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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 하느님의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구원
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23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36 한나라는 예언자도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37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38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39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40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루카 2,22-40
주님 봉헌 축일(축성 생활의 날)
교회는 성탄 다음 40일째 되는 날 곧 2월 2일을 주님 성탄과 주님 공현을 마무리하는 주님 봉헌 축일로 지낸다. 이 축일은 성모님께서 모세의 율법대로 정결례를 치르시고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하느님께 봉헌하신 것을 기념한다. 예루살렘에서는 386년부터 이 축일을 지냈으며, 450년에는 초 봉헌 행렬이 여기에 덧붙여졌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날을 ‘축성 생활의 날’로 제정하여, 복음 권고의 서원으로 주님께 축성받아 자신을 봉헌한 축성 생활자들을 위한 날로 삼았다. 이에 따라 교회는 해마다 맞이하는 이 축성 생활의 날에 축성 생활 성소를 위하여 특별히 기도하고, 축성 생활을 올바로 이해하도록 권고한다. (오늘의 전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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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주례를 섰던 부부가 있습니다. 이 부부를 처음 만난 것은 신부가 된 후 첫 본당에서였습니다. 둘이 연인이라면서 늘 붙어 다니는데 약간의 의문이 생기는 것입니다. 남자 친구는 훤칠한 키에 연예인처럼 잘 생겼고, 안정적이고 좋은 직장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에 반해 여자 친구는 작은 키에 외모도 별로 뛰어나지 않았고, 직장을 구하고 있는 실업자 신세였지요. 도저히 둘의 조합이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눈에 안경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 본당에서 6개월 정도를 생활하면서 이 여자 친구가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늘 자신감 넘치게 생활하는 모습, 그리고 남에 대한 배려의 마음도 대단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누구도 못 생겼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둘의 만남에 대해 ‘남자가 아깝다’라는 말보다는 오히려 ‘여자가 아깝다’라는 말을 더 많이 하더군요.
외적으로 못 생긴 사람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못나 보이는 사람은 문제가 있습니다. 못나 보이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것만 중요하게 여기며 사는 사람은 못나 보이는 사람입니다. 또한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 없이 소극적으로 살아가는 사람 역시 못나 보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것 하나가 있습니다. 이렇게 못나 보이는 사람이 실제로도 못 생겼다는 말을 듣는다는 것입니다.
못나 보이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 봉헌된 우리라는 것을 기억할 때, 절대 못나 보이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로부터 하느님께 드리는 봉헌물은 항상 최고의 것이었습니다. 쓸모없는 것, 형편없는 봉헌물을 하느님께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을 주님께 봉헌한다면, 내 자신을 어떤 상태로 만들어야 하겠습니까? 최고의 봉헌물이 될 수 있도록 스스로를 잘나 보이는 모습으로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주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봉헌되신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 날을 ‘봉헌 생활의 날’로 정하고, 자신을 주님께 봉헌한 수도자들을 위한 날로 삼았습니다. 물론 수도자들을 위한 날이기도 하지만,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 각자의 모습을 되돌아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자신 없이 살아가면서 불평불만으로 가득하고 세상의 것만 중요하게 여기면서 살아간다면, 즉 못나 보이는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주님께 바치는 최고의 봉헌물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라면서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고 복음은 우리에게 전합니다. 단순히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적극적으로 사시면서 최고의 봉헌물이 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최고의 봉헌물로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총애를 받습니다.
(조명연 신부님 「오늘의 묵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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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 신부님 글 드립니다~~
「로댕 이야기(김보은, ‘열정에 기름 붓기’ 중에서)」
수많은 걸작을 탄생시킨 위대한 조각가 로댕. 그런 그도 어릴 적에는 내성적이고 공부도 못하는, 그야말로 '지진아'였다. 모두가 그를 무시했고, 그 역시 더욱 소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로댕이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것이 있었다. 그림 그리기도, 조각하기도 아닌 그것은 바로 꿈 말하기!
중학교 시절 어느 날, 지루한 수업분위기를 깨기 위해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물었다.
"너희는 꿈이 뭐니?"
로댕은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제 가슴 속은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 같은 위대한 예술가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관심 받지 못하고, 내성적이었던 로댕은 적어도 자신의 '꿈'을 말하는 것에서 만큼은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쳤던 것이다. 그리고 로댕은 진짜로 위대한 예술가가 되었다.
이렇게 자신의 꿈에 대해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못나 보이는 모습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잘 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행복을 두 손안에 꽉 잡고 있을 때는 그 행복이 작아 보이지만, 그것을 풀어준 후에는 비로소 그 행복이 얼마나 크고 귀중했는지 알 수 있다(막심 고리키)>
주님 봉헌 축일(축성 생활의 날)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루카 2,22~40)
モーセの律法に定められた
彼らの清めの期間が過ぎたとき、
両親はその子を主に献げるため、
エルサレムに連れて行った。
(ルカ2・22-40)
When the days were completed for their purification
according to the law of Moses,
Mary and Joseph took Jesus up to Jerusalem
to present him to the Lord.
(Luke 2:22-40 )
主の奉献の祝日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イエスニメ ブモヌン アギル イエルサレムロ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デリゴ オルラガ ジュニムケ バチョッタ。
(루카 2,22~40)
モーセの律法に定められた
모오세노 릿포오니 사다메라레타
彼らの清めの期間が過ぎたとき、
카레라노 키요메노 키칸가 스기타 토키
両親はその子を主に献げるため、
료오신와 소노 코오 오모니 사사게루 타메
エルサレムに連れて行った。
에루사레무니 츠레테잇타
(ルカ2・22-40)
When the days were completed for their purification
according to the law of Moses,
Mary and Joseph took Jesus up to Jerusalem
to present him to the Lord.
(Luke 2:22-40 )
Feast of the Presentation of the Lord
Luke 2:22-40
When the days were completed for their purification
according to the law of Moses,
Mary and Joseph took Jesus up to Jerusalem
to present him to the Lord,
just as it is written in the law of the Lord,
Every male that opens the womb shall be consecrated to the Lord
,
and to offer the sacrifice of
a pair of turtledoves or two young pigeons,
in accordance with the dictate in the law of the Lord.
Now there was a man in Jerusalem whose name was Simeon.
This man was righteous and devout,
awaiting the consolation of Israel,
and the Holy Spirit was upon him.
It had been revealed to him by the Holy Spirit
that he should not see death
before he had seen the Christ of the Lord.
He came in the Spirit into the temple;
and when the parents brought in the child Jesus
to perform the custom of the law in regard to him,
he took him into his arms and blessed God, saying:
“Now, Master, you may let your servant go
in peace, according to your word,
for my eyes have seen your salvation,
which you prepared in the sight of all the peoples:
a light for revelation to the Gentiles,
and glory for your people Israel.”
The child’s father and mother were amazed at what was said about him;
and Simeon blessed them and said to Mary his mother,
“Behold, this child is destined
for the fall and rise of many in Israel,
and to be a sign that will be contradicted
-and you yourself a sword will pierce-
so that the thoughts of many hearts may be revealed.”
There was also a prophetess, Anna,
the daughter of Phanuel, of the tribe of Asher.
She was advanced in years,
having lived seven years with her husband after her marriage,
and then as a widow until she was eighty-four.
She never left the temple,
but worshiped night and day with fasting and prayer.
And coming forward at that very time,
she gave thanks to God and spoke about the child
to all who were awaiting the redemption of Jerusalem.
When they had fulfilled all the prescriptions
of the law of the Lord,
they returned to Galilee, to their own town of Nazareth.
The child grew and became strong, filled with wisdom;
and the favor of God was upon him.
2026-02-02「わたしはこの目であなたの救いを見たからです。」
+神をたたえよう。神は偉大、すべては神に造られた。
おはようございます。
今日は主の奉献の祝日です。
救い主・イエス・キリストと神の母の聖マリア、聖母の配偶者聖ヨゼフ、諸聖人の大いなる祝福がありますように!
また、大天使とすべての天使、私たちの守護の天使が今日も皆さまを見守り平和でありますようお祈りします。
**********教会は、主の御降誕から四十日目にあたる二月二日を、主の奉献の祝日として祝います。この祝日は、聖母マリアがモーセの律法に従って清めの儀式を行い、神殿において幼子イエス様を神にお献げになった出来事を記念するものです。
エルサレムではすでに386年からこの祝日が祝われており、450年にはこれにろうそくの奉献行列が加えられました。
聖ヨハネ・パウロ二世教皇は、この日を**「奉献生活の日」**と定め、福音的勧告の誓いによって主に奉献された奉献生活者のための日とされました。これにより教会は、毎年この奉献生活の日に、奉献生活の召命のために特別に祈り、また奉献生活を正しく理解するよう信者に勧めています。
(本日の典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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ルカによる福音
<わたしはこの目であなたの救いを見たからです。>
2・22モーセの律法に定められた彼らの清めの期間が過ぎたとき、両親はその子を主に献げるため、エルサレムに連れて行った。23それは主の律法に、「初めて生まれる男子は皆、主のために聖別される」と書いてあるからである。24また、主の律法に言われているとおりに、山鳩一つがいか、家鳩の雛二羽をいけにえとして献げるためであった。
25そのとき、エルサレムにシメオンという人がいた。この人は正しい人で信仰があつく、イスラエルの慰められるのを待ち望み、聖霊が彼にとどまっていた。26そして、主が遣わすメシアに会うまでは決して死なない、とのお告げを聖霊から受けていた。27シメオンが〝霊〟に導かれて神殿の境内に入って来たとき、両親は、幼子のために律法の規定どおりにいけにえを献げようとして、イエスを連れて来た。28シメオンは幼子を腕に抱き、神をたたえて言った。
29「主よ、今こそあなたは、お言葉どおり
この僕を安らかに去らせてくださいます。
30わたしはこの目であなたの救いを見たからです。
31これは万民のために整えてくださった救いで、
32異邦人を照らす啓示の光、
あなたの民イスラエルの誉れです。」
33父と母は、幼子についてこのように言われたことに驚いていた。34シメオンは彼らを祝福し、母親のマリアに言った。「御覧なさい。この子は、イスラエルの多くの人を倒したり立ち上がらせたりするためにと定められ、また、反対を受けるしるしとして定められています。35――あなた自身も剣で心を刺し貫かれます――多くの人の心にある思いがあらわにされるためです。」
36また、アシェル族のファヌエルの娘で、アンナという女預言者がいた。非常に年をとっていて、若いとき嫁いでから七年間夫と共に暮らしたが、37夫に死に別れ、八十四歳になっていた。彼女は神殿を離れず、断食したり祈ったりして、夜も昼も神に仕えていたが、38そのとき、近づいて来て神を賛美し、エルサレムの救いを待ち望んでいる人々皆に幼子のことを話した。
39親子は主の律法で定められたことをみな終えたので、自分たちの町であるガリラヤのナザレに帰った。40幼子はたくましく育ち、知恵に満ち、神の恵みに包まれていた。(ルカ2・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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チョ・ミョンヨン神父様の『今日の黙想』です。
私が司式したある夫婦がいます。この二人と最初に出会ったのは、司祭になって最初に赴任した小教区でした。二人は恋人同士だと言って、いつも一緒に行動していましたが、私は正直、少し疑問を感じていました。
男性は背が高く、まるで芸能人のようにハンサムで、安定した良い職業に就いていました。それに対して女性は小柄で、外見も特別に目立つというわけではなく、仕事を探している無職の状態でした。どう考えても釣り合わない組み合わせに見えたのです。私は心の中で、「まさに“惚れた目にはあばたもえくぼ”だな」と思っていました。
しかし、この小教区で半年ほど共に過ごすうちに、私はこの女性がどれほど魅力的な人であるかを知るようになりました。いつも自信をもって生きる姿、そして他者への深い配慮。そのような姿を見ているうちに、誰も彼女のことを「美しくない」とは思わなくなりました。やがて二人の関係についても、「男性がもったいない」という声より、「女性の方がもったいない」という声の方が多く聞かれるようになったのです。
外見が美しくないことは、問題ではありません。しかし、「みすぼらしく見える生き方」は問題です。
では、みすぼらしく見える人とは、どのような人でしょうか。
利己的で、世俗的なものだけを大切にして生きる人です。また、自分に自信がなく、消極的に生きている人も、みすぼらしく見えてしまいます。興味深いことに、そのような人は、実際の外見までも美しくないと言われてしまうのです。
私たちは、みすぼらしく生きてはなりません。
主に奉献された者であることを思い起こすなら、決してそのような生き方をしてはならないのです。
古来より、神に献げられる供え物は、常に最上のものでした。役に立たないものや、粗末なものを神に献げることはなかったのです。
それでは、私たち自身を主に献げるとするならば、どのような姿であるべきでしょうか。
自らを最上の奉献物とするために、日々、自分自身を「生き生きとした姿」へと整えてい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
今日は、主がエルサレムの神殿において奉献されたことを記念する日です。そのため教会は、この日を「奉献生活の日」と定め、主に自らを献げた奉献生活者のための日としています。
もちろん、奉献生活者のための日ではありますが、それと同時に、神の子である私たち一人ひとりが、自分自身の姿を振り返る日でもあります。
先ほども述べたように、不平不満に満ち、自信を失い、この世のことだけを大切にして生きるならば、すなわち、みすぼらしい姿で生きるなら、主に献げる最上の奉献物となることはできません。
福音は、イエス様が成長するにつれて、神の恵みを受けておられたと伝えています。それは、単に神の子であったからでしょうか。
いいえ、そうではありません。
イエス様が、常に御父の御心にかなった生き方を選び、最上の奉献として生きられたからこそ、神の御寵愛を受けられたのです。
私たちもまた、最上の奉献物として生きる者となりましょう。
そのとき、私たちは神の御寵愛を受けるの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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毎日の聖書を読み、生き生きとした最上の奉献をお捧げるキリスト者となれますように。聖霊、来てくださ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