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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인, 한국인 비판
이케하라 마모루
논술의 맥 ......................................................... 엘리트 글쓰기 논술 교실 / 다음카페 eea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인, 한국인 비판 2 - 중요 내용 / 이케하라 마모루
입으로만 찾는 의리
일본 공무원 사회에서는 뇌물을 받았다가 발각되는 사태가 생기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미치는 것을 막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버림으로써 고리를 끊어 버리는 일이 흔히 나타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굴비 두름처럼 줄줄이 엮여 올라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과연 어느 쪽이
더 의리 있는 것일까.
흔히 한국 사람들은 인정 많고 의리 있다는 말을 한다. 사실 나도 그렇게 느낄 때가 많다. 조금 친해지면 '의형제'를 맺자고 제의하는 친구들도 있다. 그래서 국적은 다르지만 나를 깎듯이 '형님'이라고 부른 '동생'이 셋이나 있다.
여담이지만 '형님'이라고 부르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 사람도 있다. 그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대한민국 최고의 영화배우다. 나 또한 그를 좋아하고 아끼지만 그 친구만큼은 나를 '형님'이라고 부르지 못하게 한다.
왜냐하면 그는 한국의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비록 나이가 들어서 활동이 뜸하지만, 한때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그 친구를 모르면 한국 사람이 아닐 정도였다. 그런 그가 일본인, 이른바 '쪽발이'인 나를 형님이라고 부른다면 한국 사람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힐지도 모를 '사건'인 것이다.
물론 형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내가 전부 동생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평소에는
꼬박꼬박 형님, 형님 하다가도 자기 상사 앞에 가면 갑자기 '이케하라 상'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필요할 때에만 '형님'일 뿐 그렇지 않으면 쳐다보지도 않는다.
일본 사람이 한국에 대해 쓴 책에서 한국 사람들이 유난히 고향을 사랑하고 인정이 많아
지역감정이라는 부작용이 나타난 거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다. 한국 사람들이 유난히 고향을 사랑하고 인정이 많은 듯이 보이는 것은 위험이 닥쳤을
때 빠져 나갈 구멍을 만들어 두기 위해서, 비빌 언덕을 미리 준비해 두기 위해서라고 생각
한다.
앞에서 '까마귀도 손잡고 같이 가자'는 내용의 일본 동요를 소개했지만, 한국 사람들에겐 그런 정신이 부족하다. 가능하다면 손을 잡고 같이 가는 게 아니라 나 혼자 먼저 뛰쳐나가야 속이 시원하다. 뒤에서 총을 들고 쫓아오는데 나부터 살고 봐야지 다 같이 가려고 우물거리다간 총 맞아 죽기 십상이다.
한국 사회에 유난히 형님 동생이 많고 입만 열면 의리 운운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바꿔 말해서 '가능하면 의리를 지킬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 사항일 뿐, 현실에서는 그게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입으로나마 자꾸 의리를 찾는 것이다.
일본 공무원 사회에서는 뇌물을 받았다가 발각되는 사태가 생기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미치는 것을 막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버림으로써 고리를 끊어 버리는 일이 흔히 나타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굴비 두름처럼 줄줄이 엮어 올라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과연 어느 쪽이
더 의리 있는 것일까.
기업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재벌 구조에 대해서는 한국 내부에서도 여러 가지 비판이
많아서 현재 구조조정이니 빅 딜이니 하는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있다. 그런데 내가 보기
에 한국 재벌의 가장 큰 문제점은 뭐니뭐니 해도 '의리'가 없다는 점이다.
잡아먹지 않으면 먹히고 마는 치열한 경쟁 시대에는 의리가 개입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
는지 모르겠는데, 그렇지는 않다. 한국 재벌이 지금처럼 성장한 것은 순전히 국민의 도움, 정부의 도움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리 경쟁이 치열하다 해도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해 준 은인을 배신한다면 경쟁 때문이 아니라 제풀에 못 이겨 스스로 무너져 버리고 말 것이다.
한번은 어느 가전제품 회사에서 나를 찾는다는 연락이 왔다. 일본에서 다급하게 부품을
수입해야겠으니 도와 달라는 이야기였다. 하도 시일이 촉박하다고 성화를 부려서 왜 그렇게
서두르냐고 물었더니 미국에 수출을 해야 하는데 한국산 부품을 썼다가 클레임이 걸렸다는
것이다. 하자가 있는 부분을 보완해서 납기를 맞추려면 일본 부품을 들여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하루아침에 거래처를 바꿔 버리면 원래 그 회사에 부품을 납품하던 한국 회
사는 어떻게 되는가. 조그만 하청업체가 중요한 거래선을 잃었으니 자칫하면 회사가 망할지
도 모르는 일이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이번 수출 건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하청업체를 지원해서 한국
기술을 키워 나갈 생각을 해야지, 미국에서 클레임이 걸렸다고 파트너를 버리고 일본 회사
에서 부품을 수입한다면 한국에서는 도대체 누가 기술을 개발한단 말인가.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할 뿐 이후의 먼 미래는 아예 안중에 없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조그만 협력업체를 키워 주는 데 너무 인색하다. 키워 주기는커녕 혹
시라도 저놈들이 힘이 세져서 우리를 위협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견제하고 방해하기에 여
념이 없다. 조금만 더 생각하면 튼튼한 협력업체를 키우는 것이 자기들에게도 더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 정도 안목도 없는 사람들이 한 나라의 경제를 이
끌어간다고 생각하면 실로 한심스럽고 걱정스럽다.
직장인들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평생직장의 개념이 무너진다고 하지만 한국의 회사와 일
관계로 접촉하다 보면 5, 6년 이상 한 회사에 진득하게 붙어 있는 직원이 거의 없는 느낌이
다. 노동시장 구조가 평생직장이라는 개념 자체가 아예 없는 미국식으로 정착된다면 또 모
를까, 아직 그렇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리저리 직장을 옮겨 다니는 것은 개인을 위해서나 회
사를 위해서나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 없다. 직장을 옮기는 것은 그나마 낫다. 직업 자체를 이것저것 바꾸는 사람을 보면 더욱 불안하다.
한국에서 일을 하다 보면 정말 황당할 때가 있다. 어느 회사에서 줄곧 상대해 온 중견 간
부 한 사람이 어느 날 느닷없이 없어져 버린다. 그 사람 왜 안 보이냐고 물어 보면 '퇴사'하였단다. 회사를 그만두려면 자기가 하던 업무를 후임자에게 철저하게 인수인계해 주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그런 과정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몸만 달랑 빠져나가 버린다. 관련 업무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새 파트너를 상대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고충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나로서는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황당한 일이 있다. 어느 날 한 회사에서 사라졌던 사람이 다른 회사 이름이 찍힌 명함을 들고 불쑥 나타나는 것이다. 알고 보면 그는 먼저 다니던 회사에서 몸만
빠져 나온 것이 아니라 자기가 관계를 맺어 온 거래처 명단과 관련 기술, 정보 자료 등을
모조리 가지고 나온 모양이다. 그래 놓고는 회사는 바뀌었지만 사람도 똑같고 하는 일도 똑
같으니 예전에 하던 일을 계속하자고 제의한다.
그렇게 회사를 옮기면서 월급과 직위가 얼마나 더 올라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사람은 두 번 다시 상대하지 않는다. 나만 그런 게 아닐 것이다. 그 사람이 그런 인간성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면 정신이 나가지 않은 다음에야 어느 누가 그를 상대하려 하겠는가. 결국은 제 손으로 무덤을 파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월급을 10만 원 더 받느냐 덜 받느냐, 부장이라는 직함을 1년 빨리 다느냐 늦게 다느냐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 지극히 사소한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이 태어
나 한평생 살아가면서 그렇게 사소한 일에 인간성까지 걸어서야 되겠는가.
개인이든 기업이든 당장의 실리만 생각한다면 의리를 지키는 것이 불리하게 생각될지 모르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의리야말로 가장 소중한 재산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
서는 안 된다.
새벽을 열지 못하는 장닭
한국을 남성 중심의 사회라고 단정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다. 얼른 보기에는 남자들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 같지만, 한 꺼풀 벗기고 보면 모든 것을 지배하는 남자를 지배하는
것이 바로 한국의 여자들이다.
한국에 살면서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지위라는 문
제다. 가끔 텔레비전에 나오는 여자들이 서구 사회에 비해 한국에는 여성 정치인의 비율이 낮다고 아쉬워하는 모습을 본다.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장관이나 차관 등 고위 공무원, 각 기업체 최고 경영자 등 정계와 재계 전체를 통틀어 한국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선진국과 비교할 때 터무니없이 낮다. 똑같은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나 승진, 봉급 등에서 여성들은 뚜렷한 이유도 없이 차별을 당하고 평상시에도 남성들보다 열등한 대우를 받는다. 그러니 여성 지도자들이 '여성들의 각성'을 외치며 열변을 토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 듯하다.
불평등이 그뿐인가. 수시로 터져 나오는 성희롱 사건이나 여성이기 때문에 받아야 하는
사회적 차별 등을 생각하면 이제 한국도 진정한 남녀평등 시대를 열어 가야 한다는 주장이
일리 있어 보인다.
한국 사회에서 남녀가 평등하게 대우받지 못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것도 대부분
여성이 차별을 받는다. 그런데도 나는 여성들이 나약하고 억울하고 불쌍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다. 남성들이 힘이 없고 불쌍해 보인다.
한국에는 '여성 상위' 사회라고밖에 볼 수 없는 측면이 많다. 그 어떤 나라와 비교해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일본은 물론 미국보다 더 여성의 힘이 센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이른바 '여필종부'라는 유교적 이데올로기는 사라진 지 오래 되었다. 이것은 결코 역설이 아니다. 궤변은 더 더욱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이들은 그렇게 기분 내키는 대로 말하지 말고 근거를 대라고 할 것이
다. 이 대목에서 독자 여러분에게 미리 양해를 구해야겠다. 나는 현상을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훈련을 받은 사람이 아니다. 특히 학문적인 뒷받침을 요구하는 분야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어떤 면에서는 내가 지금 굉장히 주제넘은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더군다나
한국은 내 나라가 아니다. 나름대로는 한국사람 못지않게 한국이라는 나라를 사랑하고, 되도록 이 나라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해 보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렇지만 때때로
'아 나는 영원한 이방인일 수밖에 없구나'하는 회한이 일 때가 있다.
그러나 학문적이고 이론적인 논리를 갖춘 과학적 분석만이 진실을 담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런 방법론이 진실을 대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론이나 학문으로
승화되었겠지만, 나 같은 이방인이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두런두런 늘어놓는 이야기에도
한번쯤은 귀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자신이 직접 개입하고 있는 일은 당사자 눈에 잘 보이지 않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나의 무책임한 발언이 면죄부를 받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이런 글을 쓰게
된 충정만은 여러분에게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아무튼 내가 한국은 여성의 힘이 남성을 압
도하는 사회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러하다.
역사적으로 나라에 위기가 닥쳤을 때 한국 여성들이 보여 준 억척스러운 힘은 남자에게
절대 뒤지지 않는다. 임진왜란 때 평범한 여염집 아낙들이 앞치마에 돌덩이를 실어 날라 일
본군을 물리치는 데 앞장섰다는 이야기며, 적장의 허리를 껴안은 채 동반 자살한 논개라는
여인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적지 않은 감동을 느꼈다. 물론 일본의 역사책에는 나오지 않는
이야기다.
현대 한국 여성들도 결코 선조들에게 뒤지지 않는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나는 한국 사채업자는 전부 여자인 줄 알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고로 돈줄을 움켜쥔 사람이 강자
로 군림한다. 따라서 큰손 작은 손 가릴 것 없이 사채시장에 여자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힘이 세다는 반증이다. 장영자 사건을 필두로 굵직한 금융 사고에는 반드시 여자가 개입되어 있는 것도 이러한 나의 생각을 뒷받침해 준다.
물론 세계 어느 나라에나 '치맛바람'을 일으키는 여자들이 있고, 대형 사고에 여자들이 관계된 경우도 많다. 그러나 대부분 배후에서 조연 역할을 하는 데 그친다. 한국에서처럼 여자가 전면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며 대형 사고를 일으키는 나라는 거의 없다.
힘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간단하게 팔씨름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물리적 힘도 있지만, 우리는 지금 그런 물리력보다 경제력이나 정치력 같은 사회적 힘이 더욱 중요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가정에서도 복잡한 역학 관계는 어김없이 작용한다.
한국에서는 '경제권'을 남편이 쥐고 있는 가정이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다. 월급이 온라인으로 입금되어 집에서 통장을 틀어쥐고 있는 아내의 수중으로 고스란히 들어가거나 월급 봉투째 아내에게 가져다 바치고 자신은 용돈을 타서 쓰는 직장인이 태반이다.
이따금 그런 친구들한테 "왜 자기가 번 돈을 아내에게 모조리 주고 정작 자신은 돈이 없
어서 쩔쩔매느냐?"고 물어 보면 대답은 한결같다. 자기가 돈을 관리하면 한 달 월급 가지고
보름도 못 버틴다는 것이다.
결국 그 가정의 주도권을 아내 쪽에서 쥐고 있다는 뜻이다. 다들 표면적으로는 여성들이
특유의 꼼꼼하고 치밀한 성격으로 살림을 잘 하기 때문에 돈이 헤프게 없어지지 않는다는
이유를 댄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여기에도 돈줄을 쥔 자가 힘을 장악하고 관계를 장
악하는 자본주의의 생리가 고스란히 관철되고 있다.
서구와 비교할 때 한국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미약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
을 남성 중심의 사회라고 단정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다. 얼른 보기에는 남자들이 모든 것
을 지배하는 것 같지만, 한 꺼풀 벗기고 보면 모든 것을 지배하는 남자를 지배하는 것이 바
로 한국의 여자들이다.
한국에서는 모든 집안일을 여자들이 처리한다. 밥하고 살림하는 것은 물론 물건을 사고
집을 사고 적금을 붓고 심지어 축의금이나 조의금 액수까지 여자들이 알아서 결정한다. 남
자들은 아녀자 일에 꼬치꼬치 간섭하는 것은 대장부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음식이
싱겁거나 짜도 아무 소리 않고 그냥 먹는다. 왜 그렇게 사느냐고 물어 보면 십중팔구는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물론 남자든 여자든 통이 크고 대범한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가정에
서 이런 기울어진 역학 관계 때문에 많은 문제점이 발생한다. 남자들이 간섭하지 않으니까
여자들은 자기가 하는 일이 다 올바르다고 착각한다.
화장이나 패션 같은 유행 문제를 생각해 보자. 한국 여성들이 본격적으로 패션에 신경을
쓰는 여유를 누리게 된 것은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다. 내 생각이 맞다면 여자들이 멋내
기 역사는 불과 10년밖에 안 된다.
한국 여자들 중에는 이 옷이나 화장이 나한테 어울리는지 어떤지, 멋있는지 아닌지 판단
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그 결과는 두 가지 현상으로 나타난다.
첫째는 누군가 모범을 보이면 대다수 여자가 아무 생각 없이 그 뒤를 따라가는 현상이다.
어느 나라나 유명 스타가 유행을 주도 하지만, 한국처럼 막강한 힘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누가 누군지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똑같은 헤어스타일, 똑같은 입술 색깔, 똑같은 옷과 신발뿐이다. 개성이라고는 약에 쓰려 해도 찾아볼 수 없다.
둘째는 일반적인 경제 원칙을 비웃기라도 하듯 값이 비싸면 비쌀수록 더 잘 팔리는 기이
한 현상이다. 자신에게 어울리는지 어떤지 판단할 미적 안목이 없는 사람들은 오로지 값이
비싸냐 싸냐로 판단하는 것이다. 패션이나 멋내기에 대한 무지가 바로 이런 결과로 나타난
다.
요컨대 여자가 화장을 하거나 아름답게 치장하는 것은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이다.
개중에는 자기만족 때문에 그런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동기에 지나
지 않는다. 그렇다면 과연 여자들의 유행이 남자 눈에도 예쁘게 비치는가가 문제인 것이다.
우선 내 취향부터 소개해 보자. 나는 입술을 시커멓게 칠하고 다니는 여자를 보면 당최
속이 울렁거려서 참을 수가 없다. 도대체 언제부터 시작된 유행인지 모르겠지만, 골프장에 가 보면 오십 먹은 아주머니들까지 온통 입술이 시커멓다. 왜 그러고 다니냐고, 이왕이면 좀 더 예쁜 색깔도 있지 않으냐고 하면 대답은 한결같다.
"왜요, 섹시하잖아요."
글쎄, 그건 자기네들 생각이고 내가 보기에 섹시하기는커녕 죽은 사람 얼굴 같아서 언짢
기만 하다. 그렇게 말하는 아주머니들의 남편은 그 시커먼 입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몹시
궁금하다.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의상 디자이너나 헤어 디자이너를 보면 남자의 비중이 점점 커지는
추세다. 당연한 일이다. 여자의 아름다움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국 여자들은 남자의 견해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뭐라고 이야기를 하면 으레
"잔소리한다" "시대에 뒤떨어졌다" "구닥다리다"라고 말대꾸나 한다. 그런 소리가 듣기 싫어서 남자들은 아예 간섭을 안 해 버린다.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다. 한 가정의 경제권을 가진 여자가 장악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자녀 교육 문제에 관한 한 한국남자들이 지금처럼 전권을 아내에게 맡겨 놓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남편은 회사 일로 바쁘고 집 바깥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아내에게 자녀 교육 문제
를 전담시킨다. 어쩌다 자식의 성적표나 들여다보는 게 고작이고, "교육 문제는 애들 엄마가 알아서 하겠지"하며 아예 신경을 꺼 버린다. 남편으로서는 단지 귀찮기 때문에, 그것말고도 신경써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아내에게 자녀 교육을 맡겨 놓은 것이라고 둘러대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 이유를 한마디로 말하면 아내 쪽에는 어떻게든 자기 손으로 자녀를 교육시켜야 하는
절박한 동기가 있는 반면 남편 쪽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얼른 생각하면 무슨 소리인지
잘 이해가 안 되겠지만, 나는 그런 현상을 이렇게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여자는 '출가외인'이다. 시집가고 나면 더 이상 그 집 식구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결혼식을 올리는 그날부터 완전히 시댁 사람이 되느냐 하면 그게 또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왜냐하면 시집 족보에 올라가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은 여자가 결혼을 하고 난 다음에도 자기 성을 그대로 유지하는, 세계에서 몇 안 되
는 나라다. 서양은 물론 일본에서도 여자가 결혼을 하면 남편의 성을 따라간다.
이에 대한 의미를 좀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한국 여자들은 언제든지 시댁에서 "너 마음에
안 드니까 보따리 싸서 나가!"하면 친정으로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
러나 친정에서는 출가외인 운운하며 한번 시집간 딸을 따스하게 맞아 주지 않는다. 말 그대
로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자가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라곤 오로지 자식밖에 없다. 시아버지와 시
어머니는 물론 최악의 경우 남편조차 내편이 아니다. 그러나 끈끈한 혈육의 정으로 연결된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는 그 누구도 끊을 수 없다. 상황이 이러니 딸보다는 아들이 낫다. 아들은 시집의 호적과 이름, 재산을 전부 상속받는 든든한 '백'이다. 이래서 한국 주부들은 기를 쓰고 아들을 낳으려 한다. 아들은 말 그대로 보험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요즈음 같은 핵가족 시대에도 아들 낳으려고 삼공주, 사공주 주르르 낳는 집이 심심찮게 있다.
남편은 자식에게 성을 물려주었으니 그 아이는 누가 뭐라 해도 자기 자식이다. 그러나 여
자로서는 자식까지 빼앗겨 버리면 이 세상 어느 한 구석 의지할 데가 없어진다. 지나치게
단순화한 감이 없지 않지만 자식, 특히 아들에게 유난히 집착하는 한국 여성들의 머리 속에
는 이런 뿌리 깊은 잠재의식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자식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곧 교육열로 이어진다. 조금 적극적인 어머니들은 다른 아이
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고 안달이다. 그러니까 별 생각 없이 사는 어머
니들까지 최소한 남들 하는 것은 우리 아이도 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 뒤를 따른다. 여
자들이 인정받기 위해서는 살림을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자식을 얼마나 출세 시키느냐 하는 것이 더 크게 작용한다.
가만 보면 이 부분에서도 유행을 따라가는 것과 똑같은 심리가 작용한다. 옆집 아이가 피
아노를 배우면 내 아이에게도 가르쳐야 하고, 옆집 아이가 태권도를 배우면 내 아이에게도
시켜야 한다. 그래 봤자 궁극적인 목표는 단 하나, 자식을 명문대학에 입학시키는 것이 대한민국 모든 어머니의 지상 과제다.
늦게까지 일을 하다가 밤 12시가 넘어서 집에 가면 그 시간에 가방을 맨 고등학교 학생들
이 나하고 같이 엘리베이터를 탈 때가 있다. 이렇게 늦게까지 어디 갔다 오느냐고 물어 보
면 한결 같이 학원이나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오늘 길이라고 대답한다.
사정이 이러니 집에서 부모가 자식한테 가정 교육을 하고 싶어도 시간적 여유가 없다. 한
국의 가정교육은 철저하게 입시 위주인 학교 교육을 보충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사람이 한세상을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선생님한테 배우는 지식도 중요하
지만 집에서 부모에게 받는 가르침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는 가정 교육은
없고 오로지 입시 교육만 존재한다. 나라 전체가 이토록 무질서하고 몰염치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나는 이런 세태의 직접적인 원인이 여자가 잘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든
자식을 출세시켜야 자기 존재 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는 그릇된 관념 때문에 여자들의 시야
가 그만큼 좁아지는 것이다.
이런 내 생각이 틀리지 않다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아버지들이 더욱 적극적으
로 자녀 교육 문제에 간여해야 한다. 평소에는 대충 넘어가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한마디 하
면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권위를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한국 남자들은 집에 일찍 들어가는 날이 거의 없다. 야근이다, 회식이다, 접대다 해서 날이면 날마다 늦는다. 어쩌다가 공식적으로 늦을 일이 없는 날이면 모처럼 시간이 났다며 동창이나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신다. 그러니 주말이 되면 그동안 소홀했던 가족에게 '봉사'하기 위해 어디로든 놀러 가야 한다. 평일보다 주말에 더 길이 복잡한 것은 그 때문이다.
한국 남자들이 자녀 교육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은 의지가 없어서라기보다 능력이 없어서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실직자가 많아지면서 '고개 숙인 남자'들이 더욱 늘고 있지만 오늘 살고 말 일은 아니잖은가. 한국 남자들은 '가정의 평화'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귀찮다는 듯이 모든 것을 양보하고 인내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가장으로서 명백한 직무 유기다. 이대로 가다가는 교육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가 망한다.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충격을 받다 못해 분노로 쓰러질 여성이 생길지도 모르지
만, 어차피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쓰는 글인 다음에야 무슨 소리를 못하겠는가. 내가 한국 사람들에게 가장 간결히 하고 싶은 이야기, 그러나 가장 하기 껄끄러운 이야기가 바로 이것이다.
"한국 남자들이여, 제발 힘을 내라. 그리고 한국 여자들, 그대들은 남자의 뒤를 따라가라."
망나니로 키우는 가정교육
내가 어렸을 때 동생하고 싸움을 하면 아버지는 칼 두 자루를 우리 앞에 꺼내 놓았다. 이
왕 싸우려면 '확실하게' 칼을 들고 싸우라는 뜻이다. 그렇게 해서 누구 하난가 죽어 버리면 더 이상 너희 싸우는 꼴 보지 않아도 될 거라고 말씀하셨다.
월간지와 텔레비전 방송에 나가고 난 다음 나는 아주 많은 일을 겪었다. 심지어는 길거리
에서 나를 알아보고 "엊그제 텔레비전에 나온 사람"이라면서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기까지 하
는 걸 보면 매스컴의 위력이 크긴 큰 모양이다.
어쨌거나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나 때문에 본의 아니게 피해를 본 분들이 더러 있다는 사
실이다. 여기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그분들에게 더 큰 피해를 주는 것인지도 모
르지만, 오해가 있었다면 사과도 할 겸 그 동안 있었던 일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월간지에 기고한 글에서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이야기를 언급했다. 내가 그 집으로
이사를 간 것은 몇 년 전 3월 6일이었다. 이사 간 다음날 신문값이니 우유값을 달라는 사람
들이 몇 번이나 찾아왔다. 내가 어제 이사 왔다고 했더니 그 사람들은 몹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전에 살던 사람이 3월 7일 이후에 오라고해서 왔다는 것이다.
이사 날짜는 분명히 한 달 전에 정해졌으니 나로서는 전에 살던 주인이 나쁜 마음을 먹었
다고밖에 달리 생각할 도리가 없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서 경비실에 물어 보았
더니 학교 선생님이라고 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교단에 서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글이 월간지에 실리고 나서 얼마 있다가 집으로 걸려온 전화를 우리 운전기사가 받았
다. 전에 우리 집에 살던 사람인데, 자기는 그런 몰지각한 짓을 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무슨 착오가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우리 기사가 날짜까지 따져 가며 확인하자 자기네가 잘못한 게 틀림없다며 언제 시간을 내 주면 찾아와서 사과하겠다는 것이었다.
우리 기사는 이렇게 전화를 걸어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일부러 찾아오지 않아도 괜찮
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목소리나 말투로 봐서 우리가 생각한 것처
럼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나도 기분이 흐뭇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이번에는 내 기사를 실은 신문사에서 연락이 왔다. 경기도 교육청에서
전화가 왔는데 내가 언급한 교사를 찾아서 징계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당사자가 우리
집에까지 전화를 걸어서 사과했으니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평소에 위층에서 하도 쿵쾅거리는 소리가 심해 불만이 많았는데,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중고생으로 보이는 학생 둘이서 11층 버튼을 누르는 걸 목격했다. 혹시나 하고 몇 호에 사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마침 바로 우리 윗집 아이들이었다. 나는 집안에서는 조용히 걸어다녀야 아래층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느냐며 그 아이들을 꾸짖었다. 그러고 나서 집으로 들어왔는데 조금 있으니 인터폰이 울렸다. 위층 아주머니였다. 나는 처음에는 그 아주머니가 우리 아이들이 시끄럽게 굴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려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 아이들이 언제 뛰어다녔다고 그러냐며 따지는 것이었다.
나는 그 아파트에 혼자 산다. 그나마 외국에 나가 있을 때가 많고, 한국에 있을 데에도 집에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웃 주민하고 마주칠 일도 별로 없다. 그런 내가 시끄럽지도 않은 걸 시끄럽다고 굳이 시비를 걸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 후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밀착 취재를 했다. 카메라가 출근길에 나서는 내 뒤를 따라 왔는데, 아파트 복도에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이들 자전거가 아무렇게나 팽개쳐져 있어서 걸음을 옮길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나는 자전거를 한쪽 옆으로 치우며 "가정교육이 제대로 되면 이런 일은 없을 겁니다"라고 말했고, 그것이 텔레비전으로 방송되었다.
공중도덕과 교통 법규 준수는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나의 지론 비슷한 것이다. 거기에 한 가지 덧붙인다면 그 두 가지를 제대로 지
키기 위해서는 어릴 적부터 가정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의 전부인지도 모른다. 이것만 되면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나머지 온갖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잡지나 텔레비전을 통해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하
면서 무심코 예를 들어 설명하다 보니 옆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 눈에 띄었을 뿐
이지 특별히 이웃 주민을 비난하려는 게 아니었다. 혹시 그런 나의 언급을 불쾌하게 받아들
인분들이 있다면 이 자리를 빌려 심심한 사과의 뜻을 전한다. 왜냐하면 남을 돕지는 못할
망정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내 생활신조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공동 주택에서 생활하는 일본 사람들은 밤 10시 이후에는 샤워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누
가 시켜서 그러는 것이 아니고, 강제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웃집에서 밤늦게 샤워기를 사용하면 물소리가 시끄럽고 성가시게 들리기 때문이다. 자신이 그런데 남인들 기분 좋을 리가 없다. 그래서 안 하는 것이다.
이것은 붙잡고 앉아 가르친다고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다. 그저 어려서부터 남을 배려
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저한 가정 교육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 교육학자들의 말을 들어 보면 근본적인 가정교육은 이미 두 살에서 세 살 정
도면 대충 마무리된다. 한국에도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지 않은가.
대가족 제도가 붕괴된 이후 한국 가정에는 전형적인 삼각 구조가 정착되었다. 양쪽에 남
편과 아내가 있고, 다른 한쪽 꼭지점에는 자식이 있다. 그런데 이 삼각형의 무게 중심은 철저하게 자식에게 치우쳐 있다.
젊은 부부들이 서로를 부를 때 어떤 호칭을 쓰는지 보면 이를 명확히 알 수 있다. 십중팔
구는 '○○아빠' '○○엄마'로 부른다. 이웃집 아저씨나 아주머니를 부를 때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한국 가정에서는 자식을 가장 우선시한다.
그렇게 귀하고 소중한 존재다 보니 자식의 결점이 웬만해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당장
밥을 굶어야 할 지경이라도 아이들 과외는 시켜야 한다. 방법만 있다면 어떻게 하든 내 자
식만은 군대에 보내고 싶지 않다. 이건 숫제 자식을 키우는 게 아니라 떠받드는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동생하고 싸움을 하면 아버지는 칼 두 자루를 우리 앞에 꺼내 놓았다. 이
왕 싸우려면 '확실하게' 칼을 들고 싸우라는 뜻이다. 그렇게 해서 누구 하나가 죽어 버리면 더 이상 너희 싸우는 꼴 보지 않아도 될 거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전혀 교육적인 처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 자신부터 내 아
버지가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정교육을 제대로 하려면 아버지가
그 정도로 확실한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래야 어른이 되어도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항상 감사하며 살아가는 습성을 몸에 익힐 수 있다.
한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형 백화점을 경영하는 친구가 어느 날 나에게 이런 하
소연을 늘어놓았다.
"이케하라 상, 일본에서는 어느 백화점에 가나 엘리베이터 걸이 상냥하게 웃는 얼굴로 고
객에게 인사하는데, 우리 아가씨들은 아무리 말을 해도 되지 않아요. 언제 하루만 시간 내서 우리 아가씨들 교육 좀 시켜 주세요."
나는 껄껄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건 하루 이틀 교육시킨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아가씨들한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미
소를 가르치고 싶으면 어머니 뱃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나오라고 하세요."
물론 농담이지만 완전한 농담만은 아니다. 아무리 훌륭한 연기자라도 해도 강요된 웃음을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것과 똑같이 지어보일 수는 없는 법이다. 어려서부터, 아니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남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기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가정교육이 중요하다.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그 작은 나사못 하나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다. 내가 만든 물건, 내가 지은 건물을 이용하는 사람들
이 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느끼도록 하겠다는 개개인의 각오가 없는 이상 한국은 세계 무
대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나는 전에 한국 최고라는 건설회사에서 지은 아파트에 산 적이 있다. 그 아파트에는 물이
빠져 나가는 구멍이 욕실, 주방, 베란다 등 세 군데 있었는데, 막상 살아 보니 단 한 군데도 물이 제대로 빠지는 곳이 없었다. 어떻게 된 건가 살펴보았더니 하수구 구멍이 다른 데보다 더 높았다. 세상에,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것은 코흘리개 꼬마들도 다 아는 상식이다.
어디 한번 혼 좀 나 봐라 하고 단단히 마음먹고 건설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정작
담당자의 답변을 들은 나는 기운이 쭉 빠져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아, 그건 우리가 직접 한 일이 아니라 하청을 준 업체에서 잘못한 겁니다. 그 쪽으로 연락해 보시죠."
한국 사람의 전형적인 책임 회피,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건설업체가 하청을 주었으면 그 하청업체가 하는 일까지 감독하고 관리해서 책임을 지는 게 당연하지, 하청업체가 한 일이니 자기네하고는 상관없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인가?
하자 보수인가 뭔가 해서 욕실하고 주방은 고쳤지만, 베란다의 하수구는 끝내 고치지 못
했다. 물이 제대로 빠져 나가게 하려면 베란다 바닥을 더 낮춰야 하는데, 그러면 안전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한국 최고의 건설회사에서 지은 아파트가 그 모양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겠는가.
서비스 정신은 반드시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충분조건이 아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물건을 만드는 사람 역시 비록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내가 만드는 이 물
건을 사용할 소비자를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들에게서 "이렇게 좋은 물건을 만들어
준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참 고맙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
다.
한때 일본 제품이 미국 시장에서 '싼 게 비지떡'이란 소리를 듣던 시절이 있었다. 일본 기업들은 그런 소리를 듣지 않고 제 값에 물건을 팔기 위해 죽기 살기로 기술개발에 매달렸다. 그 결과 지금은 누구나 일본 제품이라면 안심하고 구입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일본 상품이 그렇게 치고 올라간 다음 그 빈 리를 파고든 것이 한국 상품이었다. 품질
은 떨어지지만 싼 맛에 잠시 쓰고 버린다는 생각으로 한국 제품을 찾는 고객이 많았다. 단
적으로 말하자면 주로 흑인들이 코리아 가게에 가고 돈 있는 사람은 일본 가게에 가서 물건
을 사는 그런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품질은 떨어지는 대신 값이 싼 제품은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나 중국
몫이 되어 버렸다. 한국의 인건비는 비교할 수 없이 올라갔지만 품질은 제자리니 얼마 못
가 인건비가 더 싼 동남아 제품을 감당할 길이 없어졌다. 결국 비싼 제품은 기술이 모자라
고, 값싼 제품은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는 샌드위치 신세가 되어 버린 것이다.
서비스는 곧 마음이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이런 인식이 부족하다. 수출을 해도 물건만 납품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한국 업체에서 만든 방음벽을 일본으로 수출하는 과정에서 내가 중간 다리를 놓은 적이 있는데, 이때에도 한국 사람들의 안일한 생각 때문에 수없이 곤욕을 치러야 했다.
일본에서는 워낙 도로망이 거미줄처럼 뻗어 있기 때문에 방음벽 수요가 아주 많다. 방음
벽은 언뜻 보기에 구조가 간단하고 별다른 기술도 필요하지 않은 단순한 제품인 것처럼 보
인다. 당시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일본 쪽 요구 조건을 맞추는 데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수출 건을 추진했다.
방음벽의 종류는 여러 가지인데 앞면은 알루미늄, 뒷면은 철판을 쓰고 그 사이에 석면을
넣어 소음을 흡수하도록 만든 것이 가장 보편적이다. 알루미늄과 철판을 접합시키기 위해서
는 드릴로 구멍을 뚫고 리벳을 박아 고정시켜야 한다. 재료와 장비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공정이다.
그런데도 물건을 납품하기 위해 검사를 해 보면 불량률이 무려 50퍼센트에 육박하는 어처
구니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한국 사람들은 틀림없이 발주자가 요구하는 대로 제품을 만들었는데 왜 불량이냐고 펄쩍 뛰었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항상 눈으로 쉽게 확인되지 않는 곳에서 비롯된다.
방음벽 재료인 알루미늄과 철판 겉면은 도금되어 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재질을 접합시
키기 위해 드릴로 구멍을 뚫으면 잘려나온 부스러기가 내부에 붙어 있게 된다. 원래 이 부
스러기를 공기총으로 불어서 깨끗이 제거한 다음 리벳을 박아야 하는데, 한국 사람들이 이
공정을 무시하고 그냥 리벳을 박아 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부스러기는 알루미늄과 철판 사
이에 끼여 겉에서는 보이지도 않는데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항변했다.
바로 이것이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의 차이다. 일본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라면 철
저하게 작업 지시를 따른다. 이유 같은 것은 필요 없다. 그냥 시키는 대로 완벽하게 처리해주면 된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머리가 좋아서 그런지 자기가 생각하기에 필요하다고 판단되지 않
으면 건너뛰어 버린다. 겉보기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것이다. 그래 놓고는 남들이 열 개 만드는 동안 우리는 스무 개를 만들었다고 자랑한다.
방음벽을 제작할 때 부스러기를 제거하든 하지 않든 겉보기에는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
러나 한 번만 비가 오면 그 차이가 여실히 드러난다. 알루미늄이든 철판이든 겉면은 도금되
어 있지만 드릴이 들어가면서 잘려 나온 부스러기는 그렇지 않아 비가 오면 대번에 녹이 슬
고 녹물이 겉으로 흘러 나와 벌건 줄이 죽죽 생긴다.
일본 사람들은 도로가에 병풍처럼 늘어선 방음벽에서 리벳을 박아 놓은 구멍마다 녹물이
흘러나오면 얼마나 보기 싫은지 잘 알기 때문에 처음부터 그런 요구를 한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마치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기도 하거니와 설사 알고 있다 하더라도 자신
의 불찰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니, 방음벽이 소음만 제대로 차단하면 되지, 미관상 조금 보기 나쁜 게 뭐 그리 큰 문제라고 납품을 받지 않겠다는 겁니까?"
궁극적으로 바로 이 조그만 차이가 성수대교를 무너뜨리고 삼풍백화점을 무너뜨리는 엄청
난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그런 대형사고가 터지면 언론마다 수중 카메라를 집어 넣어 한강
다리의 안전도를 조사한다 어쩐다 하면서 떠들썩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진다.
그런가 하면 당산철교는 전문가들이 보수만 하면 된다고 하는 데도 부득부득 다시 짓겠다
고 뜯어내기도 했다. 그러고는 정작 성수대교 붕괴 당시 수중 카메라에 잡힌 부식된 교각들
이 말끔히 보수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다리가 무너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유럽에는 1천 년, 2천 년을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다리들도 있다. 성수대교는 15년 동안 수많은 차량과 사람이 통행하는 바람에 더 이상 하중을 감당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완공되기도 전에 무너져 버린 다리는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한국 건설업체들은 중동이나 동남아 등지에서 많은 실적을 쌓았다. 그러나 한국 업체들이
지은 그 많은 공장과 건물이 무너지거나 망가졌다는 소문을 들어 본 기억이 없다. 오히려
가장 짧은 시간에 공사를 마치면서도 튼튼하고 안전하다는 칭찬이 자자하다. 그런 한국 업
체가 왜 국내에서는 그렇게 튼튼하고 안전한 구조물을 만들지 못하는가. 외국에서 실적 올
리는 것만 중요하고 막상 내 조국 국민은 사고로 죽어도 괜찮다는 말인가.
나는 그 이유를 이렇게 생각한다. 외국에서 시공을 할 때에는 외국 업체들의 감리를 철저
하게 받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시공도 감리도 모두 한국 업체들끼리 하기 때문에 방심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다. 내가 만든 물건 내가 지은 건물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느끼도록 하겠다는 개개인의 각오가 없는 이상 한국은 세
계 무대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박세리와 박찬호
누가 나에게 박세리와 박찬호를 비교하라고 한다면 나는 박찬호가 거둔 성적은 박세리에
비해 10분의 1도 채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 박찬호가 '별 볼 일' 없다는 것이 아니라 박세리가 그 정도로 대단하다는 뜻이다.
한국 사람들에게 제일 좋아하는 젊은이를 들라면 박찬호와 박세리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
을 것이다. 그 두 사람은 광고다 뭐다해서 밤낮 텔레비전과 신문에 얼굴이 실려 대한민국
국민에게 배우 못지않게 친밀한 얼굴이 되었다. 박찬호 선수를 볼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저 친구 참 행복하겠다고 생각한다. 그가 메이저리그에서 성공을 거둔 몇 안 되는 동양 사
람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한국에서 박세리와 대등한 대접과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나는 젊었을 때 프로 야구 전문 기자 생활을 한 적이 있어 야구라는 스포츠를 비교적 잘
아는 편이다. 학생 때에는 비록 아마추어지만 야구 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물론 '광적'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골프도 좋아한다.
누가 나에게 박세리와 박찬호를 비교하라고 한다면 나는 박찬호가 거둔 성적은 박세리에
비해 10분의 1도 채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 박찬호가 '별 볼 일' 없다는 것이 아니라 박세리가 그 정도로 대단하다는 뜻이다.
야구 선수가 메이저 리그에서 투수로 활약하며 한 해 15승을 올린다는 것은 개인의 영광이요 국가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가 한국 사람이라는 점, 얼굴이 잘 생기고 매너까지 좋다는 점을 제외하면 메이저 리그에서 15승을 올리는 투수는 박찬호 혼자만이 아니
다.
그러나 박세리는 다르다. 메이저 리그 야구 선수와 비교하자면 1998년에 메이저 리그 홈
런 신기록을 갈아치운 마크 맥과이어나 새미 소사하고 맞먹는 수준이다. 데뷔 첫해에 미국
LPGA 무대에서 4승을 기록했다는 것, 그 4승 가운데 2승이 메이저 타이틀이라는 것은 여
자 골프 역사상 좀처럼 수립하기 힘든 대기록이다.
더군다나 박세리는 스무 살을 갓 넘긴 앳된 소녀다. 알다시피 여자 나이 스물이면 육체적
으로도 완전한 성인이 아니어서 계속 성장하는 중이다. 대한민국의 시골 소녀 박세리가 그
어린 나이에 전세계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성적을 냈다는 것은 확실히 믿기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골프를 쳐 본 사람이라면 이토록 박세리를 극찬하는 이유를 잘 알 것이다. 골프는 여느
스포츠와는 다르다. 아무리 뛰어난 자질을 타고났다 하더라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훈련과 실
전 경험이 필요하다.
그것만으로도 안 된다. 기계적일 만큼 스윙 동작이 완벽하다 해도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낼
수가 없다. 시종일관 한 순간도 흐트러지지 않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동 중에 캐디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 때문에 공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는 것이 골프라는 스포츠다.
세계적인 골프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자연의 흐름에 자기 자신을 맞추어 가는 적응력이
필요하다. 코스의 지형지물을 읽는 눈은 기본이고 날씨, 온도, 습도, 바람의 방향과 강도, 잔디의 특성, 심지어 퍼팅 순간 홀컵 앞을 지나가는 개미 한 마리에 이르기까지 골퍼에게 영향을 미치는 자연의 변수는 실로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변수를 일일이 계산해서 대처하겠다고 생각하면 세계 최고의 슈퍼 컴퓨터를 가져
와도 안 된다. 경험과 직관을 통해 그때그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대처하는 것, 좀 거창
하게 말하면 자기 자신을 자연의 일부로 동화시키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이 모든 것을 스무 살을 갓 넘긴 한국 소녀가 거의 완벽에 가깝게 해냈다. 어떤 면에서
박세리는 대한민국이 낳은 최고의 영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박세리를 대
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너무나 이상하다. 어쩌면 거기에 내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한국
사회의 문제점이 집약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먼저 '영웅'을 키워 내지 못하는 풍토가 문제다. 한국 사람에게 역사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위인들을 생각해 보라. 그 인물이 임금이든 군인이든 학자든 한국 사람들만의 영웅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인류의 발전에 지대하게 공헌한 인물이 떠오르는가?
혹자는 한국이 아직까지 세계의 중심에 서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그
렇지, 알고 보면 위대한 인물이 많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내 말이 그 말이다. 한국이 낳은 위인들의 업적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인물이 있는데도 아직까지 노벨상 수상자를 한 사람도 내지 못했다는 것은 한국 사람들이 영웅을 키워 내는 데 무기력했거나 아니면 무관심했다는 반증에 다름 아니다.
박세리 역시 마찬가지다. 박세리는 이제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스포츠계의 영웅으로 올라
서는 첫걸음을 떼어 놓은 셈이다. 그러니 이제부터가 더욱 중요하다. 앞으로도 꾸준히 지금과 같은, 아니 지금보다 더 뛰어난 성적을 거두지 못한다면 머지않아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 가는 '반짝 스타'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당연히 본인이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겠지만, 박세리에게 관
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는 한국 사람들도 반성해야 할 점이 있다. 단적인 예로 1998년 여름
께 박세리의 성적이 절정에 달했다가 그 뒤로 우승을 못하자 대번에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
는 '별것 아니잖아' 하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가 하면 모처럼 조국을 찾아왔는데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고 이리저리 끌고 다닌 끝
에 기어이 앓아 눕게 만들고 말았다. 이렇게 호들갑에 가까운 지나친 관심은 성적이 조금
부진하다고 해서 금방 냉담해지는 태도만큼이나 박세리 본인에게 부담이 될 것이 분명하다.
박세리가 아무리 강인한 정신력을 지녔다고 한들 당장 눈앞의 성적에 따라 일희일비를 거
듭하는 동포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언제까지 견뎌 낼지 걱정이다. 또한 박세리의 인기에 편
승해 어떻게든 자신을 알리거나 경제적인 이득을 챙겨 보겠다고 설치는 사람이 많은 것도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자칫하다가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자기 손으로 죽여 버리는 어
리석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른다.
이는 세계적인 차원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한국 국내에서도 정치계든 경제계든 학계
든 누군가 군계일학처럼 돋보이는 능력을 발휘하면 이내 나머지 사람들이 똘똘 뭉쳐서 뒷다
리 잡기 작전에 들어간다.
어느 분야에서든 박세리와 같은 슈퍼 천재는 그리 자주 나오지 않는다. 어쩌다 한번 그런
천재가 태어났을 때 주변 사람들은 물론 사회 전체가 그 천재의 자질이 충분히 꽃필 수 있
도록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틀에 박히고 앞뒤가 꽉 막힌 한국의 교육 제도다. 천편일률적인 교육 제
도에 적응하려면 아무리 뛰어난 천재도 천재이기를 포기해야 한다.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가
버리면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식으로 더 빨리 시들어 버린다. 유일한 탈출구는 일찌감치외국으로 유학가는 길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를 잘 만나거나 박세리처럼 든든한 후원자라도 만나야 한다. 박세리
가 후원자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운동 선수였기 때문이다. 이른바 스포츠 마케팅이라고 해
서 박세리가 회사 이름이 새겨진 모자와 옷을 입고 텔레비전에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그 후
원사에서는 투자 비용과 광고 효과를 계산하느라 분주하다.
스포츠 분야가 아닌 예술이나 과학 같은 분야라면 어떨까? 아무런 계산이나 사심 없이,
국민과 나라 덕분에 성장하고 돈을 번 기업들이 사회에 그 은혜를 갚는다는 순수한 입장에
서 각 분야의 인재를 키워 내야 한다.
박세리를 보면서 또 한 가지 드는 생각은 그야말로 '불 같은' 한국 사람들의 성격이다. 한국 사람들은 너무 빨리 흥분하고, 너무 쉽게 실망하며, 모든 것을 너무 빨리 잊어버린다. '은근과 끈기의 민족' 특유의 품성을 요즈음에는 좀처럼 찾아보기가 힘들다.
골프라는 운동은 앞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특성 때문에 다른 스포츠처럼 '연승가도'를 달리기가 불가능한 종목이다. 그런데도 한국 사람들은 박세리가 모든 대회에서 싹쓸이 우승하기를 기대한다. 애초부터 가능하지 않은 기대를 품었다가 어긋나면 금세 실망해 버린다. 박세리가 앞으로 1년 간만 우승하지 못해도 한국 사람들은 그녀를 깨끗이 잊어버릴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박세리를 좋아하고, 유심히 지켜볼 것이다. 스윙폼이나 골프 클럽을 잡는 그립이 달라질 때마다 집중력을 방해하는 요인이 생기지 않았나 걱정할 것이다. 그렇게 꼼꼼히 그녀를 지켜보는 다른 한편으로 나는 한국 사람들이 그녀를 지켜보는 시선까지도 지켜볼 것이다.
아 참, 혹시라도 박찬호 선수가 이 글을 읽으면 기분이 그리 좋지 않을지도 모른다. 일본
선수 노모 히데요보다 뛰어난 활약을 펼치는 박찬호 선수한테 질투가 나서 일부러 그를 평
가절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니 걱정 마시라. 박찬호 선수가 앞으로도 계속 지금과 같은 성적을 쌓아 나간다면 다음번 책을 쓸 때(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에는 틀림없이 그를 한국의 영웅으로 치켜세우게 될 테니까.
길이 막혀서······
길이 막혀서 늦었다는 말이 변명다운 변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 버릇은
고쳐지지 않는 모양이다. 출근 시간에도 10분만 일찍 서두르면 교통신호까지 위반해 가며
달리지 않아도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 텐데.
내가 진심으로 존경하는 한국인 가운데 H보험회사에 근무하는 양아무개라는 분이 있다.
그는 예전에 가족을 모두 데리고 일본에서 생활한 적이 있었다.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던
아들을 학교에 보내야 했는데 한국 학생이 한 명도 없는 일본 학교를 골라서 아들을 전학시
켰다. 물론 그 아이는 일본 말이라고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의 입에서 "나 학교 가기 싫어" 하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걸
핏하면 선생님에게 야단을 맞는가 하면 다른 아이들이 못살게 군다는 것이었다. 하긴 다 큰
어른이라도 그런 상황에 놓이면 기가 죽게 마련인데 코흘리개 초등학생이 말도 통하지 않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학교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오히려 아들을
나무랐다.
"네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의 놀림을 받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일본 말을 못
하는 탓도 있겠지만 아직은 네가 학교 성적이나 친구 관계 등 모든 면에서 일본 아이들에게
뒤지는 것은 사실 아니냐. 그럴수록 더욱 열심히 노력해서 다른 아이들을 따라잡지 않으면
너는 어디 가서든 놀림 받고 따돌림 당하는 신세를 면하지 못할 거다."
그 말을 들은 아들은 이를 악물었다. 공부만 열심히 한 것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되기 위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아이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되자 1, 2등을 다툴 정도로 출중한 학업 성적을 올리더니 전교 어린이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그 때를 회상하며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일본 사람들, 정말 대단하더군요.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외국에서 온 아이에게 학생 대표를 시켜 주는 경우는 없을 테니 말입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정말로 대단한 사람은 바로 양아무개 본인이었다. 외국인이든 내국인
이든 능력이 되고 남을 이끌 만한 리더쉽을 갖추고 있으면 회장이 되는 건 당연하다. 나로
서는 일본 말 한마디 할 줄 모르는 자기 자식을 일부러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학교에 보
냈다는 그의 결정이 대단해 보인다.
같은 나라 사람이 있으면 아무래도 서로 의지하려는 마음이 생기게 마련이다. 물론 동포
끼리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도 좋은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외국인의 몸으로 본토
박이들하고 당당하게 경쟁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변명의 여지를 완전히 없애 버리는 용기
가 필요하다.
이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유학생들 대부분은 한사람이라도 자기 나라 학
생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 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나약한 생각의 싹을 처음부터 잘라 버리고 모든 것을 혼자 힘으로 헤쳐 나가는 독립심을 길러 주겠다는 그의 교육관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러한 어려움을 이겨 내고 일본 사회에 훌륭하게 적응한 그 아들에게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한국 사람 중에도 이런 훌륭한 교육관을 가진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희망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 후일담으로 접어들면 답답해져 오는 마음을 억누를 길이 없다.
그의 아들은 일본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거꾸로 한국으로 유학을 왔
다. 그 정도 실력이면 일본에서 내로라하는 명문대학에 충분히 입학할 수 있었지만, 대학 공부만큼은 조국에서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번에도 얼마 못 가서 아들의 입에서 하소연이 흘러 나왔다.
"한국에서 도저히 공부할 수 없어요.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하던 중 일본 경험이 있는 몇몇 학생과 함께 회고담을 쓰는 일에
참여했는데 자기가 쓴 글이 일본 사람들에게 너무 우호적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하고 말았다
는 것이다.
내가 이 일화를 소개하는 것은 한국 사회가 '변명 사회'라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양 아무개는 애당초 아들이 변명을 늘어놓을 수 있는 여지를 없애 버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런 사람은 별로 흔하지 않다.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무슨 말만 하면 '아니오, 그게 아니라······'하는 변명부터
튀어나온다. 가만히 들어 보면 결국 똑같은 소리를 하면서도 일단은 상대방의 말을 부정하
고 본다.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예, 맞습니다' 하고 선선히 인정할 줄을 모른다.
물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몸에 배어 버린 언어 습관이겠지만, 듣기에 따라서는 상대방에
게 상당한 불쾌감을 줄 수도 있다. 특히 그것이 악의 없는 습관일 뿐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외국인들은 한국 사람들의 이런 버릇 때문에 당혹스러워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 사람들은 약속 시간을 잘 지키지 않는다. 그러고는 어김없이 '길이 막혀서···
··' 라고 변명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알고 보면 약속 시간이 다 되어서야 출발하는 사람이
많다. 사람을 만나다보면 다음 약속이 있다는 것을 내가 뻔히 아는데도 눌러앉아서 일봐야
되지 않느냐고 물으면 "괜찮아요, 기다리겠죠 뭐" 하고 대답한다. 그래 놓고는 또 길이 막혀서 늦었다고 변명할 것이다.
나는 나하고 약속을 했다가 세 번 이상 시간을 어기는 사람은 그 다음부터 절대 만나지
않는다. 상대가 아무리 높은 사람이라 해도, 그 사람을 통해 내가 큰 이익을 볼 수 있다 해도 마찬가지다.
길이 막혀서 늦었다는 말이 변명다운 변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 버릇은
고쳐지지 않는 모양이다. 출근 시간에도 10분만 일찍 서두르면 교통신호까지 위반해 가며
달리지 않아도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 텐데.
일본의 직장인들은 지하철이 연착해서 지각을 하면 철도 회사에서 확인서를 떼어다가 회
사에 제출한다. 이렇게 하면 변명이 아니라 타당한 사유로 인정받을 수 있다. 철도 회사는 15분 이상 연착했을 때 승객이 요구하면 반드시 확인서를 떼어 주도록 되어 있다.
한번은 중요한 비즈니스 관계로 한국의 어느 기업체 사장과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그 약
속을 지키기 위해 나는 일본에서 부랴부랴 비행기를 타고 날라왔는데, 세 시간을 기다려도
만나기로 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전화로 확인해 보았더니 그 사장은 그때서야
출발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나하고 약속이 잡혔다는 사실을 전달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자주 써먹는 수법인데, 이것 역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나는 그 사람하고 직접 약속을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장 밑에 있는 전무를 통해 약속을 했다면 사장하고 직접 약속한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사장이 나한테 거짓말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시간 약속 하나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한 회사의 전무라는 중책을 맡을 자격이 없다.
세계 어느 나라에나 변명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있다. 그러나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 늘어놓는 변명이 오히려 부정적인 효과를 초래할 뿐이라는 사실을 한국 사람들은 잘
모르는 듯하다.
나는 비행기를 굉장히 자주 타는 사람이다. 그런데 김포 공항에서 정각에 이륙하는 비행
기를 타 본 기억은 거의 없다. 일본까지는 고작 1시간 40분이면 날아가는 거리인데도 30분
이나 1시간쯤 기다리는 것은 다반사다. 이제는 승객들도 익숙해져서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
람이 없다. 비행기 시간표만 보고 약속 시간을 정했다가는 낭패보기 십상이다. 그래서 나는 일본에서 약속이 있을 때에는 반드시 하루 전, 최소한 몇 시간이라도 여유를 두고 김포 공항을 떠난다.
하긴 한국의 텔레비전 역시 예고된 시간에 정확하게 시작하는 프로그램이 9시 뉴스 말고는 하나도 없다. 방송국조차 국민에게 한 약속을 밥 먹듯이 어기는 나라, 한국은 정녕 영원한 코리언 타임의 나라인가.
한번 쥐면 절대 안 놓지, 마이크
"한국 사람을 받기 시작하면 일본 사람에게는 노래 부를 기회조차 오지 않아요. 마이크
한번 쥐면 절대 안 내주고 혼자서 다 하려고 들거든요."
한국 사람처럼 노래하기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술한잔하고 기분 좋아지면
너나없이 노래방으로 직행하는 문화를 보면 말이다. 서울 H동에 가면 일본 사람들이 즐겨
찾는 가라오케가 있다. 다른 업소에 비해 일본 노래가 상당히 많이 준비되어 있고, 종업원들도 대부분 일본 말을 웬만큼 할 줄 알기 때문에 일본인 단골이 많다.
그러다 보니 이 업소 주인은 언제부턴가 한국 손님은 아예 받지 않기로 방침을 정한 모양
이다. 물론 일본 사람과 동행하면 들어 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한국 사람은 출입을 통제 한다.
하루는 이 가라오케에 한국 사람 몇이 와서 한바탕 소란을 벌였다. 여기는 분명히 대한민
국 땅인데 왜 대한민국 사람이 못 들어가냐고 따지며 소동을 일으킨 것이다. 이미 다른 곳
에서 거나하게 술을 마시고 왔는지 말투 자체가 다분히 시비조였지만, 마담이 슬기롭게 달
래서 돌려보냈다.
내가 나중에 마담을 불러서 한국 손님을 받지 않는 이유를 물었더니 대답이 이랬다.
"한국 사람을 받기 시작하면 일본 사람에게는 노래 부를 기회조차 오지 않아요. 마이크
한번 쥐면 절대 안 내주고 혼자서 다하려고 들거든요. 우리로서는 일본 사람들이 가장 중요
한 고객인데, 노래를 부를 수 없는 가라오케에 당신들이 찾아오겠어요?"
일리 있는 말이었다. 나도 한국 친구들을 따라 일반 가라오케나 단란주점 같은 데를 더러
다녀 보았는데, 가만히 보니까 손님들끼리 시비가 붙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마이크를 한번 잡으면 도무지 놓을 줄 모르니 다른 손님들이 참다못해 한마디 하면 그게 빌미가 되어 싸움으로까지 번지는 것이다.
어쩌면 한국에서 유난히 룸살롱이 발달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일본에도
룸살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 탁 트인 공간에 서로 모르는 여러 팀이 함께 앉아 술
을 마셔도 시비가 붙는 일은 별로 없다. 노래를 할 때에도 자기 차례가 끝나면 미련 없이
다음 사람에게 마이크를 넘겨준다.
한국 사람들은 같은 일행끼리는 아주 유대감이 강하고 단결도 잘 된다. 하지만 그런 일행
이 여럿 모이면, 거기다 술까지 한잔씩 들어가면 십중팔구 시비가 생긴다.
왜 차례도 안 지키고 혼자만 노래하느냐고 싸우고, 노래도 못하면서 시끄럽게 소리만 지
른다고 싸우고, 기분 나쁘게 쳐다봤다면서 또 싸운다. 그러니 아예 따로따로 방을 만들어서 같은 일행끼리 콩을 쑤던 메주를 쑤던 알아서 하라는 생각에 룸 살롱이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나는 노래를 썩 잘 부르지 못하지만 노래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그런데 노래방에서 노
래를 부를 때 한국 노래는 가사를 보지 않고도 어지간히 따라 하지만 일본 노래는 꼭 가사
를 보아야 부를 수 있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생활하니까 그만큼 한국 노래를 부를 기회가 많기 때문에 그런 모양이
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한국 생활에 익숙해졌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나는 아주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내가 한국 노래를 더 잘 외
우는 것은 일본 노래보다 짧기 때문이었다. 물론 요즈음 나오는 신세대 가요 중에는 긴 노
래가 많다. 그러나 혀도 잘 돌아가지 않는 내가 그런 노래를 따라 부를 일은 없고, 대신 흘러간 가요를 애창하는 편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즐겨 부르는 한국 노래는 거의 가사가 3절을 넘지 않는다. 대부분 2절에서 끝나고, 그나마 1절과 똑같은 후렴이 되풀이되는 경우가 많다. 내용 또한 비슷비슷한 게 많아서 사랑, 눈물, 이별, 슬픔 같은 중요한 단어만 적절히 배치하면 노래 몇 십 곡쯤은 간단히 외울 수 있다.
이에 비하면 일본 노래는 상당히 길다. 말하자면 러닝 타임(노래 길이도 이렇게 표현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이 길다는 게 아니라 가사가 길다는 의미다. 3절 정도는 기본이고 1절, 2절의 곡조가 되풀이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멜로디가 다른 노래가 많다. 게다가 같은 가사가 반복되는 후렴은 아예 없다. 어휘 또한 굉장히 다양하다. 동서를 막론하고 대중가요의 중요한 주제가 '사랑'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지만, 같은 사랑을 노래해도 그 표현이 아주 풍부하고 아기자기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한국 사람들이 단골로 맞받아치는 메뉴가 있다. 내가 아직 한국 말
을 제대로 몰라서 그런 소리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빨갛다'는 표현만 해도 영어에는 레드, 일본 말에는 아카이밖에 없지만 한국 말에는 빨갛다, 벌겋다, 불그스름하다, 불그죽죽하다 등 수없이 많다는 것이다.
그 점은 나도 인정한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것과는 각도가 약간 다르다. 예를 들어 '안개'라는 단어를 보자. 한국어 사전을 뒤져 보면 '안개'를 뜻하는 단어가 몇 개쯤 튀어나올지 모르지만, 한국 사람한테 '안개'의 다른 표현으로 뭐가 있는지 물어 보면 거의 대답하지 못한다.
하지만 일본 말에는 '안개'를 뜻하는 단어가 적어도 예닐곱 개는 넘는다. 아사기리(아침 안개), 미기리(저녁 안개)외에 안개의 종류와 형태에 따라 모야(연기 같은 안개), 가스미(물안개), 소우운(구름 같은 안개), 시후키(물안개) 등이 있다. 게다가 사전 속에 묻혀 있지 않고 사람들이 일상 생활에서 직접 사용한다.
그렇게 다양한 표현을 적절히 구사해 가며 노래 가사를 만들다 보니 가만히 듣고 있으면
참 예쁘다는 느낌이 든다. 노래라는 것이 원래 무턱대고 감정만 앞세우기보다는 정조(情調)
가 살아 있어야 예쁘게 만들어진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가만 보면 한국 노래는 '네가 나를 버리고 도망가면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는 식의 감정은 확실하게 드러나는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잔잔한 정조는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으로 일단 내가 일본 노래보다 한국 노래를 더 잘 외우는 이유는 나름대로 설명된 셈
이다. 그렇다고 해도 왜 한국 노래가 일본 노래보다 짧은가 하는 점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
는다. 이에 대한 내 생각은 이렇다.
한국에는 정서를 담은 표현이 풍부하지 않은 대신 '욕' 하나만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만한 수준에 올라 있다. 내가 말하지 않더라도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세상에, 나는 처음 한국에 와서 점잖은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입버릇처럼 내뱉는 말
이 영어로 하면 'Jesus!'나 'Oh, My God' 정도에 해당하는 감탄사인 줄 알았다. 물론 그런
표현도 종교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여러 가지 문제가 파생되겠지만 엄밀히 말해서 '욕'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흔히 '접두사' 비슷하게 사용하는 표현은 알고 보니 감탄사가 아니라 욕이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서 그냥 욕인 정도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인지, 어떻게 욕으로 쓰이게 되었는지 알고부터 나는 아주 기가 질려 버렸다.
책에다 쓰려니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지만 한국 사람이라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지 다들 알 것이다. 하도 많이 쓰다 보니 지금은 의미가 사라진 채 '욕'이라는 형식만 남아 코흘리개 초등학생들까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스스럼 없이 입에 담는다.
물론 일본 말에도 욕이 있다. 그러나 한국처럼 심하지는 않다. 당장 나더러 한국 욕하고 일본 욕을 대비시켜 하나씩 꼽아 보라고 하면 애당초 게임이 되지 않는다. 일본의 대표적인 욕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카야로'다. 한국 사람들은 거기에 '조센징'까지 덧붙여서 '조센징 바카야로'하면 세상에서 제일 심한 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바카야로'가 욕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말을 한자로 쓰면 '마록야랑(馬鹿野郞)'인데, '말과 사슴도 구분할 줄 모르는 바보 같은 녀석'이라는 뜻이다. 더군다나 어른이 어린 아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바카야로' 할 때에는 욕이 아니라 '귀여운 녀석'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노래도 마찬가지다. 단어 몇 개로 이루어진 짧은 시 한 편이 수십만 단어를 동원한 장편
소설보다 더 큰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듯이, 노래 역시 가사가 길다고 해서 사람의 마음
을 더 잘 표현했다고 볼 수는 없다. 수없이 많은 표현이 있음에도 말과 감정을 아껴서 이른
바 '절제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것하고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어서 같은 소리만 계속 되풀이하는 것은 전혀 느낌이 다르다.
노래가 짧고 욕이 유난히 발달한 이유는 역사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과거 한국 사
람들은 먹고 살기 빠듯한 가난 속에서 수없는 외세의 침략을 받으며 살아야 했다. 그런 어
려움 속에서 살다 보니 노래말이 짧아졌고 감정을 승화시키는 여유를 찾기 힘들었던 것이
아닐까. 또한 일상적인 언어 생활에서 남한테 미안해 하거나 고마워하는 표현보다는 비난하
고 저주하는 표현이 더 많은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한국은 더 이상 가난에 찌든 빈국이 아니며, 언제 외세의 침략을 받게 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약소국도 아니다.
나는 그 증거를 한국에서 정명훈 같은 세계적인 예술가가 태어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서
찾는다. 예술이란 무릇 생존 문제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그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이 나의
믿음이다.
러시아를 보자. 16∼17세기 제정 러시아 때 얼마나 위대한 예술가가 많이 탄생했는가. 그러나 나라 경제가 거덜나 버린 지금 그 찬란하던 러시아 예술의 전통을 찾아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한국 대중가요의 가사가 짧은 것도 노래를 만드는 사람들이 먹고 사는 문제에 급
급하다 보니 간단하게 작업을 끝내고 다음 노래로 넘어갔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해 보았다. 그렇다면 신세대 가요의 가사가 점점 길어지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추세라고 할
수 있다. 나 같은 사람이 가사를 다 외워서 폼나게 노래하기는 그만큼 어려워지겠지만 이제
한국 사람들도 여유를 찾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으니까 말이다.
2. 무법천지 아, 대한민국
'이상한 나라' 한국
질서를 안 지키는 사람이 한둘이어야 붙잡고 싸우든 할 것 아닌가. 결국 나는 '내일 새벽까지는 나도 택시를 탈 수 있겠지' 하고 스스로를 달래며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한국에서 26년이나 살았지만 아직도 한국 음식을 거의 못 먹는다. 마늘과 고추를 못
먹고, 그래서 그런지 김치는 아예 입에도 대지 못한다. 한국 음식 중에서는 유일하게 곱창전골을 좋아 하지만, 내 입맛에 맞도록 맵지 않고 심심하게 해 주는 곳이 별로 없어서 단골집 아니면 좀처럼 가지 않는다. 한국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에서 한식집에 가자고 하면 굳이 마다지는 않지만, 상다리가 휘게 차려 놓은 그 많은 음식 중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이라야 밥하고 김 두 가지뿐이다.
한번은 서울시장과 함께 울산에 있는 한 공장을 견학하러 갔는데 견학 도중 점심시간이
되었다. 울산 시내까지 나와서 먹고 다시 들어가야 하는 게 번거롭기도 하거니와 동행한 시
장님이 이와 이렇게 된 것 노동자들과 함께 구내식당에서 먹는 것이 어떠냐고 해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실수였다. 공교롭게도 해장국이 점심 메뉴로 나왔는데, 어찌나 매운지 한 숟가락 떠 넣을 때마다 등에 식은땀이 주르륵 쏟아졌다. 그 순간 숟가락을 놓으면 틀림없이 시내까지 밥을 먹으러 나가자고 할 것 같아서 꾹 참고 절반 정도 먹기는 했다. 하지만 어찌나 얼얼한지 나중에는 입 속 감각이 다 없어져 버려서 말도 나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음식뿐이 아니라, 26년을 살았으면서도 나는 아직까지 한국 말을 내 마음대로 구사하지
못한다. 몇 년 살지 않아도 한국 말을 거의 본토박이 수준으로 구사하는 외국인도 많던데, 아직도 내 한국 말은 듣는 사람을 긴장시킨다. 그래서 친한 친구들한테 구박도 많이 받는다.
한국 사람들은 한글이 우수하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얼마나 우수한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
각하지 않는 것 같다. 나 역시 언어학적 측면에서 한글의 우수성을 조목조목 열거할 능력은
없다. 하지만 대충 생각해도 한글이 얼마나 우수한 언어인지는 금방 알 수 있다.
무엇보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면 140개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그 정도면 전세계 어느 나라 말이든 거의 원음에 가깝게 표현할 수 있다. 일본 말로는 기껏해야 48개 소리를 구분할 수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battery'라는 영어 단어를 가지고 생각해 보자. 한글로는 이것을 '배터리'라고 쓸 수 있다. 한국 사람이 한국 말로 '배터리' 하면 어지간한 미국 사람도 battery로 알아듣는다. 그러나 일본 말로는 아무리 기를 써도 '밧데리' 밖에 안 된다. 일본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밧데리'를 battery로 알아들어줄 사람이 지구상에 몇이나 되겠는가. 그런데도 아직 '밧데리, 밧데리' 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한 한국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대목이지만 여기서는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아무튼 그런 이유로 아직도 나는 성(姓)이 정씨나 전씨인 한국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전
두환 할 때 전이냐, 정주영 할 대 정이냐?"를 확인해야 그 사람 이름을 똑바로 알 수 있다. 일찍부터 48개 소리에 고정되어 버린 내 고막으로는 '이응'과 '니은'을 분간할 재간이 없는 탓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저런 한국의 매력에 마냥 빠져들 수가 없다.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밖에
는 달리 표현할 도리가 없는 한국 사람들의 질서 의식을 생각하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