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여행 인터넷 언론 ・ 1분 전
URL 복사 통계
본문 기타 기능
한국미술을 빛낸 경남의 거장...박생광 화백과 이중섭 |
[미술여행=윤경옥 기자] 부산 해운대 달맞이에 위치한 RAC 알앤씨(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 달맞이길 65번길 154, 2층)가 한국적 소재인 오방색 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독자적인 화풍을 완성한 故 내고(乃古) 박생광 화백(1904~1985)의 작품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내고 박생광 展'을 개최한다.
'내고 박생광 展' 전시알림 포스터
6월 7일(금)부터 6월 30일(일)까지 열리는 '내고 박생광 展'은 2004년 부산 시립미술관에서 박생광 사후에 개최되었던 회고전 이후 20년 만에 화백의 작품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다.
이번 전시는 용, 호랑이, 불교, 무속 등 한국적 소재를 독창적인 조형어법으로 재해석했던 고인의 대표 작품들과 꽃과 새, 문화재 등 작가로서의 박생광의 다양한 관심사를 엿볼 수 있는 작품 30여 점을 전시한다. 또 같은 시기 활동한 여류 작가 박래현의 태피스트리 작품 2점과 목가구들을 함께 배치하여 그 시대의 정취와 오늘날의 건축물이 어우러지는 공간을 구성했다.
사진: 범과 용 Tiger and Dragon, 1983, ink & color on paper , 68x69.5cm
● 수묵채색화의 거장, 故 내고(乃古) 박생광 화백
故 내고(乃古) 박생광 화백
한국적 소재인 오방색 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독자적인 화풍을 완성한 박생광 화백은 1956년 부산 미국공보원에서의 전시를 시작으로 부산시 전시관, 부산 동원화랑, 남도화랑, 원화랑 등에서 전시를 열며 부산지역에서 특히 많은 활동을 했다.
1904년 경상남도 진주군 섭천면 천전동에서 출생한 박생광 화백은 1923년 일본 교토시립 회화 전문학교京都市立繪畵專門學校 에 입학하여 ‘근대쿄토파’를 대표하는 다케우치, 무라카미 등으로부터 고전과 근대 기법의 결합을 시도하는 신일본화新日本畵를 배웠다.
1945년 귀국하여 자신만의 화풍을 정립하기 위한 여러 실험을 모색하였고, 1963년 경상남도 문화상을 수상하였다. 1967년 상경하여 홍익대학교와 경희대학교에 출강하며 미술활동을 하였고 이 시기에 한국 민속적 소재를 이용한 화면의 변화를 꾀하기 시작했다. 특히 홍익대에 재직하면서 불교나 민속, 무속 등의 다양한 한국적 소재로 작품을 펴냈다.
화백은 1970년대 후반 독창적 화풍 정립 시기에 접어들어 당시 단색화 주류의 한국 화단에서 채색화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며 독자적인 회화세계를 구축하였다.
박생광 화백은 1977년 진화랑에서 열린 국내 첫 개인전을 통해 "한국적 회화를 현대적 조형성으로 표현하였다."는 평가를 받으며 한국 미술화단으로 부터 크게 명성을 얻었다.
사진: 불상 A statue of The Buddha ,1980s, ink & color on paper, 44x67cm
박생광은 1981년 백상기념관 개인전이후 1982년 인도를 성지순례하며 인도의 뉴델리인도미술협회 초대전(1982년), 1985년 파리 그랑팔레 르 살롱전에 작품을 출품하여 호평을 받았다. 박생광 화백은 1985년 은관문화훈장에 추서됐다.
대표 전시로는 1985년 파리 그랑팔레미술관 ‘르 살롱 85’ 특별초대전과 1986년 호암갤러리 유작전, 2019년 대구시립미술관, 2022년 강릉시립미술관, 2023년 한가람미술관 등의 기획 초대 개인전이 있다.
사진: 용 Dragon, 1980s , ink & color on paper, 68x69.3cm
생애 마지막 8년 동안, 작가는 수묵화에 강렬한 오방색의 채색을 혼합하는 독창적인 기법을 펼쳐냈다. 강렬한 색채와 자유로운 화면구성을 통해 토속적인 정서와 민족성을 표현하여 한국현대미술사에서 독창적인 장르를 구축해낸 수묵채색화의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 박생광 화백의 호는 ‘내고(乃古)’ 또는 ‘그대로’이다. 화백은 자신의 색채와 미감이 ‘그 자체로 한국적인 정체성을 대변한다는 믿음’으로 한글 ‘그대로’를 호로 사용했다.
사진: 학 Crane, 1981, ink & color on paper, 69x67cm
● 우향 박래현 Park Rehyun (1920~1976)
우향 박래현 Park Rehyun (1920~1976). 블로그 자료 캡처
평안남도 진남포의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박래현은 경성여자고등사범학교에서 공부하고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에 입학했다.
고인은 1940년 조선미술전람회 창덕궁상에 이어 1943년 제22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총독상을 수상했다. 이후 1974년 제6회 신사임당상, 1956년 제5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대통령상을 수상했고, 성신여자사범대학교 동양화과 교수(1966~1967)를 역임했다.
남편인 운보 김기창과 함께 동양화(한국화)의 전통적 관념을 타파하고, 판화, 태피스트리 등 다양한 기법과 매체를 활용해 여성 특유의 감성을 작품으로 승화시켜 큰 주목을 받았다.
1960년대에 세계 여행을 한 뒤에는 독자적인 추상화를 완성하고, 이후 미국에서 유학하며 판화와 태피스트리 등으로 표현 영역을 확장했다. 손으로 뜨개질을 해서 만든 직조에 엽전, 철사, 목재 등의 오브제를 연결하여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이후 직조틀을 이용하면서 1미터가 넘는 방형의 직조물을 제작하고 커튼 고리, 하수구 마개 등의 오브제를 결합하여 다양한 조형 실험을 시도하였다.
● 한국미술을 빛낸 경남의 거장...박생광 화백과 이중섭
김재환 경남도립미술관 학예팀장
‘박생광’이라는 작가명을 들었을 때, 우리는 보통 오방색을 활용한 한국 채색화의 거장을 떠올리게 된다. 단청이나 고구려 고분벽화, 탱화, 민화 등에서 보이는 자연스러운 원색(감청(紺靑), 주(朱), 황(黃) 등)을 사용한 대표 작품들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작품들 대부분이 그의 나이 팔순에 다다른 1980년대에 제작됐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물론 팔순의 나이임에도 작품에 대한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제작에 몰두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작가 박생광의 전성기이자 황금기를 1980년대라고 평가하는 것에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삶 전반을 생각해 볼 때 문화예술에 대한 박생광의 열정이 뜨거웠던 시기는 1945년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당시 박생광은 예술전반에 대한 관심이 컸는데 예술이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믿음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해방 이후 일본 적산가옥을 소유하게 된 박생광은 1층에 전시가 가능한 다방을 운영했다. 이곳은 ‘진주문화건설대’(이하 문건)가 주도적으로 사용하면서 진주의 신문화 건설을 주도하게 된다. 당시 이 다방은 문건이 주도한다고 ‘문건다방’으로, 전시를 하는 곳이라 ‘화랑다방’으로 불렸으며, 두 이름을 합쳐 ‘문건화랑’이라 칭하기도 했다.
박생광의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1949년 이용준, 이경순, 오제봉, 설창수, 박세제 등과 함께 진주에서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문총) 진주지부를 결성하고 전국 최초의 종합예술제인 ‘영남예술제’를 개최한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진주에서 영남예술제를 꾸준히 개최하면서,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종합예술제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 행사는 지금도 ‘개천예술제’라는 이름으로 개최되고 있다.
1954년 5월. 진주 대안동 박생광의 집에 손님이 찾아온다. 박생광은 그를 자신의 집에 한 달 간 살도록 해주었으며 심지어 영남미술제의 중요 거점 중 하나였던 카타리나 다방에서 개인전을 열도록 도와준다. 그는 다른 아닌 이중섭이었다.
이중섭은 2년 간의 통영 생활을 정리하고 서울로 가기 전 1954년 5월 한 달 동안 박생광의 집에 머물면서 진주 카나리아 다방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이때 전시되었던 작품 ‘진주 붉은 소’는 최열 선생이 그의 책 ‘이중섭 평전’에서 “20세기 가장 빼어난 걸작”, “진주처럼 영롱한 보석”이라 평가했다. 즉 이중섭의 최고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 진주에서 그려졌고, 그 장소가 진주 대안동 박생광의 집이었던 것이다.
사진: 이중섭 ‘진주 붉은 소’
이런 저간의 사정을 생각해보면 해방과 전쟁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박생광은 문화예술을 통해 시민의식을 고양하겠다는 신념을 성실히 실행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문화예술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거의 활동가 수준의 행보를 하면서도 작가로서의 활동도 쉬지 않았다.
1960년대 박생광은 ‘모란을 잘 그리는 화가’로 유명했다. 1966년 4월 마산 제일다방에서 개최된 ‘박생광 동양화전’에는 화조 10곡 병풍, 어해 10곡 병풍, 모란 6곡 병풍 외 모란을 소재로 한 다양한 작품이 출품됐다. 사실 그가 모란을 열심히 그렸던 이유는 당시 모란이 잘 팔리는 그림의 소재였기 때문이다. 작품을 팔아야 생활이 가능했던 그로서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아니었을까 싶다.
모란 외에도 풍경화도 곧잘 그렸는데 촉석루도 그 소재 중 하나였다. 경남도립미술관에 소장된 ‘고루도’는 한국전쟁 때 파괴되기 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그 자체로 매우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작품은 처음 언급했던 박생광 스타일을 대표하는 그림 중 하나다. ‘금산사의 추녀’는 강렬한 원색과 뚜렷한 주황색 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사진: ‘금산사의 추녀’
금산사의 기와 문양과 십장생의 학이 그림의 장식적 배경이 되고, 과거 미인도에 등장한 인물이 각색되어 주인공으로 자리잡고 있다. ‘금산사의 추녀’가 완성되고 얼마 후인 1985년 박생광은 서울 수유동 자택에서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붓을 놓지 않았던 박생광은 죽음의 순간도 전성기였다. -김재환 경남도립미술관 학예팀장
● 수묵채색화의 거장, 故 내고 박생광 展 전시안내
참여작가: 故 내고(乃古) 박생광 화백, 우향 박래현 화백
전시 일정 : 2024년 6월 7일(금)부터 6월 30일(일)까지
전시 장소 : RAC 알앤씨(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 달맞이길 65번길 154, 2층)
개관 시간 : (화-일) 오전10시 - 오후6시, 월요일 휴관
오픈 행사: 2024년 6월 14(금) 오후2시~6시
문의: 이지윤 팀장(010-8366-8677)
태그#전시#수묵채색화의거장#내고박생광展#박생광화백#금산사의추녀#이중섭진주붉은소#이중섭#김재환경남도립미술관학예팀장#우향박래현#RAC알앤씨#수묵채색화#6월미술여행포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