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로국 입국
난하 灤河 하류에서 출항하여 사로국의 근오지까지, 항로 航路의 안전성이 확보되자,
우문청아와 우문사로도 이슬비와 동행하여 사로국 월성 月城을 방문하였다.
원화단 부단주 오첨욱이 안내자 겸 호위무사로 동행하였다.
이슬비는 고향이 사로국 근오지이지만, 4살 어린 나이에 떠나온 관계로 고향에 대한 기억이 희미하다.
또, 이사간 곳이 산동성 봉래 포구라 근오지와 같은 바닷가이므로 어릴 적 기억이 중첩 重疊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지금 20대 중반에 일곱 살 배기 딸을 안고, 친정과 시댁을 찾아가니 감회 感懷가 새롭다.
우문청아와 사로도 보름간의 긴 항해에서 배 멀미로 고생하였지만, 사로국 근오지로 입항하여
쪽배로 갈아타고, 형산강을 거슬러 올라가니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강 주위는 나지막한 산들이 둘러싸고 있고, 산에는 소나무와 갖가지 관목과 灌木과
교목 喬木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린 모습에 절로 정감 情感이 일어난다.
산골짜기마다 수정처럼 맑고 깨끗한 물들이 끊임없이 풍부하게 흘러내려 가고 있었다.
길을 가다 목이 마르면 그냥 아무 곳에서나 흐르는 맑은 물을 두 손으로 떠먹으면 되었다.
물맛이 초원의 텁텁한 물하고는 아예 차원이 달랐다.
먼저 깨끗하고 맑으며 맛의 청량감이 일품이다.
아마도 산에 푸른 나무와 싱싱한 풀이 많아, 짙은 녹음 綠陰의 뿌리로
빗물을 정수 淨水시켜 골짜기로 흘러보내니, 물맛이 더 좋은 것 같았다.
강 주위로 물이 가득 고인 땅에 물로 녹색작물 綠色作物을 키우는
물로 조성된 신기한 물 밭도 처음으로 보았다.
수행원들에게 물어보니 수전 水田 즉, 논이라 한다.
논에는 돌피와 벼를 키운다고 설명해 준다.
논둑과 논에 물을 대는 도랑(수로 水路) 주변에는 각종 수생 식물 水生植物과
형형색색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 머나먼 초원에서 온 일행들을 반기고 있었다.
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들판 곳곳에 물이 흐르는 크고 작은 하천과 물웅덩이들이 많았다.
초원에도 강이나 호수가 가끔 있기는 하나, 어떤 곳은 하루 종일 말을 달려도
물 구경을 아예 하지 못하는 지역도 많았다.
그런데 이곳 사로국은 눈만 돌리면 산과 계곡이고, 그곳은 항시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작은 도랑과 물웅덩이 등의 습지 濕地에는 처음 보는 풀잎이 한 발(양팔을 벌린 길이) 정도로 길고,
두툼하면서도 부드러워 보이는데도 사람보다도 더 키가 큰 풀들이 자라고 있었다.
수행원 隨行員이 ‘부들’이라고 설명해 준다.
줄기는 곧고 꽃이삭은 타원형으로 소시지처럼 생겼으며, 꽃은 7월에 피며 붉은 갈색이다.
꽃말은 ‘용기’다.
꽃가루받이가 시작될 때 기다란 긴 꽃 대가 ‘부들부들’ 떨기 때문에 부들이라 부른다고 한다.
‘부들’은 지나가는 동물이나 바람 등의 외부 外部의 도움이나 충격 없이도 스스로 몸체를 움직이는
한반도 내에서는 유일하게 자력 自力으로 몸통을 움직일 수 있는 자생식물 自生植物이다.
가을철 콩이 여물어가면, 자신들의 미래 씨앗콩을 감싸고 있는 콩깍지 꼬투리를
스스로 비틀어터뜨리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다.
꼬투리를 최대한 비틀어 꼬아 콩깍지를 터트릴 때, 용수철 龍鬚鐵처럼 스스로 탄력 彈力을 만들어
씨앗을 힘껏 튕기는 작용을 하여, 씨앗콩이 최대한 멀리 갈수 있도록 만든다.
식물들은 보기에는 그냥 평범해 보이지만, 가만히 관찰하면 나름대로
특수한 능력 한, 두 개쯤은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흔한 물리적인 방법으로 가시로 자기 몸을 보호하거나, 화학적으로 나쁜 냄새를 풍겨 곤충이나
다른 식물이 기피 忌避하게 하거나, 지독한 독 毒을 품어 스스로 방어하기도 한다.
씨방에 꿀을 생성 生成시켜 벌과 나비 등 곤충을 유인 誘引하기도 하고,
또, 맛있는 과피 果皮나 과육 果肉을 만들어 인간이나 동물을 유도하여 먹게하고,
남은 그 씨앗으로 후세 後世를 이어가기도 하고, 향기로운 향을 내 뿜고 이쁜 꽃을 피워내어
사람들을 유혹 誘惑하여 이곳저곳으로 옮기도록 유도 誘導하기도 하며,
씨앗을 최대한 가볍게 만들어 그 기에 낙하산 落下傘까지 부착시켜 바람을 이용하기도 하고,
자기의 유전인자를 보유한 씨앗을 지나가는 동물의 몸에 붙이어 무임승차 無賃乘車로 먼 곳까지 보내기도 한다.
다른 나쁜 사례를 보면,
빨리 벋어가는 넝쿨을 이용하여 가까이 있는 다른 식물을 감싸고 올라가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다른 식물의 몸체로부터 물과 영양소를 빼앗아 먹으며 자라나,
종래 從來에는 숙주 宿主 나무를 교살 絞殺시켜 버리는 나쁜 습성을 가진 식물도 존재한다.
그렇게 나름으로 특수한 능력을 발휘하여 다음 세대를 이어갈 수 있고,
자신의 유전인자를 널리 퍼뜨릴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나 동물들도 매한가지다.
부들이 몸을 떠는 행동은
콩깍지가 다음 세대의 영역을 넓게 확보하도록 특수한 기능을 발전. 진화시킨 것처럼,
부들도 꽂가루를 멀리 보내기 위하여 취하는 생식 生殖을 위한 일종의 몸부림이다.
하여튼, 식물이 동물처럼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 있다니, 신기 神奇한 식물이다.
무엇보다 길가의 꽃이나 풀들이 사막이나 고원 高原의 풀처럼 뻣뻣하거나
강인한 느낌이 아니라 아주 부드러웠다.
가축들이 좋아할 풍성하고 부드러운 풀들이다.
손은 대어 보면 마치 말의 부드러운 갈기나 포근한 양털을 만지는 느낌이다.
이상향 理想鄕이다.
지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을까?
초원에서 온 사람들은 다들 자신의 눈을 의심하였다.
계절이 입하 立夏 시기 時期라, 옷을 입어도 덥지 않고, 벗어도 춥지 않았다.
더구나 바람은 있는 듯 없는 듯, 다양한 들꽃 향기를 품고, 살랑살랑 볼은 스치며 지나간다.
강동 江東을 지나 비화현 比火縣(현재의 안강 安康)을 거쳐, 사로국의 시조 始祖 박혁거세 거서간이
태어난 곳으로 알려진, 나정 羅井에서 하선하여 서천 西川을 건너 월성으로 입성하였다.
나정은 사로국의 초대 거서간 박혁거세의 탄생지로 알려져 있다.
이슬비는 부모님 이진 부부를 뵙고, 우문청아와 사로를 인사시켰다.
우문청하에게는 시어머니는 요하 遼河의 중상류 中上流, 조양 朝陽 부근에서
청하 문주 門主의 신분으로 만나 인사드렸고, 그 이후 적봉 赤峯까지 한 달 가량
같이 이동 하였으나, 시아버지께는 첫인사다.
부모님들은 입꼬리가 양 귀에 걸쳐진다.
평생 한 번이라도 만날 수 있을까 걱정하였는데, 한꺼번에 친손자와 외손녀를
함께 안아보니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
우문청아는 배를 타고 오는 도중에 이슬비가
“언니 사로의 성 姓이 우문 씨라고 먼저 밝히지 마세요.”라는
충고를 듣고는 사로에게 별도로 가르쳤다.
“사로야 지금부터는 너의 이름은 ‘이사로’다”
“왜요?”
“이곳에서는 우문씨가 없으니, 우문씨가 이씨가 된다. 아버지 성씨도 이씨로 호칭 되잖아”
“네, 알았어요”
사로는 그렇게 잘 이해를 한 것 같았다.
할아버지 할머니, 이진 부부는 당연히 ‘이사로’로 여기신다.
“이사로, 이사로”
몇 번을 불러본다.
그러나 우문사로는 처음 듣는 사로국의 발음과 또, 성이 귀에 익지 않으니
자신을 부르는 것임을 모르고 딴짓 거리를 하고 있다.
다행히 조부모님이 처음 보는 어리고, 귀여운 손주라 너그럽게 이해하시고,
몸소 사로에게 다가가 안아주신다.
그러니 우문청아는 시집 성씨를 따르지 않고, 친정 성씨를 사용하는
처지에서 속으로 죄를 지은 기분이 든다.
중부의 부모는 그래도 손자가 귀엽기 그지없다.
손자의 생김새가 중부의 어릴 때 모습과 흡사하고 이름도 ‘사로’란다.
자신의 조국을, 고향을 잊지 않고 손자 이름까지 나라 명 名과 같이 짓다니,
아들 중부의 마음 씀씀이가 대견스럽다.
더구나 아들 중부는 초원에서 소왕으로 군림 君臨한단다.
이진은 소를 잡고 잔치를 벌인다.
월성의 서쪽 동내가 떠들썩하다.
친지와 지인들에게 키가 크고 늘씬한 이쁜 며느리와 씩씩한 손자 자랑하기에 해가 지는 줄 모른다.
우문청아도 시아버님의 권유로 방문객을 맞이하면서, 축하객 대다수가
흉노 출신임을 알고는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머나먼 거리, 수천 리를 두 달에 걸쳐 어렵게 찾아왔음에도 이역 異域 땅에서
같은 동족을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다.
우선 언어 소통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흉노 출신 축하객들도 흉노족의 명문대가 부족인 우문가 于問家의 명성 名聲을 익히 아는지라
모두 정중히 우문청아와 사로에게 진심 어린 축하 인사를 하였다.
개인적으로 우문 무특 천부장과 친분이 있었던 서너 명의 사람들은 우문 천부장이 소왕으로
등극 登極하였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개별적으로 우문청아에게 축하 겸 안부 인사를 재차 하였다.
우문청아는 축하객이 돌아간 후, 시아버지의 깊은 배려가 있었음을 알고 재차 엎드려 고마움을 표하였다.
다음날 이슬비는 시댁을 찾았다.
박달거세 부부도 며느리와 손녀를 반가이 맞아주신다.
어쩔 수 없이 볼모로 초원에 남겨두고 떠나온 아들이 머나먼 험지인 이역 異域 땅에서 혼인식도 올리고
게다가 귀여운 소녀까지 얻었으며, 천부장 직과 요직을 두루 맡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친견 親見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감추고 대단히 즐거워하신다.
박지형의 어머니는 아들을 보고 싶은 마음에 눈물을 흘리니, 며느리 이슬비가 위로해 드리고,
손녀 ‘안개’가 재롱을 떨며 분위기를 바꾼다.
이슬비는 시아버지인 박달대군에게 연락단이 초원에서 원화단으로 명칭을 바꾼 후,
박지형이 근위대장직을 맡고 원화 단원 모두가 요직을 맡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전해 드리고, 원하는 젊은이가 있으면 초원으로 더 데려가, 연락책과 근위대
소속병으로 활용할 계획을 설명해 드렸다.
박달거세는 이미 초원을 오가는 연락병으로부터 아들 지형의 일거수일투족 一擧手一投足의
움직임을 늘 보고 받아 그 현황을 훤히 알고 있었으나,
(볼모의 안전함을 상대 국가와 그 가족들에게 자주 알려주는 것이
볼모의 효과를 최대화 시킬 수 있는 한 방법이다.)
며느리로부터 직접 아들의 근황을 전해 들으니, 반갑기 그지없다.
박달 거세는 즉시 알아보겠다고 시원스레 답한다.
말로는 연락병과 아울러 근위병을 알아보겠다고 쉽게 답했지만, 박달거세는 이미 자기 아들의
직무와 직결 되어있는 근위병에 적절한, 유능한 인재들을 선출할 계획을 치밀하게 마련하고 있었다.
아니, 이전부터 초원의 흉노와의 연락을 담당할 연락책으로 자질이 뛰어난
젊은이 300여 명을 발굴하여, 지속적으로 엄격히 훈련 시키고 있는 특수직무를 전담하고 있었다.
달포 동안 월성에 거주하며 가까운 경치 좋은 산천 山川을 원화단 原花團 소속
낭자들의 안내로 즐겁게 유람 遊覽하였다.
남산 南山으로 불리는 금오산 金鰲山에 올라 붉은 진달래꽃을 꺾어 먹어보기도 하고,
흉노인 들의 주거지인 입실 入室의 방어리도 방문하여 고향이 초원 출신인 분들에게 인사드리고,
그들의 고향인 초원의 현황도 전해주었다.
그중 몇몇은 초원 생활을 잊지 못하고, 야생 산양 山羊을 개량. 사육시킨 흑염소 10여 마리를
목줄로 묶어 키우며, (초원과 달리 월성은 인가 주변이나 밭에 여러 가지 다양한 작물을 키우기 때문에
만약에 목 줄을 하지 않고, 방목하게 되면 난리가 난다.)
가축을 마음껏 방목하던 드넓은 초원을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어, 초원의 근래 생활사를
꼬치꼬치 캐묻는 인물도 있었다.
아직도 야생의 본능이 꿈틀거리는 유목민 遊牧民의 모습이다.
한 달 보름을 월성의 친정과 시집에서 포근한 봄날을 보낸
이슬비와 우문청아는 초원으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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