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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모임 초청 명단”
예순을 훌쩍 넘기고 인생의 가을길로 접어들면,
지난 시절 함께 흙먼지를 마시며 뛰놀던 어릴 적 동무들의 얼굴이 문득문득 사무치게 그리워질 때가 있다.
세상의 모진 풍파를 견디며 가장이라는 감투를 쓰고,
처자식을 건사하느라 앞만 보고 달려오던 숨 가쁜 질주가 멈추고 나면,
문득 내 지나온 삶의 뿌리가 어디였던가를 확인하고 싶어진다.
나는 평생을 작은 공장의 기름밥을 먹으며 기술공으로 살아왔습니다.
남들처럼 번듯한 대기업 임원이 되지도 못했고,
강남에 아파트 한 채 장만하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두 손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정직하게 일해
자식들 공부시키고 소박한 내 집 하나 일구었으니
내 인생이 그리 부끄럽다 여긴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고향 친구들의 소식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들곤 했습니다.
내가 졸업한 시골 중학교의 동창들은 유독 서울로 올라와 크게 출세한 이들이 많았습니다.
큰 건설회사를 일군 친구,
고위 공직자로 정년퇴직한 친구,
번듯한 병원장이나 변호사로 이름을 날린 동무들이 수두룩했습니다.
그에 비해 평생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벗지 못했던 나는,
매년 동창회 연락이 올 때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참석을 미루어왔습니다.
행여 남루한 내 행색이 친구들의 번쩍이는 모임에 흠이 될까 싶었고,
출세한 동무들 틈에서 괜한 자격지심에 속이 상할까 저어되었던 탓입니다.
그런 내게 올해 초, 동창회 총무를 맡고 있는 종호로부터 간곡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명석아, 우리 고향 떠나 서울 올라온 지 올해로 딱 오십 년 되는 해다.
이번엔 옛날 삼총사였던 기택이 녀석이
큰 호텔 연회장을 통째로 빌려서 비용도 다 대기로 했어.
칠순 바라보는 나이에 이제 안 보면 언제 또 얼굴 보겠냐.
다른 핑계 대지 말고 이번엔 무조건 나와라.
얼굴이라도 한번 비춰야 친구지."
종호의 그 진솔한 목소리에 굳어 있던 내 마음의 빗장이 스르르 풀렸습니다.
기택이. 어릴 적 멱감던 개울가에서 늘 내 뒤를 졸졸 따라 다니며
보리개떡을 나누어 먹던 단짝이자,
지금은 중견 건설회사 회장이 되어 신문에도 오르내리는 그 잘난 친구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습니다.
그래, 칠십이 코앞인데 무슨 놈의 체면이고 자격지심이란 말인가.
다 늙어가는 마당에 그저 옛 친구들 손 한 번 맞잡고 막걸리나 한잔 나누면 그만이지.
모임 날 아침, 나는 며칠전부터 옷장에서 꺼내 손수 다려둔 단벌 감청색 양복을 꺼내 입었습니다.
구두약으로 반질반질하게 닦아둔 낡은 구두를 꿰어 신으며,
거울 속 백발이 성성한 내 모습을 향해 멋쩍은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약속 장소는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웅장하고 화려한 특급 호텔 3층 연회장이었습니다.
호텔 로비의 높은 대리석 기둥과 번쩍이는 샹들리에를 올려다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리고 옷깃을 여미게 되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 내리자,
연회장 입구에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었습니다.
[재경 중앙중학교 제24회 졸업 50주년 기념 대동창회]
입구 양옆으로는 화려한 축하 화환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고,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동창들이 삼삼오오 모여 악수를 나누며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습니다.
손목의 번쩍이는 금시계, 윤기 흐르는 양복 원단들 사이로 들리는 목소리들은
한결같이 여유와 자신감으로 넘쳐났습니다.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것을 애써 억누르며,
접수대 앞으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접수대에는 호텔식 하얀 보가 깔려 있었고,
이름표와 두툼한 기념품 상자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접수를 보고 있던 젊은 직원들과 총무단 후배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저... 동창 등록 좀 하러 왔습니다."
내가 헛기침을 하며 조심스레 말하자,
명부를 넘기던 젊은 총무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아, 선배님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강명석입니다. 3학년 2반 강명석."
총무는 두꺼운 가죽 명부철을 뒤적이기 시작했습니다.
'강' 씨 성이 적힌 페이지를 한참 동안 손가락으로 훑어내리던 총무의 미간이 서서히 좁아졌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명부를 앞뒤로 넘기며 고개를 갸웃 거리던 총무가
난처한 표정으로 곁에 있던 다른 진행 요원을 불렀습니다.
"야, 명단 인쇄본 최종본 가져와 봐. 이상하네..."
새로운 명부와 이름표 상자를 이리저리 뒤적이던 총무가
마침내 어색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내게 입을 열었습니다.
"선배님, 죄송한데요... 명단에 '강명석' 선배님 존함이 빠져 있습니다.
테이블 좌석 배정표에도 성함이 없으시고요,
제작된 가슴 명찰도 없습니다.
혹시 사전에 참석 신청을 따로 안 하셨나요?"
순간, 머릿속이 쾅 하고 울렸습니다.
귓바퀴가 화끈거리고,
연회장 입구의 온갖 소음이 일순간에 진공상태처럼 멎어버리는 듯했습니다.
"네? 빠져 있다니요?
총무 종호가 분명히 내게 전화를 걸어서 꼭 오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요..."
"아... 그러셨어요?
그런데 이번 행사는 기택 회장님 측에서 사전 예약 인원만 딱 맞춰서 호텔 코스 요리랑 좌석을 200석 한정으로 엄격하게 세팅해 둔 거라서요.
현장 명단에 없으시면 자리가 부족해서 입장이 조금 곤란합니다.
종호 선배님은 지금 안쪽 VIP 룸에서 회장단 분들과 회의 중이시라 확인이 어렵고요..."
총무의 말투는 공손했지만,
그 눈빛에 담긴 것은 명백한 곤혹스러움과 은근한 배척 이었습니다.
뒤편에서 다른 동창들이 다가와 "어이, 김 사장! 오랜만이야!" 하며
능숙하게 이름표를 받아 가슴에 달고 안으로 쑥쑥 들어가는 모습이 내 시야를 어지럽게 흔들었습니다.
그 화려한 행렬 속에서, 내 이름 석 자만 지워진 채 입구에 멍하니 서 있는 내 꼴이 마치 잔칫집 담벼락 밑을 기웃거리다 문전박대를 당한 거지새끼처럼 느껴졌습니다.
모욕감과 비참함이 온몸의 피를 거꾸로 솟구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지. 내 행색이 초라하다고 총무 녀석이 아예 명단에서 빼버렸구나.'
'성공한 놈들끼리 모여서 자축하는 자리에,
기름밥 먹던 기술공 늙은이가 끼어드는 게 눈꼴사나워 일부러 망신을 주려고 부른 것이었나.'
평생 남에게 손가락질받지 않고 정직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했던 내 자존심이,
호텔 연회장의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산산조각이 나 흩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턱 끝이 바들바들 떨려왔습니다.
더 이상 이곳에 1초도 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늙어서 추하게 자리를 구걸하는 노인네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됐습니다. 내가 번지수를 잘못 찾았나 봅니다. 즐겁게들 노십시오."
나는 차갑게 내뱉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몸을 돌렸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어갔습니다.
가슴속에서 솟구치는 배신감과 서러움에 눈앞이 캄캄해져 계단 난간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내가 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늙은 나이에 낡은 양복을 다려 입고 이곳까지 기어들어 왔단 말인가.
내 스스로를 향한 지독한 혐오와 자괴감이 목구멍을 턱턱 막히게 했습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던 바로 그 순간 이었습니다.
"명석아! 강명석!"
등 뒤에서 거친 숨소리와 함께 내 이름을 부르는 다급한 목소리가 복도를 찢어놓았습니다.
돌아볼 필요도 없었습니다.
비참한 꼴을 더 보이기 싫어 모르는 척 엘리베이터 안으로 발을 들이밀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 찰나, 누군가의 억센 손이 내 어깨를 와락 낚아채듯 붙들었습니다.
휘청거리며 돌아선 내 눈앞에 서 있던 사람.
단정한 은발에 최고급 모직 정장을 차려입은,
바로 그 건설회사 회장이자 내 오랜 벗, 기택이었습니다.
숨을 헐떡이며 달려온 기택이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내 안에서 참았던 분노의 불길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 손 놔라, 박 회장님. 돈 많고 잘나신 분들끼리 비싼 스테이크 썰면서 회포나 푸시지,
명단에도 없는 천한 공장 늙은이 어깨는 왜 붙잡고 난리냐?
내가 네 잔칫상에 숟가락 얹으러 온 줄 아냐!"
독기 어린 내 일갈에 기택이의 눈동자가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기택이는 내 옷자락을 놓기는커녕,
제 두 손으로 내 거친 손을 부서져라 꽉 쥐어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거친 손등 위로, 전혀 예상치 못했던 기택이의 떨리는 목소리가 비수처럼 내 귓전에 박혔습니다.
"명석아... 네 이름이 그 명단에 없는 게 당연하지.
네가 왜 저깟 종이 쪼가리 명단에 적혀 있어야 하냐...
네가 왜 저 시끄러운 연회장 구석 자리에 앉아 남들 박수나 치고 있어야 한단 말이냐..."
"뭐... 뭐라고?"
기택이의 두 눈에 굵은 눈물이 그렁그렁 차오르고 있었습니다.
평생 수천억 원의 공사를 진두지휘하며 산전수전을 다 겪었을 대기업 회장의 입술이,
마치 어린 시절 내 앞에서 억울하게 울음을 터뜨리던 코흘리개 아이처럼 파르르 떨리고 있었습니다.
기택이는 내 손을 쥔 채,
복도 벽면으로 나를 조심스럽게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양복 안주머니에서 정갈하게 접힌 낡은 서류 봉투 하나를 꺼내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명석아... 종호 녀석한테 네 이름 일부러 명단에서 빼두라고 내가 시켰다.
네가 저 연회장에 들어 가기 전에...
내가 너한테 꼭 바쳐야 할 빚이 있어서...
너를 따로 내 방으로 모시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내가 로비에 잠깐 손님 배웅 나간 사이에 네가 도착했을 줄은 몰랐다...
날 용서해라, 친구야..."
내 머릿속이 하얗게 굳어 버렸습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당혹감에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열었습니다.
그 안에서 나온 것은 다름 아닌
‘주식회사 한빛건설 창립 주주 명부 및 원천 기술 지분 기증서'였습니다.
그리고 그 지분 기증서의 수혜자이자 회사 명예 기술 고문란에는,
선명하게 내 이름 석 자 ‘강명석’과 함께 수억 원에 달하는 지분 평가액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 이게 다 뭐냐, 기택아?
이게 대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야?"
기택이는 마른 침을 삼키며,
지난 사십 년 동안 홀로 가슴속 가장 깊은 금고에 묻어 두었던 피눈물 나는 기억을 꺼내놓기 시작했습니다.
"명석아...
너 서른두 살 되던 해 기억하냐?
내가 을지로에서 작은 철골 하도급 공장 차렸다가,
납품 대금 다 떼이고 부도나서 야반도주하려고 한강 다리 위를 서성이던 그해 겨울..."
기택이의 입에서 나온 그 말에 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사십 년 전, 기택이가 빚더미에 앉아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다 기적처럼 다시 일어서서 오늘날의 건설 신화를 일구어 냈던 그 전설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그때... 다리 난간을 붙잡고 울고 있던 내 멱살을 잡고 끌어내린 게 바로 너였다,
명석아. 네가 나를 허름한 국밥집으로 끌고 가서 네 작업복 안주머니를 털어 내 손에 쥐여 주었던 그 기름 때 묻은 삼백만 원...
그 돈, 네가 사 년 동안 공장 잔업 뛰고 손가락 찢어가며 모은 네 전세 보증금 밑천이었다는 거...
내가 평생 잊은 줄 알았냐?"
"기택아..."
"그것뿐만이 아니었어.
내가 공장 다시 살려보겠다고 발버둥 칠 때, 우리 회사 특허 1호가 된 그 내진 설계 철골 조립 도면...
그거 낮에는 네 공장 나가 일하고 밤에는 우리 셋방에 와서 밤새 코피 쏟아가며 네가 설계해 준 거였잖아.
네 손기술과 네 지혜가 없었으면 오늘의 한빛 건설도,
오늘날 회장 소리 듣는 박기택이라는 인간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어."
기택이의 눈에서 마침내 참았던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습니다.
"내가 자리 잡고 나서 너한테 몇 번이나 찾아가서 우리 회사로 오라고,
지분을 주겠다고 사정했을 때 네가 뭐라고 했냐?"
"친구 사이에 돈 엮이면 우정 깨진다.
네가 성공했으니 난 그걸로 됐다."
"난 쇠 깎는 내 일이 좋으니 넌 더 큰 집이나 지어라' 하며 끝끝내 내 손을 뿌리쳤지..."
"너는 네 자존심 지키겠다고 끝까지 내 도움 안 받고 그 좁은 기름밥 공장에서 늙어갔지만...
나는 지난 사십 년 동안, 매일 밤 호화로운 침대에 누울 때마다 네 거친 손마디가 떠올라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기택이는 내 거친 손등을 제 얼굴에 가져다 대었습니다.
"내가 이번 50주년 동창회를 내 돈 들여서 연 진짜 이유가 뭔지 아냐?"
"남들한테 내 부를 자랑하려고 연 게 아니야."
"오늘 이백 명의 동창들, 성공 했다고 으스대는 그 모든 친구들이 보는 가장 높은 단상 위에...
내 인생의 진짜 은인이자 오늘의 나를 만들어준 진짜 영웅인 너, 강명석을 올려세우기 위해서였다."
기택이의 굵은 눈물이 내 굳은살 박인 손등을 뜨겁게 적셨습니다.
"명석아...
너는 저기 밥이나 얻어먹고 가는 평범한 동창 명단에 들어갈 사람이 아니야."
"오늘 이 잔치의 가장 높은 귀빈석,
내 바로 옆자리에서 온 동창들의 기립 박수를 받아야 할 내 평생의 단 하나뿐인 주인이란 말이다."
"그걸 깜짝 선물로 안겨 주려고 종호랑 나랑 비밀로 하느라 명단에서 네 이름을 빼두고 내 VIP 룸에 따로 모셔두려 했는데..."
"내 미련한 욕심 때문에 네 가슴에 또 피눈물을 흘리게 했구나..."
"날 용서해라, 친구야..."
기택이는 복도 한가운데서 무릎을 꺾고 내 앞에 머리를 숙이려 했습니다.
"아..."
숨이 멎어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가슴을 날카로운 둔기로 사정없이 내리맞은 듯 온몸의 뼈마디가 저려왔습니다.
나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던 것일까요.
친구들이 나를 무시한다고,
내 행색이 초라하다고 나를 명단에서 지워 버렸다고,
속으로 옹졸한 피해의식과 자격지심에 눈이 멀어
저 위대하고 거룩한 벗의 영혼에 '배신'이라는 낙인을 찍으려 했던 내 자신이
얼마나 가난하고 부끄러운 인간이었는지 깨달아졌습니다.
기택이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수천억 원을 굴리는 대기업의 회장이 되었어도,
그 화려한 감투와 부귀 영화의 껍데기 속에서도
그 녀석은 여전히 사십 년 전 한강 다리 위에서 내 손을 잡고 울던
그 순수하고 의리 넘치던 내 단짝 기택이 그대로였습니다.
자신이 성공한 모든 영광의 뿌리를
내 거친 손끝에 돌려주기 위해,
늙어가는 내 남은 생의 자존심을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빛으로 세워주기 위해
수개월 동안 이 눈물겨운 무대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기택이의 앙상한 어깨를 붙잡아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리고 내 평생 가장 귀하고 위대한 벗을 내 가슴팍으로 와락 끌어안았습니다.
호텔 3층 복도 한가운데서,
환갑을 훌쩍 넘긴 두 노인이 서로의 목을 끌어안고 어린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기 시작 했습니다.
지난 사십 년 동안 서로의 가슴속에 얹혀 있던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세월의 풍파를 견뎌낸 거룩한 우정의 눈물이
두 남자의 주름진 뺨을 타고 강물이 되어 흘러 내렸습니다.
"기택아... 내 친구 기택아..."
"명석아... 고맙다...
살아있어 줘서 정말 고맙다..."
한참을 울고 난 뒤,
기택이는 옷소매로 내 눈물을 정성스레 닦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제 양복 가슴팍에 달고 있던 순금으로 제작된 커다란 특별 명찰을 떼어내어,
내 감청색 양복 깃에 손수 달아 주었습니다.
명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한빛건설 창립의 뿌리 - 영원한 명예 회장 강명석]
기택이는 내 손을 꽉 쥐고 연회장 정문을 향해 당당하게 걸음을 옮겼습니다.
육중한 연회장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수백 명의 동창들이 웅성거리던 홀 안으로,
기택이가 내 손을 높이 치켜 들며 입장 했습니다.
단상 위로 마이크를 잡고 올라선 기택이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거대한 연회장을 가득 메웠습니다.
"친구들아! 오늘 이 자리에 선 나 박기택을 부러워 하지 마라!
오늘날의 나를 있게 한 진짜 기둥, 사십 년 전 한강 다리에서 목숨을 버리려던 나를 제 피 같은 전세금을 털어 살려내고 이 회사의 뼈대를 만들어준
내 인생 최고의 스승이자 벗, 강명석을 너희들에게 소개한다!
모두 일어나 내 친구에게 박수를 보내다오!"
순간, 연회장에 모여 있던 이백여 명의 동창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우레와 같은 기립 박수와 환호성이 천장을 뚫을 듯 터져 나왔습니다.
출세했다며 어깨를 으쓱거리던 그 잘난 친구들의 눈빛에는,
나를 향한 한없는 존경과 경외심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 찬란한 박수 갈채의 한가운데 서서,
나는 내 옆에서 아이처럼 활짝 웃고 있는 기택이의 주름진 손을 꼭 쥐었습니다.
내 손바닥에 박힌 굳은살은 더 이상 가난의 흉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한 인간을 온전하게 살려내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정의 성벽을 일구어낸
내 인생의 가장 거룩하고 눈부신 훈장이었습니다.
#오늘의 명언
진짜 품격이란 겉으로 두른 화려한 명단이나 지갑의 두께에 있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영혼의 무게,
상대방의 희생을 잊지 않고 제 가장 높은 자리를 기꺼이 내어줄 줄 아는
그 눈물겨운 신의(信義)였습니다
-아침 마당-
-지인이 보내 준 톡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4tx0CoIQEes&list=RD4tx0CoIQEes&start_radio=1
하늘은 맑고
바람은 살랑
수확하기 참 좋은 날
풍성한 수확물 한아름 들고 농부들 웃음꽃 활짝 피기를...
톡을 보내고 나니 일곱시가 다 돼간다
집사람은 몸이 말을 안 듣는다며 누워 있다
잠은 오지 않는데 몸이 처져 일어나기 싫다고
밤새 한숨 자지 않았으니 그럴 수밖에
식전에 먹는 약을 준다고 해도 좀 있다 일어나 먹겠다며 자길 가만 놔두란다
공차를 보니 끝 기둥에 줄이 묶여 꼼짝 못하고 있다
녀석 참
줄이 걸리면 반대로 돌면 줄이 풀릴건데 계속 같은 방향으로 돌기만 하니 더 감길 수밖에
찐고구마를 두어개 가지고 나가 공차를 유도해 줄을 풀어 주었다
녀석 오랫동안 감겨 있어서인지 몸을 떨고 있다
자유롭게 놀던 녀석이 묶여 있으니 안타깝다
여기에 정착하면 풀어 주어도 되는데 아직은 아니다
무잎을 삶아 된장국 끓이면 좋겠다
무잎을 가지고 방에 들어오니 재운동생이 소나무 약을 하러 올라온다며 전화 했다고
그럼 나가서 도와주어야겠다
무잎을 데쳐 놓으라니 힘들어 못하겠다기에 그대로 나두라하고 작업복 입고 밖으로
아래밭 우물 옆에 갔는데 아직 올라오지 않았다
모터를 가동하여 무 밭에 물을 주었다
넘 땅이 말라 있어 무가 시들시들
비가 좀 내려야하는데 왜 청정한 날만 계속되는지...
무 밭에 물을 주고 호스를 양배추 심은 곳에 놔두었다
오늘은 고랑에 물을 좀 주어야겠다
재운동생에게 전화해 왜 오지 않냐니 아침 먹고 가겠다고
8시경에나 올라오겠단다
아이구 난 바로 올라온 줄 알고 기다렸는데..
그 사이 동물 먹이 주어야겠다
닭장에 닭들은 언제나 알을 낳을까?
이 녀석들이 알젖는 소리만 요란하지 알이 없다
먹이는 충분한 것같은데 겨울을 대비해 몸에 저축만 하고 있나?
오늘도 짬밥과 싸래기등을 주었다
가지 열린게 십여개 넘게 있다
가지를 따다 김가네 가져다 주면 좋겠다
큰 비닐봉지를 가져와 가지를 따 담아 차 트렁크에 실어 두었다
8시 넘으니 재운동생이 올라왔다
내가 준 농약을 약통에 타려고 약통을 들여다 보더니
약통에 어제 저녁 물을 담아 두었는데 물이 별로 없단다
이래선 약을 할 수 없다며 다시 물을 담으러 내려간다
항상 밭 옆 우물에서 물을 담았는데 이번엔 기계가 없어 담을 수 없다고
이런이라니
30여분 쯤 기다리니 물을 담아 왔다
예전처럼 물통에 물을 가득 담지 않고 절반 정도만 담았다
이 정도면 충분 할거라고
그래
약 두통을 다 탔다
약을 좀 진하게 뿌려주는게 좋겠다
소나무에 약을 뿌렸다
약을 뿌리면서 보니 몇 나무의 상태가 좋지 않다
상태가 좋지 않은건 재선충에 당해서 그런 것같다
아까운 정원수를 재선충으로 다 잃게 생겼다
죽으면 별 수 없지
별장집 소나무에도 약을 뿌려 주었다
솔밭까지 약을 뿌리고 나니 약통에 물이 떨어졌다
집에 있는 소나무까지 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고
물 담으러 갈테니 나에게 약을 다시 사오란다
사거리 농악사에 가서 살충제를 사 왔다
산란용 사료도 한포
사장이 지금 벌레들이 월동 준비를 하고 있으니 약을 해주는게 좋다고
약을 사가지고 오니 재운 동생도 올라왔다
약을 타서 다시 집 마당가에 있는 소나무에 뿌렸다
옆집 소나무에도 고루 뿌려 주었다
남은 약은 마당 잔디에 뿌렸다
뒤처리를 하고 나니 10시가 훌쩍 넘었다
베란다에 앉아 커피 한잔하며 삯으로 5만원을 주었다
예전엔 삼만원을 주었는데 올해부터 5만원으로 올랐다
이런저런 이야기
올들어 도저히 일하기 싫고 몸이 축 처지고 눕고만 싶단다
예전에 다친 곳이 쑤시고 아프단다
몇 살이냐고 하니 70이란다
내가 아플 때라고 했다
내 경우를 보면 70전까진 그리 크게 힘든 줄 몰랐으며 병원에 입원한 적이 없었는데 70이 되었을 때 담낭을 제거하며 10여일 넘게 입원하고 식중독 걸려 또 10여일 입원
상당히 힘들게 70을 넘기고 그런대로 괜찮게 지내오다 올들어 다시 몸이 힘들고 사고로 입원까지 했다
나이들어가며 쇠약해져가는 시기인 것 같다
몸이 힘들면 보약도 먹고 몸을 챙기라 했다
산란용 사료를 닭장 모이통에 가져다 두면서 한바가지 퍼서 주니 잘도 주워 먹는다
그래 그걸 먹고 알이나 잘 낳거라
가지를 김가네에 가져다 주었다
굳이 말하지 않고 식자재 있는 곳에 살짝 놔두고 왔다
어느새 11시가 넘었다
집사람이 아프다면서도 무잎을 데쳐 놓았다
아직도 몸을 가누기 힘들다며 누워 있다
왜 저리 아플까?
데쳐 놓은 무잎과 호박을 썰어 넣어 된장국을 끓였다
상을 차려 놓고 밥 한술 한 뒤 누워 있으라니 억지로 일어난다
된장국이 맛있다며 두그릇이나 먹는다
난 여기에 막걸리 한잔
집사람이 일어나 밥이라도 먹으니 좀 나아보인다
잠 한숨 자고 일어나니 두시가 넘었다
약하며 줄 잡아 주는게 내 힘에 부쳤나보다
가만 있어도 왼쪽 고관절에 통증이 있다
다음주엔 꼭 친절한 신경외과를 다녀와야겠다
공차가 또 묶여있다
어떻게 해야 묶이지 않을까?
간식을 가지고 가서 살살 유도하며 줄을 풀어 주었다
집사람은 일어나 들깨가 잘 말랐다며 바케스에 담아 보일러실에 넣어 놓는다
총 아홉 되를 했다고
돈으로 따지면 겨우 10여만원이지만 내 손으로 가꾸었다는게 즐거움이란다
작년에 수확해 놓은 들깨도 한바케스 있다
기름을 짤 때는 묵힌 들깨로 짜야 양이 좀더 나온단다
그래서 해마다 들깨나 참깨를 묵힌다고 한다
안다니 박사다
영학동생이 왔다
내가 좋아한다고 막걸리를 사 왔다
산다래 열매를 딴단다
뒷산으로 다래 열매를 따러 갔다
동생에겐 다래 열매를 따라하고 난 근처에서 밤을 주웠다
작년엔 올라가면 거의 반 배낭을 주웠는데 올핸 한됫박도 줍기 어렵다
바람에 떨어진 밤송이를 까 반됫박 정도 주웠다
영학동생이 아직 다래가 익지 않았다며 다음에 따가겠단다
술이라도 한잔 하고 가라니 약속 있다며 집에 간단다
다음에 보자고 했다
집사람이 몸이 힘들다며 목욕이나 다녀 오자고
목욕장에 가니 아무도 없다
반신욕 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몰려든다
나처럼 일 끝내고 목욕하러 온 것 같다
반신욕하며 땀을 좀 흘렸다
온탕과 냉탕을 오간 뒤 샤워하고 나오니 집사람은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다
김가네 가서 짬밥을 가져 왔다
냉동해 둔 돼지 목살이 있어 김치 넣고 찌개를 끓였다
베란다에 앉아 복껍질과 김치찌개로 막걸리 한잔
난 이렇게 하루를 마감하는 걸 좋아한다
홀짝이다 보니 어느새 어둠이 내린다
하루가 번쩍 가는 것 같다
내일은 고등학교 총 동창회
난 잘 참석하지 않았는데 2-3년 전부터 참석하기 시작했다
이 나이 들어가니 간혹 동창들이 그립기도 한다
나이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이 맞는 것같다
내일은 집사람이랑 함께 가려고 하는데 집사람이 괜찮을지 모르겠다
지는 달빛에 주위가 어스름
님이여!
나뭇잎들이 고운 옷으로 갈아 입기 시작하네요
여기저기 가을 축제 한창
축제장 찾아 가을을 흠뻑 즐기시면서
오늘도 아름다운 가을 이야기 하나 주워 담는 날이시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