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 부처님의 대표적인 두 제자 대화장면 사실적 묘사
석가모니 부처님과 좌우보처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지켜보는 가운데, 가섭존자와 아난존자가 나란히 앉아서 무엇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무슨 이야기를 저렇게 진지하게 나누고 있을까. 이야기를 듣는 가섭존자의 모습은 왠지 심각해보이고, 말을 하는 듯한 아난존자의 모습은 진지하다. 부처님의 마음을 전수한 선종의 초조 가섭존자와 부처님의 가르침을 암송해 전한 교종의 초조 아난존자 사이에 무엇인가 진지하게 나눌 이야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선과 교는 늘 대립적 구도로 알려져 왔으나, 아난존자는 가섭으로부터 마음법을 전수한 2대 조사이기도 하니, 아마도 두 제자들은 부처님의 수행법과 가르침을 어떻게 하면 올곧게, 변질됨이 없이 후대에 전할 것인지를 논의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섭존자(오른쪽)와 아난존자(왼쪽)의 대화장면을 한 남자가 엿듣기나 하듯이 지켜보고 있다.
가섭과 아난, 두 존자의 대화 장면을 서사적으로 묘사한 불화가 발견됐다. 석가삼존불 불화에서 도식적으로 삼존불 사이에 머리 부분만 그려지는 모습이 아닌, 석가삼존불 앞의 무대에서 두 존자가 주인공이 되어, 앉아서 대화를 나누며 무엇인가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모습이다. 이런 도상은 조선조는 물론, 중국과 한국을 통틀어 처음 발견된 것이다.
온라인 게임회사 ‘라이엇 게임즈’ 지원으로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환수
조선 말기, 조선의 문화가 한창 무르익던 영정조 시대(1730년대)에 조선의 어느 대찰에서 제작된 작품으로 추정되는 이 불화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유출되었다가 다시 미국으로 반출돼 떠돌아다니다가 허미티지 박물관에 40년 넘게 소장되어 있던 해외반출문화재였다. 이 소중한 불화가 온라인게임 회사인 라이엇 게임즈의 지원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문화재청 등의 노력으로 100년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오늘(1월 7일) 오전 11시 국립중앙박물관 사진실에서 기자설명회 개최하고, 이 석가삼존도를 공개했다.

미국 허미티지 박물관에서 환수한 조선후기 석가삼존도. 사진=해외소재문화재재단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현보살이 서 있는 전형적인 석가삼존도 불화로 대찰의 대웅전의 후불탱화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로, 세로 길이 3미터(318.5㎝×315㎝)가 넘는 정사각형 형태의 대형 불화로 아난과 가섭 등 석가모니 부처님의 대표적인 두 제자가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는 드문 도상으로 문화사적 가치가 매우 높아 보인다.
안휘준 해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오늘은 참 기쁜 날”이라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매우 중요한 조선시대 불화를 환수해온 날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안 이사장은 “이 불화는 작품성이 뛰어나고 주목할 만한 것은 아난과 가섭존자가 서로 대화하는 듯한 모습이 클로즈업 되어 표현되어 있다는 점”이라며 “이 작품의 양식은 전에 없었던 것으로 작품성과 예술성 외에도 도상학적 면에서도 주목할 만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아쉬운 것은 화기가 잘려나가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는 점”이라고 덧붙인 안 이사장은 “그러나 화풍을 통해서 시대를 추정할 수 있어 그 중요성은 줄어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불화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안 이사장은 이어 “이런 중요한 작품을 우리나라로 가져오게 된 데는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에서 쾌척한 3억 원이 있었다”며 “앞으로도 기업이 문화재 환수에 관심을 갖는 이번 쾌거를 계기로 이 같은 좋은 사례가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한편 미국계 게임회사인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의 이승현 상무는 “라이엇 게임즈는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온라인 게임회사”라고 소개하고 “저희는 한국문화가 세계적 수준의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하고, 이 문화재를 지키는 데 기여하고자 생각하고 2년 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환수가 가능하도록 큰 도움을 준 미국 본사이며, 이 소식이 우리 문화재 보존의 중요성을 환기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1730년대 경상도의 어느 대찰에서 화승에 의해 그려졌을 것”
해외소재문화재재단 최영창 국장의 반환 경위 소개에 이어, 조선시대 불화전문가인 국립중앙박물관 교육과의 김승희 과장이 이 불화의 가치에 대해 설명했다.
김 과장은 “조선시대 불화 중에서 3미터가 넘는 대형불화는 매우 드물다. 일단 규모가 크다는 것이 특징이고, 이 정도 규모의 불화는 큰 대찰의 대웅전에 모셔졌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화기가 잘려나가서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으나, 1730년대 불화에 삼베를 붙이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그 당시 제작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밝힌 김 과장은 “대형불화의 경우 몇 가지 특징. 석가, 문수 보현의 형식과 부처님의 대의의 모습이나 문양은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에 유행했던 양식이 있는데, 이런 형식의 내용은 동화사, 파계사, 조선시대 활약했던 의균 등 화승의 화풍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18세기 초반의 작품으로 보면 무난할 것 같다”고 분석했다. 김 과장은 또 “동화사 극락전에 모셔진 불화 중에 의균이라는 1660년도에 그린 불화가 있는데, 이 불화에서 표현된 부처님의 대의(옷)의 문양적 요소, 소용돌이 또는 바람개비 문양이 문양이 동일하게 관찰된다”고 설명했다.

이 불화의 가치를 설명하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교육과 김승희 과장.
김 과장은 특히 “가섭존자와 아난존자가 주로 본존과 보살들 사이에 얼굴만 나타는 것이 일반적인 예인데, 이 불화에서는 특이하게도 본존불 앞의 무대에 등장해서 아난과 가섭이 서로 이야기 하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며 “우리 불화에서는 이런 서사적인 모습이 거의 없는데, 이런 장면은 거의 유일한 예이며, 그러므로 도상학적, 미술사, 특히 불교회화사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가채 흔적…안휘준 “두 제자 사실적 묘사는 실학적 영향”
“40년간 둘둘 말려서 보관되어서 표면이 들떠 안료를 안정시키고 오염된 것을 제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전제한 김승희 과장은 “1730년 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이지만, 후대에 본존불의 얼굴, 보현보살과 용여, 용왕의 얼굴부분에 가채 흔적이 있으며, 또 안료가 떨어져나간 부분들을 보수해 원래의 모습을 되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안휘준 이사장은 “아난존자와 가섭존자를 불화에서 이 작품처럼 부각시킨 것은 조선왕조 통틀어 이것뿐이고, 중국 등 다 통털어도 이것 뿐”이라며 “왜 두 분의 부처님 제자가 클로즈업 되었을까”라며 조선 후기 실학의 영향을 조심스럽게 제시했다. 단원과 혜원의 풍속도에서 연상할 수 있는 것처럼, 실존했던 제자들을 불화의 전면에 등장시키는 것은 18세기 실학적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불화의 얼굴이 인도사람들이 아닌 우리나라 사람들의 얼굴을 하고 있고, 그려놓은 위치가 대웅전 후불탱화에 걸렸다면 가장 중요한 위치에다 두 제자를, 마음에 와닿게 실감이 나도록 사실적으로 그려 넣었다는 점에서 그래서 더욱 의미가 크다”며 “보물급 이상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100년의 유랑’, 희귀 조선 불화 귀향되기까지…
이 조선불화는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접어들어 고달픈 해외 유랑 생활을 시작한다. 사찰에서 무단으로 뜯겨진 뒤 일본으로 반출돼 일본 미술품상 야마나카상회(山中商會)에 넘겨졌다. 1930년대 후반에는 태평양을 건너 미국의 주요 미술시장을 떠돌았다. 일제 강점기의 아픔을 오롯이 간직한 이 불화가 100년의 유랑생활, 디아스포라(DIASPORA-유태인의 유민 생활을 이르는 표현)의 고단한 삶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과정은 파란만장하다.
해외소재문화재재단은 지난 해(02013년) 5월초 국외한국문화재 조사작업을 통해 이 불화를 처음 발견했다. 불화는 버지니아주 박물관협회로부터 ‘2011년 위험에 처한 문화재 10선’에 선정돼 복원 및 보존처리 지원 등을 도와줄 후원자를 찾던 중이었다.
재단은 국외한국문화재 복원지원 프로그램의 하나로 현지 및 문헌 조사 등을 통해 지원 여부를 검토했다. 조사 결과 불화는 국내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구성상 희귀함을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이러한 특징을 갖춘 현존 유일본이었다. 재단은 불화의 학술적 가치와 반출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국내 반환을 추진하기로 했다.

송광사 응진전의 석가삼존도.
이 불화는 설법하는 석가모니 부처를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그려 넣고 10대 제자 중 아난존자와 가섭존자를 석가모니 부처 앞에 강조해 넣은 ‘석가삼존도’ 형식이다. 조선불화 전문가들은 석가모니 부처의 광배나 대의(大衣)의 문양 등은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의 양식이고, 삼존의 구도나 보살의 표현(보관과 영락장식)은 1731년에 제작된 송광사 응진전 ‘석가모니불도’와 매우 유사한 점으로 미루어 1730년대를 그 제작시기로 보고 있다.
그러나 스타일상 종래의 그것과는 파격적으로 다르다. 아난존자와 가섭존자가 석가모니 부처의 좌우 상단부에 작은 모습 등으로 묘사된 기존의 것들과는 다르게, 두 인물이 석가모니 부처의 하단 전면에 크게 부각되어 서로 대화하듯 극적으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해외소재문화재재단의 조사결과 이 불화는 일제 강점기 초반 국내 어느 사찰에서 무단으로 뜯겨져 일본으로 반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미술품상 야마나카상회에 넘겨졌다. 그 곳에서 불화의 일부분에 대한 수리와 보수-불화의 수리된 내용(안료 등)을 분석한 결과,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수리하던 기법과 같은 것으로 보임-를 거친 뒤, 태평양 건너 미국 톨레도박물관(The Toledo Museum of Art, 오하이오주 소재)에 잠시 전시(1942)되는 등 미국 내 미술관 및 미술품 시장을 떠돌았다.
그러던 중 일본의 진주만 공습(1941.12.7.) 이후, 미국 정부가 미국내 일본 재산의 몰수를 위해 설치한 ‘적국자산관리국’(Office of Alien Property Custodian, APC)에 의해 야마나카상회의 모든 미술품이 몰수된다. 미국 정부는 몰수된 야마나카상회의 미술품을 모두 경매에 넘겼고, 이때 불화도 6,500달러라는 경매가로 1943년 뉴욕 경매시장에 등장했다. 그러나 유찰을 거듭해 마침내 1944년 최종 낙찰가 450달러에 허미티지박물관에 팔려간다. 식민지 시절 뜯겨진 불화가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 제2차 세계대전의 회오리 속에서 일본의 적산으로 낙인찍혀, 미국 정부에 손에 넘겨진 뒤 미국의 한 박물관에 팔려간 것이다.
이후 불화는 마땅한 전시공간을 찾지 못한 채 보관되어 오다가, 1954년 노포크박물관(Norfolk Museum of Arts and Science, 버지니아주 소재, 현 크라이슬러박물관)에 20년간 장기 대여 형태로 전시되기도 한다. 1973년 다시 허미티지박물관에 돌아온 불화는 둥글게 말려 천장에 매달린 채 40년간 사실상 방치된 채 보관되어 왔다. 그리고 2011년 버지니아주 박물관협회는 이 불화를 ‘위험에 처한 문화재 10선’에 선정했다. 그러던 중 재단의 국외문화재 조사작업을 통해 발견되기에 이르렀다.
재단은 2013년 7월과 10월 허미티지박물관을 직접 방문해 불화의 보관상태 등을 직접 조사하는 한편, 관련 자료를 수집해 관계 전문가들이 참여한 자문위원회를 수차례 열어 반환을 요청하기로 했다. 그리고 소장기관인 허미티지박물관측과 반환을 협의했다.
재단은 불화가 “국내에 다시 돌아올 때 비로소 학술적, 예술적, 종교적 가치도 더욱 커질 뿐 아니라, 복원을 통한 연구와 전시 등 적극적인 활용으로 보다 더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다.”며 문화재의 보편적 가치라는 관점에서 박물관 측에 반환을 거듭 요청했다.
허미티지박물관 이사회 측도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보다 대한민국에 속할 때 보다 더 잘 보존되고, 가치 있게 활용될 수 있으며, 널리 사랑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다.”며 기증을 최종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문화재청의 ‘한 문화재 한 지킴이’ 사회공헌활동에 동참한 미국계 기업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Riot Games Korea)가 허미티지 박물관에 박물관 운영기금을 기부했다. 이로써 100년 동안 나라 밖을 떠돌던 불화의 귀향이 최종적으로 이뤄질 수 있었다.
첫댓글 많은 이들의 노력이 있었네요 좀더 내용이 파악되었음...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