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균이와 준이가 주간활동보호센터에 등원하면서 아침활동 시간이 한 시간이상 빨라졌습니다. 10시 전에 집에서 출발해서 센터에 데려다주어도 10시 반이 안되니 완이랑 가볼 수 있는 오름이나 산책로가 길어도 좋습니다. 4시까지 다시 데리러가면 되니까 시간이 충분합니다.
오늘은 작정하고 거문오름을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거문오름은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지질공원 중의 하나로, 그 명성만 듣고는 아이들 몰고 갔다가, 입장시간이 지나서 입구만 돌다 돌아온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충분히 입장시간을 맞출 것 같았습니다. 부지런히 택배도 마무리하고 먹을 것도 좀더 준비하고 거문오름으로 출발!
도착해서 입장권을 사려니 예약했냐고 묻길래, 아 오늘도 실패인가? 실망하려던 찰라 안내소가서 예약 못했다고 말을 해보라고 합니다. 다행히 11시반 출발할 수 있다고 하니 신상정보를 다 적고나서 출입증은 11시반이 되어야 교부된다고 기다리라고 합니다.
완이데리고 화장실도 다녀오니 11시 반이 금방인데 출입증을 주는데도 호명을 합니다. 출입증만 받으면 오름등반을 시작해도 되는 줄 알았더니 거문오름은 개별등반을 허락하지 않아서 해설사 한 분이 여러 명의 탐방객 팀을 이끄는 방식으로만 가능하니... 아 이건 완이데리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네... B사감같은 외모의 중년여성이 우리가 따라야하는 안내자이자 해설사!
초장부터 등반원칙, 코스설명, 주의할점 등등 장황한 설명으로 시작하니 몸에 주리를 틀어대는 완이, 사람들이 꽤 많이 모여 북적이니 더 산만해지는 듯 합니다. 안내자 말로는 거리차이나지 않게 따라와야 한다고 하는데 거리차이나지 않게 따라가는 것이야 못할 게 없지만 중간중간 역사적 생태적 자연적 해설이 펼쳐지는지라 우리가 민폐족이 되는 건 분명합니다.
해본 적은 없지만 단체여행 온 듯한 그 분위기 그대로입니다. 단체로 몰려다녀야하고 해설자의 안내와 설명에 귀기울여야 하고... 도저히 그럴 상황이 못되니 뒤처져서 눈 밖에 벗어나지 않을 정도로만 따라다니다보니 그것도 참 구속같이 느껴집니다.
거문오름은 1코스 정상코스, 2코스 분화구코스, 3코스가 있는데 안내해설사는 2코스까지만 동행. 3코스는 선택인데 1, 2코스만 돌아도 5키로 이상되는 거리라서 거기만 하기로 마음을 잡고 거리를 두고 계속 따라만 갑니다.
거문오름은 곶자왈 중의 하나이니 울창한 숲보다는 다양한 수종과 상록수급 식물들, 이끼들의 천지입니다. 곶이 숲이라는 제주도 말이고 자왈이 바위라는 말이니 화산암석들 위로 형성된 자연숲이라 확실히 자연스럽습니다. 바위 위에 그대로 드러난 뿌리하며, 나무줄기를 타고 올라간 기생식물 넝쿨이 고색창연하고, 곳곳에 일제시대 일본갱도도 수두룩. 거문오름의 아픈 역사적 흔적들이 꽤 남아있습니다.
거문오름은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산책로 거의 모든 길이 인공데크로 깔려있어서 걸어다니기는 아주 편합니다. 오르막 내리막도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심한 경사길도 별로 없는 편이라 산타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재미없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저처럼 숲과 나무, 지질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더할나위없이 심오한 느낌을 주는 깊은 산길입니다.
최대한 민폐끼치지 않는 방법은 너무 가까이도 아니고, 너무 멀어져서도 안되는데 (해설사가 반드시 같이 해야된다고 강조를 해서) 중도에 완이가 큰 일을 저질러 결국 우리는 우리팀의 시야에서 완전 멀어지긴 했습니다.
큰 일이란 팬티에 그대로 변을 싸버린 것. 정말 못살아... 소리가 저절로 나옵니다. 그렇게 먹어댔으니 싸놓은 양도 팬티가 무릎까지 내려올 정도. 시간을 정해서 팀들을 단체로 올려보내니 불쑥 사람이 나타나거나 하는 일은 없어서 이 점은 아주 좋습니다. 어찌할 수가 없으니 팬티는 잔뜩 변을 머금은 채로 썩어가는 나무잔가지 쌓여진 곳에 잘 안보이게 버렸고, 물티슈도 엉덩이 닦는 것들이라 싸들고 올 수도 없어서 나무들 썩은 틈새에 안쪽 깊이 넣었습니다.
미안합니다! 유네스코 지정될 수준의 천연기념물 444호! 조금의 훼손도 안될 말인데 그런 아름다운 숲에 오염물을 묻었으니 한라산 신령님께 사죄드려야 할 일입니다. 어쩔 수가 없었다는 것을 꼭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비록 대형사건을 빚기는 했어도 거의 12,000보 정도되는 거리를 군말없이 잘 걸었습니다. 다음에는 3코스까지 다 거쳐보아야 되겠습니다. 태균이가 없으니 사진찍어 줄 사람이 없어 셀카라도 남겼습니다.
끝나고 동쪽 해안도로타고 표선에 도착, 싱글벙글 두 녀석 데리고 돌아오는 길, 어제처럼 수산한못 두어바퀴 산책하고. 수산한못 주변에는 무밭이 꽤 넓게 펼쳐져 있는데 요즘 무값이 폭락해 뽑지도 않고 그냥 갈아엎어버리는 일이 많다 하네요. 오늘이 16도까지 올라갔으니 1월 제주무농사가 안될 수는 없지요. 그래도 수산한못 주변으로는 요즘 무 수확이 한창입니다.
수산한못 도는데 정자에서 꼼짝않고 버티는 완이를 보더니, 태균이 가던 길을 돌아서서 완이에게 가더니, 잘 챙겨서 손잡고 데리고오는데 아주 훌륭해요! 그러고보니 완이가 그렇게 손가락조작을 못하더니 드디어 약속! 하고 말하면 새끼손가락만 펴고 다른 손가락은 오무립니다. 아직은 오른손만 가능하지만 이게 어딥니까! 경사라고나 할까요? 비록 당황스런 일들도 여전하지만 발전하는 모습도 팍팍 튀어나오니 그래서 '못 살아...' 한탄하다가도 다시 최고라는 '엄지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첫댓글 한편의 영화 같습니다. 완이가 인적 없는 숲에서 큰 일을 봐서 넘 다행이고 ~ 예전에 검은 오름 네비 치고 갔다가 인적 엾는 한적한 곳에 데려다 줘 무섭기도 하고 그냥 온 적이 있습니다. 태균씨, 준이씨 쎈터에 잘 적응해 넘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