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가 쏟아지는 밖을 내다보고 있는
이 방을 나는 凌雨軒이라 부르겠다
능우헌에서 바라보는 가까이 모여 내리는
비는 다 直立이다
휘어지지 않는 저 빗줄기들은
얼마나 고단한 길을 걸어 내려온 것이냐
손톱이 길게 쩍 갈라졌다
그 사이로 살이 허옇게 드러났다
누런 삼베옷을 입고 있었다
치마를 펼쳐 들고 물끄러미 그걸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입은 두꺼운 삼베로 된 긴 치마
위로 코피가 쏟아졌다
입술이 부풀어올랐다
피로는 죽음을 불러들이는 독약인 것을
꿈속에서조차 너무 늦게 알게 된 것일까
속이 들여다보이는 窓봉투처럼
명료한 삶이란
얇은 비닐봉지처럼 위태로운 것
명왕성처럼 고독한 것
직립의 짐승처럼 비가 오래도록 창밖에 서 있다
ㅡ시집<<삼베옷을 입은 자화상>>(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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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올릴 오늘 치 시를 고르다가 물끄러미 창 밖의 빗줄기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메를로 퐁티가 그랬던가요, '실존은 직립이다'라고. 주말에 방문하리라는 제6호 태풍 '디앤무'의 영향 탓인지 '직립'의 고단한 비가 점령군처럼 저벅저벅 창 밖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실존으로서의 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철학적 풍경이 빗속에서 일순 펼쳐집니다.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던 허만하 시인의 <프라하 일기>의 한 구절도 잠시 상념 한구석을 다녀갑니다. 장대비 속에서 이 누추한 사무실도 대책 없이 능우헌(凌雨軒)이 되고 맙니다. 처마 끝에서 순순히 수직으로 잘리는, 초식동물의 쓸쓸한 허리 같은 앞산의 능선이 오전인데도 겨울밤처럼 적막합니다.
발설할 수 없는 어떤 그리움이 빗속에서 짐승의 무게로 다가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그리움은 알 수 없어서 불안하고 그래서 안전합니다. 죽음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광기를 닮은 것 같기도 한 빗속에서의 그것은 어쩌면 내가 내 생을 통째로 배반하게 할 것 같아 불온합니다. 하지만 한번도 배반당한 적 없는 생이란 얼마나 가혹한 지루함인지요?
"속이 들여다보이는 窓봉투처럼/명료"하게, 아니 명료하다는 착각 속에 봉인된 내 삶이란 또한 얼마나 "비닐봉지처럼 위태로운 것"이었던가요? 내 영혼은 얼마나 "명왕성처럼 고독"했던가요? 수의를 입은 수척한 모습의 내 자화상을 걸어놓을 배경으로는 저 직립의 빗줄기가 수놓인 테스트로피(실로 짠 벽걸이)가 제격일 것 같습니다. 움막 같은 능우헌에 삼베옷의 자화상을 걸어 놓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직립의 빗속을 노려보는 이 짐승 같은 그리움이라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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