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라시마 ; 지난 회는 중남미 벗들의 활약이 화제가 되었습니다만, 미국의 멤버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키야 ; 그렇군요. 대망의 미국 소카대학교 오렌지군 캠퍼스도 내후년 2001년에 개교합니다.
이즈미 ; 지난달 25일에 로스앤젤레스에서 거행된 대문화제도 훌륭하였습니다.
데라시마 ; 참석한 우에스트코비나 시의 전(前) 시장은 “나도 무언가 SGI의 문화, 평화운동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동(同) 시에서 작년 6월, 이케다 선생님께 명예시민 칭호가 또 금년 6월에는 미국SGI에 ‘현창’이 증정되었지요.
센자키 ; 또 간디의 손자로 간디비폭력연구소 소장 아룬 간디씨도 “SGI 청년은 인류의 미래입니다. 이케다 박사와 함께, SGI 여러분과 함께 평화를 건설해 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얼마 전 동(同) 연구소의 국제평의원에 취임하였습니다.
다니가와 ; 참으로 훌륭한 일이군요.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얼마 전, 이케다 선생님의 사상, 인격, 세계적인 행동의 발자취를 소개한 TV 프로그램 ‘인간 이케다 다이사쿠’도 방영되었습니다. 방송국의 임원도 “이렇게 커다란 반향이 있을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데라시마 ; 미국SGI의 본부 빌딩도 6월에 새롭게 단장하여 개관하였더군요. ‘SGI플라자’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영문판 어서를 발간
다니가와 ; 금년 11월 18일 ‘학회창립기념일’에 창립 70주년을 기념하여 기다리고 기다렸던 ‘영문판 어서’도 발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센자키 ; 대단한 일입니다. 닛코상인의 “본조(本朝)의 성어(聖語)도 광선의 날에는 또한 가나문자를 역(譯)해서 범진에 통할 것이라. -어서 1613”는 가르침을 학회가 실현하고 있군요.
이즈미 ; <현불미래기> <간표팔번초> 등에서 연조께서 말씀하신 대로 ‘세계광선유포’야말로 본불님의 미래기입니다. 그것도 학회의 출현이 없었다면 완전히 허망으로 끝났을 것입니다.
쓰지 ; 그렇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케다 선생님이 세계광포라는 대투쟁의 선두에 서 주셨기에 오늘날의 왕성한 기세의 불법 흥륭이 있습니다. 이 엄연한 사실을 우리들은 최고의 기쁨과 명예를 가지고 후세에 전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케다 선생님은 불가사의한 분입니다.
토지 전매와 중 길들이기
데라시마 ; 그런데 야마자키의 일련의 획책에는 종문의 중들이 깊이 관여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사토 ; 그렇습니다. 야마자키는 1975년 경 시즈오카의 공원묘지를 둘러싸고 ‘토지 전매’로 4억 5천만 엔의 뒷돈을 챙겼습니다. 그 놈은 이 일로 돈맛을 알았습니다. 더 벌자. 더 악덕하게 벌자 - 원래 갖고 있던 축생근성이 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니가와 ; 그렇습니다. 거기서 그 놈이 생각한 것이 종문의 중을 속이는 것이었습니다.
쓰지 ; 과연 ‘땅 굴리기’ 다음은 ‘중 굴리기’라는 것인가.(웃음) 중을 속여서 종문을 끼고 새로운 이권을 잡는다. 정말로 약삭빠른 ‘돈에 미친 뱀’이 생각할 만한 것입니다.
사토 ; 야마자키는 1976년 경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앞으로는 학회가 종문에 기증하는 사원이나 묘지의 건설을 독차지하겠다. 본산은 나에게 맡길 것이다. 1할 마진을 반는다해도 1백억이다. 2, 3억 정도는 푼돈이다.”
다니가와 ; 그 뒤, 분명히 확인한 바에 의하면 야마자키는 1979년경 실제로 효고나미에에서 묘지용 토지를 물색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시즈오카의 묘지에 이어서 ‘두 번째 횡재’를 노리고 있었던 것은 틀림없습니다.
중을 조정하여 대강두에 취임
이즈미 ; 1979년이라면 4월에 이케다 선생님이 제3대 회장을 용퇴하였습니다. 또 법화강 총강두도 사임하였습니다. 그런데 야마자키는 선생님의 회장용퇴, 총강두 사임과 살짝 바꿔치듯 다음날 ‘법화강 대강두’가 되었습니다.
사토 ; 당시 대강두는 전국에서 7명밖에 없었습니다. 학회에서는 호조 회장, 모리타 이사장, 이즈미, 쓰지, 아키야 부회장과 야마자키 뿐. 당시 얼마나 그 자가 종문의 중추와 깊이 관계되어 있었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센자키 ; 어떤 중과 결탁되어 있었습니까?
다니가와 ; 닛타쓰 법주의 사위 스가노 지운, 당시 비서역이었던 다이켄 등이라고 합니다.
쓰지 ; 이것은 사실입니다. 모두 알고 있습니다.
사토 ; 야마자키는 법주의 측근을 중심으로 ‘이 사람’이라고 눈여겨 둔 중들을 돈으로, 술로, 유흥으로 환심을 샀습니다. 긴자의 고급 클럽이나 내기 마작, 마지막에는 해외여행을 먹이로 차례로 끌어들였던 사실이 많은 증언으로 밝혀졌습니다.
이즈미 ; 야마자키는 변호사로서 종문의 내부와 통하는 과정에서 중들의 실태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1974년에는 “중만큼 싫은 동물은 없다. 마치 고깃덩어리 같다. 결국 돈이다. 자존심이 어떻고 하지만, 돈을 건네면 아무리 ‘깐깐한 사람’도 바로 넘어간다.”고 큰소리 치며 다녔다지요.
아키야 ; 중의 타락상을 보고 야마자키는 거울이라도 보는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뭐야, 이건 나처럼 돈에 미치고 색에 미친 돼지가 아닌가.(큰 웃음) 여하튼 그 놈은 ‘중을 다루는 일은 간단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쓰지 ; 그렇습니다. 거기서 생각한 것이 중을 조종하고 승복의 권위를 이용하여 학회의 실권을 잡는 것이었습니다.
사토 ; 과연 그렇게 말하면 분명히 그렇게 생각됩니다.
다니가와 ; 그의 옛 동료의 증언에 따르면 1974년 “종문은 학회의 아킬레스건이다. 따라서 종문만 지배하면 학회는 좌지우지할 수 있다.” “학회를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면 돈은 얼마든지 들어온다. 부귀영화는 마음먹은 대로 된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지요.
사토 ; 정말 악랄한 놈이다! 종교도 ‘돈이 되는 나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본성이 악마로서 삐뚤어진 자. 세상에 이런 개돼지만도 못한 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근행한 적이 없는 야마자키
이즈미 ; 그 자의 바르지 못함은 근행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근행도 못한다. 학회활동도 하지 않는다. 다만 돈과 여자만 찾을 뿐입니다. 그를 아는 친구들은 질려서 그를 학회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연판장까지 준비하였다고 합니다. 나중에야 그것이 명확하게 알려졌습니다.
아키야 ; 그렇습니다. 그 놈은 착실한 활동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전의 동료 야히로 변호사가 말했습니다. “그 놈은 매일 밤 유흥에 빠져 집에도 돌아가지 않았다. 근행 등은 전혀 하지 않았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쓰지 ; 그렇습니다. 그를 잘 알고 있는 당시의 청년부가 “그와 10년 간 사귀었지만, 함께 근행한 적이 없다. 근행하자고 하면 어딘가 늘 도망가고 말았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아키야 ; 근행도 하지 않는다. 학회 활동도 하지 않는다. 그 근본적으로 신심이 삐뚤어진 것이 그가 전락한 중대한 원인임은 틀림없습니다.
쓰지 ; 전적으로 그렇습니다.
이즈미 ; 그렇다고 해도 야마자키가 종문 공작을 시작할 당시 종문내에는 불만, 울분이 쌓여 있었습니다. 학회의 외호를 빌미로 타락, 부패한 종문은 통일성 없는 문란한 상태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데라시마 ; 그렇다면?
이즈미 ; ‘무임소교사’ 즉 들어갈 절이 없어 주지가 될 수 없는 중이 사방에 널려 있습니다.
센자키 ; 어째서 종문은 아무런 손도 쓰지 않았을까요? 법주가 있는데. 지도교사가 있으면서.
아키야 ; 그렇습니다. 학회는 이케다 선생님이 제3대 회장에 취임한 이후 도다 선생님의 외호 정신에 입각하여 회관은 짓지 않아도 종문이 말하는 대로 사원을 건립하여 기증해 왔습니다. 1972년 말까지 건립한 사원의 수는 150개의 절, 본산에도 대객전, 대화성, 육아, 총방 등을 차례로 건립하여 기증해 왔습니다.
이즈미 ; 본산정비, 말사기증의 사업도 1972년 정본당 건립으로 일단 완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종문에도 허가를 받아 드디어 학회 회관 등의 충실을 도모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쓰지 ; 당연히 이번에는 종문이 새로운 사원을 지을 차례입니다. 그런데 종문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본산은 ‘갈 곳 없는 중들이 버려진 산’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키야 ; 종문은 사람이 좋은 이케다 선생님을 이용할 만큼 이용해 왔습니다. 종문은 돈을 쓰지 않고 단지 학회의 돈을 공양이라는 미명 하에 호령을 하면서 자기들은 손에 흙을 묻히지 않고 조종해 왔습니다. 그것이 종문이었습니다. 본산이었습니다. 중이었습니다.
이즈미 ; 참으로 이케다 선생님은 노고에 노고를 거듭하여 피나는 노력으로 봉공을 해 왔습니다.
쓰지 ; 그렇습니다.
이즈미 ; 그런데도 그만큼의 봉공을 한 것을 빌미로 종문은 응석부리고 건방지고 철저하게 썩고 말았습니다. 도 점차 종문 내에 동요가 시작되었습니다.
아키야 ; 그렇습니다. ‘승려’가 되어도 갈 절이 없다. 그 불만이 흔히 말하는 제1차 종문 문제의 발화점이 된 것은 틀림없습니다. 아무 일도 아닙니다. ‘종문문제’란 즉 중들의 ‘취직문제였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입니다. (웃음)
중 길들이기
이즈미 ; 문제는 거기에 야마자키가 그런 종문의 불만분자의 마음의 틈을 파고든 것입니다.
아키야 ; 그렇습니다. 참으로 ‘마성’ 그 자체의 작용입니다. 야마자키는 종문의 중추에 들어가는 한편 이런 불만분자들과 결탁하여 정보를 모야 또 조작하면서 학회를 위협하는 자료로 이용하고자 착착 준비를 진행시켰습니다. 저 ‘시호스’ 사건에서 야마자키가 학회 공갈의 재료로 사용한 것도 그 하나는 이런 종문의 내부 정보였습니다.
사토 ; 그런 의미에서는 당시의 많은 중들도 똑같은 죄입니다. 사기꾼의 범죄에 앞장섰던 것입니다.
다니가와 ; 전적으로 그렇군요. 야마자키는 자신의 사업에 실패하여 당초의 계획이 틀어지자 결국 그런 정보는 학회공갈의 재료로 둔갑했습니다. 하지만 시호스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도 야마자키는 아침 저녁으로 그런 정보를, 학회를 탈취하기 위한 재료로 쓸 것은 틀림없을 것입니다.
아키야 ; 당시의 중들은 설마 자신을을 이용하여 야마자키가 3억 엔의 공갈로 체포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사토 ; 결국 모두 야마자키라는 바보의 방만경영으로 인한 실패의 산물입니다.(폭소)
이즈미 ; 그렇군요. 그대로입니다.
아키야 ; 그래도 야마자키는 한 번 마신 달콤한 수프는 결코 잊을 수 없었습니다. 돈벌기에는 세간을 모르는 무지하고 무능한 바보 중들을 구워 삶는 것이 제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 야마자키가 닛켄에 붙어 있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웃음)
다니가와 ;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금도 야마자키에게 닛켄이라는 체면 차리기에 급급한 바보는 ‘중 굴리기’ 최대의 봉인 셈입니다. (큰 웃음)
(9) 한일 우호의 행동
한국으로부터의 현창
데라시마 ; 지난번 한국에서 NGO 세계대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세계 108개국의 NGO대표가 참가, 그것은 너무나 훌륭하고 성대한 대회였다고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도 참석하셨다고 합니다.
사토 ; 예. 개회식에는 8천 명이 모여 그 자리에서 메시지가 낭독된 것은 김종필 총리와 이케다 선생님 뿐이었습니다.
이즈미 ; 굉장한 일이군요. 세계에서 모여든 역사적인 대회에서 총리와 SGI회장의 메시지만 대표로 낭독된 것은 훌륭한 일입니다.
쓰지 ; 일본의 정치가도 이 사실을 주시해야 합니다. 일본은 한국과 좀처럼 사이좋게 지내지 못한다. 나도 정치에 참여했던 사람으로서 참으로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SGi회장이 신뢰를 받아 영광스러운 무대에서 당당하게 선양하시고 있습니다. 그 점을 일본의 정치가들은 최대로 찬탄해야 하지 않는가.
센자키 ; 동감입니다. 이 NGO대회에서 SGI주최의 ‘평화 심포지엄’도 개최되어 아주 성공적이었다고 합니다. 또 ‘세계 대학 총장회의’에는 우리 창가대학 대표도 참가했습니다.
평화행동과 사회공헌
쓰지 ; 이런 시대의 추세를 볼 때 확실히 21세기의 세계는 역시 평화, 문화, 교육의 교류가 가장 중요한 시대로 들어갔다고 실감하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닐 것입니다.
사토 ; 바로 세계의 조류입니다. SGI회장의 선견에 놀랄 뿐입니다.
데라시마 ; 기쁘게도 한국의 시와 구, 여러 단체로부터 이케다 선생님에게 주신 현창, 감사패는 60개나 됩니다. 수도 서울의 시의회에서도 작년, 세계 최초의 현창을 받으셨습니다. 명예시민증은 경산시 등 5개 시, 군에서 수여되었습니다.
이즈미 ; 일본인 중에는 이런 경우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세계 각국 중에서도 이 정도의 사람은 없지 않을까요.
쓰지 ; 그렇지요. 정말로 굉장한 일입니다.
센자키 ; 한국의 경희대학교, 충청대학교, 제주대학교로부터 ‘명예박사’ ‘명예교수’의 영예를 받으셨습니다.
다니가와 ; 그렇습니다. 가장 권위 있는 학술기관에서의 명예학위의 수여는 최고 지성의 증거입니다.
쓰지 ; 교육관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 현창의 의의를 절실하게 실감하는 바입니다.
사토 ; 게다가 한국의 중앙일보사에서는 5월에 <<이케다 다이사쿠 선짐 인간혁명의 세기로>>가 발간되었습니다. 또 일조각에서 토인비 대담, 신영미디어에서 갈퉁 대담도 발간되었습니다. <세계의 지도자와 말한다>도 ‘경북매일’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아키야마 ; SGI회장은 늘 겸허하게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현창도 한국SGI멤버의 활약에 의한 것입니다. 멤버의 사회공헌 운동이 높이 평가받고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어디까지나 한국멤버를 칭찬하시고 있습니다. 그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기 그지 없습니다.
이즈미 ; 당연히 한국은 일본에게 문화 대은인의 나라입니다. 우리들 불법자에게는 불교전래의 대은이 있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그런 나라에 대해 일본은 온갖 악역무도하고 포악한 짓을 저질러 왔습니다. 그 죄는 결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SGI는 민간 차원에서 교류를 착실하고 성실하게 맺어 왔습니다.
쓰지 ; 험난한 시대에, 선두에 서서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만들고 빛을 비춰 주신 분이 이케다 선생님이십니다.
데라시마 ; 지난번, ‘재일 한국청년회’의 분들이 후쿠오카 이토시마 군에 있는 후쿠오카 연수센터의 ‘한일우호의 비’를 견학하시고 학회의 한일우호에 대한 행동에 감명하셧다고 합니다.
사토 ; 연수센터에서는 지금, 규슈학생부 주최로 ‘한일우호의 흐름’ 전(展)도 개최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어느 신문기자가 “훌륭하다! 차대의 한일우호를 생각하는 데에 중요한 전시입니다.”며 감명했다고 들었습니다.
아키야 ; 그렇습니다. 이러한 한일우호의 ‘보물의 다리’를 놓아 주신 분은 이케다 선생님입니다. 일본의 정치가는 이케다 선생님께 최대의 경의를 표해야 합니다. 자기들은 할 수 없는 주제에.
다니가와 ; 옳은 말씀입니다. 시장이나 군수, 대학장으로부터도 “이케다 SGI회장의 사상과 행동은 인류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귀감입니다.” “회장의 국적은 세계입니다. 왜곡된 비판에도 굴하지 않고 올바른 역사관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국수주의와 싸우는 위대한 용기를 가진 사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후계자를 육성하는 모습에 감명했다.” 등등 최대로 칭찬받고 있습니다.
사토 ; 이케다 선생님이 전혼을 쏟아 열어 주신 이 우정의 존귀한 길을 뒤이을 우리들 청년은 훌륭하게 더욱 확대해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묘비를 팔려고 획책
이즈미 ; 그런데 한국이라고 하니 생각나는데, 바로 저 극악한 사기꾼인 야마자키가 공갈사건을 일으키기 전에 빈번히 검은 획책을 꾸미고 있었습니다. 이에 관한 것은 의외로 알려지지 않은 듯합니다.
데라시마 : 예에? 그것은 어떠한 내용입니까?
아키야 ; 1976년 무렵의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야마자키는 시즈오카의 묘원건설을 둘러싸고 4억 5천만 엔이나 되는 뒷돈을 손에 넣었지만, 그는 이 묘원에서도 더욱 돈을 벌어들이고자 했습니다. 거기서 후지미야의 토목건설업자와 짜고 이 묘원에서 사용하는 묘비를 한국에서 수입하자고 계획했습니다.
사토 ; 비열한 놈. ‘토지 전매’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묘비’까지 이용하려고 했단 말입니까?
다니가와 ; 정말입니다. <개가 먹이를 물 듯> 한 번 물면 뼈까지 핥습니다. 아니, 묘까지 철저하게 핥고 있습니다.(웃음) 이것이 야마자키입니다. 그 자의 돈에 대한 광신적인 집착은 이 하나만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아키야 ; 야마자키는 이 묘비에 관한 이야기를 학회에는 전혀 양해도 구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1976년 7월이 되어 갑자기 야마자키가 호조 이사장에게 “업자가 묘비를 한국에서 산다고 합니다.”라고 말을 꺼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는 아직 토지도 정식으로 산 것도 아닙니다. 묘비도 이바라기 현에서 생산되는 이나다의 화강암을 사용할 예정이었습니다.
쓰지 ; 야마자키와 유착하고 있던 토목건설업자는 이미 한국에 묘비의 발주를 끝낸 상태였습니다. 오히려 묘비 수입을 위한 합병회사까지 만들었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이즈미 ; 그런데 여기에는 한국의 암거래 브로커가 관련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야마자키는 지금 그만두면 그 자들에게 막대한 돈을 주어야 하며 그 돈은 40억 엔 정도 든다고 위협하지 않았습니까.
다니가와 ; 그 비열한 야마자키의 짓입니다. 요령을 부리고 약삭빠르게 굴어 단단히 한 몫 잡을 속셈이었을 것입니다.
사토 ; 생각대로 되어 우쭐대로 싶어서!
아키야 ; 맞아요.
아키야 ; 게다가 야마자키는 종문의 중들과 결탁하여 학회를 점령하겨는 책모의 일환으로 한국에서는 단도(檀徒) 만들기를 꾀했습니다.
이즈미 ; 그래, 그렇지요. 나는 당시, 한국에 몇 번이나 다녀왔기 때문에 경위는 잘 알고 있지요. 1975년 1월에는 야마자키가 자신이 직접 한국에 진입하여 현지에서 학회를 이탈한 무리들과 접촉. SGI의 조직을 분열시키기 위해 단도의 조직을 만들도록 열심히 부추기고 있었습니다.
사토 ; 당시 종문의 해외부장은 야마자키가 아주 감쪽같이 속여 온 스가노 지운입니다.
다니가와 ; 애초부터 ‘해외부’라는 부서 자체는 야마자키가 SGI 조직을 빼앗기 위해 종문을 부채질 하여 새롭게 만든 부서였습니다. 그 어리석은 스가노는 결국 야마자키의 완전한 로봇이 되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이즈키 ; 닛타쓰 법주의 사위인 스가노를 이용하면 법주를 마음대로 움직여 갈 수 있습니다. 그러한 책략이었음이 점차로 밝혀지게 되었지요.
쓰지 ; 그러고 보니, 당시의 ‘해외부장 통달문’은 야마자키가 자기 자신이 쓰고 있다며 스스로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스가노는 도장을 찍을 뿐. 야마자키는 이 ‘해외부장 통달문’이라는 문서를 내보이며 한국에서도 퇴전자의 조직 만들기를 획책했습니다.
이즈미 ; 더구나 야마자키는 스가노를 한국에 보내어 “SGI멤버에게는 본존님을 하부하지 않는다. 단도가 된 자에게만 하부한다.”고 말하게 했습니다.
사토 ; 더러운 놈! 하필이면 신심의 대상인 본존님을 ‘협박의 도구’로 이용하다니! 게다가 당시, ‘종문을 따르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진다.’ 등으로 위협하고 온갖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다니가와 ; 이러한 움직임이 제1차 종문사건의 발단입니다. 제2차 종문사건도 마찬가지로 야마자키의 책략이었습니다. 방정식은 모두 동일합니다.
아키야 ; 원래 야마자키라는 놈은 신심도 없고 하인 같은 인격으로 종문과 결탁하여 본존님을 향해 합장하기는커녕 장사 도구로 이용하고 있었지요. 그놈이 이전에 사용했던 사무소의 책상 안에는 본존님이 50체(體)인가 60체인가 너저분하게 먼지투성이가 되어 가득 넣어져 있었습니다. 이것은 당시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사토 ; 그 사무소의 누군가가 주의를 주면 “이 바보 자식! 이런 걸 가지고 뭘!”이라는 말이 되돌아 올 뿐이었다고 합니다.
아키야 ; 바보도 정말 바보지. 이토록 악랄하고 바보 같은 송사리를 본 적이 없습니다. 7백 년의 종문사에서도 이런 분수를 모르는 어리석은 신도, 지도자 낯짝을 한 자는 없었습니다.
다니가와 ; 닛켄과 야마자키 중, 어느 쪽이 바보인가. 아니, 전세(前世)에는 형제였을 것입니다.(폭소)
사토 ; 아무튼 그는 하는 일마다 죄다 실패, 불벌은 엄합니다. 사업도 실패. 단도 만들기도 실패. 공갈도 실패. 그래서 감옥행입니다. ‘꼴좋게 됐군.’입니다.
이즈미 ; 닛켄도 1990년의 C작전 이후, 어떻게든 한국에서 단도를 만들려고 중을 보냈지요. 닛켄이라는 놈도 정말로 천성이 나쁜 놈입니다.
아키야 ; 그렇습니다. 다음번에 이야기하겠지만, 닛켄은 야마자키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위장 사원 만들기까지 획책하고 있었습니다. 또 닛켄종 중들은 외국환관리법 위반, 출입국관리법 위반 등의 범죄행위를 일삼고 있습니다.
사토 ; 이만큼 악업을 가진 ‘너무나도 닮은 둘’은 세계에서도 드물지 않을까요.(폭소) 두 사람 다 허세꾼, 돈, 여자, 책략, 모략, 잔혹성, 질투 등도 보면 볼수록 꼭 닮았습니다.
(10) 성실은 오만을 이긴다.
한국에 위장사원을
센자키 ; 지난 회에는 야마자키가 한국에서 ‘단도 만들기’를 획책한 사실이 폭로되었습니다.
아키야 ; 그렇습니다. 야마자키의 모략과 똑같은 짓을 한 것이 닛켄입니다. 닛켄은 1991년 8월 부산시에 ‘복지시설’을 위장하여 ‘위장사원’ 건설까지 획책하고 있었습니다.
쓰지 ; 그런데, ‘위장’의 음모가 발각. ‘건축법 위반’의 죄로 한국 당국으로부터 엄중한 행정처분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신문, TV에서도 대대적으로 보도되었습니다.
다니가와 ; 파견된 중도 한국에서 쫓겨났습니다. 1994년에는 모리 하쿠도가 외국환관리법 위반으로 유죄. 1995년에는 서울의 닛켄종 사무소가 ‘출입국 관리법’ 위반 혐의로 강제수사를 받았습니다. 이것도 TV로 보도되었습니다.
이즈미 ; 실은 이 위장사원 공작도 원래는 야마자키가 획책한 것이었습니다. 그 놈은 한국에서 단도 만들기를 위해 사원을 지으려고 했지만, 한국에서는 그리 간단하게는 허가가 나오지 않습니다. 우선 양로원을 지어 그 한 귀퉁이에 슬쩍 절을 지으면 된다고 기도했습니다.
아키야 ; 분명히 그렇습니다. 닛켄의 위장사원 사건도 야마자키의 공작과 똑같은 수법이었지만, 대실패로 끝났습니다.
사토 ; 닛켄은 그래도 뉘우치지 않았습니다.(웃음) 최근에는 ‘학력사칭’으로 소동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닛켄은 단도 만들기에는 어학이 가능한 중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여 한국의 일류대학인 연세대에 중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연세대의 입학신청서류에는 ‘후지학림대학과’의 졸업증명서를 사용했습니다.
이즈미 ; 뭐가 ‘후지학립대학과’인가! ‘대학’처럼 이름을 하고 있지만 그게 무슨 대학인가! 저 허영심 많은 닛켄이 ‘나도 대학을 만들고 싶다.’는 고집으로 만든 보통 ‘사숙’이 아닌가! 그 졸업증명서는 휴지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폭소) 말할 것도 없이 그런 종이조각을 이용하여 유학을 도모한 것은 연세대를 우롱한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악질의 ‘학력사칭’이며 사기행위입니다.
다니가와 ; 이것이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는 유명한 인도의 국립 델리대학교에서 한 학력사칭입니다. 이것도 다음에 말하기로 하지요.
닛켄의 해외사원은 ‘유흥’을 위해
사토 ; 그렇다고 해도 단도 만들기, 위장사원도 전부 야마자키의 책략이었습니다. 닛켄이 야마자키의 ‘지남’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부동의 증거입니다. (웃음)
아키야 ; 즉 학회가 세계 광선유포를 추진하여 전 세계에 시원하고 상쾌하게 빛나는 길을 열어 왔습니다. 그것에 대해 닛켄은 분하고 분해서 참을 수가 없습니다. 매일이 어둡고 어두운 길 뿐입니다.(폭소)
이즈미 ; 그대로입니다. 자신은 유흥을 좋아하는 방탕아이기에 해외에 신자가 생기고 사원을 지으면 종종 해외에 놀러갈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그의 유일한 위안이며 목적입니다. 세계광포를 위한 것이 아니고 자신이 놀러가기 위한 수단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안 되자 아침부터 저녁까지 중들에게 채찍질하고 화를 내며 못살게 굽니다. (웃음) 법화강에도 보기 좋게 간판을 내걸고 절복이다, 등산이다 호령을 내려 강제적인 지시를 내립니다. 보기에도 무참하게 이용해 먹는 근성과 부질없는 꿈을 쫓는 마음이 텅 비어 헤매는 마지막 인생이 되었습니다.
다니가와 ; 이미 70세가 아닌가. 보기 흉한 영감입니다.(웃음) 닛켄의 미치광이 행동은 전부 니치렌 대성인의 정신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법도둑’입니다. 법주라는 이름을 이용하여 전부 사물화하여 사치삼매하여 출가의 몸으로 호화저택을 몇 채나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 결코 용서할 수 없습니다. 대성인의 불벌, 법벌은 엄연하게 있을 것입니다.
사토 ; 그대로입니다. ‘호화저택 집착’은 심상치 않습니다. 닛켄은 대석사에 ‘거처’가 있으면서 1993년 10월 도쿄 세타가야 구의 고급 주택지에 ‘대석사 출장소’의 명목으로 ‘사저’를 마련했습니다. 이것도 10억 엔은 호가한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도쿄의 고급주택지 시부야구 쇼토에 총액 25억 엔이라는 고급호텔처럼 보이는 호화저택을 짓고 있습니다.
이즈미 ; 놀랐습니다. 열린 입이 닫히질 않습니다. 대성인을 비롯하여 닛코 상인, 니치모쿠 상인, 그리고 66세까지 대대로 법주로부터 난도질당하는 법벌을 받을 것입니다. 그 놈은 전부 자신의 사리사욕입니다. ‘영법구주’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법주의 자리도 넘기지 않습니다.
아키야 ;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 놈은 법인을 이용하면서 실제로는 분명히 개인이 쓰고 있습니다. 일본의 종교계에서도 이런 법주는 누구도 없을 것이다. 자비는커녕 축생근성입니다.
쓰지 ; 그렇다고 해도 닛켄의 오늘이 있는 것은 누구 덕분인가. 전부 이케다 선생님의 외호를 받은 덕분이 아닌가.
이즈키 ; 그대로입니다. 예를 들면 닛타쓰 법주는 1970년 5월 3일에 이케다 선생님의 공적에 대해 이렇게 분명히 말했습니다. “1960년 이후의 10년 간에 이케다 회장으로부터 1백만 2천여 평의 공양이 있어 지금은 소유지 총계 1백 17만여 평이 되었습니다. 종전 당시에 비하면 3배로 넓어졌습니다.”
아키야 ; 닛타쓰 법주는 1974년 3월 2일에도 “지금 다시 대행존령(난조 도키미쓰)에 이어 신앙이 두터운 위인 있으니 그는 법화강총강두 이케다 다이사쿠이니라.”고 이케다 선생님의 위업을 최대로 찬탄하고 있습니다.
사토 ; “이케다 선생님은 현대의 난조 도키미쓰다. 종문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대공로자다.” - 닛타쓰 법주도 이렇게 찬탄한 이케다 선생님을 왜 잘랐는가!
쓰지 ; 게다가 닛켄은 이케다 선생님의 총강두파면(1990년 12월 27일)의 직후에 나온 <대백연화> 신년호에서 뭐라고 말했는가. “특히 이케다 선생님의 지휘에 대해 대서특필할 것은 전후 세계적인 이동교류 속에서 각국에 넓혀진 신도를 조직화 한 세계 광포의 대전진을 도모한 일입니다.”고 명확히 자신이 말하고 있지 않는가. 이것은 ‘예하’로서의 ‘지남’입니다.(웃음)
사토 ; 이런 거짓말쟁이의 ‘지남’ 따위는 전 세계의 종교계에서 지도자, 책임자, 중심자 누구도 말한 적이 없으며 들은 적이 없습니다.
이즈미 ; 이렇게 모범적이고 위대한 이케다 선생님과 창가학회를 아무런 이유도, 대화도 없이 일방적으로 괴롭히자, 위대한 이케다 선생님을 없애버리자는 책략에서 냉혹하게 학회를 잘랐던 것입니다.
쓰지 ; 대성인, 닛코 상인도, 시방의 제불, 제천도 닛켄을 용서할 리가 없습니다. 창가학회, 이케다 선생님을 전부 엄연히 지키고 있음에 틀림 없습니다. 또 사실 그대로 되고 있습니다.
다니가와 ; 그대로입니다! 자른 이유도 정말이지 지리멸렬합니다. 그 중에도 웃음을 금할 수 없는 것은 종문이 일방적으로 송부한 ‘창가학회 해산 권고서 - 1991년 1월 7일’의 항목입니다. “<월간 펜> 사건 등 반사회적인 행동이나 스캔들 등으로 사회로부터 엄한 지탄을 받았기 때문에.”락 해산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아키야 ; 까부는 것도 적당히 하라! <월간 펜>은 지금은 이미 망했습니다. 원래 폭력단과 연결되어 있던 삼류 저질 잡지입니다. 그 사건에서는 학회측이 편집장 구마베를 형사고발 했습니다. 그 결과 전혀 사실무근으로 인정되어 1983년 6월에 벌금 20만 엔의 판결을 받았습니다. 완전히 결말이 난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전혀 근거도 없는 스캔들을 날조한 <월간 펜> 등을 끌어내는 것은 완전히 천하의 웃음거리입니다.
이즈미 ; 닛켄은 SGI회장을 파문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신심은 훌륭하다. 방법(謗法)은 없다. 광선유포를 위해 불석신명하다. 모든 사람의 신용은 두텁다. 모든 것의 모범이다. 교학은 발군. 본산에 대한 공헌은 몇 백 년 이래 최고다. 추종을 불허한다. 뜻 있는 중들의 신뢰도 깊다. 그러기에 파문의 이유가 좀처럼 결정되지 않는다.
그래서 소문에 의하면 질투에 날뛴 닛켄은 야마자키의 의견을 들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비열한 마음, 질투에 불탄 나머지 SGI회자을 떨어뜨리려고 이런 이유로 파문한다는 전대미문의 결론이 나온 것 같습니다.(폭소)
아키야 ; 이것도 전부 야마자키가 시켰을 것입니다. 야마자키가 법주고 닛켄이 그 신자이기에.(웃음)
닛켄종은 ‘법을 훔친’ 교단
이즈미 ; 듣는 바에 의하면 닛켄은 C작전 개시 직후인 1991년 1월 5일, 해외부서기인 후쿠다 기토, 야마자키의 부하 우메사와 모를 통하여 야마자키에게 이렇게 말을 전했다. “그 때는 거짓말쟁이라고 해서 미안했다.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사토 ; 닛켄은 1979년 9월 하순, 야마자키와 싸우고 “당신은 거짓말쟁이다!”고 성을 내었습니다.(웃음) 닛켄은 그 때의 일을 ‘사죄’한 것입니다.
다니가와 ; 야마자키는 닛켄으로부터 전언이 있은 직후 2월 25일 공갈죄의 죄인으로 우선 가쓰시카 구 고스게 도교 구치소에 수감. 그 후 도치기 현 구로바네 교도소에 이감되었습니다. 거짓으로 흉악범죄를 범한 죄인에게 그것도 수감을 앞에 두고 ‘거짓말쟁이락 해서 미안했다.’ (웃음) 얼마나 무시무시한 검은 결탁인가. 어쩔 수 없는 놈입니다.
쓰지 ; 닛켄은 ‘축인근행을 태만해서는 안 된다.’라고 있음에도 법주의 의무인 축인근행조차 제대로 하고 있지 않으면서(웃음).
사토 ; 그 놈의 방탕함에는 다른 중들도 모두 질려있습니다.
이즈미 ; 대성인 불법의 진수는 법화절복, 파권문리입니다. 그런데 종문은 전혀 절복을 하지 않습니다. 그 일점으로도 연조 대성인, 개산 상인의 정신에 완전히 위배하고 있습니다.
아키야 ; 신심의 근본은 “행학의 이도에 힘쓸지어다. - 어서 1361”입니다. 종문에는 ‘행’도 ‘학’도 없습니다. 전혀 신심이 없는 증거입니다. 그런 종문은 법도둑놈입니다.
이즈미 ; 그렇게 말하니까 닛켄은 1990년 12월 25일. 본산에서 블랙저널리스트와 밀담할 때 C작전의 기도에 대해 ‘학회원 중 20만이 종문에 붙으면 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센자키 ; 총본산에서 법주가 방법의 주간지 사이비 기자 등과 밀담하며 1천만 명의 신도 집단을 자르는 상담을 했다는 것은 전대미문의 대방법, 대악행입니다.
다니가와 ; 속으로는 학회를 멸망시키고 싶다. 전부 종문의 지배하에 두려 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리보다도 여우보다도 무서운 아귀 축생 닛켄입니다.(웃음)
사토 ; 이것도 또한 야마자키의 ‘학회탈취 작전’의 내용이며 똑 닮은 것입니다.
아키야 ; 결국 닛켄을 폭로하면 야마자키가 되고, 야마자키를 폭로하면 닛켄이 됩니다. 마치 극악(極惡)의 ‘승속일치’이군요. (큰 웃음)
이즈미 ; 어느 쪽도 원한과 증오로 뭉쳐진 ‘미생원(未生怨)’입니다. 똑같은 숙명적인 태생은 무섭군요.(폭소)
아키야 ;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종문과의 결별은 잘 된 일입니다. 광대무변의 미래가 펼쳐집니다. 학회를 노예로 만들려고 한 종문의 증오의 소리가 무엇 하나 들리지 않습니다.(웃음) 제천선신이 그런 중들을 박장대소하며 비웃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