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삼영뉴욕포커스] 신용카드 부실에 대해
LG카드 관리문제 해결이 지연되면서 국내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있다.
3%대에도 못미친 지난해의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내수진작’이 무엇보다도 절실한 상황에서 신용카드업계의 부실과 이로 인한 개인들의 신용대란은 갑신년 최대의 경제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신용카드 시장은 20여년의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여타 금융업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성장 과정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사실은 기업금융 위주로 운영되던 국내 금융산업에 소비자 금융시장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고속성장의 이면에는 과소비 유발, 신용불량자의 양산, 카드 관련 범죄의 증가 등 많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특히 투명과세정책의 일환으로 정부가 나서서 시행한 신용카드 소득공제제도나 복권 추첨제도 등은 카드 선진국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신용카드의 순기능만을 강조한 정책으로 국내 신용카드 시장을 양적으로는 팽창시켰지만 질적으로는 성숙시키지 못한 대표적인 정책으로 볼 수 있다.
국내 전체 카드 이용액의 60% 이상이 신용카드의 본래 기능인 물품구매 기능보다는 현금서비스가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국내신용카드 산업의 기반이 그만큼 취약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같은 카드빚 문제는 ‘플라스틱 전염병’으로까지 불리며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공통의 현상으로 번지고 있다.
카드 산업의 선진국,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도 과거의 발전 과정에서 우리의 문제를 능가하는 수준의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이들 선진국에서는 다양한 지원 시스템의 보완과 제도의 개선 등을 통해 장기적으로 성장성과 수익성이 있는 산업으로 자리매김되어 있다.
현재 세계 신용카드 규모는 이용대금을 기준으로 볼 때 4조달러를 웃돌고 있으며 이 중 미국내에서 사용되고 있는 금액은 1조4000억달러로 세계시장의 35%를 차지한다. 미국 연방은행의 보고에 따르면 미국에서 신용카드를 발행하는 금융기관은 6000개를 넘어섰고 카드 발급대행기관까지 합치면 1만여개에 달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거대한 미국의 카드산업은 지난 10여년간 연 13% 이상의 안정적인 성장성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여타 금융산업보다 상대적으로 월등한 수익성을 유지해 왔다.
물론, 이는 신용정보와 관련된 무서울 정도로 철저한 사회적 인프라와 당국의 시장경제 지향적인 정책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즉, 내부적으로는 정부가 카드산업의 진입장벽을 허무는 완전시장 경제정책을 실시하여 시장에서의 경쟁을 촉진시켜 가격 효율성이 달성되도록 유도했으며 외부적으로는 신용정보회사(Credit Bureau)의 설립과 정보의 이용에 관한 규제법률 등 다양한 시스템으로 카드산업을 지원해 왔다.
또 카드산업 자체적으로도 몸집을 늘리기 위한 마케팅에만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효율적인 리스크 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다양한 아웃소싱과 분야별 전문화 등을 통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계속 해왔으며 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들은 시장원리에 따라 과감히 퇴출되었다.
특정 기업의 부도가 금융시장 전반에 큰 영향이 미칠 것이라고 예견될 때 정부가 해당기업에 대한 채무조정을 채권단에 권고하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디까지가 정부가 해야 할 일이고 아닌지에 대하여는 단언하기 어렵다.
미국에서도 금융권에 문제가 있으면 연방은행(정부)이 나서서 도와줬지만 그 이후에는 ‘시장’이 알아서 했다. 분명한 것은 은행의 부실을 국민의 세금으로 메우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의 신용카드 정책 기조가 철저히 ‘시장경제지향’과 ‘소비자보호강화’에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선진국 카드산업의 변천 과정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현재의 어려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위험관리에 대한 철저한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국내 신용카드산업 역시 장기적으로는 성장성과 수익성이 있는 산업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처럼 심각한 경제문제가 국내의 더욱 ‘심각한’ 정치문제에 치여 국가정책의 중요 순위에서 뒷전에 놓여 있는 듯하다는 점이다.
이 시점에서 참여정부가 꼭 되새겨보아야 할 일이 있다. 정치인의 부정과 비리에 있어서 그 어느 나라보다도 엄격한 미국에서, 추잡한 여자문제로 인한 거짓말로 탄핵 직전의 위기에 섰던 클린턴 전대통령을 살려낸 것은 바로 ‘성공한 경제’였다. 개혁도 중요하고 총선 승리도 중요할 테지만 경제를 안정시키고 끌어올리는 것에는 그 무엇도 미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