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회의 2025년 춘계 정기총회
프란치스코 교황 선출 12주년 기념 미사
주한 교황대사 강론
(2025년 3월 26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 특별한 날에 강론을 하게 되어 큰 영광입니다. 오늘 저녁 우리는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를 위하여 기도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이는 당신의 가르침과 모범으로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베드로의 후계자에 대한 깊은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 자리에 함께하신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님과 한국의 모든 대주교님과 주교님, 신부님과 남녀 수도자, 헌신적인 평신도와 젊은이 그리고 선의의 모든 이에게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특히 교황청 전교기구 한국지부 설립 60주년을 기념하고자 로마에서 교황청을 대표해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에밀리오 나파 대주교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밤은 성찰의 시간이자 무엇보다 기도의 시간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선출 12주년을 기념하는 지금, 질병 앞에서 약해지신 교황님을 위한 우리의 기도는 더욱 간절합니다. 교황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 “시련의 때”는 병중에 있는 수많은 형제자매와 함께하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한 달이 넘도록 교황님께서는 로마 제멜리 병원의 10층 병실에서 지내셨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교황님의 회복이라는 하나의 지향으로 일치되어 전 세계가 기도의 ‘릴레이’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희망으로 가득 찬 이 기도의 물결은 교황님의 건강 상태가 안정세에 들어섰다는 소식과 퇴원하시기에 앞서 의료진이 발표한 건강 호전 소식에 힘입어 더욱 힘을 얻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적절한 회복을 위해 앞으로 몇 주간 만남을 줄이실 예정입니다. ‘만남의 교황’으로 불리시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 이러한 제약이 얼마나 큰 아쉬움일지 우리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희생마저도 우리에게 깊은 가르침이 되어 다가옵니다.
사도 시대부터 전 세계 교회는 기도로 로마 주교를 지원해 왔습니다. “부디 저를 위해 잊지 말고 기도해 주십시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이 단순하고도 심오한 부탁은 교황님의 재위 기간 동안 끊임없이 이어져 왔습니다.
오늘 저녁, 우리는 가톨릭 교회는 물론 온 세상 모든 이에게 신뢰할 만한 길잡이가 되어주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이라는 귀한 선물에 하느님께 특별한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교황님께서는 인간 존재의 넓은 지평에 대한 가르침으로, 전 세계에 자비와 형제애, 시노달리타스와 희망을 청하는 지칠 줄 모르는 직무 수행으로, 그리고 이제는 당신의 고통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큰 영감을 주고 계십니다. 우리 마음에서 저절로 찬미가 우러나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지난 12년 동안 우리에게 “저 너머를 바라보는 법”을 가르쳐 주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하느님께 마음을 활짝 열어 복음이 전하는 사랑의 길을 걷도록 이끌어 주신 참된 하느님의 사람이셨기 때문입니다. 교황님의 첫 번째 회칙 「신앙의 빛」(Lumen Fidei)부터 가장 최근의 회칙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Dilexit Nos)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다양한 교도권 문서들과 일상에서 보여주신 놀라운 모범을 통해 우리는 깊은 영적 양식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이끄시는 교황님의 지향에 따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분께서는 인류가 마주한 복잡한 도전들을 전 세계를 살피는 아버지의 눈으로 바라보고 계십니다. 오늘날 인류는 오래고도 새로운 형태의 물질적·영적 빈곤의 무게에 짓눌리고, 셀 수 없이 많은 도덕적·사회적 병폐로 상처받으며, 갖가지 위기 속에서 무기력함을 느끼고, 전쟁으로 인한 불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마음 깊은 곳에는 평화와 연대, 정의를 향한 갈망이 살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온 인류가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평화의 가장 성실한 수호자요, 가장 항구한 옹호자로서 신뢰와 감사로 바라보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함께 평화의 임금이신 예수님께 우리 시대에 평화를 내려주시기를 한결같이 기도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기도는 우리 마음을 주님께 열어드리는 열쇠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과 대화하고 그분 말씀에 귀 기울이며 그분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체험한 것을 그분께 내어 맡기며 침묵 속에 머무는 것입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게 하는 방법이고,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분께서 우리에게 소통하시려는 바를 이해하는 방법이며,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 방법입니다”(삼종기도, 2022.1.9.).
지난해 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공식적으로 성문을 여시며 선포하신 2025년 희망의 희년은 2024년 한 해 동안 특별한 준비 과정을 거쳤습니다. 이 기간에는 우리 각자의 삶과 교회 공동체의 삶 그리고 온 세상 안에서 값진 의미를 간직한 기도가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2024년 내내 전 세계 교구들은 개인 기도와 공동체 기도에 힘쓰도록 권고받았습니다. 이러한 영적 긴장은 현재 우리가 걷고 있는 사순 여정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는 “사랑 안에서 화해를 이룬 인류의 스승이자 모범”이신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부활의 빛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미사 거행을 위해 특별히 선택된 마태오 복음서의 한 대목을 들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교황과 주교들로 대표되는 베드로와 사도들 위에 세워진 교회라는 위대한 선물을 환영하도록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우리는 베드로와 그 후계자들이 고백한 믿음을 중심으로 교회를 이룹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바탕으로 한 하느님 백성의 모임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믿음은 그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의 믿음의 반석 위에 굳건히 서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그리스도이시며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맨 먼저 알아본 베드로를 통해 그분을 믿습니다. 온 교회는 베드로 사도의 믿음 안에서 정체성을 찾게 됩니다. 이렇게 시대를 초월한 교회의 일치는 눈에 보이는 이 친교의 유대로 튼튼히 이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들로부터 이어받은 하나의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고백한 믿음 위에 세워진 교회는 역사 안에서 발전되고 지속됩니다. 우리는 교회를 반드시 믿어야 합니다. 그저 교회 안에서 믿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교회를 믿고 그리스도의 선물로 받아들여 사랑하고 섬겨야 합니다. 교회를 믿는다는 것은 교회를 살아 있는 것으로, 또 우리 자신으로 경험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살면서 여러 어려움을 마주할 때, 때로는 교회를 위해 아픔을 감내해야 할 때도 있지만, 교회가 하느님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항상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교회는 분리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이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다음과 같이 확언한 대로, 중심은 언제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인류 역사의 목적이시고 역사와 문명이 열망하는 초점이시며 인류의 중심이시고, 모든 마음의 기쁨이시며 그 갈망의 충족이시다. 성부께서는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시키시고 들어 높이시어 당신 오른편에 앉히시고 산 이와 죽은 이의 심판관으로 세우셨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 45항). 교회가 없으면 우리는 그리스도께 다다를 수 없습니다. 교회는 우리 손을 잡고 우리를 안내해 줍니다. 제가 특별히 아끼는 아름다운 글에서, 대 그레고리오 성인은 교회가 세상을 어둠에서 빛으로, 신앙의 빛으로 데려가는 새벽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주 그리스도께서는 빛이십니다. 그러나 낮이 오려면 새벽은 반드시 필요합니다!(성 대 그레고리오, 「욥기 교훈」, 『라틴 교부 총서』 76, 478-480 참조).
예수님께서는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태 16,15) 하고 물으셨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나자렛 사람 예수님을 누구라고 이야기합니까? 다양하고도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답이 나올 수 있습니다. 2027년 세계청년대회를 준비하면서, 우리는 특별한 목소리, 곧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젊은 세대에게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끈기 있게 들어주는 것, 이것이 교황님의 초대입니다. 이를 통해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온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신앙 쇄신을 위한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사순 시기의 이 사십 일 동안, 순례하는 백성인 교회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만나는 부활의 기쁨을 향해 함께 걸어갑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사순 시기는 슬픔의 때가 아니라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소중한 기회입니다. 이 시기에 우리는 단식과 자선과 기도를 통해 덧없는 것들이 아닌 하느님 사랑의 충만함 안에서 우리의 희망을 굳건히 다져 나갑니다. 사순 시기의 광야는 우리의 발걸음을 구세주의 빈 무덤으로, 부활의 기쁨에 대한 그 강력한 증거로 이끌어 줍니다. 이렇게 우리는 신약 성경이 증언하듯 역사적 기록으로 증명된 실제 사건이자 주일마다 기념하는 예수님 부활의 신비를 우리가 다시 살아낼 수 있도록 스스로 준비합니다. 이 신비가 영원한 생명, 결코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 희망, 한계 없는 무한한 사랑에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활짝 열어 줍니다.
보편 교회와의 일치 안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위하여 계속 기도합시다. 우리는 교황님을, 그분의 건강과 모든 지향을 동정 마리아의 모성적 전구에 맡겨 드립니다. 천주의 성모님께서 교황님이 원하는 소중하고 깊은 영적 위로를 베풀어 주시기를 빕니다.
주한 교황대사
+ 조반니 가스파리 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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