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과 정의]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ㅡ 문재인 대통령
평등(equal)은, (권리, 의무, 신분이)차별이 없고 똑같다.
공정(fair)은, 공평(치우침이 없음)하고 바르다. : 공평은 나눔의 문제, 공정은 fair play
정의(justice)는, 옳고 바르며 전체가 조화롭다. ㅡ 아리스토텔레스: "정의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모두에게 똑같이 나눌 수는 없습니다. 학교 수학시간에나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각자의 능력에 따라서 분배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특히 경제의 문제가 그렇습니다.
그러면 평등은 포기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최소한에 있어서 '기회'만은 똑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기울어진 운동장'으로부터 '평평한 운동장'으로 바꾸려는 게 '기회의 평등'입니다.
심각하게 한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밑으로 기울어진 곳에 서 있는 사람들은 운동장 밖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그렇게 우리는 살아 왔습니다. 매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기를 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사회적 낙오자'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남아 있게 된 자들로부터는 '사회부적응자'로 낙인이 찍히면서 말입니다. 그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 전태일 분신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면 기회의 불평등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걸까요?
바로 대학 입시 제도부터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대학 입시 제도부터 뜯어고치지 않고서는 '평평한 운동장', 즉 기회의 평등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법무장관 후보였던 조국에 대한 수많은 의혹들이 불거지면서 가장 두드러졌던 게 바로 이 '기회의 불평등'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문제에 대한 얘기를 하거나 논쟁을 벌일 때, 대개는 '일반화'시켜서 말하지 어느 특정 개인을 공격하는 데에 매몰되지는 않습니다. 즉,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을 넘어서 제도의 모순을 지적하고 그로부터 다양한 해결책들을 모색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객관적 논쟁은 사라지고 진영 논리로 나뉘어서 이해충돌 양상으로 번지며 당리당략에 의한 정쟁으로 비화되었고 마침내는 국회 활동이 정지되고 세몰이 광장 정치로 빠져버렸습니다.
그리고 사회적 감시 기능을 하는 언론마저 이를 방관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사회 분열을 부추기는 데 앞장섰습니다. 또한 '언검 유착'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도 공정함(fair play)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고, 마녀사냥식 인신공격과 먼지털이식 수사가 우리 사회 전체를 짓눌렀습니다.
그 결과 시민들은 네편과 내편으로 나뉘고 서로를 혐오하게 되고 막말을 서슴지 않음으로써 서로간에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심각한 분열 양상을 보였습니다.
언론, 검찰, 야당의 어느 누구에게서도 '페어 플레이'(공정)은 찾아 볼 수 없었고, 제기된 '균형'의 문제에서부터 길을 잃고 혼돈으로 빠져들더니, 이제 마침내 사회 전체의 '조화'를 깨뜨려 매우 정의롭지 못한 사회로의 회귀를 목도케 하는 현실이 되고 만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문재인 대통령의 탓으로 돌리려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똥싼 사람은 언론과 검찰과 자한당, 그리고 이들의 공정치 못한 플레이에 편승한 우리들 자신인데, 남탓으로 돌려 다른 데서 냄새를 찾으면서, 자신의 실수와 과오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매우 부끄러운 행태를 보이는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물어 보십시오.
"나는 과연 공정했던가?"
"나는 과연 페어 플레이어였던가?"
하고 말입니다.
또한, 자신이 주장하는 '정의'가 과연 옳은 정의인가를 되물어야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한 대로, 같은 것을 같게, 다른 것을 다르게 적용했는가를 말입니다.
"남을 마구 때리면서, 나는 한 대도 안 맞는" 그런 것도 정의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kjm / 2019.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