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크레카#1
(창12:1-20)
"약속을 따라 떠나는 삶"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창 12:1)
창세기 12장은 여호와께서 아브람을 부르시고, 그와 맺으실 언약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시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이 본문을 자세히 읽어 보면 흥미로운 대조가 나타납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믿고 떠난 아브람이, 정작 위기가 찾아왔을 때는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는 사실입니다.
이 두 모습이 오늘 우리의 믿음을 돌아보게 합니다.
1. 너 자신을 위하여 떠나라
히브리어 לֶךְ־לְךָ (레크 레카)는 문자적으로 '너를 위하여 가라'라고도 풀어 볼 수 있는 표현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아브람에게 세 가지를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고향, 친척, 아버지의 집
이것은 단순한 이사가 아닙니다.
아브람이 지금까지 의지하던 익숙한 환경과 관계를 떠나, 여호와의 말씀을 신뢰하는 새로운 삶으로 들어가는 사건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여호와의 부르심이 아브람의 순종보다 먼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람이 먼저 위대한 믿음을 증명해서 여호와의 부르심을 얻어 낸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먼저 부르셨고, 아브람은 그 부르심에 응답했습니다.
이는 로마서 4장에서 바울이 설명하는 믿음의 의와도 연결됩니다.
히브리적 의미에서 믿음, 곧 에무나(אֱמוּנָה)는 여호와의 말씀을 신뢰하고 신실하게 응답하는 삶과 깊이 연결됩니다.
아브람의 믿음은 마음속 생각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실제로 길을 떠났습니다.
믿음은 여호와께서 보여 주시는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는 것입니다.
2. 너는 복이 될지라 (복의 목적)
여호와께서는 아브람에게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고, 이름을 창대하게 하시며,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약속의 중심에는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너는 복이 될지라.” (창 12:2)
여호와께서 아브람을 부르신 목적은 그 한 사람만 잘되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를 통해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는 언약의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여호와의 복은 자기 자신에게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은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야 합니다.
이것은 이사야 56장에서 이방인도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분의 언약을 붙들 수 있다는 말씀과도 연결해 묵상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언약은 아브라함에게서 시작하여 많은 민족을 향한 복의 약속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복을 얼마나 많이 받았는가만 물을 것이 아니라, 받은 복을 통해 누구를 살리고 있는지도 돌아보아야 합니다.
3. 아브람이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다.
아브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가나안 땅으로 들어갑니다.
세겜에 이르렀을 때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창 12:7)
그런데 그 땅에는 이미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아브람의 눈앞에 보이는 현실과 여호와의 약속 사이에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아브람은 제단을 쌓았습니다.
벧엘과 아이 사이에서도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제단은 단순한 종교적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아브람이 자신의 삶과 여정을 여호와 앞에 두고 있음을 보여 주는 중요한 행동이었습니다.
아직 약속이 완성되지 않았지만, 그는 약속하신 분을 예배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다음에 여호와께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은 때에도 그분의 신실하심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4. 약속의 땅에 찾아온 기근
여기서 이야기는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나안에 도착했는데, 그 땅에 기근이 들었습니다.
이 장면은 매우 중요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했다고 해서 모든 어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브람은 불순종하여 가나안에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여호와의 부르심을 따라왔습니다.
그런데 기근이 찾아왔습니다.
믿음의 길에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오히려 그 어려움 속에서 우리의 믿음이 무엇을 의지하고 있는지가 드러나기도 합니다.
아브람은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성경은 애굽으로 내려간 행동 자체를 명시적으로 죄라고 판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애굽에서 아브람이 두려움 때문에 선택한 행동은 분명히 문제를 드러냅니다.
5. 두려움이 믿음을 흔들다
아브람은 사래가 아름다운 여인이었기 때문에 애굽 사람들이 자신을 죽이고 사래를 빼앗을까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사래에게 자신을 남편이 아니라 오라비라고 말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아브람은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려고 했지만, 그 과정에서 사래를 위험에 빠뜨렸습니다.
여기서 아브람의 믿음과 두려움이 대조됩니다.
가나안으로 떠날 때는 여호와의 약속을 의지했습니다.
그러나 애굽에서는 자신의 계산과 방법을 의지했습니다.
이 장면을 통해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하게 됩니다.
나는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길을 시작했지만,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다시 내 방법으로 돌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믿음으로 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여호와를 신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브람은 믿음의 사람이었지만 완전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러한 아브람을 통해서도 언약의 역사를 이어 가셨습니다.
6. 아브람의 실패에도 언약을 지키시는 여호와
사래는 바로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와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바로는 아브람을 불러 그가 왜 사래를 아내라고 밝히지 않았는지 책망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장면에서는 언약의 부르심을 받은 아브람이 오히려 이방 왕에게 책망받습니다.
성경은 믿음의 조상이라고 해서 그의 잘못을 감추지 않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아브람이 자신의 지혜로 사래를 지킨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개입하셔서 사래를 보호하셨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언약은 아브람의 완전함에 달려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아브람의 잘못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인간의 연약함과 여호와의 신실하심을 동시에 보게 됩니다.
이것이 로마서 9장 16절의 긍휼에 관한 말씀과도 연결됩니다.
여호와의 약속은 인간의 공로로 얻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약속을 받은 사람은 여호와를 더욱 신뢰하며 순종하는 삶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7. 깊은 묵상
샤밧에 나누었던 질문을 기억해 봅시다.
“약속의 자손인가, 자기 뜻의 자손인가?”
아브람은 여호와의 약속을 따라 길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위기가 찾아왔을 때 자기 뜻과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우리의 모습도 이와 비슷합니다.
여호와를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막상 어려움이 찾아오면 자기 경험과 판단을 먼저 의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 아브람을 부르신 이유는 아브람이 처음부터 완전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약속에 신실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람은 그 여정 속에서 믿음을 배워 갔습니다.
언약의 백성이란 한 번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흔들리는 순간에도 다시 여호와의 말씀으로 돌아와 그분을 신뢰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8. 오늘의 기도
여호와 아버지,
아브람을 부르셨던 것처럼 오늘도 말씀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세상의 익숙함과 자신의 계산을 내려놓고, 여호와의 약속을 신뢰하며 걸어가는 믿음을 주옵소서.
순종의 길에서 어려움이 찾아오더라도 두려움에 사로잡혀 내 방법을 앞세우지 않게 하시고, 언제나 아버지의 말씀으로 돌아오게 하옵소서.
우리의 연약함 가운데서도 신실하게 약속을 이루시는 여호와를 찬양합니다.
예슈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