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정온선생 답사기 부분 중에서 음식에 대한 부분을 정리하여 쓴 것입니다. 제가 음식에 관심이 많아 음식동호회에 올리기 위하여 별도로 정리하였습니다. 음식에 관심이 있는 분은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정온선생댁 음식 이야기>
오랜 만에 들어 옵니다. 그간 너무 일이 바빠 눈팅도 제대로 하지 못하였습니다. 얼마 전 휴가기간에 답사를 다녀오면서 거창의 유명한 정온선생고택을 다녀왔습니다. 정온선생고택의 종부는 양반가의 음식을 잘하는 분으로 유명하십니다. 그 분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몇 가지 음식에 대한 조리 방법을 알아왔고 그것을 집에서 해먹었습니다. 물론 음식을 하는 것은 제가 아니고 집사람입니다. 한마디로 환상이었습니다. 그 답사기를 소개하니 관심있으신 분은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여름 휴가 때 다녀온 거창의 정온선생고택의 음식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정온선생의 호가 동계여서 이 집은 동계 고택으로 불리우기도 한다. 동계고택은 오래 전부터 보고 싶었던 곳이다. 건축의 관점에서 보면 사랑채의 지붕이 특이하여 건축을 전공하는 사람의 관심대상이었고, 또한 동계고택의 종부는 음식솜씨가 유명하여 한국음식을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꼭 찾아뵈어야 할 분으로 알려져있다. 종부는 방송과 잡지에 여러 번 소개되었던 분이라서 음식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다 알만큼 유명한 분이시다.
집사람이 종부를 위하여 선물로 두텁편을 만들어갔다. 두텁편은 찹쌀떡으로 밤, 대추, 호두, 유자 등을 넣어 찐다. 겉에는 팥고물을 덮는데 팥고물은 푸른팥을 볶어서 만든다. 팥은 쉽게 상하지만 팥을 볶아서 고물을 만들었기 때문에 여름에도 상온에서 3일 정도는 상하지 않는다. 두텁편은 쫄깃쫄깃한 맛과 유자향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맛을 보인다. 이 떡은 궁중에서 먹던 떡이라고 한다. 종부께서 떡을 풀어 보시고는 너무 예쁘다면서 젊은 사람이 어떻게 이런 떡을 만들었는가 칭찬하시면서 읍내에 있는 동서와 같이 먹겠다고 하신다. 자신은 떡은 잘 못만든다고 하신다면서 떡에 대한 칭찬을 하셨다.
그러면서 며칠전(8월6일 양력) 동계선생 불천위제사 때 만든 송편을 쪄내 올테니 먹고 가라고 하신다. 쪄 내온 송편은 이전에 전혀 먹어보지 못하였던 것이다. 인절미,콩편과 송편 2가지를 쪄내오셨는데 그 중에는 소나무 속껍질과 모시 이파리로 만든 송편도 있었다. 워낙 솜씨가 좋으신 분이어서 모양도 예쁘게 만들었다. 소나무속껍질로 만들었기 때문에 색깔은 짙은 와인색을 띠는데 예쁘기도 하지만 나무와 모시줄기가 씹히는 맛이 전혀 새로운 경험이었다. 쫄깃쫄깃 씹는 맛이 먹는 즐거움을 더한다. 애들이 워낙 맛있게 먹으니 별도로 냉동된 떡을 싸주셨다.
집사람도 음식에 관심이 많아 대화는 자연스럽게 음식으로 넘어갔다. 이 집의 대표음식인 고추소박이 ( 고추전과 비슷하지만 기름으로 부치지 않고 쪄낸다. ), 돔장 ( 도미조림 ), 고추장볶음, 집장 ( 메주가루를 부추 등과 함께 박에 넣어 만든 장 ) 등 몇 가지음식을 만드는 방법에 대하여 집사람에게 알려 주었다. 특히 '돔장'은 쌈을 싸먹을 때 매우 좋다고 한다. 집사람이 꼭 해보고 연락드리겠다고 하였다. '육포' 이야기를 하면서 집사람은 생강을 즙으로 넣는다고 하였더니 생강을 얇게 채로 썰어 넣으라고 하셨다. 생강이 씹히는 경우가 훨씬 맛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육포'는 칼로 직접 뜨는 것이 맛있다고 하셨다. 종부께서는 지금도 소고기 덩어리를 칼로 직접 뜨시는데 자기가 원하는 두께로 마음대로 뜰 수 있다고 한다. 고기를 그만큼 다룰 수 있는 솜씨라면 얼마나 많은 칼질을 하셨을까 상상이 되지 않는다.
이런 좋은 솜씨를 며느리에게 전수하지 않는가 하였더니 며느리가 배우면 고생한다고 전혀 배우려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제사 때 내려와서는 음식을 하면 모두 싸가기 바쁘다고 하였다. 이제는 며느리에게 강제로라도 전수시켜 받아 드시라고 하시니 쉽지가 않다고 하신다.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아쉬운 것은 이렇게 좋은 문화가 사라져 버릴 위기에 있다는 점이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 문화에 대한 인식이 낮지만 특히 음식에 대한 인식은 상대적으로 너무 낮다고 생각한다. 우리 음식은 매우 수준이 높다. 음식에 대한 수준은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보면 얼마간은 알 수 있다. 서양음식과 한국음식, 일본 음식, 중국음식을 비교해보면 한국음식을 만드는 과정이 가장 복잡하다. 과정이 복잡하다는 것은 그만큼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만큼 고급이라는 것이다. 집사람이 음식을 만든 것을 보아도 한식으로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중국식으로 음식을 만드는 것에 비하여 두 배 이상의 노력이 들어간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종가댁 며느리가 음식을 배우려 하지 않는 것은 제사 등의 집안일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긴 하지만 음식을 만드는 과정이 만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우리나라 양반가의 음식에 대하여 잘 모른다. 양반가의 음식은 만드는 과정이 복잡하여 결코 혼자만들 수 없는 음식이다. 한마디로 아랫것을 거느리고 하던 음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맛있고 좋은 음식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요사이 호텔에서 조차 한식당을 없애고 있다고 한다. 음식을 만드는 노력에 비하여 음식값이 낮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두부전골이라는 음식이 있다. 두부전골은 두부를 부친다음 두부사이에 다진 고기를 양념에 재어 채워놓은 뒤 미나리로 하나씩 묶어 놓고 신선로식의 고명을 만들어 밑에 깔고 육수를 부어 끓여 내는 음식이다. 이러한 두부전골의 가격을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아마도 2만 원 이상 받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그 노력으로 보면 최소한 5만 원 이상은 되어야 할 것이다. 두부전골은 예전에 집사람이 가끔 해주었던 음식인데 워낙 손이 많이 가다보니 요사이는 먹어본 지가 오래되었다. 하여간 우리의 음식은 매우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이왕 음식에 대하여 이야기가 나왔으니 중국음식과 한식의 차이에 대하여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려 한다. 중국음식은 식으면 먹기가 힘들지만 한식은 식어도 먹을 수 있다. 이것은 음식을 만드는 과정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의 음식은 기름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음식은 기름을 사용하여 센 불로 급하게 익혀내는 음식이기 때문에 식으면 먹기가 힘들다. 중국음식에도 찬 음식 예를 들면 '오향장육'이나 '냉채류'는 다음에도 먹을 수가 있으나 대부분의 음식은 그렇지 못하다.
휴가를 마치고 와서 장모 생신상을 차리며 집사람이 배워온 것 중에서 '고추소박이'를 만들어 내놓았다. 이전의 고추전은 계란옷을 입혀 기름에 부쳐내는 것인데 종부는 절대 기름에 부치지말라고 하였다. 기름에 부치면 싸구려 음식이 된다고 하면서 꼭 쪄내라고 하였다. 그리고 쪄낸 다음 새콤달콤한 양념을 바른 후, 채 썬 파, 실고추, 채 썬 석이버섯 ,잣가루로 고명을 올려 완성하라고 하셨다. 쪄낸 '고추소박이'는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만들어 낸 음식은 전분을 발라 쪄냈기 때문에 전분이 투명해져 음식의 형상과 색이 그대로 살아있어 시각적으로 즐거움을 주었다. 그리고 기름지지 않아 음식의 순수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한마디로 이때까지 먹던 고추전과는 전혀 다른 맛이었다. 이 음식만을 보더라도 종부의 음식솜씨가 얼마나 대단한지 느낄 수 있었다.
종부께서 하시는 동계고택의 음식은 '초계(草溪) 정'씨 집안의 음식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경주 최씨' 집안의 음식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종부께서는 유명한 경주 최씨 집안의 첫째 따님이다. 둘째 따님은 유성룡집안에 종부이다.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경주 최씨는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부자였다. 그러하니 음식 사치가 어떠했을지는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시집오기 전 최씨 집안에서 배워온 음식을 이곳에서 하는 것이다. 둘째 따님의 음식솜씨는 맛보지 못하였지만 술 담그는 솜씨는 맛보았다. 예전 안동하회 마을 답사를 갔을 때 종부께서 직접 담근 술 ('교동 법주임 : 시중에 파는 경주법주는 대중화시키기 위하여 여러 재료와 과정이 생략되었다고 함')을 내놓았는데 내가 마셔본 술중에서 최고의 맛이었다. <술같지 않은 술, 향과 맛에 취하여 마시다 취해버리는 술>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종부께서는 동생은 제부가 술을 마시지 못하면서 술을 잘 담근다고 하시면서 자기는 술을 담지 않는다고 한다. 종손이었던 남편이 워낙 술을 좋아해서 술을 담그면 다 마셔 술을 담지 않았다고 한다.
찾아가간 날에서 몇일전이 동계선생의 불천위 제사였다고 하였다. 곧 유성룡선생의 불천위 제사가 있다고 하시면서 무슨 팔자인지 두 자매가 더운 여름날 불천위 제사로 고생한다고 하셨다. 음식이 맛있는 집은 장이 맛이 있다. 장을 조금 주실 수 없는가 했더니 기꺼이 주신다. 장도 많이 담지만 여러 사람이 가져가서 이제 조금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신다. 좋은 선물을 받아 돌아가게 되었다. 이 집의 장은 맑다. 다른 집의 장이 검은 색을 띠는데 동계고택의 장은 맑은 갈색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음식의 색이 너무 짙어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고 한다. 시간이 너무 흘러 이제는 가야겠다고 인사를 하고 나오려니 굳이 배웅을 하겠다고 하시면서 불편한 몸을 이끌고 나오셨다.
밖에 나와서도 못내 아쉬운 듯 집사람과 손을 잡고 인사를 하시면서 음식을 해먹고 꼭 전화해달라고 하시면서 전화번호까지 알려주셨다. 그러면서 다음에 올 때는 꼭 전화를 하고 오라신다. 음식에 관심이 많았던 집사람이 무척 반가웠던 것 같다. 집사람이 음식을 해먹고 전화를 드렸더니 '수란'의 요리법도 가르쳐 주셨다고 하였다. 그리고 다음에 내려올 때 연락을 하면 떡재료를 준비하여 놓고 송편을 가르쳐 주겠다고 하셨다고 한다. 조만간 한번 내려가 볼까한다.
오늘 '돔장'을 해먹었다. '돔장'은 도미를 다듬어 바닥에 노란생콩 ( 백태:메주콩 )을 깔고 집간장과 약간의 진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양념으로는 고춧가루와 청주, 설탕을 약간 넣는 것뿐이다. 육수는 멸치국물으로 만든다. 집사람은 다시마 국물을 좋아하여 다시마를 더 넣었다. 그리고 약한 불로 2시간 정도 끓인다. 중요한 것은 파나 마늘과 같은 향신채를 절대 넣지 않는 것과 육수를 많이 넣어 도미가 완전히 잠기도록 한다는 것이다. 집사람도 파와 마늘이 들어가지 않은 이 맛을 상상하기 힘들다고 하였다. 종부께서는 지금은 도미의 철이 아니기 때문에 광어로 하는 것 좋다고 하였지만 일단 원칙대로 도미로 하였고 종부의 맛을 알기 위하여 종부가 주신 간장을 사용하였다.
'돔장'의 맛은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돔장은 국물을 먹는 것이 아니었다. 국물을 흥건하게 하는 것은 국물이 고기에 잘 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먹어보고 알았다. 색깔은 된장국을 연상하게 한다. 종부말씀으로는 종부의 친정아버지는 콩과 생선 대가리만을 드셨다고 하였다. 먹어보니 콩의 맛이 환상이다. 생청국을 먹는 듯한 느낌이 든다. 생콩을 넣었음에도 오래 은근히 끓이면서 폭 삭은 맛이 생겼다. 도미를 먹어보니 도미 맛이 그대로 살아있으면서 은은한 맛이 살아있다. 은은한 맛은 된장맛과 비슷하였다. 콩 맛이 우러나와 된장맛과 비슷한 맛을 만드는 것 같다. 재료가 많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음식의 원초적인 맛을 살려내는 요리이다. 바로 돔장이 그러한 원칙을 살려낸 음식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음식에 대하여 잘 소개한 책을 한권 소개하려 한다. <한국인에게 밥은 무엇인가(최준식 저)>라는 책이다. 한국음식을 전공한 사람과 대화형식으로 써낸 책으로서 한국음식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를 해 놓았다. 조리 방법과 한국음식의 과학적 분석 그리고 역사적 배경까지 개괄하여 놓았다. 약간은 편향된 느낌도 없지 않지만 우리의 음식을 이해하는 입문서로서 손색이 없다. 그리고 글을 매우 쉽게 써서 누가 읽어도 어렵지 않다는 것이 큰 장점인 책이다.
첫댓글 글로 먹어본 종가의 음식도 환상이군요. 고추전을 기름 두르고 지지는 것만 알았지 찌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돔장의 추가정보/정온선생댁 종부의 말씀에 의하면 백태를 넣는 것은 비린내와는 상관 없다고 합니다. 도미와 민어는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고 하시며 콩을 넣는 것은 뼈를 무르게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오래 끓이면 도미 뼈까지 먹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