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양원 목사의 양아들 안재선씨의 아들안경선 목사 사진들.
<사랑의 원자탄>이란 책의 주인공 손양원 목사님의 이야기는 40년 전에 들었다. 그리고 손양원 목사님의 따님들과 양아들 안재선씨와 그 자손도 모두롤 부터 존경받는 목사님의 자녀로 별어려움이 없이 신앙생활 잘 하고 계시리라고 생각했었다.
수십년이 지난 후에 손양원 목사님의 장녀 손동희 권사님이 쓰신 <나의 아버지 손양원 목사님>이란 책을 읽고 나는 손양원 목사님의 딸들이 (특히 첫째딸과 세째딸) 오랫동안 하나님을 원망하며 신앙의 방활을 하였던 것을 알고 손동희 님의 아픔과 갈등이 정말로 내 마음에 깊이와 닿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이에서 끝나지 않고 안재선 씨와 그 분의 아들 안경선씨가 오랫동안 마음의 갈등과 어려움을 겪은 것을 알고 또한 이분들이 처했던 어려움을 공감하고 존경하게 되었다. 어려움을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판단하긴 쉬워도 어려움을 이해하기 어렵다. 안재선씨와 안경선 목사님 그리고 손동희 권사님과 손동연님께도 정말로 존경심이 간다. 손동연님은 손양원 목사님 돌아가실때 어린아이셨는데 오랫동안 방활하다 50세 경에 신앙심을 다시 회복하셨다.
손양원 목사님을 친아버지 또는 양아버지로 둔 분들의 어려움이 얼마나 컸었는지. 또 이분들이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한것에 이 분들에게 칭찬의 박수를 드린다. 정말 어려운 고난의 길을 잘 견디시고 믿음의 길을 오셨다고.
안경선 목사와 그의 아버지 안재선씨는 또 다른 의미에서 성자이시다.
따가운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맞으며 예수님을 믿으면서 살다 천국에 가신 안재선씨. 그리고 그는 천국으로 돌아가기 전 그의 첫째아들 안경선 씨에게 목사가 되기를 명하셨다.
안재선씨는 한번 잘못한 후 하나님의 은혜로 손양원 목사를 통해 용서함을 받고 총살형에서 구원받고 손양원 목사님의 양자로 받아들여져 처음엔 손양원 목사님을 따라 교회에 다녔지만 자신의 자책감과 세상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으로 참으로 어려운 그리고 고난의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런가운데서도 그는 예수님을 끝까지 믿으셨다. 물론 어느 때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지만.
이렇게 자기 양심의 가책과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느끼며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잘 느끼지 못한다.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가운데서 신앙을 지키는 것은 선한 일을 위해 생명을 내놓는 것과는 또 다른 면에서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나의 아버지 손양원 목사"의 저자인 손양원 목사의 장녀 손동희씨가 하나님이 아버지와 오빠들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오랬동안 신앙생활를 안하였고, 또 오빠 죽인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고 또 이 일로 인해 많은 세월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회의로 방황하였던 것을 그분의 책에서 읽고 그분이 친오빠을 죽인분을 양오빠로 마음으로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어려웠는가 알 수 있다.
손동희 씨는 안재선씨는 암으로 돌아가시기 직전에 자신에게 친히 찾아와 용서를 빌었다고 기록한 것을 보면 안재선씨는 참된 겸손의 사람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때 이분은 손동희씨에게 천국에 가서 자기가 죽인 두사람에게 용서를 빌고 섬길 것을 이야기 하였다. 무엇보다도 그 분은 자신의 첫째아들에게 목사가 되도록 유언적인 말씀을 하셨다.
이분이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과 자신의 내적인 갈등때문에 어느 기간동안 교회에 나가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그를 끝가지 도우사 그가 어떤 외적인 업적을 세우도록 하기보다 이런 어려움들을 끝까지 승리하도록 도와 주셨다. 이 주님께 참으로 감사한다. 그리고 안경선 목사님이 화해의 복음을 전하시는 목사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오늘날 잘못된 길을 한번 들었던 사람들에게도 하나님께서 힘을 주셔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고 이기고 안재선, 안경선 목사와 같은 승리하는 분들이 되기를 기도한다.
안경선 목사는 8년만에 신학교를 졸업하고 첫 목회지인 청주에 이어 1992년부터 10여년간 ‘땅끝 마을’ 해남에서 사역했다. 그리고 원주에는 지난해 (2003년) 부임했다. 현재 교회에는 학생 청·장년 등 60여명의 성도가 출석하고 있다 (출처: seejesus.egloos.com/5858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