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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서보니 그당시만해도 미국엔 일할곳은 많다.
건설업 같은 노동자들의 손이 모자라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내가 할수있는 일이 아니기에 나설수가 없을뿐이다
그래서 내맘속에 기본을 잡았다.
한국계 신문사 같은곳에 일해선 애들키울수가 없고(수입이 적다)
토요타 자동차조립공장(한국사람 무지 많다) 발전성
보이지않고~(1년후 누구나 월급이 같다)
굴지의 대기업 산업체 기술직으로 가야 발전성과
돈이 되는것을 알게되었다
그런데 기술이 없으니~
어느날 낚시하고 돌아오니 형수님 한테서 전화가 왔다.
서방님 공장에서 일해보실레요?
일만할수 있다면 무엇이든 못하겠어요?
하지만 배운거라곤 학교생활 뿐인데~
어렵지 않데요
서방님은 눈쌀미가 있으니 빨리 배울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어느사회던 서로 아는 사람들의 소개로
살아가는 힘은 대단히 큰것 같습니다
나를 직장에 소개해준분은 형수님이 일본인
편물공장 수퍼바이져로 일을 했는데
점심시간에 (한국사람들은 한데모여 식사함)
여러분~
에구~! 한국에서 갖온 우리서방님좀 취직좀 시켜주세요
그말은 들은 한여자분이 우리 신랑에게 함 알아볼게요
사람을 뽑는다는 소리 들었는데~
이렇게 해서 나의 운명은 공돌이(기술직)로 전락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신랑되는 사람과 전화통화를 한다음 공장의 위치와
주소를 찾아 갔다
이제까지 몇군데 어프리케션을 내면서보면 립셉션니스트는
예쁜 백인 아기씨아니면 좀나이든 세련된 여자분들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젊은 두 한국여인 같이 생긴분이 있어 맘이 많이
편안하다.
그래도 한국말로 못하고 짧은 영어로 내 이름이 무엇이고
누구의 소개로 일을 찾아왔다고 말하니 어프리케션 한장을
준다.
쓰면서 그래도 대학공부를 한탓에 이정도 양식에 쓰는것은
그리 어려워보이지 않았다.
최소한 소개한분과의 관계는? 에 3번했음 소리는 하지 않았
으니 말입니다.ㅋㅋㅋㅋ
어프리케이션을 내밀면서 한국분이세요하고 한국말로 하니
그여자분이 눈치로 알고 Japanese라고 한다.
그때 이런생각을 했다
우리국민도 좀더 빨리 해외진출을 했더라면 이런때 도움도 받고
좋으련만~
이민와서보니 중국계 일본계들은 조직적으로 기틀을 잡은 상태였는데
우린이제 이민 일세들이 건너와 터를 닦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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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2번째 이야기 잘 읽고 갑니다. 한국에서의 명예는 미국 가면 인정이 않되니 처음에 무지 고생이 많으셨으리라 여깁니다. 날로 재미 있어 집니다. 3 편을 기대 하겠습니다.
흥미진진 함니다.고생하시더라도,건필 부탁드림니다.ㅎㅎ
용기가 대한민국을 살렸지 않을 까요,
맞습니다 지금생각해도 참 용감히 뛰어든것 같아요 그리고 대학동창들이 말하죠 어떤 발상으로 그 큰 변회를 가져오게 했는가 하고 묻죠~~
이제 시작이네요 ㅎㅎ 다음편 기대합니다
의지의 한국인으로서 손색 없으십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