직접 해먹고, 가끔은 하루 종일 멍때리기도 하는 생활이 이젠 우리 부부의 일상이 돼버렸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과의 격의 없는 대화 속에서 나를 채찍질하고, 정보를 교환하며 다니다 보면 우리나라도 너무 넓고 좋은 곳이 많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다녀봐야 앞으로 10년의 목표를 가지고, 더 많은 시간을 자연과 함께 보내려고 캠핑용 차량 구입도 염두에 두고 계획을 짜고 있다. 이러다가 TV프로 집시맨에 나오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혹시 그러면 용고 깃발을 달고 출연해 야겠지요….
큰그릇 3
어리석은 삶, 지혜로운 삶 95: 김상대·7회·아주대 명예교수
반대가 진리다
1. 형제애
부모는 자식들에게 형제끼리는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 말하고, 그들이싸우면 야단친다.
어머니라고 해서 자식들을 똑같이 사랑하지는 않는다. 어머니도 인간인 이상 반드시 그럴 수는 없다. 아이들은 대단히 예민하다.
엄마가 자기를 더 좋아하고 덜 좋아하는지 금방 알아챈다. 모두 똑같이 사랑한다는 어머니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아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갈등과 미움, 질투심이 아이들 마음속에 싹튼다.
형제라도 아이들은 각기 다르다. 예술적으로 뛰어난 아이, 수학에 재능이 있는 아이,예술보다는 운동에 더 재주가 있는 아이, 이처럼 모두 제각각이다. 왠지 인간적으로 더끌리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아이도 있다. 그 속에서 서로에 대한 미움과 갈등으로 불거지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는 그들에게 착하게 행동하라고 가르친다. 솔직하게 행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만일 아이들이 솔직해지는 법을 배운다면, 그들은 마음 속 질투를 폭발하여 털어버릴 것이다. 아이들은 화가 나면 서로 싸우고 욕하지만 얼마 안 있어 잠잠해진다. 화가 나서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화해하고 앙금을 털어 버린다. 아이들은 매우 단순하다. 하지만 그 단순함을 허락받지 못할 때가 많다. 그들은 어떤 경우에도 싸워서는 안 된다고 교육을 받으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게 제지당한다.
이로 인해 화, 질투심, 수만 가지 마음의상처들이 쌓이고 쌓인다. 하지만 그들이 상대에게 진정으로 화를 표현할 수 있다면, 분노와 질투심을 폭발할 수 있다면, 그 가운데 깊은사랑과 연민이 싹튼다. 바로 그것이 진정한 형제애이다.
2. 산문적 삶과 시적 삶
현실에서 우리는 삶을 끊임없이 계산한다. 손해 보지 않으려고, 실패하지 않으려고, 안전한 선택만을 하려고 머리를 굴린다.
진정한 삶은 계산될 수 없다. 삶이 계산적일 때 그것은 지루한 산문이 되고 시시해진다. 그때 삶은 산수이고 논리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무미건조해진다. 꽃도 없고, 춤도 없고, 노래도 없다. 사는 것이 아니라 단지 끌려갈 뿐이다. 그러나 시로서, 춤으로서, 음악으로서, 찬양으로서 삶을 살 수도 있다.
그것은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렸다. 두 가지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로 탄생한다. 어떤 정해진 운명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운명이 정해져 있다면 아무런 자유도 없을 것이다. 운명이 정해져 있다면 인간은 기계가 되고 만다. 자동차는 비행기가 될 수 없고, 비행기는 컴퓨터가 될 수 없다. 그들에게는 제 각기 자기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 그들은 확실한 프로그램을 따라 진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기계로 태어나지 않는다. 절대적인 자유를 지니고태어난다. 한 걸음 한 걸음 모두 그 자신이 선택해야 한다. 산문적인삶을 살 것인지, 시적인 삶을 살 것인지, 논리적으로 살 것인지, 사랑으로 살 것인지, 수학적으로 살 것인지, 지복의 삶을 살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그것은 가장 기본적인 선택이다.
3. 부모에게 복종하지 말라
우리는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을 효도라고 하며, 효도는 자식으로서 지켜야 할 미덕으로 간주된다.
모든 부모들이 자식에게 실망한다. 예외는 없다. 붓다의 부모조차 그에게 무척 실망했다. 붓다의 아버지는 유일한 왕권 후계자인 아들이 왕궁에서 사라졌을 때 얼마나 분노했는지 아는가? 그는 군대와 경찰을 온 나라에 풀고 발견하면 그를 죽이려고 했다. 석가는 그런 사실을 알고 아버지의왕국을 벗어나 다른 나라로 도망쳤다.
이후 12년 동안 소식이 없었다. 그가 깨달음을 얻었을 때 그는 그 기쁨을 함께 나누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의 아버지는 치미는 분노를 이기지 못해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말했다. “너는 나의 명예를 더럽혔다.…” 그는 누더기 옷을 걸치고 탁발 그릇을 들고 서 있는 아들을 보았다. 붓다는 한동안말없이 듣기만 하다가 아버지가 냉정함을 되찾은 것을 확인하고 말했다.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제발 눈물을 닦고 저를 봐주십시오. 저는 예전에 고향을 떠났을 때와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완전히 변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눈은 눈물로가득 차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는군요. 당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상대하고있습니다. 그는 이미 죽었습니다.” 그 말은 또 다른 분노를 일으켰다. “네가나를 가르치려 드는 거냐? 내가 내 아들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내 피가 너의 혈관을 흐르고 있는데도 내가 너를 못 알아본다는 거냐?” 붓다가 말했다. “제발 오해하지 마십시오. 몸은 당신에게 속해 있으나 나의 의식은 그렇지 않습니다. 몸이 아니라 의식이 나의 실체입니다. 당신의 아버지나 그의 아버지가 황제였던 것은 사실이나, 제가 제 자신에 대해 아는 한 저는 전생에서 늘 거지였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구걸하며 진리를 찾아다녔으니까요. 나의 몸은 당신을 거쳐 나왔으나 당신은 단지 통로에 지나지 않습니다. 당
신이 저를 창조한 게 아닙니다. 당신은 매개체일 뿐입니다. 저의 의식은 당신의 의식과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가 말하려는 것은 제가 새로운 의식으로 고향에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저는 다시 탄생한 것입니다. 저를 보고, 저의 기쁨을 보십시오.” 아버지는 그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자신은 화를 내고 있으나 아들은 전혀 대응하지 않았다. 그것은 새로운 상황이었다. 예전의 아들이라면 아버지보다 더욱 더 화를 냈을 것이다. 젊은이들의 혈기가 아버지보다 더 왕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들은 화를 내지 않았으며, 그얼굴에는 온전한 평화와 고요가 깃들여 있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분노에도 흔들리지 않았고 흐트러짐이 없었다. 아버지는 그를 모욕했으나, 그는 모욕당하지 않았다.
우리의 부모는 우리에게 실망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를 통해 어떤 기대를 성취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망시키는 것에 대해 죄의식을 느낄 필요가 없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들이 우리의 기쁨과 성장을 파괴할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것이며, 자신의 빛에 따라 살아야 한다. 그들은 화를 내겠지만 기다리라. 분노란 영원하지 않다. 그것은 구름처럼 지나가버린다. 부모들은 언제나 걱정한다. 우리가 그들의 뜻대로 산다 해도 그들은 여전히 걱정한다. 그것은 습관이다. 그들의 부모 역시 늘 걱정했고 그들 부모의 부모 역시 그러했다. 그런 걱정은 물려받은 것이다.
우리의 부모는 불행했고, 그들의 부모들도 불행했다. 그러나 우리는 대대로 물려 내려온 걱정의 길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걱정한다면 우리는 길을 잃게 된다. 그들은 우리가 전통과 관습의 길로 돌아온 것을 기뻐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와 부모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우리는 방해받거나 괴롭힘을 당하지 않은 채 남아 있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독립적으로 산다면, 자유의 향기를 누리며 산다면 우리는 자유를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 좀 더 사랑과 지복으로 가득 차기 위해 우리는 이곳에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복을 누려야 하고 우리는 황홀함 속에 살아야 하고 자신을 찬양하고 웃고 즐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 부모는 우리를 물질적으로 도왔으나, 우리는 부모를 영적으로 도와야 한다. 그것이 부모의 은혜를 갚는 유일한 길이다.
김승용 동문(47회)은 부동산 임대 법인 이사, 스포츠용품 수입 유통 회사 이사로, (가칭)동후암 3구역 재개발 추진 준비 위원장이다. 후암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박이로, 대를 이은 용산고 동문 가족이다. 용산고 주변을 남산 밑 고급 주택 단지로 재탄생시키겠다는 김 동문을 <큰그릇>에서 만났다. <편집자 註>
평범했던 고등학생 김승용
용산고 다닐 때 관련 질문에 김승용 동문은 “평범했, 어울리는 것 좋아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는 운동을 전공으로 하고 싶어서, 혼자서 볼링부 특기생으로 활동했다. 당시 에버리지(평균 득점)는 230~240이었다.
하지만 학업과 병행하는 게 쉽지 않았고, 대회에도 선수가 부족해 개인전만 출전하고 단체전은 출전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대학을 건축과로 진학했고, 집안에서 운영하는 스노보드 관련 회사에 입사했다.
부동산에 눈을 뜨니, 내가 사는 지역이 보였다!
“후암동 토박이로, 용산중학교 건너편, 즉 동후암 3구역에 살고 있습니다.
” 부모님 때부터 살던 곳으로, 김동문은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박이다. 김 동문은 30대 초중반부터, 부동산 투자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기시작했다.
2019년 부동산 임대 법인의 이사로 활약하며, 2021년 부동산 카페에서 활동하던 때였다. 재개발이슈가 생기면서 김 동문은 본인이 살고 있는 지역에 관심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동후암 3구역이 신속통합기획 후보지로 선정되며
1990년대 남산 제모습 찾기 일환으로 높이 제약이 시작되며, 개발이 제한됐다. 하지만 이제 주변 여건 변화및 주거지 노후화로 정비가 필요하게 됐다. 2023년 남산 고도 제한 완화로 물꼬가 트였다. 동후암 3구역(용산구 후암동 264-11번지 일대)은 소월로 주변 구릉지에 위치한 노후주택 밀집 지역으로, 서울시 고도지구 높이완화 계획과 연계하여 주거 환경 개선 필요 지역인 신속통합기획 후보지로 선정됐다.
김 동문에 의하면, 올해 설계 용역 입찰 준비 중이고, 8~9월 구역 지정 예정이다.
“2종 지역으로 7층 제한이 있었는데, 재개발 시 45m, 15층이 가능해집니다.”라며 김 동문은 후암동, 용산2가동(해방촌), 이태원동이 재개발 후보지로 선정됐다고 말했다.
“동후암 3구역은 후보지 선정 시 세대수 기준 71% 동의를 받았습니다. 높은 수치입니다. 반대 동의서도 받았는데, 단 3장만 접수되었습니다.”
동후암 3구역! 어떻게 변할까?
김 동문은 남산 고도 제한 변경과 미군 이전으로, 후암동을 ‘남산 밑 고급 주택 단지’로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용산고, 용산중을 마주 보는 단지이고, 미군 이전에 따라 공원이 보이는 단지입니다. 원주민 정착률이 사전 조사 결과 50%가 넘습니다. 주거와 투자의 목적을 동시에 가지고 계시죠.” 김 동문은 동후암 3구역이 ‘공급이 적고, 수요가 많은 단지’가 될 거라 예상했다.
서울 재건축 아파트들이 35층까지 올라가는 추세에, 실거주비율이 높은 15층 아파트 단지의 인기가 높아질 거라고 그는 덧붙였다.
“후암동은 태어나고 자란 곳입니다. 세월은 바뀌었는데, 동네는 아직 그대로입니다. 길가 건물만 바뀌었지,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화장실이 재래식인 집들도 있습니다.” 실제로 노후 불량 건축물 68.6%로, 주거환경개선이 필요하다고 조사됐다.
“동후암 3구역 재개발 추진 준비 위원회의 특징은 위원회 반 이상이 토박이라는 점입니다. 7개 위원회에 용산고 동문이 많습니다.”라고 말한 김 동문이 위원장으로 있는 동후암 3구역만 해도, 박종우 동문(35회)이 위원회의 감사이다.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
김승용 동문은 용산고 동문 가족이다. 재학생 후배들에게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으세요.”라고 전했다. 일반적으로 한 말이지만, 필자에게는 김 동문이 아들에게 하는 말이자 김 동문 본인에게 하는 말로도 들렸다.
글 천상욱·42회·편집위원
강민구(27회)의 알기쉬운 AI 이야기 1
천리마 위에 올라타던 그 저녁
인공지능 AI(Artificial Intelligence) 만능시대다. 인간의 뇌 말고는 정보처리 기계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서 컴퓨터 발달로 물줄기가 터지며, 컴퓨터로 두뇌를 만들어 우리가 하는 일을 시키는 세상이 되었다. 단순 자동화로 시작된 작업에서 컴퓨터와 연결되어 AI를 탑재해 인간의 많은 분야를 대신하는 세상이 되었다. 현재는 인공지능의 다양한 기술과 응용 범위를 파악하고 이용하는 사람이 한발 앞서 목적지에 도착하는 세상이다.
쳇GPT 등 인간의 지능을 기계에 인공적으로 구현한 상품도 넘쳐나는 세상이다. 그러나 어떻게 어떤 방법을 선택해 인공지능 AI를 활용해야 하는가라는 물음 앞에 서면 많은 사람이 낯설고 망설여진다. 인공지능 AI를 활용해야 하는 이유와 활용법을 법원판사로 재직하며 꾸준히 세상에 알려온 강민구(27회) 동문을 통해 쉽게 알아가는 연재를 기획한다.
<편집자 註>
호림박물관 신사분원을 나서는데, 2월의찬바람이 목덜미를 스쳤습니다. 목이 다 잠기도록 이야기했더니 찬 공기가 오히려 시원하게 느껴졌습니다. 강의실 안에서 저를바라보던 수십 분의 눈빛이 아직 아른거립니다.
돌이켜보면 참 무모한 사람이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단체 카톡방에 “제 강연 좀 들으러 오시라”는 호객행위까지 했으니까요. 안타까움이 넘쳐서
그랬습니다. 이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뒤집어지고 있는데, 제 주변의 소중한 분들이 그 파도를 모른 채 서 계시는 것이 너무나 조급했습니다.
2022년 12월 1일, 처갓집 장조카에게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이 제 인생의 물줄기를 바꿔 놓았습니다. “고모부, 세상이 뒤집어졌어요.” 그 말에 이끌려 링크를 열었을 때, 36년 법관 생활에서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전율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습니다. ‘물건이다’—그 직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날부터 매일 새벽, 법원 출근 전에 구글알리미 키워드 설정으로 AI 뉴스를 읽는 것이 아침 밥상차리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과가 되었습니다.
오늘 강의실에서 저는 폰을 꺼내라고 했습니다. 다른 강연장에서는 폰을 끄라고 하지요. 저는 반대입니다. 꺼내시라고, 지금 당장 꺼내시라고. 그리고 제미나이 앱 하나를 열어 보시라고 했습니다. 강태진 학장님의 업적을 딥리서치로 돌려놓고, 강의를 하면서 10분을 기다렸습니다. 결과가 나왔을 때 객석에서 터져나온 탄성—그 소리가 제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박수였습니다.
석·박사 조교 천 명이 일주일 동안 매달릴 보고서를, AI가 10분 만에 만들어냅니다. 거기서 마인드맵이 나오고, 인포그래픽이 나오고, 총천연색 슬라이드가 나오고, 유튜브 동영상 개요까지 나옵니다. 월2만 9천 원, 커피 몇 잔 값입니다. 저는 제미나이 울트라 버전 월 구독료 36만 원을 쓰지만 하나도 아깝지 않습니다.
36만 원 들여서 3천만 원어치를 뽑아내면 되니까요.
그런데 오늘 제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따로 있었습니다. AI기능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강의 끝 무렵, 효도 이야기를 꺼냈을 때 객석이 고요해졌습니다.
저의 장인어른이 올해 97세이십니다. 13년 전 혼자 되신 뒤로, 처갓 집 5남매가 아이패드 6대를 사서 아침·점심·저녁 식사 시간에 맞춰 얼굴을 보여드립니다. 서울에서, 상주에서, 일산에서, 미국 보스턴에서. 버튼 하나만 누르면 여섯 개의 얼굴이 한 화면에 뜹니다. 그것이 효도입니다.
켜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버지, 초등학교 때 기억나는 이야기 좀 해주세요.” 10주만 매주 30분씩 녹음하면 10꼭지가 쌓입니다. 그걸 AI에 넣으면 300페이지짜리 어머니만의 문집, 아버지만의 자서전이 만들어집니다. 제 후배 변호사 한 분은 올 설에 그렇게 만든 엄마 문집을 가족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세상에 그보다 더 귀한 선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AI는 천리마입니다. 천리마는 혼자 달리지 않습니다. 반드시 그 위에 올라타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닙니다. AI를 쓰는 사람이, AI를 안 쓰는 사람을 대체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저는 어디를 가든 외칩니다. 목이 쉬도록 외칩니다. 오늘 저는 조금 욕심을 부렸습니다. 고난도 수업을 해버렸습니다. 예정보다 10분이나 초과했습니다. 군에서 배식에 실패한 자는 용서받지 못한다고 했는데, 강연 시간에 실패한 자도 마찬가지이겠지요.
그래도 후회는 없습니다. 한 분이라도 더, 오늘 밤 집에 돌아가서 폰에 제미나이를 깔아보신다면, 한 분이라도 더, 이번 주말에 부모님 목소리를 녹음해 보신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강의실을 나서며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몇몇 분들이 아직 폰을 들여다보고 계셨습니다. 방금 깐 앱을 이리저리 눌러보시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뒷모습이 참 따뜻했습니다.
집에 가면 할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만, 사실은 거짓말입니다. 오늘 받은 질문들을 곱씹으며 또 공부를 할 것입니다. 내일 아침에도 눈을 뜨면 엔도르핀이 올라올 것입니다. 그리고 또 누군가의 폰에 AI를 깔아 드리러 어딘가로 달려갈 것입니다.
탐구심, 호기심, 열정, 이타심—이 네 가지로 천리마 위에 올라탑시다. 특이점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준비된 사람만이 그것을 향유할 수 있습니다.
오늘 와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강민구(27회·법무법인 도울 대표변호사, 전 부산·창원법원장)
큰그릇 9
이택순(21회)의 역사 기행 7: 아무르강을 따라 우리의 얼을 찾다
지신허地信墟, 역사의 드라마
“1863년 6월, 태양이 작열하는 여름날이었다. 함경도 경원에 살던 상놈(평민) 양응범은 굶주림에 지친 가족들에게 새 땅으로 가서 살자고 타일렀다. 우는 아내를 달레며 보리쌀과 씨앗, 호미, 그릇 몇 개를 짐 보따리에 쌌다. 어두운 밤, 칭얼대는 아이들을 업고 감시하는 병졸들을 피해 출발했다. 동행을 약속한 무산 출신 최운보의 가족을 두만강가 깊은 풀 숲에서 만났다.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강가에 감추어놓은 뗏목을 타고 물살이 약한 곳을 찾아 조심조심 강을 건넜다. 청나라(중국) 땅 훈춘을 지나, 몇 날을 걸었는지 길 기억조차 희미하다. 하루 한두 끼 준비한 주먹밥을 먹었다. 호랑이가 포효하는 산을 넘고, 늑대가 울부짖는 숲을 돌아왔다.
아라사(러시아) 군의 초소가 저 산 너머로 어느곳에 있을 것이다. 마침내 애타게 그리던 새 땅에 도착했다. 아라사의 광활한 대지, 연해주(프리모르스키)가 거기 있었다. 십여년 전부터 조선인끼리 여름이면 몰래들어와 농사짓고 짐승을 잡던 땅이다.
눈을 들어 사방을 바라본다. 나지막한 언덕 사이에 수목이 울창하게 둘러싸고 있다. 이글거리는 해가 저기 걸려 있으니 남쪽 고향땅 함경도가 거기로구나! 동해바다가 가깝다고 하지만, 동쪽으로 뻗어나간 드 넓은 풀밭은 그 끝을 알 수가 없다.
눈앞에는 큰 개울(티진헤 강, 지신허의 러시아어) 맑은 물이 소리없이 흘러내려 간다.
다시 봐도 사람의 그림자는 찾을 수가 없구나! 배고픔에 찌들려, 양반들에게 모멸당하고 아전 나리들에게 쥐어뜯기던 내 고향 함경도 경흥과는 천지차이구나!
정녕 이곳이 신천지 아라사 땅, 연해주인가!” (함경도 유민 양응범의 조선탈출기, 이택순의 현지답사에서)
우리는 함경도 출신 조선인(고려인)들이 1863년 최초로 정착한 마을, 지신허(地信墟, 러시아어 비노그라드노예)를 찾았다. 중국 훈춘 국경으로 가는 길, 크라스키노행 도로에서 포시예트 항구를 지나면 서쪽으로 갈라지는 길이다.
농로 길을 10여 분 차로 이동하면 철조망과 차단 초소가 나타난다.
중국 국경이 가까워 민간인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우리는 사전에 지신허마을의 유일한 거주자인 러시아인 ‘엘레나’의 사전 승낙이 있어 통과할 수 있었다.
지신허 기념비 앞, 강철여인 엘레나와 함께
다시 차에서 내려 10여 분 숲길을 걸어가면 농촌주택과 멀리 언덕에 기념비 하나가 나타난다. 이곳이 바로 조선인 양응범과 최운보의 일행, 13가구 60여 명이 불법이주의 발길을 멈춰 집을 짓고 개척을 시작한 곳 지신허의 옛 땅이다.
지신허의 조선인(고려인)은 이주 5년 만에 165가구 인구가 천여 명에 달하였다. 기아와 압제를 피해 기하급수적으로 조선인이 유입된 것이다.
이 번창하던 지신허 부락에 1905년 이후 망국 조선의 망명 지사가 나타나고, 10여 년 뒤에는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의 손길을 벗어날 수 없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국영농장(콜호즈)으로 개편되며 지신허에서 개인의 농지소유권은 사라졌다. 그나마 안정적인 이민의 삶도 1937년 스탈린 정권의 강압정책에 따라 풍비박산의 지경을 맞는다.
지신허 초원의 동쪽, 동해와 두만강쪽
이곳에 거주하던 고려인 전원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하며 흔적조차 사라진 것이다.
이후 이곳은 인적없는 폐허의 불모지가 되었다. 지신허는 고려인의 머리에서 사라졌다.
역사는 성쇠와 흥망을 반복하며 발전하는가!
공산주의 소비에트 연방이 1990년 들어 붕괴하며, 이곳 지신허에도 러시아인 농부가 찾아들었다. 그는 ‘시지코브 보리스 알렉산드로비치’라는 인물로 이곳에서 농장을 경영하기 위해 귀향한 러시아인 농부였다.
가수 서태지의 지신허 기념비
1990년 9월 해빙기의 물결은 이념의 장벽을 넘어 한국-러시아 수교를 이루어냈다
물이 빠지면 땅이 드러나듯, 공산주의 하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한 고려인의 실상이 서서히 드러났다. 1990년대 후반부터 조심스럽게 고려인과 한국인 역사가들이 지신허의 실체를 찾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고려인들의 증언이 이어지고, 고려인의 유물들이 이 농장에서 발굴되기 시작했다.
연해주 고려인 역사는 또 한 번 드라마틱한 경로를 간다. 한국의 전위 음악인 가수 서태지가 개방의 물결을 타고 2004년 5월 8일 블라디보스토크 ‘디나모 스타디움’에서 ‘한러 수교 120주년 기념공연’을 열었다.
서태지는 전위 음악과 복장, 신장비와 조명으로 현대 음악에 갈증 나 있는 블라디보스토크의 젊은 영혼을 뒤흔들었다.
1863년 고려인의 집단 이주 이후 야외스타디움에서 러시아의 젊은이 2만여 명이 모인 기념비적인 공연이었다. 서태지는 공연 수익금으로 ‘지신허 마을 옛터’를 시지코브의 농장에 세워 헌정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했는가!
음악인 서태지는 지신허에 그렇게 이름을 남겼다. 고려인의 이주 역사도 140년 만에 부활했다.
시지코브 보리스가 죽고 그의 딸 시지코바 엘레나(53세)가 상속을 받아 부친의 유지를 받들어 귀향했다.
엘레나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인터넷 마케팅과 웹 개발전문가로 일해왔으나, 지금은 자연에 귀의하여 친환경농업에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 고양이, 염소, 닭, 꿀벌과 함께하는 그녀는 고려인 개척지의 수호신 같은 인물이었다. 그녀는 고려인들이 개척한 땅에서 살고 있다는 감사함과 자부심으로 우리의 방문을 환대하고 있었다.
산 쪽에서 작업 중 개 짖는 소리에 뛰어 내려온 ‘엘레나’는 고려인들의 유물과 유적지를 자세히 보여주었다. 그 넓은 농장에는 곳곳에 당시 고려인이 사용하던 맷돌과 농기구 등 각종의 유물들이 발굴되어 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아! 고려인들의 오랜 영혼과 숨결은 그렇게 살아있었다. 집주인 엘레나는 우리 일행을 집안으로 안내하며, 흙투성이 농장 작업복을 순식간에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나타난다. 투박하고 무뚜뚝해 보이는 러시아인들이지만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기쁜 일에는 옷을 갈아입고현재를 만끽한다는 것이다.
친절하면서도 의지가 돋보이는 강한 이 러시아 여성, 러시아인의 이미지를 다시 보여준다. 고려인들이 이런 러시아 여성의 도움을 받았다면 정착에 큰 도움이 되었을 텐데….
엘레나는 즉석에서 염소 생우유와 샐러드를 요리해주는 엄청난 친절과 응대를 보여주었다. 지신허를 찾아온 최고의 빈객으로 우리를 맞아준 것이다. 이 러시아 숙녀의 우아한 면모는 두고두고 기억이 날 것 같다.
지신허 이주 160년, 고려인의 역사는 고목의 나이테 처럼 환희와 고통의 연륜을 더해간다. 함경도 출신 조선인 고려인들에게 신천지 지신허는 자유와 생존의 감격, 항일운동의 기지, 러시아 혁명의 광풍, 지옥 같은 강제이주의 빛바랜 사진 같은 추억의 대지였다.
1990년대 러시아에 또다시 역사의 광풍이 휘몰아친다. 공산주의 몰락과 새로운 체제의 혼란 속에서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개혁과 개방)는 고려인을 다시 극동으로 호출한다. 고려인의 연해주 귀향과 정착,역사의 드라마는 이어진다.
우리는 그들의 흔적을 따라 연해주(프리 모르스키)와 아무르(흑룡강)를 찾아다니게 된다.
12 큰그릇
김세봉의 고전산책 44: 김세봉·28회·(사)유도회 한문연수원 교수
문왕文王과 제선왕齊宣王의 동산 크기
《맹자(孟子)》 양혜왕(梁惠王) 하(下)편에 제선왕과 맹자가 동산에 대하여 나누는 대화가 보인다.
먼저 제선왕이 맹자에게 물었다.
“문왕의 동산(동물원)이 사방 70리라고 하는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하니, 맹자가 대답하였다.
“(그렇다고) 책에 나와 있습니다.”
제선왕: “그와 같이 컸습니까?”
맹자: “백성들은 오히려 작다고 여겼습니다.”
제선왕: “그런데 과인의 동산은 사방 40리밖에 안 되는데도 백성들은 오히려 크다고 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제선왕 소유의 동산은 사방 40리인데 백성들은 그것이 크다고 아우성이었다.
그런데 문왕의 동산은 무려 70리나 된다고 하니 그것에 견주면 자신의 동산은 비교조차 안 될 정도로 훨씬 작은 셈이었다. 그런데도 자기와 달리 사람들이 문왕을 성왕(聖王)으로 떠받들고 있는 점에 대해 제선왕은 이해가 될 리 없었다. 맹자는 제선왕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십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으리라.
맹자는 일단 제선왕의 말을 통해 그가 어떤 의도로 그런 말을 하는지 확실히 간파한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표면적으로 동산의 크기만 보자면 제선왕이 다소 억울해하는 측면을 이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맹자의 다음 설명을 들어보면 제선왕과 문왕의 행위와 그에 대한 백성들의 평가가 왜 그렇게 크게 갈리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맹자: “문왕의 동산은 사방 70리이지만 꼴을 베거나 나무하는 자들이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었으며, 토끼와 꿩을 잡는 자들도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문왕이 이처럼) 백성들과 (동산을) 함께 사용하였으니, 백성들이 작다고 여겼던 것이 또한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처음에 국경에 이르러 이 나라에서 크게 금(禁)하는 것을 물은 연후에 감히 들어왔습니다.
제가 듣건대 교외에 있는 관문(關門)의 안에 동산이 사방 40리가 되는 곳에서 사슴 따위의 짐승을 죽이는 자를 살인죄와 같이 처벌한다고 하더군요. 이것은 곧 사방 40리로 나라 가운데에 함정을 파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백성들이 크다고 여긴 것이 또한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이쯤 되면 제선왕의 말이 무색해진다. 어떤 변명의 여지도 있을 수 없는 논리정연한 답변을 맹자는 가볍게 내놓은 것이다.
제선왕은 동산을 자신 혼자만 즐겼을 뿐 아니라 만약에 누군가 동산에 출입하거나 그곳에서 키우는 동물을 해치면 심지어 살인죄까지 적용할 정도로 무서운 징벌을 가하도록 하고 있었다. 그러니 누군들 그런 사실에 대해 두려움과 반감이 없을 수 있겠는가?
맹자 말마따나 나라 가운데에 함정을 파 놓은 것과 진배없는 것이다. 그러니 사방 40리가 아니라 10리라도 백성들에게는 그것이 크게 보이지 않았겠는가?
반면에 문왕의 동산은 왕 혼자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출입하며 같이 즐길 수 있었다. 이는 문왕이 백성과 더불어 동고동락(同苦同樂)한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겠다. 맹자식 표현으로 하면 여민동락(與民同樂)이다. 그러니 백성들이 사방 70리 아니라 100리쯤 되어도 오히려 작다고 여길 만하지 않은가?
지금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비록 때와 장소가 다르다해도 여민동락하는 정신에 대해서는 동서고금이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국민과 호흡을 같이 하며 소통을 잘 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위정자에 대한 평가도 극명하게 갈리게 됨은 묻지 않아도 알일이다.
큰그릇 13
개교 80주년 기념
기억 속의 사진 한 장 2
개교 기념 사진
사진: 3회 동창회
1946년 9월 12일 촬영된 사진을 소개한다.
1946년 9월 9일 개교한 용산중학교 첫 입학생 250명이 9월 12일 운동장 건너 스텐드에 모여 개교 기념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면 맨 앞줄은 누가 보더라도 당시 선생님 모습이 분명하다.
시선을 그 뒷줄로 옮기면 단정한 단발머리 여학생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뒤에는 까까머리의 지금 3회 동문이 올망졸망 모여 사진을 찍었다.
어라! 남학교에 웬 여학생이… 설마 입학생들이 여동생을 데려와 찍었을리는 없고 무슨 일이람!
개교를 앞둔 1946년 7월 말.
미 군정의 오천석 학무부장이 용산중학교를 미국식 남녀공학 시범학교로 지정하여 남학생 4개 학급 50명씩 200명과 여
학생 1개 학급 50명을 8월에 모집하고 미국식 학제에 따라 신학기를 9월 초로 하여 개교할 것을 결정하여 용산중학교에 여학생이 입학을 하였고, 당당히 용산중학교 신입생으로 9월 12일 개교기념 사진을 찍은 것이다.
청운의 꿈을 안고 당당히 용산중학교에 입학한 여학생들은 1년 뒤 2학년으로 진학하며 당시 사회적인 분위기와 학교 시설상의 여러 문제들로 남녀공학 시범학교가 취소되어 대다수 학생들이 이웃 수도여고로 학교를 옮겨가 학업을 마치게 되었다.
용산고와 수도여고가 오누이 학교로 정을 나눈 역사가 단순한 역사가 아님을 이 한 장의 사진이 증명하고 있다.
글 박만흠·29회·편집위원장
14 큰그릇
형제결연, 장학기금 협찬 동문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학력증진비로 장학금 지원 지속
행사소식
3회 동창회 신년모임
3회 동창회 신년 첫 모임이 1월 24일 화요일 오후 1시 종로3가 국일관 이대감집에서 8명 회원이 참가한 가운데 개최되어 즐거운 시간을 만들었다.
이날 참석 회원은 2026년 새해에도 모두 건강하고 복 많이 받기를 기원하였고 박돈서 회장은 “서로에게 자주 전화하여 안부를 나누자”라고 강조하였다.
참석 회원 모두는 박수로 화답했다
회장 박돈서 010-2821-4110
총무이사 이윤호 010-8266-4257
11회 동창회 신년회
11회 동창회 2026년 신년회가 지난 1월 12일 월요일 오후 1시 사당동 ‘담양에초대’에서 23명 회원이 참가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이날 참석 회원들은 2026년 병오년을 맞아 건강하고 즐거운 삶을 만들자고 다짐하고, 2026년 운수대통과 각종 동호회 모임 활성화를 통해 더 즐거운11회 동창회를 만들자는 의미에서 대통주로 잔을 채우고 모두 한 목소리로 ‘11회를 위하여!’를 힘차게 외쳤다.
회장 이기정 010-5213-5251
21회 동창회 첫 운영위원회
21회 동창회 2026년 첫 운영위원회가 지난 2월 12일 목요일 오후 1시 모교 진로활동실에서 14명 운영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이날 운영위원들은 모교 앞 정감어린에서 오찬을 함께하고 참석하여 새집행부 결성에 따른 2026년 사업계획을 심의하고 즐거운 21회 동창회를 만들자고 다짐하고 ‘위아 용! 산, 산, 산!’을 힘차게 외쳤사다.
회장 정재호 010-2129-5535
총무이사 윤재근 010-6321-1895
23회 첫 2026년 이사회
23회 동창회 한 해 동안 다양한 동기회 행사를 위한 첫 정기이사회가 지난 1월 29일 목요일 오후 6시 종로3가 한일옥에서 18명 이사들이 참가한 가운데 개최되어 봄 수학여행(4월), 가을 음악회(10월), 송년회(12월 23일) 개최를 확정하고 특별행사로 권구종 동문 협조로 3월 11월부터 개인 장수사진 촬영을 계획였다.
회장 정규석 010-8794-6149
총무이사 박주양 010-8074-4409
27회 졸업 50주년 기념 발대식
올해 졸업 50주년을 맞는 27회 동창회 50주년 기념행사 발대식이 지난 2월 2일 월요일 오후 5시 모교 진로활동실에서 60여 명 회원이 참가한 가운데 개최되어 50주년 행사 서막을 열었다.
이날 참석 회원들은 졸업 50주년 각종 기념행사 및 동호회별 행사를 프레젠테이션으로 설명하고 성공적인 50주년 행사 개최를 한 목소리로 다짐하였다.
회장 이광진 010-8721-0262
총무이사 이정로 010-4788-9295
쌍용회 신년 첫 모임
용산·마포 지역 동문 친목 모임인 쌍용회 1월 정기모임이 지난 1월20일 화요일 오후 6시 30분 남영동 등촌샤브칼국수에서 12명 회원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이날 모임에서 참석 회원들은 새해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인사를 나누고 봄 야유회 등 2026년 행사를 통해 더 즐거운 쌍용회 모임을 다짐하였다.
회장 김상훈(31회) 010-8846-7018
총무 임종택(38회) 010-5395-0849
18 큰그릇
용한회 신년회 모임
강동·송파·하남 지역 동문 친목 모임 용한회 신년회 행사가 지난 1월21일 수요일 오후 6시 30분 강동구 더푸른바다에서 18명 회원이 참가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이날 신년회는 새해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고동근 회장의 인사와 이부영(12회) 전임 총동창회장의 덕담에 이어 만찬
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만들고 다함께 교가제창으로 행사를 마쳤다.
회장 고동근(14회) 010-8772-7269
총무 한재호(41회) 010-3356-6770
용파회 신년 모임
경기도 파주지역 동문 모임인 용파회 신년 모임이 지난 1월 10일 토요일 낮 12시 종로3가 명동찌개마을에서 개최되어 즐거운 시간을 만들었다.
파주 지역 동문 모임을 서울 시내에서 개최한 이유로 시내에 근무하는 동문 편의를 위해서였다고 사연을 알린 홍성수 회장은 용파회 활성화를 위해 참석이 어려운 회원을 위한 배려였다고 밝히고 2026년에는 많은 참여를 통해 즐거운 용파회 모임을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회장 홍성수(31회) 010-2731-5710
울산지회 1월 정기모임
용산고등학교동창회 울산지회 1월 정기모임이 지난 1월 15일 목요일 오후 6시 30분 울산시내 신천지대반점에서 10명 회원이 참가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이날 모임에는 오랜만에 이기성(13회) 동문이 참가하였고, 2025년 결산보고에 이어 신임 회장으로 함중각(30회) 동문을 선임한 후 김정호(30회) 동문 후원으로 만찬을 함께 나누고, 즐거운 시간을 2차, 3차로 이어갔다.
회장 하 수(29회) 010-4130-0641
총무 박우성(33회) 010-3864-6264
충주동문회 2월 정기모임
충주지역 동문 친목 모임인 충주동문회 2월 정기모임이 지난 2월 4일 수요일 오후 6시 대광식육식당에서 10명 회원이 참가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이날 참석 동문은 2026년 병오년 설을 앞두고 새해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덕담과 나누고 만찬을 함께하며 새해에도 반가운 만남을 매달 이어가자고 다짐했다.
회장 공중표(29회) 010-5633-0693
총무 임광열(32회) 010-9540-4379
총동창회 산악회 신년 산행
총동창회 산악회 신년 산행이 지난 1월 17일 토요일 22명 회원이 참가한 가운데 우면산에서 진행되었다. 이날 산행은 14회부터 48회까지 선후배가 유재호(36회) 등반대장과 한창용(36회) 인솔대장 안내에 따라 전원 낙오없이 안전한 산행을 마치고 맛있는 점심을 함께하며 동문애를 나누는 시간을 만들었다.
회장 이상수(36회) 010-9262-4128
총무 원계식(36회) 010-4561-7943
용천산악회 2월 정기산행
금천구 동문 산악회인 용천산악회에서 2월 정기산행을 지난 2월 8일 용마산·아차산 코스에서 13명 회원이 참가한 가운데 4시간에 걸쳐 진행하였다.
이날 영하 13도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참석 회원은 이태윤(14회) 동문 안내로 산행을 마치고, 광진구에 거주하는 최철용(14회) 동문이 합류하여 지역 명물 코다리 동태탕으로 뒤풀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만들었다.
회장 박노형(25회) 010-4481-8778
총무 이영수(30회) 010-9056-2363
큰그릇 19
동문 행사 소식
박찬우(27회) 출판기념회
<도시의 미래전략> - 천안시 단국대 학생극장
천안 출신으로 행정안전부 차관과 제20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박찬우(27회) 동문이 지난 2월1일 충남 천안시 안서동
단국대학교 천안캠퍼스 학생극장에서 2,000여명 시민과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저서 <도시의 미래전략> 출판
기념회를 개최했다.
박 동문은 책 머리말에서 “대한민국의 지도가 한쪽으로 기울고 있다.
수도권은 인구와 산업이 과잉 집중되며 숨이 막히고, 지방은 청년이 떠나며 공동화 위기에 빠져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문제는 지역의 위기를 넘어 국가의 지속 가능성 자체를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라며 “지방이 흔들리면 국가는 중심을 잃는다. 그래서 지방의 경쟁력은 곧 국가의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출판기념회는 전 천안시장을 역임한 성무용(12회) 동문 및 전충남도지사, 전 대전광역시장 및 다수 국회의원 등 정치·행정 분야 주요 인사들이 참석해 박 동문의 출판기념회를 축하했고 박 동문은 인사를 통해 “지방을 살려야 한다는 말은 많았지만, 정작 도시가 어떻게 성장하고 경쟁해야 하는지에 대한 전략은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다”면서,“이 책은 해답을 제시하기보다, 도시가 국가의 미래를 어떻게 떠받칠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기록”이라고 밝혔다.
오후석(36회) 출판기념회
<하남의 확실한 변화 오후석이 합니다> - 하남시 하남농협 대강당
경기도 행정2부지사를 거쳐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장을 역임한 오후석(36회) 동문이 은퇴 후 하남시에 정착하며 행정관료의 관점에서 바라본 시각을 바탕으로 하남시변화를 예측한 책 <하남의 확실한 변화 오후석이 합니다>를 출간하고
지난 2월 1일 하남농협 신용본점 6층 대강당에서 700여 명 지역 주민이 참석한 가운데 출판기념회를 개최했다.
차분하면서도 내실 있는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출판기념회에서 오동문은 “30여 년간 공직 현장에서 행정을 이끌어온 경험을 통해 한 ‘공직자’의 결정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실행되는지를 잘 알고 있기에 정책은 결국 사람의 삶으로 증명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평소 관심이 있었던 하남시가 나아가야 할 변화를 책에 담아냈습니다”라고 밝혔다.
이어진 북토크에서도 일방적인 연설이 아닌 대화 형식으로 책에 담긴 행정철학을 풀어내며 참석자들과 호흡했다. 그후 참석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면서 출판기념회 열기를 마무리했다.
이날 흥미로웠던 점은 고 이해찬(22회) 전 국무총리를 비롯해 많은 국회의원들과 강원국 전 대통령비서실 연설비서관 등이 축하 영상을 통해 오 동문의 출판기념회를 축하한 점이다.
서평
<손녀들과 함께 쓰는 아드리아해 문명탐험> 펴내
권주혁(22회) 동문
국제정치학 박사이자 148개국을 여행하며 전쟁 관련 서적 26권을 출간한 권주혁(22회)동문이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두 손녀 신은유·권수진 양과 함께 39일간 아드리아해를 여행한 여행기 ‘손녀들과 함께 쓰는 아드리아해 문명탐험’을 펴냈다.
이 책 <손녀들과 함께 쓰는 아드리아해 문명탐험>은 기본적으로 여행의 기록이 담긴 여행기다. 국제정치학 박사인 할아버지와 초등학교를 졸업한 두 손녀가 방학을 이용해 39일간 아드리아해를 여행하고 남긴 기록이라는 점이 독특하다.
<손녀들과 함께 쓰는 아드리아해 문명탐험>은 주 저자인 권주혁 작가의 주요한 줄기 위에 손녀들의 여행 감상기가 더해져 완성되었다.
오랜 경험과 박학다식한 국제정치학 박사 할아버지가 여행 경로를 따라 그때그때 복잡한 발칸반도 역사와 문명 그리고 자연을 체계적으로 설명해 주고, 거기에 초등학교를 막 졸업한 손녀들의 순수한 여행 감상과 기록이 균형있게 실려 있다.
<후회하지마> 펴내
박중훈(35회) 동문
스무 살에 영화배우가 돼서 40년간 4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해 오랜 시간 영화를 통해 폭넓은 사랑을 받으며 ‘국민배우’로 불리는 박중훈(35회) 동문이 동아일보에 2년여 ‘박중훈의 세상 스크린’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칼럼을 바탕으로 여기저기 기고한 글들을 모아 <후회하지마>라는 제목으로 에세이를 펴냈다.
책에서 박 동문은 “막연히 책은 한 예순쯤 돼서 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게 기억난다.
그런데 막상 그 나이가 됐는데도 자신감이 생기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라고 얘기하며 “할까 말까 망설여질 땐 ‘하는’ 선택을 하고 살아왔다. 후회되더라도, 하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하고 후회하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 하고 나서는 후회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라고 삶의 원칙을 얘기한다.
인간 박중훈의 지나온 날들을 솔직하게 돌아본 책 <후회하지마>는 영원한 현재진행형 예술가의 새로운 발자국을 따라가는 재미가 솔솔한 책이다.
20 큰그릇
부고-고인의 영면을 기원합니다
장치혁(4회) 전임 총회장 별세…향년 93세
1985년 1월 1일부터 1986년 12월 31일까지 제11대 총동창회장으로 재임했던 장치혁(4회·전 고합그룹 회장) 동문이 지난 2월 5일 향년 91세로 별세했다.
1935년 4월 평북 영변에서 독립운동가 장도빈 선생의 아들로 태어난 장 동문은 1966년 고려합섬을 창업해 한때 재계 16위까지 성장시켰다. 기업경영을 하며 한국섬유산업연합회 회장 등 활발한 경제활동외에도 한·중 교류와 남북 경제 협력을 위해 애쓴 장 동문은 1980년대 후반 당시 미수교국이었던 중국에 주목해 1989년 노태우 대통령의 친서를 덩샤오핑에게 직접 전달하며 특사로 활동했고, 당시 결혼이 어려웠던 한중 탁구선수 커플 안재형·자오즈민의 혼인을 돕는 등 한중수교 전 양국 접촉을 도왔다.
이 공로로 1992년 수교훈장 숭례장을 받았다. 또 김영삼 대통령 시절 비공개 특사 자격으로 방북해 나진·선봉 개발등 남북 경제 협력 방안을 모색하기도 했으며 러시아 연해주에서 독립운동 유적지를 조사하고 시베리아가스 공동개발을 추진하며 블라디보스토크에 한국학대학 설립 및 한·러시아극동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북방외교 개척에도 힘썼다.
동창회장 임기 중에는 1985년 동창회 명부 발간, 1986년부터 동창회보 월 정기발간을 시작했고, 동문 숙원사업이었던 동창회관을 1986년 4월 마련했으며 각종 친목 행사 개최는 물론 1986년 9월 9일 개교 40주년 행사를 롯데호텔에서 성대히 개최하고 1986년 12월 말에 인정헌(5회) 차기 회장에게 총동창회장 직을 인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두 딸이 있다.
이구용(11회) 전 사무총장 별세…향년 87세
1987년 7월 1일부터 1988년 12월 31일까지 총동창회 사무총장(당시 간사장)을 역임한 이구용(11회) 동문이 지난 1월 19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이 동문은 각 회 동창회의 살림을 맡고 있는 총무이사들의 상호 친목과 의견 교환이 총동창회 발전에 필수적이라 생각하고 1987년 7월 21일 첫 총무이사회의를 소집하였고 그 후 정례화를 이뤄 동창회 업무 수행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또 1987년 8월 26일 동창회보를 총동창회와 분리하여 용산고등학교 동창회보사로 사업자등록을 마치고 단일 사업체로 출범시켰다.
이를 계기로 동창회보에 광고를 게재하는 동문 사업체가 광고비를 손비처리 할 수 있게 되어 동창회보 광고 게재가 증가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1987년 11월 제36호부터 표지를 컬러로 발간하기 시작하는데 기여하였고, 1987년 동창회장배 테니스대회 창설, 동문야유회 개최 및 용산고등학교동창회의 밤 행사 개최 등 다양한 친목 사업을 통해 동창회 활성화와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지대했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아들과 딸이 있다.
이해찬(22회·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부의장) 동문 별세…향년 74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부의장인 전 국무총리 이해찬(22회) 동문이 1월 25일 별세했다.
향년 74세. 이동문은 1월 23일 베트남 출장 중 심근경색 증상을 보여 병원으로 응급 이송돼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일어
나지 못하고 베트남 현지 병원에서 영면했다.
이 동문은 1972년 10월 유신을 계기로 학생운동에 투신해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15년 형을 선고받았지만 형집행정지로 1년 만에 출소하였고, 1980년 6월에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엮여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으며 김대중 대통령과 인연을 맺어 1988년 13대 총선에서 평화민주당 후보로 국회의원에 당선돼 7선 의원, 교육부장관, 국무총리, 당 대표를 역임하며 4명의 대통령을 만드는 등 대한민국 민주화역사와 진보정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로 길이 남을 공적을 세웠다.
이 동문 장례는 1월 27일부터 31일까지 국가와 사회 발전에 공훈을 남긴 사람이 별세했을 때 관련 단체가 중심이 돼 각계각층의 인물들과 함께 장례위원회를 구성해 거행하는 사회장으로 진행되어 1월 31일 세종시 은하수공원의 부모 곁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딸이 있다
큰그릇 21
재학생 글로벌 리더 해외 연수
동창회와 용산동문장학재단이 후원하는 재학생 글로벌 리더 양성 해외 연수가 지난 1월 14일부터 21일까지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 지역 명문 대학 및 실리콘밸리 유명기업, 미국 박물관 등을 돌아보는 일정으로 남가주 및 북가주 동문회 도움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글로벌 리더 재학생 해외 연수 참가자는 1학년 학생 10명을 성적순으로 선발하였으며 미국 대학 및 과학단지 견학을 통해 세계를 향한 원대한 큰 그릇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선배들의 바램이 모여 매년 진행되는 행사다.
스텐퍼드대학 방문 & 실리콘밸리 대기업 인텔, 구글, 메타, 애플 본사 방문
샌프란시스코의 상징 금문교를 배경으로 & 샌프란시스코동문회 주최 환영 만찬
LA 명문 UCLA대학, 캘리포니아공대 방문 & 자연사박물관 견학
한국전쟁기념관 방문 & NBA프로농구 LA 레이커스-토론토 농구경기 관람
LA동문회 환영 만찬 & LA 유니버설 스튜디오 방문
2026년 교직원 해외연수-일본 오키나와
총동창회와 동문장학회 후원으로 실시된 2026년 교직원 해외연수가 지난 1월 12일부터 15일까지 18명의 교직원이 참가한 가운데 3박 4일 일정으로 일본 오키나와에서 진행되었다.
이번 2026년 교직원 해외연수는 오키나와 산토리니 우미카지테라스, 츄라우미 해양공원, 슈리성 관광 및 1일 자유 일정으로 진행되어 참가 교직원 모두가 재충전의 즐거운 시간을 만들었다
24 큰그릇
총동창회 연회비제(5만 원) 참여는 총동창회 운영을 건실하게 하는 최선책입니다
총동창회 연회비 납부 현황
(2026년 1월 31일 기준) 입금동문수: 1위 27회 참여율: 1위 27회 총액: 1위 2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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