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손가락
“찰, 촬, 좌 앙, 좌 앙"
말러 교향곡이다. 스피커에서 저음 부분이 시작되자 남편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서서히 저음이 두터워지면서 고조되자 가만히 소리를 음미하던 남편은 무릎에 손을 올려 놓고 리듬을 타는지 집게 손가락을 이따금 까닥였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불현듯 한때 가졌던 괴상한 기행을 떠올렸다.
대학 1학년 더운 여름날이었다. 얼마간 관현악 동아리 활동을 했던 나는, 무더운 여름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을 정기 연주회를 앞두고 한창 연습에 열을 올리는 중이었다. 그 날도 파트별 연습에 앞서 현악기들은 악장의 피치 파이프 ‘라’ 음에 맞춰 소리를 맞추고 있었다. 현악기들은 종류에 따라 음역이 다르다. 같은 바이올린이라 해도 나무재질이나, 현, 활과 같은 재료에 따라서도 다르고, 연주자의 습관에 따라서도 소리가 달라진다. 사람의 목소리가 다르듯이 악기의 소리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한 음에 맞추어 바이올린부터 비올라, 첼로, 더블 베이스까지 소리가 보태지면 평범하기 그지 없는 ‘라’는 점점 커지고 두터워 지면서 마음을 울리는 무엇이 있었다. 무슨 특별한 곡을 연주한 것도 아닌데도, 음 하나로 분위기를 고양시켰다.
귀는 온전히 열어두고 손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한 손은 줄 감개를 만지면서 다른 손으로는 활을 지그시 그었다. 나의 왼 손가락 시선 너머로 보이는 수 많은 손가락들은 ‘라’에 맞춰 우아하게 왈츠라도 추는듯 했다. 개중에는 연습 부족으로 잔뜩 긴장한 경직된 손가락도, 데뷔 전을 안달 나게 기다리는 겉멋 든 손가락도, 지금을 즐기는 편안한 손가락도 있었다.
아마 그때부터 였던 것 같다. 아름다운 손가락을 찾는 기행이 시작된 것 말이다. 물 좋은 정자 찾기 어렵듯이, 소리 한 획으로 마음을 사로잡던 그 순간처럼 청각을 시각화 할 만한 아름다운 손가락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단순한 소리가 주는 감동의 순간처럼 내가 상상하는 아름다움이란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 것이어서 시선에 잡히는 손가락들도 무언가 부족한 느낌을 주었다.
사람을 관찰할 때면 손을 먼저 보았다. 우선 손은 하얗고, 살결이 매끄러워야하고, 손가락 길이는 길쭉하면서도 관절이 붉어지면 안되었다. 손톱 크기는 손가락과 균형을 이루어야 하고 손톱은 바싹 잘라서 청결해야 하며, 손가락의 움직임은 조급하여 경박스러워서는 안 되고 편안해 보이면서 우아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하게도 식구가 빌려놓은 비디오 테입을 보다가 상상 속에 있던 아름다운 손가락을 찾고야 말았다. 여 주인공과 블루스를 추려고 맞잡은 남자 주인공의 손가락이 상상 속의 손과 거의 흡사했다. 백혈병에 걸린 그 남자 주인공의 손가락은 핏기가 없어 하얗다 못해 창백하였고, 길면서도 우아하고 정갈했다. 주인공의 병색이 깊어질수록 긴 손가락은 더욱 하얗게 빛이났다. 영화가 끝이 나자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내가 사랑한 아름다운 손가락이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손가락들이 음악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가을 연주회를 끝으로 나의 기행도 잠잠해졌다. 수 많은 손가락이 함께 움직인다는 사실이 나를 흥분시켰는지 손가락들이 무대 뒤로 퇴장하면서 아름다움이란 추상도 함께 사라졌다.
생각해보면 어떻게 생겼든지 상관없이 손가락이란 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 저절로 세상이란 무대 위에 올려져서는 죽을 때까지 움직여야 하는 운명인 것이다. 우아하거나 우스꽝스럽거나 할 겨를도 없이 무조건 움직여야 한다. 모차르트의 음악에 맞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 움직여야 하고, 움직이기 위해서 손가락은 존재한다. 잘생김과 못생김의 차원을 넘어서 생각할 겨를도 쉴 여유도 없이 움직여야 바쁜 세상에 그나마 맞출 수가 있다.
오케스트라 연주회에 올려질 모차르트의 곡, 세레나데가 아닌 조화를 이룬 조율음에 심취한 순간처럼 어쩌면 내가 그토록 찾던 손가락은 인생의 삐걱대던 순간에 찾았던 오답이었는지 모른다. 세월의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놓친 부분이 많았다. 손가락이 이뤄 놓은 것을 보지 못하고 손가락 외양만 쫓았던 것이다. 손가락이 아니라 그 손가락이 해낸 일이 중요하다는 걸 이해하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렸다.
결혼하고 보니 남편의 손가락은 당시의 심사 기준으로 평가하자면 최하점에 가까웠다. 손가락 길이감이 부족하고 손톱이 넓적하여 양끝부분이 부채처럼 펴지면서 때가 잘 끼는 손톱이다. 나는 바싹 깎은 손톱 모양을 좋아하지만, 남편은 바싹 깎으면 손톱이 아프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남편의 손가락을 좋아한다. 피아노에서 '도'를 찾지 못해 건반 위에서 왔다 갔다 하는 모습도 좋고, 펜을 짧게 그러쥐는 손 모양도 나름 귀엽다고 생각한다. 엄지와 검지 만을 사용하여 서툴러 보이는 젓가락질은 우아하지는 않지만 친근감이 있다.
지금 말러의 교향곡을 들으며 까딱거리는 저 손가락은 가족을 위해 쉬지 않고 움직이는 성실한 손가락이다. 일 년에 며칠 쉬지도 못하고 부지런히 일을 해내는 아름다운 손가락이다. 그래서 나는 그 손가락의 생김에 상관없이 후한 점수를 주고자 한다. 지금 리듬을 딱딱 맞추지 못하는 저 손가락에 무한한 애정을 느낀다. 다만, 무대에서 너무 과하게 뛰었는지 손가락에서 고단함이 느껴져 마음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