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크레카#5
(창16:1-16)
"나의 방법을 내려놓고, 나를 살피시는 여호와를 바라보라"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창16:13)
1.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의 방법을 선택합니다
창세기 15장에서 여호와께서는 아브람에게 하늘의 별처럼 많은 자손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16장에서는 그 약속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래는 자녀를 낳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자신의 여종 하갈을 아브람에게 주어 자녀를 얻으려 합니다.
당시 고대 근동 사회에서는 여종을 통해 후손을 얻는 관습이 있었지만,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방법이라고 해서 반드시 여호와의 뜻에 합당한 것은 아닙니다.
아브람과 사래는 약속을 믿었지만,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방법과 때를 기다리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묵상해야 할 것은 여호와의 약속을 믿는 것과 그 약속을 내 방법으로 이루려고 하는 것은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때로 우리는 여호와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여호와께 묻고 기다리기보다 자신의 판단과 경험을 앞세우기도 합니다.
2. 인간의 방법은 갈등을 가져옵니다
하갈이 임신하자 사래와 하갈의 관계가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하갈은 자신의 여주인을 멸시하게 되었고, 사래는 아브람을 원망합니다. 결국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자 하갈은 광야로 도망칩니다.
약속을 이루기 위해 선택한 인간적인 방법이 오히려 가정 안에 갈등과 상처를 가져온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하갈의 고통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하갈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기 어려웠던 여종이었으며, 다른 사람들의 결정으로 인해 고통받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인간의 연약함과 잘못을 감추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혼란 속에서도 여호와께서는 고통받는 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3. 광야에서 하갈을 찾아오신 여호와
하갈이 광야의 샘물 곁에 있을 때, 여호와의 사자가 그를 찾아옵니다.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여호와께서는 하갈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셔서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갈이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고, 여호와 앞에서 자신의 상황을 말하도록 이끄시는 질문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하갈의 후손이 크게 번성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태어날 아들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알려주십니다.
히브리어로 이스마엘은 יִשְׁמָעֵאל (이쉬마엘)이며,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하갈의 고통을 들으셨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스마엘이 이삭을 통해 이어질 언약의 계보를 대신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여호와의 돌보심에서 제외된 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4. 나를 살피시는 여호와
하갈은 자신에게 말씀하신 여호와를 אֵל רֳאִי (엘 로이)라고 부릅니다.
'나를 보시는 하나님',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브람과 사래는 약속의 성취를 기다리며 갈등했지만, 하갈은 광야에서 자신을 살피시는 여호와를 만났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하갈이 한낱 여종이었을지 모르지만, 여호와께서는 그의 고통을 보셨고 그의 부르짖음을 들으셨습니다.
여호와는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언약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광야에서 눈물 흘리는 사람을 살피시는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5. 오늘의 묵상
창세기 15장과 16장을 연결하여 읽으면 중요한 교훈을 발견하게 됩니다.
15장에서 아브람은 여호와의 약속을 믿었고, 여호와께서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그러나 16장에서 아브람과 사래는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의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믿음은 단지 여호와께서 약속을 이루실 것이라고 인정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분의 방법과 때를 신뢰하며 기다리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여호와를 섬기는 과정에서도 깊이 생각해야 할 부분입니다.
때로는 여호와를 위한 열심이 앞서서,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방법보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언약은 우리의 조급함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약속하셨다면, 그분의 때에 그분의 방법으로 이루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연약하여 실수하고 상처를 남긴 자리에서도 여호와께서는 고통받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예슈아께서도 자신의 뜻보다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눅 22:42).
우리 역시 자신의 방법을 내려놓고 여호와의 뜻에 순종하는 언약의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7. 오늘의 묵상 질문
1) 나는 여호와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내 방법으로 이루려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2) 여호와를 위한 열심이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습니까?
3) 나를 살피시고 내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여호와를 신뢰하고 있습니까?
8. 오늘의 기도
여호와 아버지,
아버지의 약속을 믿으면서도 조급한 마음으로 제 방법을 앞세웠던 모습을 돌아봅니다.
저의 뜻과 열심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때와 방법을 신뢰하게 하소서.
저의 연약함을 긍휼히 여기시고, 제가 미처 살피지 못한 이웃의 아픔도 돌아보게 하소서.
광야에서도 하갈을 보시고 그의 고통을 들으셨던 아버지께서 오늘도 우리를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예슈아께서 걸으신 순종의 길을 따라가게 하소서.
예슈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샬롬! 바룩 하쉠! 🌿
첫댓글
아멘 !!!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 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ㅡ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사람이 성취하면 언약의 성취가 아닙니다.
이스마엘 후손들이 지금의 이슬람교 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한 결과는 지금도 중동 땅에서 두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