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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태사(開泰寺) 충남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400-2 ☎ 041-734-8730
충남 논산시 연산면 계백로 2614-11
대한불교조계종에 속하며 현재 마곡사의 말사로 있다. 936년(태조 19)태조가 후백제를 정벌한 기념으로 창건하였다. 태조는 후백제의 신검(神劍)을 쫓아 황산(黃山) 숫고개를 넘어가서 마성에 진을 친 뒤 신검에게 항복받고 삼국을 통일하였는데, 이것을 하늘의 도움이라 하여 황산을 천호산이라 바꾸고 절을 창건하여 개태사라 하였다.
창건할 때 이 절의 사치스러움은 극에 달하였고, 태조는 12월에 낙성법회(落成法會)를 베풀고 친히 소문(疏文)을 지었다.
그 뒤 태조의 영전(影殿)이 설치되어 기일마다 제사를 지냈으며, 태조의 옷 한 벌과 옥대 1요(腰)를 보관하였다. 국가에 중대한 일이 있으면 태조의 영전에 나아가 길흉을 점쳤는데, 1362년(공민왕 11) 공민왕이 이인복(李仁復)에게 강화도 천도 여부를 점치게 하였더니 불길하다는 점괘가 나왔으므로 천도를 중지하였고, 이듬해에 이인복을 다시 보내어 천도 여부를 점치게 하였더니 길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조선 초기부터 퇴락하기 시작하였으며, 1428년(세종 10) 이 절이 연산현(連山縣) 내에 있는 것이 옳지 못하므로 풍년을 기다린다면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진언이 있어 세종이 현재의 위치로 옮기게 하였다.
1432년 이 절의 승려가 큰 수정석(水晶石) 2과(顆)를 세종에게 헌상하였고, 세종의 불교진흥책으로 중흥의 기틀을 보였으나 그 뒤 폐허가 되었다.
절터에 삼존석불입상과 석탑·부도·공양보살상이 흩어져 있었으며, 1930년에 김광영(金光營)이 중건하여 도광사(道光寺)라 하였다가, 그 뒤 다시 개태사라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요사채 등이 있으며, 중요 문화재로는 보물 제219호인 석불입상과 충청남도 민속자료 제1호인 철확(鐵鑊),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74호인 오층석탑과 제275호인 석조(石槽)가 있다.
이 가운데 철확은 절에서 쓰던 큰 솥으로 지름 3m, 높이 1m, 둘레 9.4m이며, 절의 전성시에 장(醬)을 끓이는 그릇으로 사용하였다.
이 철확에는 많은 영이담이 전해지고 있다. 가뭄 때 사람들이 이를 끌어 다른 곳으로 옮기면 비가 온다고 하여 여러 곳을 옮겨 다녔으며, 1944년에 고철로 쓰려고 부수려 하자 갑자기 뇌성벽력이 쳐서 파괴를 모면하였다고 한다. 이 절에서 개판된 불경으로는 1218년(고종 5) 간행된 『범서총지집 梵書摠持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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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태사 신종루(神鐘樓)
개태사 신종루(神鐘樓) - 개태사는 주차장에서 내려서면 일주문이 없이 바로 신종루이다. 신종루 입구 좌우에는 예쁜 연지를 조성해 놓았고, 중앙의 다리는 개운교(開運橋)이다. 개운교를 건너면 바로 신종루이다. 신종루 누각 2층에는 불전사물을 모셔 놓았고 1층은 사천왕문이다. 사천왕문에는 사천왕상 대신에 좌우 벽에 사천왕상 벽화를 장엄해 놓았다.
개태사 연지(蓮池)
김대성화(본명 김광영) 공덕비
개태사 사천왕
신종루를 누하진입하여 계단을 올라서면 개태사의 경내 전경이 펼쳐진다.
보이지는 않지만 좌측에 차례로 어진전, 극락대보전이 있고 중앙에 석탑, 석탑 너머로 정법궁, 삼일지상정천궁(삼성각), 우주정, 요사채 등이 보인다.
개태사 오층석탑
개태사 오층석탑(五層石塔, 문화재자료 제 274호) - 이 탑은 개태사지(開泰寺地) 제일 북쪽 건물지에 있던 것을 현 개태사 경내에 옮겨 놓은 것이다. 1층의 탑신(塔身) 이하와 5층의 지붕돌(屋蓋石) 이상은 없어져 최근에 1층의 탑신과 기단부 및 보주 등을 새롭게 만들어 복원한 것이다. 지붕돌은 4단의 층급받침에 약간 치켜진 처마를 지녔고, 네 귀의 반전이 아름답다. 상륜부에는 보주만이 올려져 있는데, 탑 안에 있는 앙련(仰蓮)의 석재도 이 탑의 상륜부 부속석재로 보여진다. 이 탑은 전형적인 고려시대의 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다.
사찰측 안내문에 따르면 이 탑에는 남방불교의 전수자 연기조사께서 인도에서 모셔온 부처님 진신사리 16과가 오층석탑에 봉안되어 있다고 되어 있다.
개태사 어진전
개태사 어진전(御眞殿) - 개태사는 고려 태조 왕건(877~943)이 후삼국 통일의 과업을 완성한 후 창건한 호국종찰이다.
936년 태조 19년 황산(현 논산시 연산면)에서 후백제 신검으로부터 항복을 받은 왕건은 통일의 대업은 부처님의 은혜와 하늘의 도움이라 여겨 황산(黃山)을 천호산(天護山)이라 개명하고 개태사를 창건했다.
절이 완공되자 왕건은 친히 소문(疏)文)을 짓고 성대하고 낙성법회를 열었다고 한다. 왕건이 손수 지은 소문에 ‘부처님의 도움에 보답하고 산령이 도와주심에 수응하기 위해 관청에 명하여 새 연궁(蓮宮, 사찰)을 건립했는데 이름을 천호(天護)라 하고 절 이름을 개태사라 했다’고 개태사 창건 동기와 배경을 소상히 밝혔다. 개태사에는 왕건의 어진이 봉안되어 있더 진전(眞殿)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기일마다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왕건의 옷 한 벌과 옥대가 보관되어 있었으며 국가 대사가 있을때마다 어진에 나아가 길흉을 점치기도 했다. 실제 공민왕은 강화도로 천도하려는 마음으로 개태사에 사람을 보내 가부의 점을 쳤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다. 왕건 이후 개태사는 개경과 거리가 멀어 왕실의 관심이 멀어지고, 우왕때에는 왜구가 침입, 방화 약탈을 일삼아 절의 살림이 어려워진데다 조선 초 숭유억불책으로 쇠락의 길을 걷는다. 조선 세종 때 불교 진흥책으로 잠깐의 중흥의 기틀을 다시 다지는 듯 했으나 그 뒤 폐허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서기 2003년부터 2011년까지 풍전등확 같은 쟁송을 겪고 2008년 명실상부한 대한불교 조계종 호국종찰 개태사로서 면몰르 일신하여 2013년 5월 15일 어진전을 신축 완공하여 태조 왕건 어진을 모시고 현대에 이르고 있다.
어진전 주련
何王建坐遲(하왕건좌지) 어찌하여 왕건 모시기가 이리도 늦었는고
分淚痛悲枝(분루통비지) 나누매 눈물이 아리도록 슬픈 가지든가
來場行處止(래장행처지) 올 곳에도 갈 곳에도 머무는 곳에서도
佛念臆栽追(불념억재추) 부처님 생각을 가슴에 심어 따라서니
萬里霜回遇(만리상회우) 만리 세월에 돌고 돌아 맞은 곳에
千秋日月綏(천추일월수) 천추의 나날이 편안하실 것입니다.
어진정에 모신 태조왕건 어진(御眞)
개태사 극락대보전(極樂大寶殿)
개태사 극락대보전(極樂大寶殿) - 개태사는 김대성화보살(본명 김광영)이 현 절터의 동북쪽에 있었던 페허된 절을 정성들여 수습하여 서남쪽 현재 위치로 끌어내려 재창건한 절이다. 그의 차녀 천명보살(본명 유진팔)도 어머니의 뒤를 이어 재창건의 중심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 극락대보전은 처음에는 용화대보궁(龍華大寶宮)이었다고 한다. 중앙의 부처님을 아마티불이 아닌 미륵불로 보았다가 그 후에 현재의 주시스님이신 양산(陽山) 스님이 부임해 오시면서 재해석하여 아미타불로 보고 편액을 극락대보전으로 고쳤다고 한다.
극락대보전에 모신 아미타삼존불
개태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開泰寺址 石造如來三尊立像, 보물 제 219호) - 고려 초기 개태사 건립(940) 당시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아미타삼존석불이다.
아미타불은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중생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부처님이다. 중앙의 본존불은 신체가 원동형으로 처리되어 신체의 굴곡이 드러나지 않는다. 머리는 소발(素髮)에 정수리가 큼직하며, 얼굴은 둥근 역삼각형이나 큰 눈에 비해 코와 입은 작은 편이다. 법의(法衣)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손 모양은 중생을 보호하여 모든 두려움을 물리쳐 준다는 시무외인(施無畏印)이다.
뒷편에 두 개의 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성 당시에는 광배가 있었을 것으로 유추된다.
좌우 협시보살(관세음, 대세지보살)은 본존불과 같은 수법이나 어깨와 가슴 등은 좀 더 부드럽게 표현되었다. 천의(天衣)자락도 형식적이지만 뚜렷하고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단정하면서 통통한 몸집, 큼직한 두 손과 부피감 있는 팔, 다소 두꺼워진 옷자락 등 전반적으로 조각의 선이 굵고 강하여 후삼국을 통일한 초기의 굳건한 기상이 드러나 있는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석불로 그 가치가 크다 할 수 있다.
아미타삼존불 전설 - 개태사 경내에 있는 삼존불상에는 이러한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고려 말기 왜구들은 우리나라를 침략해 왔다. 물밀 듯이 몰려온 왜적들은 한양을 점령하고 나서 각 지방에 내려와 우리 민족을 괴롭히고 있었다. 이 무렵 이 곳 개태사에서는 스님들이 국난을 당하면서부터 호국에 대한 염불을 계속하고 있었다. 개태사에서 스님들이 호국 염불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왜적들은 개태사로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왜적들은 절간에 들어와서 주지 스님을 찾았으나 나타나지 않자 절간 문을 부수고 야단법석을 떨기 시작하였다. 왜적들은 대웅전 문 앞에 가서 묵직한 문을 열어 제쳤다.
그 순간
'아니! 이게 무슨 불빛이냐?'
대웅전 안을 바라보는 순간 삼존석불에서 빛이 발했던 것이다. 그 불빛을 바라본 왜적들은 눈을 뜨지 못하고 그 자리에 쓰러져 죽어갔다. 그 때 대웅전 안을 들여다보지 않은 왜적들은 잔뜩 겁을 먹고 혼비백산하여 도망쳐 대장에게 사실대로 보고를 했다. 그러나 대장은 부하들의 말을 듣지 않고
「아니! 그래 사람이 부처님을 쳐다보자 빛이 발해 죽어?」
적장은 믿을 수 없다 하면서 부하를 데리고 개태사에 직접 와서 대웅전 문을 힘껏 열었다. 그에게는 아무런 빛도 보이지 않았다. 왠지 겁이 나고 몸이 떨렸다. 그는 차고 있던 칼을 빼어 들어 우협시불과 중앙불의 목과 허리를 힘껏 내려쳤다. 그 다음 좌협시불을 내려 치려하자 이상한 불빛이 보이는가 하더니 칼이 부러지고 적장은 그 자리에 쓰러져 죽었다. 그 이후부터 개태사에는 왜적이 쳐들어오지 못했다 한다.
그런데 그 이후부터 절 부근에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불이 나서 집과 곡식을 태우는 일이 자주 일어났고, 어떤 때는 마을 전체를 불태워 마을이 쑥대밭이 되기도 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두려움이 쌓이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개태사의 잡귀가 하는 것 같으니 제사를 지내는 것이 좋겠다.」
고 하였다. 이리하여 마을 사람들은 의견을 모으고 무당을 불러다가 굿을 하기도 하고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불은 여기저기서 끊이지 않고 계속 일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마을에 사는 할머니 한 분이 밤에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부처님을 만났는데
「개태사의 불상을 원상태로 해 놓고 정성껏 불공을 드리면 화를 면할 수 있다.」
라고 하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할머니의 꿈에 나타났던 부처를 찾아 복구하고 온 마을 사람들이 정성껏 불공을 드리니 그 후부터는 불이 나지 않고 평화로운 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극락대보전 내 지장탱
개태사 정법궁
개태사 정법궁(正法宮) - 정법궁은 청기와로 되어 있다. 안에는 단군의 영정과 아미타부처님, 그리고 관운장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곳이다. 단군의 영정은 오원 장승업을 사사했다는 심전 안중식(1861 ~ 1919)이 그렸다고 한다.
정법궁 주련에 ‘남북통일세계평화기원대도량’ 있고, 아미타부처님을 모신 곳에도 ‘남북통일세계평화’라는 글씨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 개태사가 호국사찰임을 강조하고 있다.
단군 영정 바로 옆에는 단군 천부경이 있다.
단군 천부경 풀이는 이 곳 아래를 참조하세요
(http://cafe.daum.net/kyung386/ILxK/597)
정법궁에는 정법궁이라는 편액과 그 옆에 창운궁(創運宮)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데 ‘나라를 세운다’라는 의미로 붙여진 편액이라고 한다.
이 정법궁은 1992년 부석사 무량수전을 본떠 지었다고 한다. 1989년 충남대박물관의 발굴에서 당시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의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엇다. 고려 초 불상 위에 건물을 세웠던 그 자리에 불전을 조성한 것이다.
정법궁 안에 모신 아미타불
개태사 정법궁 내의 단군 영정
정법궁 내 단군천부경
정법궁 내 관우 진영
개태사 삼일지상정천궁(三一地上正天宮)
개태사 삼일지상정천궁(三一地上正天宮) - 한마디로 삼성각이다. 안에는 나반존자상과 산신탱, 칠성탱이 모셔져 있다.
나반존자
나반존자상은 계룡산에서 가져온 돌로 조성하여 모셨다고 한다.
칠성탱
★독성청(獨聖請)★
나무 천태산상 독수선정 나반존자
나무 삼명이증 이리원성 나반존자
나무 응공복전 대사용화 나반존자
보소청진언(普召請眞言)
나모 보보제리 가리다리 다타아다야(3번)
앙유 독성자 석존기멸지후 자씨미생지전 불왕진구 은현무애
혹어층층대상 정거안선 혹어낙낙송간 왕반임의 산은은 수잔잔
일간난야 좌와소요 화작작 조남남 성색분연 경행자재
하납반견이요도 설미부안이관공 현주선나 응공무량 약신공양지의
필사진통지감 유구개수 무원부종 시이 사바세계 남섬부주
해동 동양 대한민국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산하 개태사
청정지 도량 원아금차 지극지정성 헌공발원재자 호국종찰 개태사
주지 양산스님여 시회대중, 비구 등 청신사, 청신녀 각각 등 보체
장진묘공 재설명향 앙청천태산상 독수성중 병종권속 앙기묘원자
우복이 관수분향 예경어응진 서장청경 소청어현관 잠사어보굴
약강어향단 수차공양 만아원심 근병일심 선진삼청
나무일심봉청 영산당시 수불부촉 항거천태산상 독수선정
불입열반 위작복전 대사용화 나반존자 병종권속
유원 자비 강림도량 수차공양 (3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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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각
아금청정 변위감로다 봉헌삼성전
헌향진언 옴 바아라 도비야 훔(3번)
지심귀명례 천태산상 독수선정 나반존자(절)
지심귀명례 천상인간 응공복전 나반존자(절)
지심귀명례 불입열반 대사용화 나반존자(절)
나반신통 세소희, 행장현화 임시위, 송암은적
경천겁, 생계잠형 입사유 고아일심귀명정례
지심귀명례 금륜보계 치성광여래불(절)
지심귀명례 좌우보처 일광월광양대보살(절)
지심귀명례 북두대성 칠원성군 주천열요제성군중(절)
자미대제 통성군, 십이궁중 태을신 칠정제림
위성주, 삼태공조 작현신 고아일신귀명정례
지심귀명례 만덕고승 성개한적 산왕대신(절)
지심귀명례 차산국내 항주대성 산왕대신(절)
지심귀명례 시방법계 지령지성 산왕대신(절)
영산석일 여래촉, 위진강산 도중생, 만리백운
청장리, 운거학가 임한정 고아일심귀명정례
개태사에는 호국종찰답게 태극기가 게양되어 있다.
개태사 우주정(宇宙井)
개태사 우주정(宇宙丼) - 개태사 우주정(宇宙丼)에는 개태사 철확(鐵鑊)이 있는 곳이다.
개태사 철확(鐵鑊)
개태사 철확(鐵鑊, 민족자료 1호) - 고려 태조 왕건이 개국사찰로 세운 개태사에서 사용하던 것으로 전해지는 커다란 철제 솥이다. 창건 당시 주방에서 사용하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개태사가 폐허가 되자 벌판에 버려져 있다가 조선 고종 24년(1887년)에 있었던 정해년의 대홍수고 약 2Km정도 하류로 떠내려 왔던 것을 최근에 현재의 이곳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형태는 마치 테두리가 없는 벙거지형 모자를 뒤집어 놓은 듯한 모양으로, 약 23Cm 높이의 곧바로 선 테두리가 솟아 있다. 외부의 밑바닥은 직경이 약 90Cm의 둥근 굽이 있어 불을 효과적으로 잘 받도록 되어 있다.
『여지도서(與地圖書』『충청도』‘연산군’ 조에 의하면 개태사의 전성기에 된장을 끓이던 솥이었다 한다.
이 철확을 통해서 전성기에 많은 승려들이 계셨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는데, 전성기엔 약 1,000여 명의 승려가 머물며 화엄법회를 갖기도 했다고 한다.
개태사 요사채( 개태사 우주당 宇宙堂)
개태사 우주당(宇宙堂) - 개태사 우주당은 2003년에 조성되었는데, 스님들의 거처와 종무소 그리고 공양간 등이 있다. 개태사의 중심법당인 극락대보전을 마주보며 앞마당을 사이에 두고 북향을 하고 있다. 건물의 평면은 뫼 산(山)자 모양을 하고 있다.
개태사 좌측 들판에서 바라본 개태사
개태사 주지이신 양산스님은 지금 약 15년 가까이 개태사의 중흥을 도모해 오고 계신다고 한다. 양산 스님은 조계종 총무원에서 일하시던 1998년부터 개태사를 돕기 시작했고, 2008년 이 절을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로 등록하여 안정적인 성장의 기반을 마련했다고 한다.
양산 주지스님의 노력과 논산시의 지원 덕분으로 개태사는 차츰 사찰로서의 온전한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개태사 복원 불사는 크게 현재의 개태사 중창과 인접한 개태사지 정비 두 방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앞으로 종각, 일주문을 지을 계획이다. 인접 토지를 더 확보한 뒤 설법전과 박물관이 함께 입주하는 건물되 계획되어 있다.
개태사지 발굴과 정비도 진행되고 있다. 개태사로부터 북동쪽 500미터 떨어진 개태사지는 불전과 진전 등이 있던 곳으로 곳곳에 고려시대 기와조각과 주춧돌, 장대석이 산재산다. 마을과 전답이 있던 탓에 그동안 발굴이나 정비작업이 진행되지 못했다. 개태사지 정비를 위해 논산시는 문화재지정구역 1만 7550㎡ 중 1만 6000여㎡를 매입했다.
논산시는 개태사지 터를 더 매입하고 추가 발굴조사를 진행한 뒤 대대적인 정비에 나설 계획이다. 우선 매년 발굴을 진행하여 왕실사찰인 개태사의 실체를 확인할 방침이다. 고려시대 웅장했던 모습이 확인되고 중요한 문화재와 유구가 드러나면 국가사적 지정을 신청할 예정이다.
연차 발굴에 20억 원, 정비에 50억 원 이상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의 개태사는 국도변 논 가운데 다소 어색하게 들어서 있다. 오랜 세월 폐사로 방치되면서 절 안에 마을이 들어서고 농민들이 전답을 일궈 농사를 지은 까닭이다. 옛가람의 터 일부를 사들여 불전과 요사채를 지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더디지만 부처의 보이지 않는 깊은 보살핌이 있어 차츰 대도량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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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맙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글이 완성되기 전에 읽고 가셨네요...억씨 감사합니다.
읽어보시고 오자나 탈자 및 수정할 내용 있으면 댓글 부탁합니다.
검토해서 수정하여 다시 올리겠습니다.
다시한번 답습 잘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늘 감사합니다.
삼일지(地)상정천궁 → 삼일노(老)상정천궁
개태사 주지스님께 문의한 결과 땅지(地)자 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56야/준함/박진태 네..감사합니다
무상ㅡㅡ
감사합니다.
정말 잘 보고 갑니다! 대충 스쳤던 사찰이
다시 한번 순례 하는것 같습니다.
선배님 귀가는 잘 하셨는지요?
대단히 감사합니다.
개태사에 관한 자료를 뒤적여 보니 이런 내용이 나오네요
개태사터는 본래 후삼국을 통일한 ‘三一地上正天宮(삼일지상정천궁)’ 혈이다. 부처님, 하느님, 단군 삼세가 하나가 되는 천궁혈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개태사 사진과함께 상세한 글 올려주셔서
덕분에 잘 읽었습니다
대충 보고왔는데 다시가본듯합니다
준함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준함님 사찰 사진과 설명 상세히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하여 선지식 명찰에 대해 올려 주시길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