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들어보면 만요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지는데, 가사지에는 의외로 신민요라고
소개되어 있다. 신민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3박자를 쓰고 있는 것도 아니고 전통적인
장단이나 선율을 쓰는 것은 더더욱 아닌데 굳이 신민요라고 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물론, 신민요 자체의 정의가 그리 명확하지 않은 탓에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가사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달리 추정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박영호가 쓴 작품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너무나 서민적인, 어쩌면 약간은
저속하다고까지 여겨질 수도 있을 노랫말이 민요적 분위기와 연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눅거리 음식점'에서도 지금은 생소한 눅거리란 말이 나왔던 것처럼 '선술집 풍경'에서도
회깟, 고약꾸, 조방군이 같이 언뜻 이해가 안 되는 말들이 보인다.
회깟은 소나 돼지의 내장으로 만든 회를 말하고, 조방군이는 주색잡기와 관련된 일이나
여자를 소개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고약꾸는 아마도 일본어인 듯한데, 하급 관리를 이르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말들은 비록 지금은 이해하기가 어렵고 사전에서나 찾아 볼 수 있는 것이지만,
1930년대 당시에는 생생한 일상어였을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유행가가 가지고 있는
가치의 한 면을 찾을 수 있다.물론, '선술집 풍경'에서 정작 더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분야는 생소한 어휘보다 당시 서민들의 음주문화에 관한 것.
요즘이야 소주나 맥주를 대중적인 술로 치지만 1930년대에는 아직 막걸리가 더
중요한 대중주였던 것 같다. 막걸리, 청주, 소주로 나뉘는 전통적인 분류에서도
서민들의 술은 막걸리였고 기계식 소주 공장과 맥주 공장이 세워지고 '정종'으로
대표되는 일본식 청주가 들어온 뒤에도 서민들의 술은 역시 막걸리였다.
안주는 어차피 술을 따르는 법이니, 막걸리에 어울리는 온갖 구이와 탕이 먹음직스럽다.
고단한 일상을 접어두고 소박하지만 풍성한 술상 앞에서 잠시나마 흥겨울 수 있는
선술집은 가사에 나오는 것처럼 정말 우리들의 파라다이스인지도 모른다.
마치 '시네마 파라다이스'가 그랬던 것처럼. 식민치하에서도 흥겨운 술자리는 있었고,
그 술자리를 그리는 유행가가 있었다. 결국 고락이 교차하는 것이 삶이니, '선술집 풍경'
속에서도 그 삶을 바라보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유행가가 가장 많이 불리는 곳으로 술집을 꼽을 수 있다.
술 몇 잔 거나하게 들이키고 나면 자연스럽게 노래 한 가락을 흥얼거리기 마련이다.
그 때문인지 술이나 술집을 소재로 한 유행가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는데,
여기서 하나 발견할 수 있는 독특한 점은 그렇게 만들어진 광복 이전 유행가들의 분위기가
대체로 그다지 밝지는 않다는 것이다.
아마도 제목에 '술'이란 말이 등장하는 최초의 유행가인 것으로 보이는 1932년작 '술은
눈물일까 한숨이랄까'부터가 벌써 심상치 않은 분위기이고 '항구의 선술집'이니 '번지 없는
주막'이니 하는 노래들을 봐도 눈물과 이별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암울한 시대 분위기 때문에 술맛마저 싹 달아나 버렸던 것일까? 하지만 심각 일변도로
흐르는 것은 유행가에 있어 그야말로 참을 수 없는 무거움.
비련과 유랑을 읊으며 눈물만 자아냈던 것으로 오해받기 쉬운 일제시대 유행가 가운데
흥겨운 신민요와 익살맞은 만요가 있었던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른 어디보다도 흥청거리는 곳이 술자리인 만큼 그러한 흥겨운 광경을 그려내는 유행가가
없을 리 없다.'선술집 풍경'은 바로 1930년대 도시 서민들의 술자리를 가장 재미있게 표현한
유행가가 아닐까 싶다. 만요에 특출한 재능을 보인 김해송이 콜롬비아에 입사한 첫 작품으로
작곡에다 노래까지 했고, 박영호가 노랫말을 지었다. - 펌 -
선술집 풍경 - 김해송
모여든다 모여들어 어중이 떠중이 모여들어
홀태바지 두루마기 온갖 잡탕이 모여든다
얘 산월아 술 한 잔 더 부어라
술 한 잔 붓되 곱빼기로 붓고
곱창 회깟 너버니 등속 있는 대로 다 구우렸다
(후렴)어 술맛 좋다 좋아 좋아 선술집은 우리들의 파라다이스
모여든다 모여들어 어중이 떠중이 모여들어
당코바지 방갓쟁이 닥치는 대로 모여든다
얘 일선아 술 한 잔 더 내라
술 한 잔 내되 찹쌀막걸리로 내고
추탕 선지국 뼈다귀국 기타 있는 대로 다 뜨렸다.
모여든다 모여들어 어중이 떠중이 모여들어
고야꾸패 조방군이 박박 긁어 모여든다
얘 연화야 술 한 잔 더 내라
술 한 잔 내되 네 분 손님으로 내고
열 다섯 잔 술안주로다 매운탕 좀 끓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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