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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이지학(口耳之學)
귀로 들은 대로 이야기하는 학문이라는 뜻으로, 들은 것을 새기지 않고 그대로 남에게 전하기만 할 뿐 조금도 제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는 말이다.
口 : 입 구(口/0)
耳 : 귀 이(耳/0)
之 : 갈 지(丿/3)
學 : 배울 학(子/13)
(유의어)
구이(口耳)
가담항설(街談巷說)
유언비어(流言蜚語)
말학부수(末學膚受)
출전 : 순자(荀子) 권학편(勸學篇)
교육에 관해 전해지는 좋은 말은 많다. 가르치는 것이 배우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교학상장(敎學相長), 효학반(斅學半) 등이다.
이렇게 교육의 깊은 뜻을 생각하지 않고 들은 것을 조금도 자기의 것으로 만들지 못한 채 남에게 전하기만 하는 학문은 제자에게나 스승에게나 도움이 될 수 없다.
귀로 들어가면 곧바로 입으로 나오는(口耳) 학문을 그래서 소인의 학문(之學)이라 했다.
성악설(性惡說)을 주창한 순자(荀子)는 자신의 몸을 갈고 닦아 덕을 쌓기 위해 배웠던 학문이 변질되는 것을 안타까워 했다. 배움을 오로지 남을 가르쳐 먹고 살기 위한 생활의 방편으로만 쓴다는 것이었다.
권학편(勸學篇)에서 말한 내용을 보자.
小人之學也 入乎耳 出乎口 口耳之間 則四寸耳 曷足以美七尺之軀哉.
소인지학야 입호이 출호구 구이지간 즉사촌이 갈족이미칠척지구재.
소인의 학문은 귀로 들어가 입으로 나온다. 입과 귀 사이는 네 치밖에 안 되는데, 어찌 일곱 자의 몸을 아름답게 하기에 족하겠는가.
즉 순자는 들은 것이나 배운 것을 깊이 새겨 자신의 것으로 만들 겨를도 없이 즉시 남에게 그대로 전달해 자신의 학문과 지식을 자랑하는 것을 꼬집었다.
비슷한 뜻으로 남긴 공자(孔子)의 '길에서 들은 것을 길에서 그대로 옮기는 것은 덕을 버리는 짓이다(道聽塗說 德之棄也/ 도청도설 덕지기야)'라는 말이나
맹자(孟子)의 '사람의 병폐는 남의 스승 되기를 좋아하는데 있다(人之患 在好爲人師/ 인지환 재호위인사)'고 남 앞에서 아는 체하기를 좋아하는 소인을 꼬집었다.
옛글을 외우고 다음 질문만 기다리는 기문지학(記問之學)이나 외워서 읊기만 하는 기송지학(記誦之學)도 옳은 학문의 태도가 아님은 물론이다.
제대로 배워서 아는 사람은 옛일을 널리 알고 현재의 일에도 두루 통한다. 바로 박고통금(博古通今)이다.
구이지학과 비슷한 말이 기문지학(記問之學)이다. 옛글을 외운 다음 배우는 자의 질문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아는 데 한계가 있고 남의 스승이 되기에 부족하다(記問之學 不足以爲人師). 예기 학기(學記)에 나오는 말이다.
스승과 질문에 관해 논한 대목인데, 記聞之學이라고 표기한 자료도 있지만 원전은 그게 아니다.
이에 앞서 '물음에 잘 대답하는 자는 북을 두드리는 것과 같아서 작은 것으로 두드리면 작게 울고 큰 것으로 두드리면 크게 운다는 말이 나온다. 기문지학은 외워서 읊기만 하는 기송지학(記誦之學)과 같은 뜻이다.
논어 양화(陽貨)편에 나오는 도청도설(道聽塗說)도 비슷한 말이다. 공자는 '길에서 들은 것을 길에서 옮기는 것은 덕을 버리는 것(孔子曰 道聽塗說 德之棄也)'이라고 했다. 좋은 말을 마음에 간직해 수양하지 않고 바로 남에게 말하는 것이 구이지학과 다를 바 없다.
춘추시대 제 나라의 재상 관중의 언행을 기록한 관자(管子)에는 비이장목(飛耳長目)이라는 말이 나온다.
문자 그대로 먼 곳의 일을 잘 보고 사물을 깊이 관찰하며 널리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다. 학문을 하는 자세와 방법으로 새길 만하다. 장목비이(長目飛耳)라고 앞뒤를 바꿔 쓰기도 한다. 장목은 눈을 크게 부릅뜨는 것이다.
구이지학(口耳之學)
귀로 들은 대로 이야기하는 학문으로, 들은 것을 새기지 않고 그대로 남에게 전하기만 할 뿐 조금도 제것으로 만들지 못한 학문을 말한다.
순자(荀子) 권학편(勸學篇)에 이렇게 씌어 있다. '(구이지학은) 소인의 학문이다. 귀로 들은 것이 입으로 나온다. 입과 귀 사이는 네 치일 뿐. 어찌 일곱 자의 몸에도 채우지 못하는가.'
小人之學也(소인지학야)
入乎耳出乎口(입호이출호구)
口耳之間則四寸耳(구이지간즉사촌)
曷足以美七尺軀哉(갈족이미칠척구재)
군자의 학문은 귀로 들으면 그대로 마음에 삭이고, 신체에 정착하여 인격을 높이고,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러한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사소한 말이나 동작도 많은 사람의 거울이 될 수 있다.
이에 반해 소인의 학문은 귀로 들어가면 곧바로 입으로 나온다. 즉, 들은 대로 즉시 타인에게 말하고, 조금도 자신을 수양하는 양식으로 두지 않는다. 귀와 입 사이는 겨우 네치 인데 그 사이동안만 신체에 머물러 있었던 것으로 된다.
옛날 사람은 자신의 몸을 갈고 닦고 덕을 쌓기 위해 학문을 했으나 요즈음은 배운 것을 남에게 가르쳐서 생활의 수단으로 하기 위해 학문을 하고 있다.
군자의 학문은 자신의 학덕(學德)을 높이기 위한 것인데 반해 소인의 학문은 생활의 도구로 하기 위한 것이다.
순자가 지적했듯이 곧잘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싶어하며, 모르는 바를 아는 체 하는 것을 맹자(孟子)는 '사람들의 병폐는 자기가 다른 사람의 스승이 되는 것을 좋아하는 데 있다'고 훈계하고 있다.
이 구이지학과 뜻이 비슷한 말로 논어 양화(陽貨)편에, '길에서 설들은 것을 길에서 되받아 옮기는 것은 덕을 버리는 것이다.'
孔子曰 道聽塗說 德之棄也.
공자왈 도청도설 덕지기야.
앞 길에서 들은 좋은 말을 마음에 간직하여 자신의 수양의 양식으로 삼지 않고 다음 길에서 곧 남에게 말해 버린다. 결국 구이지학과 같은 짓을 하는 것으로, 이것은 스스로 덕을 버리는 것과 같은 짓이다.
좋은 말은 모름지기 마음에 간직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덕을 쌓아야 한다는 뜻이다.
구이지학(口耳之學)
귀로 들은 대로 이야기하는 학문을 뜻하며, 들은 것을 새기지 않고 그대로 남에게 전하기만 할 뿐 조금도 제 것으로 만들지 못한 학문을 말한다.
이(耳)는 사람의 귀 모양을 본뜬 글자로 '귀, 헤아리다, 알다'는 뜻으로 쓰인다.
학(學)은 양손 국 안에 사귈 효(爻)를 넣고 덮을 멱(冖)과 아들 (子)를 받친 글자로, '아이들이 친구들과 손을 맞잡고 한 지붕 아래서 배운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남에게 들은 것을 그대로 남에게 전할 정도밖에 되지 않는 천박한 학문을 즉 들은 것을 새기지 않고 그대로 남에게 전하기만 할 뿐 조금도 제것으로 만들지 못한 학문을 말한다.
순자(荀子)는 군자와 소인의 학문에 대해 자세하게 분류했다. 순자(荀子) 권학편(勸學篇)에 이렇게 씌어 있다.
小人之學也(소인지학야)
(구이지학은) 소인의 학문이다.
入乎耳出乎口(입호이출호구)
귀로 들은 것이 입으로 나온다.
口耳之間則四寸(구이지간즉사촌)
입과 귀 사이는 네 치일 뿐.
耳曷足以美七尺軀哉(이갈족이미칠척구재)
어찌 일곱 자의 몸에도 채우지 못하는가.
군자의 학문은 귀로 들으면 그대로 마음에 삭이고, 신체에 정착하여 인격을 높이고,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러한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사소한 말이나 동작도 많은 사람의 거울이 될 수 있다.
이에 반해 소인의 학문은 귀로 들어가면 곧바로 입으로 나온다. 즉, 들은 대로 즉시 타인에게 말하고, 조금도 자신을 수양하는 양식으로 두지 않는다.
귀와 입 사이는 겨우 네치 인데 그 사이 동안만 신체에 머물러 있었던 것으로 된다.
옛날 사람은 자신의 몸을 갈고 닦고 덕을 쌓기 위해 학문을 했으나 요즈음은 배운 것을 남에게 가르쳐서 생활의 수단으로 하기 위해 학문을 하고 있다.
군자의 학문은 자신의 학덕을 높이기 위한 것인데 반해 소인의 학문은 생활의 도구로 하기 위한 것이다.
순자(荀子)가 지적했듯이 곧잘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싶어하며, 모르는 바를 아는 체 하는 것을 맹자(孟子)는 '사람들의 병폐는 자기가 다른 사람의 스승이 되는 것을 좋아하는 데 있다.'고 훈계하고 있다.
이 구이지학(口耳之學)과 뜻이 비슷한 말로 논어(論語) 양화편(陽貨篇)에, 孔子曰 道聽塗說 德之棄也(공자왈 도청도설 덕지기야) 즉 '길에서 설들은 것을 길에서 되받아 옮기는 것은 덕을 버리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앞 길에서 들은 좋은 말을 마음에 간직하여 자신의 수양의 양식으로 삼지 않고 다음 길에서 곧 남에게 말해 버린다. 결국 구이지학(口耳之學)과 같은 짓을 하는 것으로, 이것은 스스로 덕을 버리는 것과 같은 짓이다.
좋은 말은 모름지기 마음에 간직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덕을 쌓아야 한다는 뜻이다.
현대사회는 자연과학의 발달에 따라 들은 것을 바로 남에게 전하는 학문이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세월이 변해도 모든 학문은 완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한 후 타인에게 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앵무새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명말(明末)의 환초도인(還初道人) 홍자성(洪自誠)의 어록인 채근담(菜根譚) 후집(後集) 124장에 있는 말이다.
깨달음이 없으면 참맛도 없다.
栽花種竹, 玩鶴觀魚, 又要有段自得處
재화종죽, 완학관어, 우요유단자득처
꽃을 가꾸고 대나무를 심으며 학을 즐기고 물고기를 바라보더라도, 모름지기 일단의 깨닫는 것이 있어야 한다.
若徒留連光景, 玩弄物華, 亦吾儒之口耳, 釋氏之頑空而已, 有何佳趣.
약도류련광경, 완롱물화, 역오유지구이, 석씨지완공이이, 유하가취.
만약 헛되이 그 광경에 빠져서 물건의 화려함만을 즐긴다면, 또한 우리 유가의 구이지학이요, 불가의 완공일 뿐이니, 어찌 아름다운 벗이 있겠는가.
구이지학(口耳之學)이란 양자(楊子)의 법언(法言)에 '소인의 학문은 귀로 들어와 입으로 나간다. 입과 귀 사이에는 네 치일 뿐이니 어찌 족히 일곱 자의 몸을 아름답게 할 수 있으리요'란 구절이 있다.
小人之學也入乎耳出乎口 口耳之問則四寸耳 曷足以美七尺之軀乎.
소인지학야입호이출호구 구이지문칙사촌이 갈족이미칠척지구호.
또 완공(頑空)이라 함은 소승불교(小乘佛敎)의 견해로 '만물은 일체의 공'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사람을 피하고 세상을 등짐으로써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정신이 결여된 완고(完固)함을 뜻한다.
비록 세속(世俗)을 떠나 은둔생활을 즐긴다 하더라도 자연속의 참 진리를 터득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는 뜻이다.
다음의 이야기는 자기가 몸소 경험하거나 확실하게 파악한 사실이 아닌 것을 자기의 지식인양 자랑하는 행태를 풍자한 것이다.
조선(朝鮮) 숙종(肅宗) 때 김주신(金柱臣)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농촌에 거처하면서 들은 우스개 이야기를 바탕으로 당시 사람들의 옳지 못한 태도를 비판했다.
그 가운데 월당 백성의 이야기는 이러하다. 월당의 어느 백성이 마을 모임에 가서 서울 성곽의 아름다움과 궁궐의 웅장함을 마치 자기가 본듯이 진지하게 말했다.
그러자 마을사람 가운데 어떤 이가 '그 도성이 얼마나 큰가?'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나는 못 보았지만 형님이 내게 그렇게 말했소.'라고 대답했다.
마을 사람이 다시 '자네 형도 보지 못한 것이 아니냐?'라고 따지자 그 사람은 성을 내면서 '형님은 형님의 친구에게 들었소. 그런데 그 형님의 친구는 연(燕)땅에서 태어나 초(楚)땅에서 자랐는데 지금은 죽었다오. 그러니 내가 어떻게 도성의 크기를 알겠소.'라고 했다.
마을 사람은 웃으면서 '자네가 서울을 자랑한다는 것은 마치 원숭이가 시경(詩經) 서경(書經)을 외우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했다.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모두 껄껄 웃었다. 월당 백성은 부끄러워서 얼굴이 달아 올라 자리를 떴다.
▶️ 口(입 구)는 ❶상형문자로 입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그러나 다른 글자의 부분으로 포함되어 있는 口(구)꼴의 자형(字形)은 입의 뜻인 경우 뿐만은 아니다. 品(품)과 같이 물품을 나타내거나 各(각)과 같이 장소를 나타내기도 하고, 石(석)과 같이 돌을 나타내기도 한다. ❷상형문자로 口자는 ‘입’이나 ‘입구’, ‘구멍’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口자는 사람의 입 모양을 본떠 그린 것이기 때문에 ‘입’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갑골문에 나온 口자를 보면 ㅂ자 모양을 하고 있어 위아래의 구분이 있었다. 그러나 해서에서부터는 네모난 모습으로 바뀌면서 더는 상하를 구분하지 않게 되었다. 口자는 입을 그린 것이니만큼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대부분이 ‘입’이나 ‘소리’와 관련된 의미를 전달하게 된다. 하지만 때로는 ‘출입구’나 ‘구멍’과 같이 단순히 모양자로 응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口(구)는 어떤 명사(名詞) 뒤에 붙어 (1)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의 뜻 (2)작은 구멍, 구멍이 나 있는 곳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입 ②어귀, 사람이 드나들게 만든 곳 ③인구(人口) ④주둥이, 부리, 아가리 ⑤입구(入口), 항구(港口), 관문(關門) 따위 ⑥구멍, 구멍이 난 곳 ⑦자루, 칼 등을 세는 단위 ⑧말하다, 입 밖에 내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에는 연설이 끝이나 시위 행진 때 외치는 간결한 문구를 구호(口號), 구설을 듣게 되는 운수를 구설수(口舌數), 변명할 재료를 구실(口實), 음식을 대하거나 맛을 보았을 때 느끼게 되는 먹고 싶은 충동을 구미(口味), 말로써 베풀어 아룀을 구술(口述), 마주 대해 입으로 하는 말을 구두(口頭), 흥정을 붙여 주고받는 돈을 구문(口文), 보통 회화로 쓰는 말을 구어(口語), 글을 읽을 때 다른 말을 아니하고 책에 집중하는 일을 구도(口到), 말로 전함을 구전(口傳), 입과 입술을 구순(口脣), 단체 행동의 동작을 일제히 하도록 부르는 호령을 구령(口令), 사람의 수효를 구수(口數), 집안 식구나 집안의 사람 수효를 가구(家口), 한 나라 또는 일정지역에 사는 사람의 총수를 인구(人口), 입을 다물어서 봉함을 함구(緘口), 배가 안전하게 드나들고 하는 항구(港口), 들어가는 어귀를 입구(入口),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아니함을 금구(噤口), 나가는 곳을 출구(出口), 강물이 큰 강이나 호수 또는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어귀를 하구(河口), 한 집안에서 같이 살면서 끼니를 함께 먹는 사람을 식구(食口), 입으로는 달콤함을 말하나 뱃속에는 칼을 감추고 있다는 뜻으로 겉으로는 친절하나 마음속은 음흉한 것을 이르는 말을 구밀복검(口蜜腹劍), 입에서 아직 젖내가 난다는 뜻으로 말과 하는 짓이 아직 유치함을 일컫는 말을 구상유취(口尙乳臭), 입은 있으나 말이 없다는 뜻으로 변명할 말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유구무언(有口無言), 입에 풀칠하다는 뜻으로 겨우 먹고 살아가는 방책을 이르는 말을 호구지책(糊口之策), 닭의 부리와 소의 꼬리라는 뜻으로 큰 단체의 말석보다는 작은 단체의 우두머리가 되라는 말을 계구우후(鷄口牛後), 여러 사람의 입을 막기 어렵다는 뜻으로 막기 어려울 정도로 여럿이 마구 지껄임을 이르는 말을 중구난방(衆口難防),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뜻으로 충언은 귀에 거슬린다는 말을 양약고구(良藥苦口), 귀중한 말을 할 수 있는 입을 다물고 혀를 놀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침묵함을 이르는 말을 금설폐구(金舌蔽口), 부리가 누런 색 새끼같이 아직은 어려서 입에서 젖비린내가 난다는 뜻으로 남을 어리고 하잘 것 없다고 비웃어 이르는 말을 황구유취(黃口乳臭) 등에 쓰인다.
▶️ 耳(귀 이, 팔대째 손자 잉)는 ❶상형문자로 귀의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한문에서는 귀라는 뜻 이외에도 ~할 뿐이다, 혹은 ~할 따름이다 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耳자는 '귀'나 '듣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耳자는 오른쪽 귀의 귓바퀴와 귓불을 그린 것이다. 耳자는 사람의 귀를 그린 것이기 때문에 귀의 기능인 '듣다'와 관련된 뜻을 전달하게 된다. 그러나 일부 글자에서는 항아리나 솥과 같이 단순히 물체의 '손잡이'를 뜻할 때도 있다. 참고로 중국 고문(古文)에서는 耳자가 종종 '~일 뿐이다'나 '~일 따름'과 같은 어조사로 가차(假借)되어 쓰이곤 했다. 그래서 耳(이)는 ①귀, 오관(五官)의 하나 ②성(盛)한 모양 ③뿐 ④귀에 익다, 듣다 ⑤곡식이 싹나다 그리고 ⓐ팔대째 손자(孫子)(잉)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귀와 눈 또는 남들의 주의를 이목(耳目), 겉귀의 드러난 가장자리 부분을 이개(耳介), 귀와 코를 아울러 이르는 말을 이비(耳鼻), 귀에 생기는 병을 진찰 치료하는 의술의 한 분과를 이과(耳科), 귓바퀴를 이각(耳殼), 귀동냥으로 얻은 학문을 이표(耳剽), 몹시 떠들어서 귀가 먹먹함을 이괄(耳聒), 귀로 들음을 이령(耳聆), 귀가 먹음을 이색(耳塞), 귓바퀴가 뺨에 붙은 부분을 이근(耳根), 귀로 소리를 듣는 능력을 이력(耳力), 귀에 입을 대고 하는 말을 이어(耳語), 듣기만 하여서 알게된 학문을 이학(耳學), 귓속이 곪아 앓는 병을 이통(耳痛), 귀가 먹어 들리지 않음을 이롱(耳聾), 나이 60세를 이르는 이순(耳順), 참맛을 모른다는 뜻으로 남의 말을 단지 귀로 듣기만 하고 넘겨짚어 관찰을 할 줄 모름을 이식(耳食), 귀와 눈과 입과 코를 아울러 이르는 말을 이목구비(耳目口鼻), 귀로 듣고 눈으로 봄을 이르는 말을 이문목견(耳聞目見), 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다는 뜻으로 눈치가 매우 빠른 사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이시목청(耳視目聽), 담에도 귀가 달렸다는 뜻으로 남이 듣지 않는 곳에서도 말을 삼가라는 뜻으로 일컫는 말을 이속우원(耳屬于垣), 귀로 듣고 눈으로 봄으로써 일어나는 욕심 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욕망을 일컫는 말을 이목지욕(耳目之欲), 귀로 듣고 눈으로 봄 즉 틀림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이이목지(耳而目之), 귀를 잡아당겨 얼굴을 마주하고 가르친다는 뜻으로 친절히 가르침을 이르는 말을 이제면명(耳提面命), 말의 귀에 동풍이라는 뜻으로 남의 비평이나 의견을 조금도 귀담아 듣지 아니하고 흘려 버림을 이르는 말을 마이동풍(馬耳東風), 쇠귀에 경 읽기라는 뜻으로 우둔한 사람은 아무리 가르치고 일러주어도 알아듣지 못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우이독경(牛耳讀經), 바람이 귀를 통과하는 듯 여긴다는 뜻으로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태도를 일컫는 말을 여풍과이(如風過耳), 제 귀를 막고 방울을 훔친다는 뜻으로 얕은 꾀로 남을 속이려 하나 아무 소용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엄이도령(掩耳盜鈴), 바른 말은 귀에 거슬린다는 뜻으로 바르게 타이르는 말일수록 듣기 싫어함을 이르는 말로 충언역이(忠言逆耳), 귀로 들어온 것을 마음속에 붙인다는 뜻으로 들은 것을 마음속에 간직하여 잊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입이저심(入耳著心), 귀를 귀하게 여기고 눈을 천하게 여긴다는 뜻으로 먼 곳에 있는 것을 괜찮게 여기고, 가까운 것을 나쁘게 여김을 일컫는 말을 귀이천목(貴耳賤目), 남에게 들은 것을 그대로 남에게 전할 정도밖에 되지 않는 천박한 학문을 일컫는 말을 구이지학(口耳之學), 들은 말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는 뜻으로 들은 말을 귓속에 담아 두고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말을 언유재이(言猶在耳), 머리를 수그리고 귀를 드리워 엎드린다는 뜻으로 온순하게 맹종하는 모양을 일컫는 말을 면수첩이(俛首帖耳), 콩알 두 개로 귀를 막으면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소한 것이 큰 지장을 초래함을 이르는 말을 양두색이(兩豆塞耳) 등에 쓰인다.
▶️ 之(갈 지/어조사 지)는 ❶상형문자로 㞢(지)는 고자(古字)이다. 대지에서 풀이 자라는 모양으로 전(轉)하여 간다는 뜻이 되었다. 음(音)을 빌어 대명사(代名詞)나 어조사(語助辭)로 차용(借用)한다. ❷상형문자로 之자는 ‘가다’나 ‘~의’, ‘~에’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之자는 사람의 발을 그린 것이다. 之자의 갑골문을 보면 발을 뜻하는 止(발 지)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발아래에는 획이 하나 그어져 있었는데, 이것은 발이 움직이는 지점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之자의 본래 의미는 ‘가다’나 ‘도착하다’였다. 다만 지금은 止자나 去(갈 거)자가 ‘가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之자는 주로 문장을 연결하는 어조사 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래서 之(지)는 ①가다 ②영향을 끼치다 ③쓰다, 사용하다 ④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 ⑤어조사 ⑥가, 이(是) ⑦~의 ⑧에, ~에 있어서 ⑨와, ~과 ⑩이에, 이곳에⑪을 ⑫그리고 ⑬만일, 만약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이 아이라는 지자(之子), 之자 모양으로 꼬불꼬불한 치받잇 길을 지자로(之字路), 다음이나 버금을 지차(之次), 풍수 지리에서 내룡이 입수하려는 데서 꾸불거리는 현상을 지현(之玄), 딸이 시집가는 일을 지자우귀(之子于歸), 남쪽으로도 가고 북쪽으로도 간다 즉, 어떤 일에 주견이 없이 갈팡질팡 함을 이르는 지남지북(之南之北) 등에 쓰인다.
▶️ 學(배울 학, 가르칠 교, 고지새 할)은 ❶회의문자로 아이들이 양손에 책을 들고 가르침을 본받아 깨우치니 배우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學자는 ‘배우다’나 ‘공부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學자는 臼(절구 구)자와 宀(집 면)자, 爻(효 효)자, 子(아들 자)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갑골문에 나온 學자를 보면 집을 뜻하는 宀자 위로 爻자를 감싼 양손이 그려져 있었다. 한자에서는 爻자가 무늬나 배움과 관련된 뜻을 전달하고 있으니 이것은 ‘배움을 가져가는 집’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니까 갑골문에서의 學자는 집이나 서당에서 가르침을 받는다는 뜻이었다. 금문에서는 여기에 子자가 더해지면서 ‘아이가 배움을 얻는 집’이라는 뜻을 표현하게 되었다. 그래서 學(학, 교, 할)은 (1)철학 또는 전문적인 여러 과학을 포함하는 지식의 조직체. 곧 현실의 전체 또는 그 특수한 영역 및 측면에 관하여 체계화된 지식의 계통적 인식 (2)학문(學問) 등의 뜻으로 ①배우다 ②공부하다 ③흉내내다 ④모방하다 ⑤가르침 ⑥학교(學校) ⑦학문(學問) ⑧학자(學者) ⑨학통(學統) ⑩학파(學派) 그리고 ⓐ가르치다(교) 그리고 ㉠고지새(되샛과의 새)(할)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닦을 수(修), 익힐 련(練), 익힐 습(習),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가르칠 교(敎), 가르칠 훈(訓), 가르칠 회(誨)이다. 용례로는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 기관을 학교(學校), 배우는 사람으로 주로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하는 사람을 학생(學生), 지식을 체계적으로 배워서 익히는 일을 학문(學問), 사물을 배워서 익히는 일을 학습(學習), 학문에 능통한 사람이나 연구하는 사람을 학자(學者), 학문의 실력이나 역량을 학력(學力), 공부하여 학문을 닦는 일을 학업(學業), 학문의 사회나 학자의 사회를 학계(學界), 한 학년 동안을 규정에 따라 나눈 수업 기간을 학기(學期), 출신 학교에 따른 연고 관계를 학연(學緣), 학문의 기술 또는 학문의 방법이나 이론을 학술(學術), 공부한 이력을 학력(學歷), 공부하는 데 드는 돈을 학비(學費), 배워서 얻은 지식을 학식(學識), 한 학교에서 함께 공부하는 벗을 학우(學友), 학생의 무리 또는 학문을 닦는 사람을 학도(學徒), 학업을 닦음을 수학(修學), 실지로 보고 학식을 넓힘을 견학(見學), 배우지 못함이나 학문이 없음을 불학(不學), 일정한 목적과 방법으로 그 원리를 연구하여 하나의 체계를 세우는 학문을 과학(科學), 인간이나 인생이나 세계의 지혜와 궁극의 근본 원리를 추구하는 학문을 철학(哲學), 언어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을 어학(語學), 학교에 들어감을 입학(入學), 개인의 사사로운 학설 또는 개인이 설립한 교육 기관을 사학(私學), 외국에 가서 공부함을 유학(留學), 학문에 나아가 닦음 또는 상급 학교로 나아감을 진학(進學), 학교에서 학기를 마치고 한동안 수업을 쉬는 일을 방학(放學), 방학을 마치고 다시 수업을 시작함을 개학(開學), 다니던 학교에서 다른 학교로 옮겨가서 배움을 전학(轉學), 학문에 힘써 공부함을 면학(勉學), 배우고 때로 익힌다는 뜻으로 배운 것을 항상 복습하고 연습하면 그 참 뜻을 알게 된다는 학이시습(學而時習), 학문은 미치지 못함과 같으니 쉬지 말고 노력해야 함을 이르는 말을 학여불급(學如不及), 배우는 일에 정성을 다해 몰두함을 학업정진(學業精進), 배움이란 마치 물을 거슬러 배를 젓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퇴보한다는 학여역수(學如逆水), 외고 읽을 뿐으로 이해하려고 힘쓰지 않고 또 실천하지 못하는 학문을 기송지학(記誦之學), 배우지도 못하고 아는 것이 없음을 불학무식(不學無識), 널리 공부하여 덕을 닦으려고 뜻을 굳건히 함을 이르는 말을 박학독지(博學篤志)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