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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학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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聚談亭(취담정) 일본의 Hegel 연구
鐵鎖開金 추천 0 조회 58 18.12.15 12:38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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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8.12.15 17:34

    첫댓글 네. 헤겔의 변증법에 따르면, 모든 인간 역사발전은 정,반,합이란 세 단계를 거친다고 하죠.
    어느 하나의 과정을 쭈욱 거치다가 어떤 계기로 정 반대의 과정을 경험하게 되고,
    나중에 타협점인 양쪽의 종합 단계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죠.
    또 그런 상태가 계속되다가 또 그와 정반대의 단계를 만나고, 또 얼마 후엔 다시
    종합의 상태로 돌아가고, 또 이것이 반대의 위상이 되다가 또 뒤에 종합이 되고, 또 그것이...ㅎ

    이런 과정을 되풀이함으로서 이전과 같은 과오를 되풀이 하지 않거나 줄이게 되니,
    역사든, 사고든, 문명이든 점차 발전해 나감은 당연하달 것이죠.
    헤겔의 이런 인식배경에는, 당연히 당시의 프랑스 혁명을 지켜본 관점이

  • 18.12.17 18:58


    작용한 거죠.
    기존의 신분봉건질서를 단두대에 끌어올려 무너뜨리고,
    인간의 보편적 가치와 의지를 중시한 계몽주의가 나폴레옹에 의해
    전유럽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가던 시대에, 유럽의 지식인들은 대부분
    왕족이나 귀족계급에 소외된 반체제적인 입장이었으므로 프랑스 혁명에 열광했고,
    프랑스의 변화를 지켜보던 독일의 철학자 헤겔 역시,
    이런 역사의 변혁을 두고 한 말씀 남긴 것은 당연하다겠죠.ㅎ

    건 그렇고..,
    일본이 서구의 압력에 밀려 개화를 해야 하던 시기에
    지식층에 의해 헤겔의 주장이 열띠게 논의되었던 것도 당연합니다,
    그들로서도 유럽의 지식인들이 겪었던 것 처럼, 변화의 현장 앞에 불려져 있었던 거죠.

  • 18.12.15 18:01

    @우명
    그러니, 일본을 서구에 어떻게, 얼마만큼 벌거벗겨 놓아야 하는가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역사 변증법에 기초하여 설왕설래했음은 아주 자연스런 상황이었다고 봅니다.
    그만큼, 당시 일본의 문화가 개방화되었음도 알 수 있고요

    위에 나오는 당시의 일본의 입장인, 화혼양재(和魂洋才)는 우리나라의 동도서기(東道西器)나
    청국의 중체서용(中體西用) 등과 유사한 주장들이죠.
    즉 기술은 서양을 따르되, 정신만은 바꾸지 말고 지금 그대로 존속하자는...절충적 자세인데,
    이 주장들이 나온 자체가 서구를 따라야만 하는, 시대변화에 대한두려움이 깔려있다는 반증이죠.

    조선과 청에서는 기술만을 받아들이자는 그런 주장 조차도

  • 18.12.15 18:45

    @우명
    구세력에 의해 선뜻 수용하지 못하고, 설왕설래, 좌충우돌, 우왕좌왕, 어영부영 시간만 끌다가,
    나중에 어쩔 수 없이 강압에 의해 한꺼번에 다 받아들여야 하여 크나큰 혼란을 겪게 되었지만요.

    그러나 일본은 조선이나 청과 달리, 서구의 문물을 과감하게 수용하고, 곧 정신까지도
    개혁하는 일대의 대대적인 자체 혁명을 이루어내니, 이른바 메이지 유신입니다.
    일본은 그렇게, 조선과 청에 비해 반세기나 앞서 발빠르게 서구를 배우게 되어,
    비까번쩍 동아시아의 강자가 되설라무네, 그때까지도 오줌 똥 못 가리던 조선과 청을
    집어 삼키려는 욕구를 드러내나니, 대동아 침략정책이 되고 말았던 것이죠.ㅎ

    일본과 헤겔..잘 봤습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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