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진주에 처가를 둔 이승훈 시인 가다(1)
1962년 데뷔하여 한국시단에 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활약해온 이승훈(1942-2018,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시인이 지난 1월 16일 지병으로 타계했다. 그는 1968년 진주 너우니(평거)로 장가들어 진주를 고향처럼 사랑한 시인이었다. 이시인의 아내는 진주여고를 나와 한양대 공대 섬유학과를 나온 최정자 여사다. 최정자여사와는 캠퍼스 커플로 같은 학과에서 만나 6년여 연애했고 결국 결혼에 이르렀다.
이 시인은 필자가 진주로 와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1968년 가을쯤일까, 직장으로 전화를 했다. 이승훈이라고, 진주로 장가를 들었다고, 그래 진주에 있는 시인 강희근과 차 한잔 하고 싶다는 그런 전화였다. 필자도 반가운 마음이었다. 우리나라 시인 중에서 출발이 확실한 컬러를 지니고 있는 사람으로 박목월 시인의 수제자였다. 우리 두 사람은 공통점이 있었는데 필자는 서정주 시인을 스승으로 하여 활동이 시작되었는데 비해 그는 박목월 시인을 배경으로, 말하자면 배경의 컬러가 뚜렷하다는 점이었다.
두 번째 진주에 왔을 때는 최여사와 함께 만났는데 최여사는 필자와 같은 시기 진주고교와 진주여고를 다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진주여고 32회 졸업생이고 필자는 31회 졸업생인데 진주여고가 같은 해 개교했지만 개교 무렵 학제가 4년제라 5년제인 진주고교보다 졸업기수가 1년 앞서가게 된 것이다. 이 시인의 처가는 평거동 진양호 둑에서 5백여미터 시내쪽으로 위치해 있는 ‘효성농장’이었다. 처가에는 이 시인의 장모 혼자서 농장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결기가 대장부 같았다.
그 무렵 이승훈은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했고, 물론 그 이전에 섬유공학과에서 국문과로 전과했고 학부를 수료한 뒤 석사과정을 밟았던 것이다. 문단에서는 ‘현대시’ 동인회에 가담하여 시를 쓰는 것은 물론이고 처음부터 모더니즘 시론을 적극적으로 동인지와 현대시학을 통해 전개해 갔다. 필자는 이 시기 본지 경남일보 칼럼을 수시로 썼는데 이승훈을 만난 이야기를 <처갓집에 온 시인>이란 제목으로 소개했다.
앞으로 돌아와 이번에 치룬 <고 이승훈 시인 한국시인장>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시인장은 2018년 1월 19일 오전 9시 연세대학교 신촌장례식장에서 개최되었다. 한국시인협회, 월간 현대시, 한양대학교 인문과학대 공동으로 주관했는데 최동호 한국시인협회 회장 영결사, 원구식 현대시 발행인의 조사, 서경석 한양대 인문과학대학 학장의 조사로 이어졌고 조시는 박상순, 송준영 시인이 나서서 고인의 마지막 길에 곡진한 소리로 낭송하여 조객들의 심금을 울려 주었다.
최동호 회장은 영결사에서 “선생님께서는 이상으로부터 김춘수로 이어지는 문학사적 맥락을 가진 20세기 후반 대표적인 시인이셨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선생님의 현대시론 탐구가 모더니즘 시론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불교의 금강경을 접한 이후 보여준 문학적 대전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