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또 하루를 집에서 종일 딩굴며 티브와 싸움을 하느니 공짜 지하철을 타고 내가 군 생활을 시작해서 끝을 마무리한 신탄리 까지 경원선을타고 가 보기로 하고 안산에서 무작정 4호선을 타고 창동에서 소요산 가는 1호선으로 갈아 타기위해 내리려고 보니 아침 늦은 시간이지만 출근시간이면 붐 비던 전철 안이 종점이 가까워오자 달랑 승객이 두사람만 남았다
그 나마 창동역에서 모두 내리니 우리 칸은 완전 빈 칸이다 내리면서 옆 칸을 힐긋 보니 그 칸은 승객이 제법 보인다
아침 일찍 버스를 타다 보면 나 홀로인 경우는 더러 보았지만 지하철 칸에 승객둘은 처음이다 반대로 소요산방향1호선 승강장엔 사람들이 북적인다
차를 타고 훌터보니 거의가 지공족으로 만원이다
코레일이 적자로 울상이던데 나같은 사람들 때문 인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든다
여기서도 종점에 가까울 수록 승객이 적다 대부분이 이곳 주민인 것 같은데 공짜니까 마치 자기 자가용 사용하듯 하는 것 같다
하긴 60년도에도 경원선열차는 토요일 일요일이면 외출 군인들로 만원인데 거의가 표를 안사고 광운대 역에서 내려 서는 개찰을 안하고 허술한 역사 주변 벌판으로 흩어져 나오면 무단 외출을 단속하는 헌병도 속수무책이던 시절이 생각 난다
소요산 역에서 내리니 등산복 차림의 나이든 남녀가 많이 보인다 이 들의 행선지는 거의가 백마고지역인듯힌데 그 곳에서 관광 버스를 타고 백마고지 전망대 ,땅굴 ,노동당사 ,구 철원역사, 철새도래지, 통일전망대등을 돌아 보려는 것 같다
전철은 소요산역에서 신탄리 백마고지역으로 가는 디젤열차로 갈아타야 하는데 정확한 열차사간을 모르고 왔더니 2시간 반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앗불사 지나번에도 무턱 데고 왔다가 2시간을 기다렸던 생각이나서 시간표까지 얻어 갔는데 나이가 드니 건망증 덕분에 또 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니 그런데 업친데 겹친 격으로 백마고지 관광은 악재가 겹쳐서 화요일에는 철원평야 관광 버스를 운행 안다고 한다
옆에 앉은 충남 온양에서 큰 맘먹고 철원 평야관광 차 왔다는 80세가량의 남자 두분이 참 안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열차시간이 많이 남아 민생고 해결을 위해 驛舍 밖으로 나오니 소요산 입구는 어느 도시의 먹자 골목같다
60년도엔 집 한 채 없이 쓸쓸한 곳이 였었는데 소요산 등산인구가 늘고 철원평야 개방으로 관광 열차가 생기고 나서부터 번창한 것 같다
60년 중반만 하더라도 소요산만 지나면 전방냄새가 나고 초성리 역을 지나느라면 당장어디선가 북괴군 총알이 날라오는 것 같은 긴징김이 들었던 생각이난다
백마고지행 열차가 정시에 들어온다 시발역이 동두천역이라 타고 보니 벌써 자리가 거의 다찼다 겨우 빈자리를 찾아 앉으니 열차가 출발을한다
엄격히 말마면 전철이 아닌 기동차인 디젤열차다 예전엔 의정부가 시발 역이였는데 소요산 까지 전철이 연장 되니 동두천 역이 시발역이 된 것 같다
차창 밖을 통해 본 들녘은 황금색으로 변해가고 있고 여기저기엔 못 보던 커다란 공장 건물이 많이 보인다
38선으로 한 때 갈렸던 초성리의 초성리역은 세멘트운반용탱크가 선로위에 늘어서 있다 한탄강, 임진강 위엔 전쟁중 미군이 군조립교 철제자재로 놓은 틸교니 베이비스교니.화이트교니 하는 영어로 돤 교량이 참 많어서 처음에는 몹씨 햇갈리곤 했는데 지금은 흔적도 없는 것 같다
예전엔 시골 마을 같었던 엄청 변해버린 전곡을 지나 열차는 벌판 사이를 계속 달린다 좌우엔 누렇게 익은 벼들이 물결치는데 논뚜랑이 바둑판 줄처럼 보기가 좋다
한 때는 이 들판이 모두 포병 훈련진지로 한국군은 물론 포항 해병대, 미군 포병 부대가 줄을 잇고 있어서 미리 예약을 해야만 했었기에 늘 훈련부대 대포소리때문에 이곳을 지나느라면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헸는데 오늘 지나며 창밖을 보니 누렇게 익은 벼 이삭만 물결을친다
기차역부근 작은 도회지나 부락들은 옛 모습을 찾아 보기 힘들정도로 참 많이도 변해있다
한참을 가니 내가 초급장교 시절 포대장생할을 했던 新望里 이곳은 원래 38이북 지역이였는데 미군이 주둔하면서 주민들을 위해 조그마한 주택을 지어 선척순으로 나누워 주면서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라고 "NEW HOPE '라고해서 新望里(NEW HOPE TOWN)로 불리워졌다고하는데 이곳에 살때 여름에 일어나 마당에 설라치면 북한군의 전방 스피커 방송소리가 남쪽에서 들려 깜짝놀란 적도 여러번 있다
전선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사선으로 흘러 내려오는데 고대산을 지나면 경사가 급해 신망리 좌측에 전선이 있기때문이다
예전엔 역무원이 상주 해있었던 경원선驛舍들은 초성리역부터 신탄리역까지는 간판만 초라하게 서 있어 기차역임을 알리는 무인역이되어 있었다
지나는 열차 창 밖으로 철로 옆에 내가 세들어 살던 집을 찾으니 어딘지 도 모르겠는데 그 근방엔 새로 진 양옥들 만 보인다
우리 대대가 주둔하고 있던 지역 엔 다른 군 부대가 보인다
차장 밖 산천은 依舊 한데 새로 들어 선 건물이며 주택들과 새로 난 넓직한 도로, 높다란 고가다리 들이 세월의 무상함을 실감케한다
열차는 어느덧 대광리 역에 도착한다
나는 계획을 바꿔 이 곳에서 내려 젊은 날의 추억의 편린을 찾어 보려고 했는데 우선 너무 변해 버려 옛 모습을 찾을 수도 없음은 물론 어디가 어딘지 통 모르겠다
간신히 기억을 더듬어 어느 구멍가게 앞에서 아들과 도토라 손질을 하고있는 할머니에게 내가 아는 사람들의 소식을 물으니 이미 저 세상으로 갔거나 일부는 노환으로 요양원으로 들어 갔다고 한다
할 수없이 대광리의 추억을 뒤로하고 2년여를 눈이오나 비가 오나 호로를 친 통근용 트럭에서 먼지를 먹고 출퇴근 하던 생각이 나서 지금은 포장이 되어 훤히 뚫린 도로를 따라 옛생각을 하며 무작정 걷기로 했는데 인도도 없는데다가 각종 차들이 경주 하듯 무섭게 달린다
내가 처음 임관 해서 장교생활을 시작 하다가 맹호 전투부데 요원으로 차출되어 65년 8월 월남으로 떠나기전 까지 근 무했던 부대 까지 시오리길을 걸어 가 보기로했는데 예전엔 군용차만 간간히 다니던 길이 각종차들이 줄을 이어 쏜 살 같이 달린다
요사이 시골길이 다 그렇듯이 차량위주의 도로로 별도의 인도가 없으니 잘못 하다간 개죽음 당하기 십상이다
차 소리가나면 겁이나서 연신 천천히 가라고 손을 흔들며 걸어기는데 가을이지만 한 낮이라 아직도 햇살이 따갑다
차를 타고가는 사람들은 더운데 터벅터벅 걸어가는 나를 보곤 미친 늙은이라고 생각 하는것 같은데 시내버스를 타려고 몇 번아나 시도했는데 지나 간 뒤에 손을 흔드니 그냥 가버린다
새삼 "버스 지니 간 다음 손 흔들어도 소용없다"는 말이 실감 난다
나중에 알고보니 시골구석 인데도 정류장이 아니면 안 선다고한다
버스 기사들이 언제부터 교통법규를 그렇게 잘 지키 셨는지 묻고 싶었지만 도리가 없다
열차 종점인 신탄리엔 주민이 별로 없었고 민간차량도 별로 못보던 시절이 였는데 시간시간 마다 동두천 역까지 다니는 시내버스도 생겼으니 참 살기좋아졌다
한참을 가느라니 일단의 자잔거 동호인들이 신탄리 쪽에서 내려온다
알고보니 여기도 자전차길을 조성 자전차동호인들이 애용하는것 같다
자전차 길을 따라 가느라니 내가 월남 파병 전 근 무했던 부대 주둔지가 보이는데 온통 밭으로 변해서 어디가 어딘자 분간할 수가 없다
한참을 서 있는라니 우리 가곡 "이은상 작사 ,홍난파 작곡""옛 동산에 올라 "가사가 생각 난다 " "내 놀던 옛 동산에 오늘 와 다시 서니
산천의구란 말 옛시인의 허사로고
예 섰던 그 큰 소나무 버혀지고 없더라"라는 ...
내무반,식당 상황실, 그리고 24시간 늘 북쪽을 겨냥 포구가 향해있던 大砲들이 놓여 있던 砲床 어느 한곳도 흔적도 없어 찾지를 못했다
50년이면 강산이 5번 변하는 세월아라는데 새삼 옛날 감상에 젖어 이 벌판에 서있는 나를 보니 어느 덧 등은 굽고 머리엔 백발이 나부낀다
시간을 보니 돌아 갈 기차시간 이라 부랴 부랴 발걸음을 되돌린다
역시추억은 아름다워
늙은이는 지난 날의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한 어느 사람의 말을 되새기면서 집으로 오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소요산 부근 들녘 누렇게 익은 벼가 가을임을 실감케한다
예전엔 모두 포병훈련장이 였는데 (1-2)
"(2)
다리난간에 꽃들이 아름답다
연천역(1-4)
(2)
(3)
(4)
초가집들은 간데없고 제법 번듯한 주택들이 보인다
깡촌 산밑에 아파트 건물도 보이고
옛날 신망리驛舍옆 개인 상점
저멀리 야산 밑에 잔디가 있는 곳이 우리부대가 있던 곳인데
최 전방 지역에도 자전거도로가 생겼으니 가는 김에 원산까지 갔으면 우측이 전답으로 변해버린 예전 우리 부대 주둔지
우측 산 모퉁이 계곡이 우리 대포탄약고 자리인데 진가민가 뒤에 큰 산이 고대산줄기
예전 우리부대주둔지(1-8)
(2)
(3)
예전 우리부대 탄약고 가는 길 입구(4)
(5)
(6)
(8)
예전 군인들로 북적 대던 대광리역이 무인역으로변했다 평일인데다가 열차가 두시긴 마다 다니고 시내버스가 동두천까지 다니는데다 자가용도 많다 경로는 반값인 500원 거기다가 연천군민은 완전공짜 정말 좋은나라인데 김정은이가 이걸 알고 있는지 모르겠네
예전엔 민간인은 이 역에서 모두 하차 군인만 남으면 종착역인 신탄리에서 객차는 그냥두고 디젤머리통만 전곡까지 내려 왔다가 새벽에 올라오곤 했다 기관차는 무장공비가 폭파할까 염려 되어서라나?
이 철길로 그냥 내 달리면 원산이라든데 그 날은 언제 오려나?
다음역은 신탄리역인데 예전엔 경원선 종점 그래서 철로 끝엔 철마는 달리고싶다 란 커다란 간판이 버티고 서있었는데 철로가 백마고지가 보이는 제대군인 정착촌 대마리까지연장 개통되면서 그 간판은 다시 이동 또 간판이 원산역으로 이동하는 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