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9,화요산문(54)/말년복/김용원
서울 지옥철 안에서 저승사자처럼 사람을 짜증나게 하고, 꼴불견으로 보이게 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의 대부분은 교도소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인간족 가운데 남자로 분류되는 수컷들이다.
그날도 그러한 저승사자를 만났다. 꽉 들어차서 몸을 돌리기는커녕 발 디딜 틈도 없는 콩나물시루에 몸을 쑤셔 넣고 숨을 돌리고 있는데 누군가가 뒤쪽에서 내 갈비뼈 윗부분을 쿡쿡 쥐어박았다. 아주 기분 나쁘게, 꽤나 폭력적이었다. 마치 “안 비키면 죽어. 죽을래 살래!” 그런 느낌으로 전해 왔다. 머리를 돌려 뒤를 돌아보는데 1미터 72센티의 내 키로는 그 자의 머리통을 정면으로 마주볼 수 없을 정도로 상대는 엄청 키가 컸다. 그런데다 누룩돼지처럼 살이 쪄 있어 보통 사람 곱의 평수를 차지하고 있는 자였다. 딴은 내 등이 그자의 등, 아니 허리께에 닿는 게 싫으니 물러나라는 신호리라.
나는 그자와 옆에 있는 것 자체가 불쾌해 힘을 다해 비켜났다. 그러자 그 틈새로 50대 아낙이 비집고 들어섰다. “상대가 여잔데, 어떻게 나올까?” 하는 생각에 아예 몸을 돌려 지켜보았다. 아니나다를까, 여자의 어깨가 닿자 역시 팔꿈치로 쿡쿡 찔러 거리를 두게 하고 있었다. 여성 또한 황당한지 뒤로 물러서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키가 ‘저승사자’보다 훨씬 더 크고 커다란 가방을 둘러멘 학생이 그 틈새로 끼어들었다. 저승사자의 팔꿈치가 여전히 쿡쿡 쥐어박는데, 그제는 학생이 메고 있는 가방이었다. 학생은 학생대로 어지간히 무던한 성품인 듯 저승사자가 팔꿈치로 치든 밀든 상관없이 휴대폰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저승사자는 30대 말이나 40대 초반쯤으로, 차림새를 보니 검청색 신사복에 옆모습 또한 살결이 꽤나 흰 게 한마디로 귀골이었다. 허우대는 그야말로 최고 수준인데 그 인성이며 행동은 최하 수준이었다.
이윽고 몇 정거장 지나서 저승사자는 내렸다. 정면에서 바로 보니 그자는 몸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임신 7, 8개월은 되지 싶은 배통에다 얼굴은 진땀으로 번질거렸다. 그가 나가자 비로소 공간이 생겨 예의 여자와 나란히 서게 되었다.
“지금 나간 사람 때문에 불쾌했지요?”하고 내가 말을 걸었다.
그녀가 피식 웃고는 대꾸했다.
“그런 자일수록 집에 가서는 제 마누라 들들 볶기 마련이죠. 하는 꼴 보니까 그 집안 식구들 많이 힘들겠어요.”
죽음을 가깝게 두고 이곳 춘천에 자리잡으면서 가장 좋은 것은 위와 같은 대인 혐오증에서 자유로워졌다는 점이다. 지옥철도 없고 거리는 널널하다. 시장에 가거나 모임에 참석하더라도 서울에서처럼 사람끼리 부대끼는 스트레스도 없다. 그런데다 인심은 왜 그리도 좋은지, 마치 춘천 시민 모두가 친인척 관계 같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사람들만 좋은 게 아니다. 주거환경 또한 시쳇말로 따봉을 지나 쌍따봉이다. 몇 발짝만 걸으면 등산하기에 딱좋은 안마산이 있다. 따분하거나 답답할 때 차를 몰고 박사마을을 지나 삼악산을 끼고 의암호숫길을 돌고 나면 영혼에 묻어 있던 땟국물이 말끔히 닦여 있는 나를 느끼게 된다. 말년복이 있다는 어렸을 때 들은 어느 점쟁이의 말이 허사는 아닌 듯싶다. #서울_지옥철#춘천_안마산#대인혐오증
/어슬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