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도 되면 ‘갓(God)틸리케’라는 별명이 어색하지 않다. 비록 대부분 아시아 팀들을 상대한 결과라곤 하지만 80%가 넘는 승률이라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쿠웨이트, 자메이카를 상대로 한 2연전은 이청용, 손흥민 두 핵심 자원이 빠진 가운데에서도 좋은 결과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칭찬을 아낄 필요는 없어 보인다. 더불어 뛰어난 경기력이라는 과정 그리고 새로운 선수들의 발굴까지 한 번에 거의 모든 일들을 해내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무엇보다 고민이 많았던 포지션인 공격수 자리에서 이정협 발굴 이후 계속되고 있는 공격수 찾기에서 연이은 성과를 이뤄내고 있는 점이 훌륭하다. 이젠 물망에 오른 자원들이 많아 행복한 고민에 빠질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슈틸리케 호의 '9번'은 누가 될까?
(△ 오랜만에 A매치에 복귀하여 골을 넣은 지동원. 소속팀에서의 경기력 회복도 기대된다. 출처:KFA홈페이지)
0. 슈틸리케의 황태자 이정협 그리고 새로운 공격수 발굴의 필요성
대표팀에서 박주영이 부진에 빠진 이후 확실한 원톱 자원이 사라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슈틸리케 부임 이후 가장 먼저 주전 공격수로 떠올랐던 것이 바로 '신데렐라' 이정협이다. 이정협은 넓은 움직임, 전방에서의 경합, 헌신적인 전방 수비로 슈틸리케의 대표팀에 끈끈함을 더해준 공격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부족한 점도 확실했다. A매치에서 기록한 골 자체가 적었던 것은 아니지만 공격적인 날카로움은 아쉬웠다. 공격 시에 날카로운 침투나 연계 플레이를 보여주기 보다는 골이 필요한 순간에 나타나 골을 마무리하는 형태가 많았다. 자신의 A매치 데뷔전이었던 사우디와의 평가전이 그랬고, 이라크와의 아시안컵 경기에서도 그랬다. 헌신적인 공격수라는 점에선 높이 살만 하지만, 공격수는 때로 헌신보다 골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내야 하는 존재다. 이정협은 공격적 측면에 더 많은 관여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공격수 발굴은 사실 슈틸리케 호에게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개인적으로 원톱 자리에는 박주영처럼 연계 플레이에 능한 스타일이 아니라 중앙에서부터 강하게 싸워줄 수 있고 헌신적으로 수비를 도와줄 선수를 바랐다고 한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 역시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라는 한정된 범위 내에서 자신의 입맛에 꼭 들어맞는 선수를 찾을 수는 없다. 이정협은 이런 슈틸리케 감독의 선호에 적합한 선수였다. 하지만 그 역시 공격적인 무게감이 떨어지는 단점은 있었다.
결국 한정된 선수들 가운데 최적의 조합을 찾는 것이 필요했다. 대한민국 팀의 최고의 선수를 누구라고 봐야할까. 손흥민, 기성용 두 선수를 꼽을 팬들이 가장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개인적으로 기성용은 팀 전체를 이끄는 ‘리더’라고 평가한다면, 손흥민은 팀의 공격적 마무리를 풀어줄 ‘에이스’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어찌되었건 공격적 역할이 큰 손흥민을 주축으로 어떤 공격 조합을 짤 것인지는 무척 중요한 문제이다. 중앙 공격수들의 움직임은 측면 공격수인 손흥민의 활약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어떤 연계 플레이를 보여줄지, 누가 공간을 만들고 또 누가 공간을 이용할 것인지 등 개인 플레이가 아닌 조합 플레이에서 시너지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손흥민을 살리면서도 동시에 중앙공격수라는 본래 역할에서도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공격수가 필요했다. 새로운 선수들이 여전히 실험 중인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더불어 '플랜B'를 어떻게 세울 것인지도 중요한 문제이다. 하나의 공격 패턴으로 모든 경기를 치를 순 없다. 주 공격 루트가 상대에게 철저히 막힌다면 이를 반전시킬 필요가 있다. 이것은 팀의 전술 변화를 비롯해 다양한 방식으로 가능하지만, 가장 손쉬운 방법은 다른 유형의 플레이에 장점을 지닌 선수를 투입하는 것이다. 슈틸리케 감독이 어떤 플랜B를 세우느냐에 따라 대표팀에 선발되는 선수들이 달라질 수 있다. 슈틸리케 감독의 공격수 찾기가 계속될 가능성이 있는 이유이다. 슈틸리케의 황태자 이정협이 여전히 신뢰를 받고 있는 가운데 이에 도전할 선수들은 누가 있을까?
후보자 1. 황의조
황의조는 이번 시즌 최고의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는 K리그 공격수이다. 184cm로 작은 키가 아닌데도 활동량이 많고 '오프 더 볼'에서의 움직임이 좋아 연계플레이가 발군이다. 상대 수비와 붙어 있다 미드필더에게 공을 받기 위해 순간적으로 튀어나온 후 간결한 터치로 연결하거나, 연결 이후 공간을 찾아들어가 2:1 패스를 노리거나, 박스 안에서 재빨리 자리를 잡아 공격적 마무리까지도 충분히 수행해준다. 더불어 좌우 측면으로 돌아나가는 움직임도 자주 시도해서 미드필더와 측면공격수들에게도 많은 공간을 만들어줄 수 있다.
이렇게 부지런한 움직임 때문에 오히려 장기인 슛을 살릴 수 있다. 워낙 연계 플레이에 강점이 있기에 수비수들이 쉽게 붙을 수 없고 단순히 달려드는 수비를 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동료에게 내주는 척 하다가 반대로 돌아서 때리는 마무리가 주특기이다. 왼발 오른발을 가리지 않고 인사이드로 감아때리는 슛은 그의 전매특허와 같다.
침착한 마무리는 덤이다. 이번 자메이카 전의 득점만 봐도 황의조의 침착성은 여실히 드러난다. 사실 소속팀 성남보다 높은 수준의 공격 지원과 연계 플레이가 가능해지자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머리’가 좋은 공격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타적인 플레이에 능하지만 동시에 자신에게 찬스가 생길 땐 빠른 타이밍에 슛을 연결하고 있어서, 현재 대표팀에 가장 이상적인 선수가 아닌가 싶다.
물론 마무리 능력은 더 가다듬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전력을 생각해보면 우리의 궁극적 목표인 월드컵에서 경기를 주도적으로 이끌 수 있는 경기는 많지 않다. 한정된 기회에서 최대한 골을 뽑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라오스 전부터 골에 대한 욕심을 드러냈지만 번번이 좋은 움직임을 보여주고도 마무리를 하지 못했던 것은 분명 아쉬웠다. 이번 자메이카 전에서 드디어 골을 기록하면서 마음의 부담을 덜었다는 것은 다행이다.
(△ 라오스 전에서 손흥민에게 공을 내주지 않고 반대로 돌아 특기인 터닝슛을 선보이는 황의조.)
(△ 자메이카 전에서 침착한 마무리를 선보이는 황의조. A매치 데뷔골로 더 여유 있는 움직임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후보자 2. 석현준
포르투갈 프리메이라리가에서 연일 활약을 이어가면서 대표팀에 소집되었다. 지난 라오스 전부터 쿠웨이트 전까지 월드컵 예선에서 연속 선발로 출전하면서 슈틸리케 감독에게 신뢰를 받았다.현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는 선수들 중에 가장 전통적인 ‘공격수’ 같은 모습이다. 박스 안에서 싸우길 좋아하고 적극적으로 마무리를 노리고 있다. 190cm의 신장을 바탕으로 한 공중볼 싸움 역시 강점이 있고, 물론 좁은 공간에서도 순간적인 드리블을 통해 골을 노릴 수 있다. 거친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는 적극성이 좋다.
하지만 활동 범위가 그닥 넓지 않다. 연계 플레이보다 투입된 볼을 직접 마무리하는 데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것 역시 손흥민과의 조합을 생각해보면 아쉬운 점이라 여겨진다. 석현준은 전통적인 공격수 스타일답게 철저하게 중앙에 머무르길 즐긴다. 쿠웨이트 전에서는 워낙 날씨가 더워 전체적으로 팀의 상태가 좋지 않아 좋은 모습을 많이 못 보였다고 치더라도, 라오스 전에서도 골을 기록한 장면을 제외하곤 다소 잠잠했다. 활동량과 연계 플레이가 많지 않아 공격적인 관여가 적었다. 이것을 마냥 단점으로 이해할 순 없겠지만, 점점 압박의 강도가 높아지는 현대 축구에서 공격수의 연계플레이는 점점 더 강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대표팀의 경우도 공격수의 연계 플레이는 매우 중요하다. 석현준은 자신의 스타일이 확고한 만큼 주전 경쟁에서 자신 만의 '색'을 보여주는 데에는 성공했고, 앞으로의 파괴력을 높여 문전에서 확실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수비적 가담 역시 이정협이나 황의조에 비교하기엔 부족한 편이다..
(△ 라오스 전에 유연히 돌아서는 석현준. 그가 단순히 거친 플레이를 즐기는 공격수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더 넓은 활동량을 보여야 슈틸리케 감독의 선택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후보자 3. 지동원
소속팀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다소 아쉬운 경기력을 보여준 것이 사실이었다. 때문에 당분간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보기 힘들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이번 자메이카와의 평가전을 통해 완전히 부활한 모습이다. 국가대표팀의 활약이 소속팀에서의 활약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앞으로도 좋은 공격자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원래 2011년 아시안컵에서 원톱 자리에 기용되었을 때에는 많은 활동량을 바탕으로 공간을 만들어주고 잦은 스위칭으로 찬스를 많이 만들었다. 2011 아시안컵의 득점왕이 미드필더 구자철이었다는 것은 공격수 지동원의 움직임이 많은 찬스를 제공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번 자메이카 전에서는 측면 공격수로 출전해서 많은 찬스를 만들었다. 특히 안쪽으로 접어 들어오면서 처리하는 슛이 예리했다. 하지만 타이밍이 늦는 패스가 종종 있어 아쉬움도 남겼다. 아우크스부르크 경기에서도 종종 보이는 플레이인데 드리블을 할 것인지 패스를 할 것인지 빠르게 판단하지 못하면서 팀의 공격 템포를 늦추는 경우가 있다. 다만 전방 원톱으로 나선 경우와 달리 2선 공격수로 나서자 동료들의 움직임을 이용해서 찬스를 다시 만드는 모습도 보였다.
지동원은 최근 2선에 배치되었을 때 더욱 좋은 모습을 보였다. 경우에 따라서는 오늘처럼 다른 공격수 자원과 동시에 기용되어 2선에서 활약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2선 역시 손흥민, 이청용, 구자철 등 기존 주축 선수들에, 이재성, 권창훈 등 새로운 선수들까지 가세한 상황이라 주전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지동원 역시 오늘과 같은 경기력을 꾸준히 보여주어야 한다.
후보자4. 다른 가능성은?
이용재, 김신욱, 박주영 등 슈틸리케 감독의 시험을 받았지만 현재 대표팀에 승선하지 못한 선수들도 있고, 이동국처럼 리그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이지만 발탁되지 않는 선수들도 있다. 이정협의 발탁을 두고 논란이 있을 때조차 슈틸리케 감독은 이정협을 믿고 기용했었다. 여러 선수들을 실험하고는 있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원하는 유형의 선수가 확실하단 뜻이다.
선수들이 보여주는 강점들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선수를 뽑는지는 결국 슈틸리케 감독의 손에 달려있다고 보인다. 예컨대, 이동국의 경우 어시스트에도 능하지만 결국은 본인이 해결하는 데에 강점을 가진 이른바 '정통파 스트라이커'다. 이러한 유형의 공격수는 슈틸리케 감독의 전술에 어울리는 선수는 아니다. 활동량이 많고 주변의 공격을 잘 살려줄 수 있는 유형의 선수가 환영받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다른 가능성을 따지자면 '플랜B'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슈틸리케 감독이 원하는 공격수를 주전으로 기용한다고 해도 그와 전혀 다른 스타일의 공격수 역시 팀에 필요하다. 때문에 전방에서 높이 싸움을 하거나, 골을 노려야 할 때 전방에서 싸워줄 공격수가 선발될 가능성도 있다. 이 때라면 최근 경기력을 회복하였고 압도적인 높이를 가진 김신욱 같은 선수가 선발될 가능성도 있다. 공격수들은 슈틸리케 감독의 전술에 잘 녹아드는 동시에 자신만의 강점을 확실히 보여줄 수 있어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 예비역 병장이 된 이정협. '군데렐라'에서 벗어나 진정한 슈틸리케의 황태자가 될 수 있을까. 출처:연합뉴스)
원톱 부재로 고민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주전 경쟁을 기다리며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은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의 목표가 월드컵이란 사실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경기력을 갖춘 강팀과의 경기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일 선수가 어떤 선수인지는 두고 봐야한다. 아시아 팀들을 상대로 맹활약하다가도 유럽/남미의 선수들에게 약해서는 본 무대에 쓸 수 없다. 어느 정도 슈틸리케 감독의 실험은 마무리 되어가는 듯 하지만, 아직 주전 경쟁과 엔트리에 들기 위한 경쟁이 끝나지 않은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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