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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한국사 노량해전에서 과연 명나라 수군은 제대로 싸웠을까?
기모찌 추천 0 조회 1,722 13.07.01 21:44 댓글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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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13.07.02 09:29

    하지만 등자룡과 진린도 판옥선을 빌려서 승선했으니...

    자신들의 배가 뭔가 전투에 불리하다는 인식은 있었던것 같습니다;ㅁ;

  • 작성자 13.07.02 19:46

    사선의 선체가 세키부네보다 높지가 않습니다.

  • 13.07.03 12:04

    노량해전에 대해 아는게 많지가 않아 길게 쓰는건 조금 부담스럽니다만 일단 글에 나온 이덕형의 말을 들어보자면 그 어투에서 명나라 수군의 교전태도를 원망하는듯한 표현이 몇차례 등장하는데, 싸웠는지, 안 싸웠는지는 둘째치고 이덕형(그러니까, 조선인)의 입장에서 조선수군과 비교해 명군의 전투력에 큰 실망을 한 건 분명한것 같습니다. 만족스러운 싸움을 했다면 다 잡은 적을 놓쳤다 해도 저정도 원망은 하지 않았겠지영.

  • 13.07.05 19:16

    선체가 낮다고 백병전 못하는 거 아닙니다. 특히 조선수군과의 조합이 이루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단순히 배 크기로 백병전 가능 여부를 논하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애초에 조선 수군의 당시 규모 자체가 판옥선만을 운용하기도 꽤 빠듯하기 때문에(인원 싹싹 긁어모아서 모조리 판옥선에 태워야 겨우겨우 80척 추정치를 운용합니다.) 분함대가 호위하고 있었을 거라는 식의 추정은 불가입니다.
    물론 조선수군 입장에선 명 수군의 전투력이 흡족하지 못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안싸웠다고 하는 건 또다른 왜곡입니다.

  • 작성자 13.07.06 22:37

    조선수군과의 조합이 이루어져 있단 건 어떤 의미로 하신 말씀인지요. 노량해전에서 조선수군은 남측에 포진하고 명 수군은 북측에 포진했습니다. 서로간에 상호연락이나 지원이 사실상 어렵습니다(적군을 중앙돌파하지 않는한)
    이순신 장군이 가장 신경쓴 것중 하나가 바로 진린의 안위입니다. 만약 진린이 허접하게 왜군에게 대들다가 전사라도 하면 그 똥물은 죄다 조선이 뒤집어써야 하고 명과 조선의 외교전까지 갈 여지가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순천왜교성에도 그 악을 써가며 진린군을 구원한거죠. 노량에서도 추가호위가 없었다면 전투력 떨어지는 명군은 조기에 일본군에 의해 퇴진할 가능성이 높았을 것입니다.

  • 작성자 13.07.06 22:16

    선체가 낮다고 백병전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선(호선은 고바야급이니 논외로 하고) 은 1층선박입니다. 노 젓는 것하고 포 쏘는 곳하고 같은 층에서 이루어집니다. 세키부네나 판옥선같이 노 젓는 곳하고 포 쏘는 곳/백병전 벌어지는 곳하고 구별된 것이 아니라서 세키부네로 근접해서 왜군이 뛰어내리면 그대로 기동성 묶여서 자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진린이든 이순신이든 열세가 뻔한 선박을 억지로 전장 한가운데로 몰아넣진 않습니다. 명 수군이 백병전에 참가했다 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조선수군 지원이거나 또는 뒤에서 물에 빠진 왜군들 창으로 찔러 죽이는 용도입니다.

  • 작성자 13.07.06 22:29

    또한 분함대를 운용하기 어렵다는 건 무엇을 근거로 하신 말씀인지 모르겠네요. 추정규모 60~80척 정도의 조선함대에서 복병장을 임명할 만큼 판옥선 수가 별로 없다는 말씀인가요? 1593년 2월 웅포 해전 당시 조선수군의 판옥선 보유량은 약 70척에서 80척으로 추정되는데(부산포해전당시 74척이었으니 늘어났을 수도 있지만 그 정확한 수는 추정 불가능) 이 때도 사도첨사 김완을 복병장으로 임명해서 왜군 잘 헤집고 다녔는데요?
    아니면 왜군 500척을 맞아 싸우기에 80척 판옥선도 빠듯한데 무슨 복병장이냐 복병장은 전력분산되게 이런 말씀인가요?

  • 작성자 13.07.06 22:44

    그리고 '복병장'이 있었단 것 자체가 분함대가 있었단 소립니다:; 그게 명군 호위든 기습부대든 간에 말이죠.
    여튼 말씀하시는 게 노량해전에서 양군이 뒤섞여서 본격적인 혈전을 벌였던 중후기를 말한다면 참전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지만 초기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전 부정적입니다.

  • 13.07.06 23:01

    군소함정들 모두 포기하고 전 인원을 판옥선에 1척당 100명 이하로 나누어 태워도(사실 이러면 전투력이 급감합니다.) 80척을 운용하기 힘든게 당시 조선군 상태인데 분함대 편성해서 별도 호위를 해 줄 여력이 어디 있는데요. 근거는? 차라리 판옥선을 몇척 더 빌려주었다 하는 게 가능성이 있지만 이것도 사료상 근거가 없어서 주장을 함부로 못하는 판에 분함대를 파견했을 것이다? 근거없음, 이죠.

    조선 수군의 분함대가 진린을 호위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으시다면 사료상의 근거를 보여주십시오.

  • 작성자 13.07.06 23:04

    아니, 복병장이란 지위 자체가 분함대 지휘관을 의미한다니까요?
    명군을 호위하든 아니면 어딘가에 잠복해 있든 간에 특수 임무를 맡은 함대가 분명 존재했다는데 무슨 분함대의 존재를 무시하시나요?
    명군 호위는 사료적 근거는 없습니다. 정황에 따른 추정이죠.

  • 13.07.06 23:12

    경상우수사 이순신은 정황상 선견대입니다. 명수군과 연합해 싸웠네 할 근거는 없습니다. 정황 근거를 논한다면 차라리 판옥선을 몇척 더 대여했다 하는게 정황상으로는 더욱 타당하겠죠.

    고금도 수영 출전 당시 조선 수군 인력은 7300 명 내외로 보여지는데, 이인력으로는 판옥선만을 운용하기도 빠듯하며 사후선 등 보조함선을 운용할 인력 확보는 버겁습니다. 백병전도 힘들고. 그런 상황에서 만단위 인력인 명 수군이 어떤 일을 맡을 수 있는가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 작성자 13.07.06 23:21

    그러니까 그건 추정이죠. 저도 추정인 건 인정합니다.
    다만 급떨어지는 명군의 선박으로 일본군의 공세를 견뎌낼 여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미리 북쪽해협에 경상우수사 이순신이 명군함대와 연합해서 싸우기 위해 파견되어 있었단 게 제 추정이죠.

    무엇보다 당시 충무공의 관심사가 왜군 격멸도 있었지만 진린호위도 있었습니다. 순천왜교성에서 악을 쓰며 진린 구해낸것도 진린의 생사가 명과 조선의 외교문제까지 걸려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전투력 떨어지는 명군함대와 함께 판옥선 2척 쥐어주고 북쪽에 주둔시켰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순천왜성에서 쓴맛을 봤으면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죠.

  • 작성자 13.07.06 23:22

    그리고 수군 병력은 순천왜교성 공략 당시 수로군이 7300명이라고 한 것을 근거로 두는 것 같은데, 이는 고금도 주둔군을 말하는 것이죠. 고금도 주둔군이 곧 실제 수군 가용인력은 아닙니다.
    글고 해전에서는 수가 많아도 배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압도적인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명량의 물목에서 왜선들이 물먹은건 지형적 유리함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판옥선과 세키부네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선과 세키부네의 차이가 판옥선과 세키부네의 차이보다 크면 컸지 작진 않습니다.

  • 작성자 13.07.06 23:38

    그리고 그쪽이 주장하시는 건 명군이 판옥선의 보조함선 역할을 해줬다는 건데 일단 가능성은 있습니다. 다만 그쪽 말씀처럼 이순신이 포작선과 협선도 없이 걍 판옥선 80척을 인원미달로 채워넣어 수만늘리는 원균같은 짓을 했을지도 의문이지만 노량해전 초기에 명군함대와 이순신함대는 따로 배치되었습니다. 명군함대가 포작선과 같은 보조함선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협선하고 포작선만 모아서 한쪽에 두고 한쪽엔 판옥선만 뒀단겁니다.

    명군에게 판옥선 대여를 해줬다는 주장은 참신한데 한번 고려해봐야겠군요. 다만 잘 다룰 수나 있었을지. 진린이나 등자룡의 사례를 보면..

  • 13.07.07 00:42

    ...무슨 전열함과 정크선 차이도 아니고 판옥선과 세키부네 사이에 왠 넘을 수 없는 차이입니까. 그런 주장은 조선수군의 승리가 단순 무기빨이라는 결론밖엔 안나옵니다.

    상응하는 조치고 자시고 정황만 따진다면 판옥선 몇척 더 넘겨주는게 '정황상' 더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근거 사료가 없어서' 이런 주장을 안하고 있지요. 정황상이라는 건 고작해야 이정도죠. 이쪽의 주장을 넘겨짚지 마세요.

    위엣글에 그쪽이 적어놓은 노량해전 글을 근거로 하시려면 근거사료부터 보충하시고 이야기해 주십시요.

  • 13.07.07 12:50

    그런데요
    이순신이 80척 정원도 안채우고 판옥선 숫자만 늘리고 보조선은 운용안했다? 근거 있으신가요?
    명 수군이 보조선 역할을 해줬다? 명 수군은 좌협을 맡아 노량해협 북쪽을 맡아 조선수군과는 다른 데 배치했는데 어떻게 보조선 역할을 해줍니까?
    정황상 명나라 수군에게 판옥선 대여가 더 가능성있다했는데 그 이유또한 모르겠네요. 왜교성전투에서도 명 수군이 위협에 처하자 급히 이순신이 구원군을 보낸 선례가 있습니다. 그런 꼴 안당하려고 호위함대를 붙여줬단게 더 가능성있지 판옥선 수십척 대여가 더 가능성있다니요?

  • 13.07.07 17:17

    그런데요.
    별도로 배치했다는 근거는? 위의 글 어디에도 근거사료가 없는 일방적인 주장만 존재하는데 뭘 근거로 별도 배치설을 주장하는 지 모르겠습니다. 이것부터 근거를 채워놓고 와야 별도로 포진했으니 호위함대를 편성한단 이야기가 가능하겠죠.
    애초에 조선 수군에는 인력부족 문제가 있지 함선 부족 문제가 있는 건 아니죠. 실제로 판옥선 1척에 비치된 무장류도 간소화된 게 이때고(출처: 「임란첩보서목」). 그렇다면 없는 인력을 할당하느니 판옥선 몇척 더 빌려준다는 게 현실적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읽으셨는지는 모르나 80척 머릿수만 채웠다는 주장은 한 적이 없는데 그런 주장을 했다고 읽으시니 꽤나 기이하군요.

  • 13.07.07 17:21

    애초에 조선 수군의 당시 규모 자체가 판옥선만을 운용하기도 꽤 빠듯하기 때문에(인원 싹싹 긁어모아서 모조리 판옥선에 태워야 겨우겨우 80척 추정치를 운용합니다.)

    군소함정들 모두 포기하고 전 인원을 판옥선에 1척당 100명 이하로 나누어 태워도(사실 이러면 전투력이 급감합니다.) 80척을 운용하기 힘든게 당시 조선군 상태인데 분함대 편성해서 별도 호위를 해 줄 여력이 어디 있는데요

    80척이란 말은 그럼 왜 계속 반복하고 계시는지요. 그렇게까지 인력이 부족하면 상식적으로 판옥선 숫자를 줄이는 게 당연한 일이지 그럼 원균처럼 판옥선 한 척당 백명 쑤셔넣었다가 부산 앞바다에서 홀라당 날려먹는 사태를 가져오는게 정상?

  • 13.07.07 17:29

    그리고 명군이 보조함선 역할 했단 이야기는 어떻게 수습하실지 궁금하군요. 명군이 보조함선 역할을 하려면 조선군 함대와 같이 배치되어야 하는데 정작 노량해전때 명군함대는 북쪽, 조선군 함대는 남쪽, 서로 따로따로 배치되었네요. 보조함선과 주력함선을 따로 나누어 배치하는 함대편성도 있나요? 신기하네요.

    그리고 호위함대 배치는 애초에 추정이고 저 글에서도 근거사료 없음. 추측일 뿐이다. 이라 명시해뒀습니다. 글 제대로 읽으세요.
    그럴 가능성이 높단 거지 반드시 그랬을 거라는게 아닙니다. 저야말로 기이합니다.

  • 13.07.07 19:08

    가지고 있는 판옥선도 다 운용 못할 정도로 인력이 후달리는 조선 수군이 굳이 별도의 인력을 배분해 가면서 호위함대를 꾸렸다는 그 잘나빠진 '정황상 추정' 을 밀어붙이는 게 하도 눈꼴시려 80척을 계속 거론해 드리는 겁니다. 차라리 그럴거면 남아도는 판옥선을 몇척 더 빌려주는 게 훨씬 타당하니까 말이죠. 자신은 추정하고 있다고 하는데 지금 하는게 추정입니까. 주장이지.

    그리고 노량해전에서 조선 수군과 명 수군이 분리해 배치되어 있었다는 근거는? 일단 그것부터 제시하시는 게 좋겠군요. 별도 배치설의 근거사료는 무엇입니까. 위에 님이 써 놓은 글 어디에도 출처사료는 찾지 못했습니다.

  • 13.07.07 19:46

    스스로 무슨말을 하는지 이해는 하고 있는지 심각하게 의심되는군요.
    그러니까 그렇게 인원이 부족하다면 왜 뜬금없이 80척을 운용하냐고 묻고 있는 겁니다.
    인원이 부족한다면 50척~60척 함대로 적정선 꾸려 움직이면 되지 왜 굳이 제해권 잡고 흔들때인 부산포해전 당시인 74척보다 많은 80척 운운하고 다닙니까?
    애초에 80척에 끼워 맞추는 이유는 또 뭡니까?
    74척일때도 천 척에 가까운 왜 선단이 두려워서 해전을 피할 정도였는데 되려 그것보다 많은 무려 팔십척을 잡아놓고 횡설수설 인원부족해서 80척도 못운용한단 소린 왜하는건지 묻고있는겁니다.

  • 13.07.07 19:43

    수군 복병장(伏兵將) 경상 우수사 이순신(李純信)이 거룻배로 달려와 보고하였다. 진인과 이순신(李舜臣)이 여러 전선을 거느리고 좌우협(左右協)이 되어 아군은 남해의 관음포(觀音浦)에 주둔하고, 명군은 곤양의 죽도(竹島)에 주둔하여 닻을 거두고 변에 대비하고 있었는데, 함밤중에 적선이 광주(光洲) 산도(山濤) 사천 남해로 오는 수로의 이름이다. 로부터 구름이 합치듯 안개가 모이듯이 모여들어.......<난중잡록>무술년 만력 26년, 선조 31년(1598) 11월 19일

    이런것도 모르고 노량해전에 대해 떠들고 다녔다니 기가 차는군요.

  • 13.07.07 19:50

    이에 순신은 빠른 배를 보내어 진린에게 알려서 모든 배를 거느리고 좌우협이 되게 하고, 우리 군사는 남해 관음포(觀音浦)에 주둔하고, 명병은 곤양(昆陽) 죽도(竹島) 앞바다에 진을 쳤다.밤중에 적이 광주(光州)에서 구름같이 모여서 바로 왜교로 향하였다. 우리 군사와 명병 양군이 덮쳐서 공격하고 불붙인 섶과 화살과 돌을 잇달아 던지니 태반의 왜선이 불타고 부서졌다---<연려실기술>제 17권 선조조 고사본말

    이제 북쪽에 있는 명 수군이 어떻게 남쪽에 있는 조선 수군을 위해 보조함대 역할을 해줄 수 있었는지 해명 해야 할 시간이군요. 좋은 소설 한번 써 보십시오. 순간이동설이라든가. 그쪽 능력이면 무리도 아닐듯 합니다.

  • 13.07.07 19:53

    가지고 있는 배도 다 운용 못한다를 억지로 80척을 운용한다로 읽으시다니 이건 꽤나 기이하군요. 글은 읽을 줄 아시는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왜선 천척이 접근을 못했다? 임진년 부산포해전 이야기라면 애초에 천여 척을 운용할 인원도 없었던 게 당시 일본의 부산포 주둔 병력인데 굳이 억지로 끼워붙이는 이유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타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지 못하고 아무거나 갖다 붙이고 지금 뭐하자는 건지?

    호오. 좌우협이 되었으니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다 하시는 겁니까. 이거 해독력이 기똥차시군요. 근데 왜 이덕형은 조선수군과 명 수군을 전후열로 묘사했을까요? 어째서 당시 전투화는 이덕형의 말에 ㄱㅏ까

  • 13.07.07 19:52

    부산 왜군 주둔 함대가 천 척이 있든 없든 그건 논제에서 벗어난 상황이니 논외. 분명한 건 노량해전 참전 함대 500척(최대치)보단 더 많았을 것이라는 건 유추 가능. 왜냐? 조선에 온 시마즈군의 수는 대략 1만 2천여명이었고 노량해전의 주력은 시마즈군이었기 떄문(임진전란사)

    자 이제 어떻게 보조함대 역할을 맡았는지나 해명해보시죠. 소설 한번 써 보시라니까요? 보고 재미있으면 인정해 드립니다.

  • 13.07.07 19:57

    게다가 가지고 있는 배를 다 운용 못한단 근거가 수로군은 7300명이라고 말하는 실록 기사이면 그건 고금도 주둔군 숫자가 곧 수군 전체 병력이 아니라고 김경진 씨께서 한번 warfog에서 말씀하신 적 있다고 알고 있는데?
    그리고 애초에 노량해전 '당시에' 80척 보유량이었단 근거사료 제시 부탁.

    관음포 앞바다와 곤양 죽도는 노량해협을 사이에 두고 남쪽과 북쪽에 있는 지역임. 지도나 보고 오길. 그리고 애초에 처음 전열이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되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리 아녀? 후반기 가면 알아서 난전으로 변하거덩.

  • 13.07.07 19:58

    가까울까요?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떻게 보조선으로 운용했냐고요? 이덕형이 말하는 식으로요. 조순 수군이 전방에서 적당히 부셔놓으면 명군이 뒷처리. 후방에서 머리나 챙긴다고 까였지만 명군이 없으면 뒷처리까지 조선 수군이 할 판이죠.

  • 13.07.07 20:47

    그리고 노량해전의 목적은 왜군 함대 섬멸이었고, 이를 위해서 명군 함대가 북쪽에 조선군 함대가 남쪽에 배치되어 있었다. 이건 상식 수준인데 재밌는 해석이라고? 역사를 새로 쓰는구먼요.
    조명연합군 혼성군으로 배치되어 있었단 증거가 있으면 가져 오시죠?


    그러니까 그쪽에서 그렇게 말하는 식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함대가 혼성배치되어 있어야 하는데 노량해전 초기에는 함대가 분산배치되어 있었는데?. 중후기로 가면서 전열이 흐트러지고 그런 포작선이 할 소소한 소일을 명군함대가 대신 해줬을 가능성은 있지만 처음부터 그런 목적은 아니었다. 이게 포인트지.

  • 13.07.07 20:42

    그리고 인력 부족 인력 부족 해대는데 이순신이 만성 인력부족에 시달린 건 맞지만 그건 이순신의 목표한계치가 너무 높아서였고 그쪽에서 말하는 '80척도 못채우는데 ㅉㅉ'할정도는 아님.
    이민웅 교수의 임진왜란 해전사를 인용해줌.

    다음으로 병력 모집은 노량해전에 참전한 병력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숫자는 파악할 수 없다. 단 선조 33년(1600) 1월에 좌의정 겸 사도제철사 이항복이 남부 지방으로 떠나기 전에 어전에서 나눈 대화 중에 당시 전선의 척수가 삼도를 합해 80여 척이라는 내용이 있다. 물론 이 척수는 노량해전 이후 1년 남짓 지난 시점이기 때문에 그간 전선을 더 건조한 수치였을 가능성도 있다.

  • 13.07.07 20:44

    그러나 노량해전이 대첩이기는 했지만 우리 수군도 손실 척수가 있었을 것이므로 이 두 요소를 상쇄하여 대략 80여 척 이상이 노량해전에 참전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따라서 전체 병력은 전선을 80여 척이라고 가정하면 전선에 승선할 병력을 척당120명으로 계산하면 9600여명이고 전선에 부속된 선박에 탈 인원까지 합치면 1만여 명으로 추정된다. 100) 정유년(1597) 8월 이래 전선 13척 규모에서 불과 1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이 정도 전력을 갖춘 것은 이순신의 지휘 역량에 의한 것이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연해 지방의 민력을 수군에 집중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101)

  • 13.07.07 20:50

    각주
    100)이순신 [임진장초]만력 22년(1594) 3월 10일자 계본에 의하면 전선 110척일 때 사격이 모두 1만 7천여명이었다. 1만여 명은 이것과 비교하여 추정한 수치이다.
    101)[선조실록] 권 104, 선조 31년 9월 경술조에는 수로에 함께 참여한 조선 수군이 7,300여명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이 병력이 조선 수군의 전부인지는 불분명하다.

    어라, 불분명하다네요? 그쪽에서 80척도 못 채울 정도로 인력 부족이라고 주장하는게 이 7300여명 기사 말고 또 다른 근거자료가 있음?
    <가지고 있는 판옥선도 다 운용 못할 정도로 인력이 후달리는 조선 수군이>라고 말한 것에 대한 근거가 있음?

  • 13.07.02 13:07

    난 명군이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명나라화가가 그린 노량해전 전투도에도 명군은 싸움에 직접 참가한 게 아니라 조선수군 뒤에서만 있었습니다.
    당시 명군이 참가했다면 조선군에게 전투에 방해만 되었을 뿐이죠.
    등자룡의 판옥선이 유일한 소실된 배인데, 그것도 싸움때문에 소실된 게 아니라, 배에서 추워서 불피우다가 그만 실수를하여 배에 불이 붙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진린도 싸움에 참가한 게 아니라 구경만 하다가 재수없게 조선수군에 막혀서 탈출구를 안보여서 발악한 왜구들한테 우연히 걸려서 본의아니게 싸움에 휘말렸다고 생각합니다..

  • 13.07.02 18:46

    네?

  • 작성자 13.07.02 19:34

    근데 그게 반쯤은 사실입니다:;
    사실 충무공이 전사하신 것을 진린이라는 방해꾼의 존재때문이라고 하기도 한...

  • 13.07.03 16:06

    등자룡이 소실한 판옥선은 불랑기가 유폭해서 소실한건데요 ㅡ.ㅡ;;;

  • 13.07.03 18:36

    그러니까 튜어니즘님과 전상용햏의 얘기를 조합해보면.


    전투중이 아니라 발포하지도 않았는데 함포가 유폭해서 전선이 소실됨.



    음... 뭔가 대륙스러우면서도 그럴듯하다능ㅇㅅㅇ?

  • 13.07.03 20:59

    아니요 불랑기포가 전투 중에 자포와 모포의 결합 문제로 발포하다가 유폭한겁니다... 원래 불랑기는 이런 사고 꽤 일어났다고 합니다.. 아니 불랑기만이 아니라 당대 화포의 주조 상태 불량이 많아서 이런 경우가 간간히 있었습니다(그것도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서..)

    이는 달리 말해서 명군이 조선수군보다 약하긴 했어도(솔까말 조선수군처럼 제대로 된 해군이 당대 있기는 했는지 궁금하긴 합니다만) 어느 정도 싸우기는 했다는 겁니다..

  • 13.07.04 01:34

    ....내가 너무 고차원 적인 농담을 한건 아닐텐데........

    아아... 농담 FAIL요....

  • 13.07.02 14:37

    대체 영락제때의 위엄은 어디가고..........

  • 13.07.03 17:02

    저때 황제가 좀 많이 문제 있었죠.

  • 13.07.03 23:14

    f4

  • 13.07.04 16:41

    황제 문제도 있지만 그때 항해술과 조선기술은 어디갔는가가 더 아쉽더군요........ㅜㅜ

  • 13.07.03 08:55

    명나라의 수군은 어쩌면 큰 도움이 안될 수도 있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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