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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봉의 제국 공룡능선의 1,275m봉과 그 주변
생각해 보면 등산은 예술작품이다. 산정의 아름다움, 위대한 공간 속의 자유도 다시 발견한
자연과의 친밀한 관계도 이 모든 것이 진정한 산 친구의 우정 없이는 무미건조한 것이다. 산
들은 하나의 다른 세계다. 지구의 일부라기보다는 동떨어진 독립된 왕국이다. 이 왕국에 들어
가기 위한 유일한 무기는 의지와 애정뿐이다.
――― 가스통 레뷔파
▶ 산행일시 : 2013년 8월 16일(금), 오전 안개, 오후 맑음
▶ 산행인원 : 2명(더산, 드류)
▶ 산행시간 : 10시간
▶ 산행거리 : 이정표 거리 21.1㎞(더산 님이 중청봉에서 대청봉을 왕복한 거리 1.4㎞ 불포함)
▶ 갈 때 : 동서울터미널에서 06시 30분에 한계령 가는 첫차 탐(요금 16,600원)
▶ 올 때 : 설악동 소공원에서 택시 타고 속초시외버스터미널로 가서(미터기요금 14,600
원), 동서울 가는 20시 10분발 임시배차 버스 탐(요금 17,300원)
▶ 시간별 구간
06 : 30 - 동서울 출발
08 : 42 ~ 08 : 50 - 한계령, 산행준비, 산행시작
09 : 26 - 1,307m봉
09 : 54 - 서북주릉 ┳자 갈림길
10 : 38 - 1,461m봉
11 : 12 - 1,472m봉
11 : 31 - 끝청봉(1,610m)
12 : 04 - 중청봉(1,665m)
12 : 53 ~ 13 : 15 - 희운각대피소, 점심
13 : 15 - 신선대(1,234m)
14 : 44 - 1,275m봉
15 : 51 - 나한봉(1,297m)
16 : 05 - 마등령, ┫자 갈림길 안부
17 : 47 - 비선대
18 : 50 - 설악동 소공원, 산행종료
1. 범봉
▶ 끝청봉(1,610m)
혹서기나 혹한기에는 더욱 가보고 싶은 설악산이다. 내 겁은 많아서 험로인 용아능선 혹은 용
소골 설악골이나 잦은바위골 등은 안내해 줄 동행자가 없어 아예 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고전
코스로 만만한 공룡능선을 간다. 유난히 더운 올여름의 막바지(?) 피서철이라 많은 사람들이
몰릴 것을 우려하여 한계령 가는 차표를 예매했다.
동서울에서 한계령을 경유하여 양양 가는 첫차는 만차다. 대부분 등산객들이다. 그것도 설악
산을 가려는 등산객들이다. 안내산악회 대절버스 같다. 춘천고속도로는 예상 밖으로 뻥 뚫렸
다. 단숨에 동홍천IC를 빠져나오고 철정사거리 교통신호대기에 걸려서야 잠깐 멈춘다. 인제
들린 버스는 너무 빨리 가는지 원통에서 10분이나 쉰다. 그새 나는 아침 요기한다.
한계령 도착시각 08시 42분. 여느 때보다 빠르다. 한계령에 내리자마자 우리를 환영하듯 한
바탕 시원한 바람이 몰아쳐 맞이한다. 오늘은 배낭이 꽤 무겁다. 점심도시락, 산행 후 갈아입
을 옷가지, 물 3.6리터. 산행수칙 제1장, 산속의 샘을 믿지 말라고 했다. 비상식량으로 절편,
감자도 삶아왔다. 비상한 때 먹는 것이라서 먹지 않고 버리는 경우가 흔하다. 그리고 참외다.
칠형제봉이라고 하던가? 건너편 침봉 연봉을 먼발치로 알현하고 설악루(雪岳樓) 오르는 108
계단에 든다. 더산 님은 아까 한계령에 오는 버스에서 나란히 앉았던 묘령의 여인을 우리 오
지산행 입회에 섭외하느라 걸음이 더디다. 그녀는 혼자서 설악산에 처음 온다면서 산행코스
는 우리와 같다. 소청대피소에서 하룻밤을 묵을 예정이라고 하여 그냥 우리 따라 설악동 소공
원까지 내쳐 뽑자고 부추겼지만 예의 검증한바 발맞출 걸음이 아니어서 그만 두고 말았다.
바람 막은 돌길의 오르막은 덮다. 등로의 박석이 파이게 땀을 흘린다. 안개 속이다. 어둑한 등
로를 길섶 금강초롱이 줄이어 불 밝힌다. 대슬랩 덮은 데크계단 오르고 1,307m봉. 안개가 사
방 가려 끝청봉의 너른 사면이나 점봉산, 귀때기청봉은 가뭇없다. 막 간다. 나무뿌리 움켜쥐
며 젖은 슬랩을 주춤주춤 내렸다가 지능선 자락 길게 돌아 산사태 났던 골이다. 데크다리로
건너고 데크계단 한참 오른다. 숲속 돌길 돌아들면 서북주릉 ┳자 갈림길이다.
한계령에서 여기까지 2.3㎞. 랩타임 1시간 4분. 다른 때에 비하여 부진한 편이다. 짙은 안개
속 햇살이 일순간 조명한 백운동계곡의 가경을 얼른 들여다보고 끝청봉을 향해 발걸음 서두
른다. 안개비가 이슬비처럼 내린다. 이렇게 험했던가? 암릉 같은 너덜 바윗길이 미끄러워 숫
제 긴다. 1,456m봉. 오른쪽 지능선은 온정골로 내린다. 1,461m봉. 오른쪽 지능선은 독주골로
내린다. 골마다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알알이 서려 있다.
몇 번이나 그 골들을 내린 얘기 하고 또 하고 또 들어도 물리지 않는 추억이다. 사면 돌 때는
한여름으로 환장하게 덮다가도 능선에 이르면 바람 불어대 상쾌하기 그지없어 변덕쟁이가
되고 만다. 1,472m봉 넘고 살짝 내렸다가 숲길 지나고 고목의 아치문이다. 반갑다. 끝청봉으
로 들어가는 대문이기도 하다. 등로는 둥근이질풀과 흰진범, 구절초, 산오이풀이 만발한 꽃길
이다.
완만한 오름. 갈지자 연속하여 그리며 오르다 키 큰 나무 숲 벗어나고 머리 내밀면 끝청봉이
다. 끝청봉 또한 빼어난 경점인데 오늘은 안개로 다 가렸다. 암반에 걸터앉아 모처럼 숨 돌린
다. 다람쥐들이 다가온다. 살 많이 붙은 참외 껍질을 보더니 냉큼 잡아채 먹는다. 참외 껍질이
라도 바로 먹을 수 있도록 깨끗이 씻어냈으니 농약이 묻었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2. 서북주릉 갈림길 가는 길
3. 서북주릉 가기 전 산사태 났던 골짜기
4. 백운동계곡
5. 백운동계곡 주변
6. 등로, 더산 님
7. 끝청봉 가는 아치문
8. 만물상과 천불동계곡 주변
9. 천화대 능선 범봉
10. 만물상
11. 범봉
▶ 희운각대피소
더산 님이 뒤에서 몰이하다 앞에서 견인한다. 그래도 아무쪼록 내 걸음으로 갈 일이다. 점심
은 희운각대피소에서 먹자고 했다. 혼자 간다. 이때쯤이면 대청봉이 보일 듯한데 캄캄하다.
중청봉을 등로 따라 오른쪽 사면으로 크게 돈다. 언젠가는 중청봉을 직등해야지 벼른다. 더산
님은 대청봉을 다니러 갔다. 중청대피소에서 왕복 1.4㎞다.
중청봉 사면을 돌아들 무렵 날씨가 일변한다. 햇살이 안개 물리쳐 천불동계곡과 만물상 주변
을 집중 조명하더니 이내 공룡능선이 환해진다. 울산바위와 달마봉이 또렷하게 보인다. 티 없
이 맑은 날이다. 1,275m봉을 위시한 신선대, 범봉, 나한봉이 눈부시게 빛난다. 저기를 간다.
가슴은 두근거리고 마음은 조급해진다.
공룡능선은 “대청봉에서 마등령으로 이어지는 북주릉의 7킬로미터에 가까운 암봉군(岩峰群)
을 말한다. 외설악에서 봉란미의 극치인 천화대(天花臺)를 끼고 솟는다. 오른쪽으로 천불동
계곡을 끼고 솟고, 왼쪽으론 내설악의 가야동 계곡을 끼고 솟아 암봉을 성벽 같이 어깨를 재
듯 독립봉들이 줄을 잇는다.”(손경석, 『설악산』)
소청봉 지나면 가파른 내리막인 울퉁불퉁한 돌길이다. 눈은 걸음걸음마다 즐겁지만 그 걸음
은 한 발 한 발이 보통 고역이 아니다. 녹아난다. 발목과 무릎이 시큰거린다. 진땀이 다 난다.
설악(雪岳)은 이름 그대로 겨울에 올 일이다. 눈 쌓인 겨울에는 이 길 1.3㎞가 봅슬레이 쾌속
으로 얼마나 신났던가. 하니 내리기 더 힘들다.
희운각대피소. 다람쥐들이 반긴다. 여기 다람쥐는 밥은 물론 라면까지 먹는다. 다른 등산객들
은 점심으로 한가하게 라면 끓이지만 우리는 그럴 틈이 없다. 밥을 물에 말아 훌훌 넘긴다. 흘
깃 본 등산로 안내판이 걸려서다. 여기서 마등령까지 5.1㎞로 예상시간 4시간 30분, 거기서
비선대까지 3.5㎞, 3시간. 아직 설악동 소공원까지 3.0㎞가 남았다. 기력은 급격히 떨어질 것
이다. 그렇지만 천불동계곡으로 내릴 생각은 전혀 없다.
12. 가운데 첨봉이 1,275m봉
13. 만물상
14. 대청봉과 중청봉(오른쪽)
15. 용아능선, 그 뒤는 귀때기청봉, 오른쪽 멀리는 안산
16. 범봉
17. 공룡능선의 침봉군, 맨 뒤가 나한봉
18. 울산바위
19. 범봉
20. 가운데가 1,275m봉
21. 1,275m봉 가는 길
22. 맨 오른쪽이 1,275m봉
23. 1,275m봉 오르면서 뒤돌아봄
▶ 공룡능선, 마등령, 설악동 소공원
드디어 능선의 향연이기도 한 침봉의 제국에 든다. 공룡능선이야말로 웅장하고도 섬세한 설
악의 대강(大綱)이다. 비록 마루금 릿지 길은 막았지만(그 핑계로 우회한다) 왕도는 없다. 봉
봉을 꼬박 올라야 한다. 첫 관문인 신선대. 왼쪽 산자락으로 뚝 떨어져 지계곡 건너면 대슬랩
이 나온다. 되게 가파르다. 암반에 철주 박고 매단 로프를 잡고 오른다. 로프 잡은 손바닥에
땀이 배여 미끄럽다.
곧바로 돌계단길이 이어진다. 슬랩의 연속이다. 이윽고 신선대. 그 정점은 오르지 않지만 둘
러 보이는 가경은 방금 전의 고역을 까맣게 잊게 한다. 이에 시원한 바람까지 곁들임에야. 다
음은 1,275m봉이다. 첩첩 봉을 넘어야 한다. 봉마다 암릉을 품고 있다. 짧은 암릉이지만 소홀
히 덤빌 수 없다. 노인봉, 천화대 비켜 샘터 있는 안부를 지난다.
샘터에는 물이 째작하다. 그렇지만 오아시스다. 그 주위에 여러 등산객들이 쉬고 있다. 암사
면 질러 다가간 1,275m봉의 자락은 로프 달린 대슬랩이다. 심호흡하고 다가간다. 금세 숨 찬
다. 슬랩 위는 너덜 길이다. 이곳에서는 바람도 쉰다. 공제선을 올려다보는 것이 귀찮다. 고개
들어 뒤로 확 젖혀야 하므로.
1,275m봉. 바람이 날 살린다. 시원하다 못해 좀 있으면 춥다. 여기서 마등령까지 2.1㎞인데
그 앞의 나한봉이 아득히 멀다. 여태의 발걸음이 아깝게 뚝뚝 떨었다가 지능선을 암릉으로 넘
고 협곡을 밧줄 잡고 오른다. 눈 들어 침봉 점고하며 가쁜 숨 삭힌다. 저 봉우리는 혹 우회하
여 사면을 돌아 넘지 않을까? 에누리 없다. 우회할 듯하다가 곧추 오른다.
나한봉 너덜 길 내려 마등령. 더산 님은 마등봉 갈림길 지난 샘터에서 간이 등목이라도 하려
고 진작 앞서 갔다. 마등봉 갈림길에서 가까운 샘터는 흔적조차 알 수 없게 사라졌고, 금강문
직전의 얕은 골짜기에 물이 잴잴 흐른다. 얼음물 못지않게 차다. 식수 보충한다. 마등봉 사면
도는 길도 멀다. 쳇바퀴 돌듯 지능선을 몇 개나 넘었던가.
가르릉 대던 원뢰(遠雷)의 체면을 살리려는지 비가 살짝 뿌리다 만다. 마등봉 등변에 이르고
왼쪽으로 울산바위 곁눈질하며 내린다. 암봉 너덜 지나고 철계단 내리면 공포의 돌길 너덜이
시작된다. 비선대까지 0.7㎞. 오늘 산행 중 가장 난구간이다. 스틱이 휘청하게 짚지만 무릎에
로드가 심하다. 아무튼 살금살금 내린다.
오늘도 적벽을 오르는 산꾼들이 있다. 고개 들어 구경하느라니 어지럽다. 저 높이에서 콩알만
한 돌이라도 떨어진다면 총알일 것. 적벽 아래를 지나야 하는데 저들이 그런 낙석을 유발하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한다. 잰걸음 하여 얼른 지난다. 마침내 비선대다. 무지개다리 건너 음식
점의 냉막걸리가 목젖을 간질이지만 서울 가는 차편이 궁금하여 애써 참고 발길 돌린다.
소공원 가는 숲속 대로는 어스름하다. 소공원도 주차장도 그다지 붐비지 않는다. 빈 택시가
줄지어 섰다. 속초시외버스터미널로 간다. 동서울 가는 20시 10분발 임시차가 가장 빠르다.
40분의 여유가 있다. 속초의 최근 먹거리로 물회가 대유행이라고 하는데 터미널 근처에는 물
회 하는 음식점이 없다. 터미널 뒷골목 영양탕집으로 간다. 소주 각 1병. 첫 술잔 부딪쳐 즐거
웠던 산행을 자축한다.
24. 나한봉 가는 길에서
25. 나한봉 가는 길에서
26. 나한봉 가는 길에서
27. 세존봉과 울산바위
28. 나한봉에서 온 길 뒤돌아봄
29. 공룡능선의 1,275m봉
30. 공룡능선의 1,275m봉
31. 가운데가 범봉
32. 앞이 천화대 능선
33. 천불동계곡 주변
34. 비선대 위 장군봉
구글어스로 내려다본 산행로
첫댓글 사진만 찍었죠 저많은 곳을 하루에 간건 아니겠죠 ..좋았겠네요
한여름에 공룡리기모드 ㅠ
쩌 죽는 날씨에 고생들 많았습니다..대단하십니다^^
10시간에 설악 21 km 를 완주(?), 그것도 이 더위에, 체력이 좋으시니 정말 좋으시겠습니다. 늙어가면서 다 필요없고 그저 건강하나면 만사형통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