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초부터 콩고민주공화국의 이투리(Ituri)주 디주구(Djugu) 지역에서 격화된 부족간 폭력사태와 무장충돌로 인해 약 156,000명이 피란길에 올랐다. 수십 년간 지속된 분쟁에서 최근 급증한 폭력사태로 디주구 지역에는 70만명, 이투리주 전역에 걸쳐서는 170만명의 피란민이 발생했다. 이러한 피란민들은 수십 년이라는 세월동안 분쟁의 위험에서 벗어날 곳을 찾지 못해 발이 묶인 채 지내왔다. 각종 강요에 시달리는 지역사회 주민들은 심각한 부족간 폭력사태에 노출되어 의료 서비스 접근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정신 건강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 의료시설 부근에서 분쟁이 발생하면 환자 및 의료진들은 의료시설에서 대피해버리기도 한다. 지금 국경없는의사회는 심리적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지역사회 주민들의 눈과 귀다.
2023년 5월 콩고민주공화국 드로드로(Drodro) 시내 전경 ©MSF/Michel Lunanga
드로드로 병원에서 약 2km 떨어진 언덕 아래로 총성이 울린다. 병원은 순식간에 공포로 뒤덮인다. 병원으로부터 몇 킬로미터 떨어진 북쪽 길에 분쟁이 발생한지 몇 시간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소음이 점점 더 가까워진다. 수년간 만성적 폭력사태를 겪은 환자와 의료진들은 반사적으로 같은 생각을 한다. 당장 병원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 지금 진행중인 치료가 중단된다고 해도 말이다.
모두가 재빨리 짐을 싼다. 엄마들은 아픈 아이를 천으로 감싸 업고, 당장 챙길 수 있는 것들을 챙겨 서둘러 병원을 떠난다.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병상이 100개인 드로드로 병원이 텅 비었다. 병실 문은 모두 닫혔다. 무거운 정적만이 남았다.
근처에서 발생한 총격으로 의료진과 환자 모두 대피해 텅 빈 드로드로 병원 모습 ©MSF/Michel Lunanga
몇몇 환자와 의료진들은 도로 사정이 너무 위험해지기 전에 재빨리 벗어날 수 있었지만, 한 발 늦은 이들도 있었다. 대피에 실패한 사람들은 병원 쪽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구급차 운전사가 이들을 태워 병원으로 다시 데려다준다.
드로드로 병원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좁아서 터질 듯한 방 한 칸에 다같이 모여든다. 긴장감이 맴돈다. 혹시 다가오는 총성이 들리지 않을까봐 발전기도 껐다. 방안에는 아이들이 우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반복되는 분쟁이 남긴 지울 수 없는 상처
아기랑 병상에 누워있는데 갑자기 다른 엄마들이 오더니 ‘총격이 일어나고 있으니 얼른 병원을 떠나야 한다’고 하더군요. 모두가 겁에 질려 뛰어다니고 있었어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아이를 담요에 싸서 얼른 떠났죠. 너무 급히 나오느라 아이 진료 기록과 조리도구를 깜빡하고 못 챙겼어요. 그런데 아이의 상태가 너무 좋지 못했죠. 열도 있고, 저희 둘 다 먹을 게 아무것도 없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병원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어요. 끔찍한 밤이었습니다. 너무 무서워서 제대로 잘 수가 없었어요.”_조에시(Joécie) / 영양실조와 빈혈로 치료받고 있는 17개월 아기 살로몬(Salomon)의 모친
드로드로 병원 소아과 병동에서 조에시와 17개월된 아들 살로몬 ©MSF/Michel Lunanga
만성적 폭력과 또다른 폭력 사태에 대한 두려움은 이 지역 주민들에게 수 세대에 걸친 심리적 상처를 남긴다. 의료시설이 총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염려와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불안감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의료시설 접근도 두려워하는 실정이다. 어떤 이들은 아주 긴급한 응급 상황에서만 치료를 구한다.
수 세대에 걸쳐 오랜 세월 분쟁 속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삶을 생각해보세요. 끊임없이 피란길에 올라야 하고 미래에 대한 전망도 거의 없는 삶 말입니다. 이웃과 가족이 당한 학살이 평생 뇌리를 떠나지 않는 상황에서 이성적으로 생각하기란 어려운 일이죠.”_그라체 롱가 무기사(Grâce Longa Mugisa) / 국경없는의사회 정신건강 자문
의료시설 인근에서 발생한 폭력사태로 드로드로 보건 구역의 의료시설이 텅 비게 된 것은 올해 들어 세번째로 일어난 일이다.
2015년부터 다양한 국가에서 국경없는의사회 일을 해왔지만, 이렇게 병원이 텅 비어 버리는 것은 정말이지 처음 봅니다. 환자들이 안전한 곳을 찾아 병원에서 떠나면 우리가 뭘 어떻게 하겠습니까?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죠. 환자들은 의료시설에서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곳에서는 분쟁이 발생했을 때 시민들이 병원을 대피 장소로 쓰지만, 여기서는 그렇지 않습니다.”_켈리 트샘부(Kelly Tsambou) / 국경없는의사회 드로드로 보건 구역 의료활동 책임자
보건의료 접근성을 직접적으로 저해하는 치안 불안
현재 드로드로 보건 구역에서 16개의 의료시설 중 8곳만이 운영되고 있다. 중립적 구호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국경없는의사회는 각 지역사회 수요에 공평한 대응 및 의료 서비스 제공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계속되는 분쟁과 반복되는 피란으로 인해 의료활동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다양한 의료시설에 추가적 물자를 조달하며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의료 서비스 접근성을 제고하고 현지 보건부와도 협력하고 있다.
피란민들을 위해 로(Rho/Rhoe) 캠프에 설치되었던 이동진료소는 원래 기본적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보다 전문적 치료를 필요로 하는 환자들을 드로드로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그러나 올해초부터 대부분의 인도적 구호 단체들이 밀집된 로 캠프가 수용한 인구가 35,000명에서 약 70,000명으로 약 두 배 증가해, 국경없는의사회는 해당 이동진료소를 현장 긴급 보건지소로 전환, 대응 가동력을 높였다.
또한 국경없는의사회는 수많은 피란민들이 이들을 머물게 해주는 가정과 지내고 있는 블루콰음비(Blukwa'Mbi) 소재 보건소를 전원 센터로 전환, 전문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보강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2019년 해당 지역에서 활동을 시작한 이래 끊임없이 이어지는 분쟁에 대응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분쟁 사태가 급증해, 국경없는의사회는 몇몇 의료시설을 보강해 각 지역사회의 의료 서비스 접근성을 확대하고 지역사회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어야만 합니다. 가령 태양열 발전으로 가동되는 수술실을 지으면 의료팀은 제왕절개 등 수술도 제공할 수 있게 되겠죠. 드로드로 병원을 이용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이와 같은 전문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될겁니다.”_수마나 아유바 마이가(Soumana Ayouba Maiga) / 국경없는의사회 프로젝트 코디네이터
2023년 5월 텅 비어있던 블루콰음비 보건소 ©MSF/Michel Lunanga
치솟는 인도적 수요 대응 위해 지원 확대해야
이투리주내 170만여명의 피란민들에게는 식량, 깨끗한 식수, 적절한 위생시설, 거처, 교육 및 의료서비스 등 인도적 지원이 절실하지만, 언론이나 국제사회 관심은 이들이 처한 상황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다수의 피란민들은 버림받은 듯한 기분을 느끼며, 생존을 위한 자원, 특히 식량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 지역 거주민들에게는 농사가 주된 경제 활동이지만, 계속되는 치안 불안으로 농작지에 접근하기도 어려운 지경이다.
지금 식량 문제가 가장 큰 고민거리입니다. 대부분이 매일 밥을 먹지는 못하죠. 아이들조차 마찬가지입니다. 수확철이 아니라서 아무것도 없어요. 근방에서 식수조차 쉽게 구할 수가 없습니다.”_미셸린(Micheline) / ‘엄마들의 리더’로 불리며 8명으로 구성된 자기 가정에 10명 이상의 피란민들을 수용하고 있는 이투리주 소재 마을 주민
갈 곳 잃은 피란민들을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하고 있는 ‘엄마들의 리더’ 미셸린 ©MSF/Michel Lunanga
2023년 초부터 디주구 지역에서 156,000명의 새로운 피란민이 발생했다. 이로써 디주구 지역과 이투리주내 피란민은 각각 총 70만명, 170만명에 이르렀다. 이 중 몇몇은 피란민 캠프에서 임시 거처를 찾았지만, 대부분은 이들을 자기 가정에 맞아들인 호스트 패밀리(host family)와 함께 지내고 있다. 계속되는 분쟁으로 인해 피란길에 오르는 인구가 끊임없이 생겨나 정확한 피란민 수를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전부터 이루어진 평화 협상이 결렬되는 가운데 올해 초부터 상황은 악화했다.
현재 드로드로 보건 구역내 몇몇 지역에서는 거의 국경없는의사회만이 주민들의 의료 수요에 대응 중이다. 두 지역사회 내 인도적 수요는 비슷하게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치솟고 있어, 인도적 지원이 중립적인 방식으로 공정하게 배분되는 것이 중요하다.
국경없는의사회가 디주구 지역에서 목도하고 있는 현 상황은 현실의 일부일 뿐으로, 다른 인근 지역에서는 의료서비스 접근이 더욱 어렵기도 한 실정이다.
국경없는의사회 의료팀은 현지 보건부와 협력하여 드로드로 보건구역 내 드로드로 종합병원과 보건센터 두 곳, 현장 긴급 보건지소 두 곳, 지역사회 보건진료소 여섯 곳에서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또한 국경없는의사회팀은 종합적인 의료서비스와 더불어 영양실조, 말라리아, 호흡기 감염병 치료를 포함한 소아과 진료를 지원하고 있다. 이에 더해 정신건강, 가족계획, 성폭력 피해 생존자 지원도 실시하고 있다.
2023년 초부터 드로드로 보건 구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25,630건의 진료상담을 제공했으며, 850명의 영양실조 아동 환자들을 치료했다. 그 밖에도 435건의 정신건강 상담을 진행하고 165명의 성폭력 생존 피해자들을 지원했다.
한눈에 보는 콩고민주공화국 인도적 위기 현황
첫댓글 끔찍한 밤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인도적 지원이 절실합니다.
언론과 국제사회가 이들이 처한 상황에 함께 할 수 있기를 간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