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길이지만 가끔은 길을 찾지 못한다. 동화는 사람들이 발에 차일 정도로 까운 주말, 여전히 수염난 사내의 피리소리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바닥을 걸어가는 아기 같은 오리인형장사의 손끝에서 풀린 날씨를 실감할 수 있었다. 문화를 팔아먹는 장사꾼들의 골목이라고 해도 그저 문화가 그리워 찾아오는 사람들의 보금자리가 있으니 다행한 일이다. 세종대왕, 신숙주, 혹은 안동김씨를 떠오르게 하는 기와집들, 운현궁과 창덕궁으로 가는 길목이기도 하지만 새삼 그곳에 가면 골목마다 귀천처럼 또 예술모자를 쓰고 하나둘씩 모여드는 사람들의 훈기가 모여 모락모락 피어내는 이야기가 있어 반갑지 않던가.
길을 따라 번지없는 주막까지 내려갔다 다시 길을 올라섰다. 동화는 자신이 가려고 하는 북촌이란 이름 대신 촌이란 이름을 보았는데 그 촌이 그 촌인지 알지 못했다. 귀천은 안국에서 들어오는 골목길 부근에도 걸려 있었는데 그것이 어느 곳으로 돌아가는 귀천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안국에서 시작한 골목이 인사동 1길 , 인사동 2길... 이런 식으로 종각쪽으로 뻗어 있었다. 너름한 품, 오래된 나무의 질감이 참 정감 있게 다가오는 곳이 북촌이었다. 북촌이 언제 촌으로 바뀌었지. 반가운 사람들의 만남이었다. 멀리 외촌이 보였다. 그곳엔 러시아 사람들 특유의 스카스카 하는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음식 맛은 그렇게 끌리지 않지만 그래도 분위기는 좋아요. 한공 특유의 억양이 입이 큰 소줏잔 너머로 들려왔다. 오늘은 또 좋은 분들과 함께 하니까 음식 맛도 좋아진 것 같아요. 안 그래요.
베니스라고도 불리는 베네치아, 그 물의 도시를 떠올리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작품의 이야기로 걸음을 옮겼다. 잘 다듬어진 듯 보였던 문장에 대한 한공님의 지적은 날카로웠다. 어느 구절인가를 두고 이런 구절은 비문이란 말까지 나왔지만 그래도 그녀의 문장이 지닌 섬세함은 오히려 그 내용을 과도하게 포장한 것 같은 화려함으로 비치게 만들었다. 파리, 베네치아로 이어지는 배경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닥 새롭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있음도 지적했다. 문장이 조금 조악하더라도 내용이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것 아닌가요, 동화를 그런 말을 해놓고 다시금 문장이 어느 선은 돼야 한다고 물러서기도 했지만 정작 그녀가 작품을 퇴고하는데 걸리는 시간의 대부분을 그렇듯 문장을 고치는데 보내는 것처럼 보였다.
"저는 글을 쓸 때 퇴고를 오래 해요."
사람마다 글을 쓰는 스타일이 다른데 그녀는 구상을 오래하고 또 퇴고를 오래하는 편이었다.물론 거의 대부분이 그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한꺼번에 쭉 뽑아내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구성이나 주제의 깊이보다는 글이 지닌 오류에 더 예민한 듯 보였다. 그건 오류가 적은 글이 좋은 글이란 생각을 떠올리게 했지만, 정작 그녀의 소설에 등장하는 장치물들은 녹아난 사건의 얼개가 아니라 그저 하나의 개념으로 보였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에 나오는 애니콜과 A/S까지도 무언가를 고려한 장치였다고 말했지만 그 또한 개념적인 장치란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불륜인가요. 아니면 어떤 새로운 곳으로 다시금 돌아오는 그 차이가 무엇인가요.벗어버릴 수 없는 하나의 굴레인가요?"
"저도 보면서 그 아내가 한계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가 없어야 해요."
너무 틀에 박힌 듯한 갈등의 구도, 그녀의 얼굴이 그려지지 않는다는 한공의 지적처럼이나 어쩌면 입체적인 인물의 묘사아 또한 이야기를 끌어가는 갈등과 해결의 포석이 조금 더 예리하게 제시되지 못한 아쉬움이 들었다. 하지만 동화는 그녀의 소설쓰기 스타일이 지닌 그 나름의 장단점이 맞물려 있기에 또한 그건 그렇게 쉽게 고쳐갈 수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광고회사에 다니는 한 여자가 자신이 사랑하는 유부남을 떠나 가고 싶어하는 곳 베니스, 그건 가끔 페니스로 들리기도 하지만, 그곳에서 그는 또 다른 남자를 만나 관계를 맺지만 정작 그녀가 다시금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오고 싶어하는 그 간절함은 잘 보이지 않는다. 동화는 줄곧 그녀 작품에 가장 결정적인 연결고리의 취약이 그녀가 그렇게 베니스로 떠나지 않으면 안 되는 필연적인 이유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과거도, 그녀의 유부남과 갈등을 일으키는 이면도 잘 보이지 않았다. 심플하다는 말에 대한 분노, 또 뺨 때리기 정도인가. 왜 그녀가 그 베네치아로 가야 하는지 그저 평범한 불륜을 대단한 르네상스의 치장으로 꾸미지 않았는지, 크리스털도 고온의 꿈과 냉정의 압력에 쉽게 깨어지는 상징성으로는 의미가 있지만 조금 더 작중 인물들의 갈등과 사건을 통해 보여주어야 하는 건 아니었을까.
동화는 비평을 할 때마다 비평보다 앞서지 못하는 글쓰기를 돌아보게 되었다. 비평가도 아닌 사람이 비평을 앞세워 자신의 글쓰기를 주문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그건 어찌보면 창작을 위한 하나의 정보교환이나 혹은 작품이 지니는 서로 다른 작품의 특성을 이해하려는 시도로 보였다. 문장에 기울어져 주제가 멀어지고 주제를 드러내기 급급한 나머지 문장이 조악해지는 오류를 어떻게 넘어서느냐 하는 문제였다. 외촌에서 그 스카스카 일행이 귀천골목으로 빠져나갈 때 우리도 그들의 노란머리를 따라 나섰다. 골목엔 완연히 어둠이 내렸고 거리에 가득하던 사람들은 빠져나가고 없었다. 번지 없는 주막을 향해 다시 길을 내려갔다. 달빛을 보았는지, 아니면 달빛이 건물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주막으로 들어서는 길 버터에 무언가를 굽는 냄새가 비위상한다고 말하던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번지 없는 주막으로 들어섰다.
한공은 가끔씩 화면이 넓은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에 담긴 동화는 자신이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나 혹은 열변을 토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가끔은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도 계면쩍음보다 당당함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건 일그러진 모습이 더 인간적으로 느껴질 때였다. 프리지어 물결같은 그녀의 스카프, 그리고 반듯반듯 솟구쳐 오른 짧은 머리칼, 그리고 오르락내리락 하는 경상도 말투가 술잔 너머에서 건너왔다. 창밖에는 수많은 작은 전구들이 별빛처럼 반짝였다. 눈꽃이 핀 것처럼 흰 나무의 가지, 생일을 맞아 터지는 축포와 함께 술잔을 나누고, 호박 같은 케익, 알탕과 함께 아득한 밤이 깊어갔다. 평촌과 양재로 향하는 그 막차가 떠나갈 무렵, 우리는 한공을 남겨두고 마지막 열차가 떠날 시간임을 알리는 지하도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새로운 한 주가 전동차처럼 어둠 속으로 몰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