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외국인들은 “가방끈 길다고 공부 잘하니?”라는 말의 의미를 알지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가방 크다고 공부 잘 하니?”라고 했을 때,
그 의미가 무엇인지 속뜻까지 아는 사람은 드물지요.
우리나라는 문교 혜택을 많이 받았다는 표현을 하기도 하고,
장학금을 타인에게 양보하면서 학교에 다녔다는 등의 해학적인 표현도 즐겨 사용합니다.
이는 한국인만이 지닌 언어유희의 한 장면읽 터입니다.
실제로 가방끈과 교육 과정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가방’이라는 등식으로 언어를 구사하고 있지요.
우선 ‘가방’이라는 말은
“손잡이나 멜빵이 달려 있어 물건을 넣어 들거나 메고 다니는 용구”를 말합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는 가방은 언감생심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책보에 둘둘 말아서 남자는 어깨에 둘러메고, 여자는 허리춤에 묶고 다녔지요.
그러다가 논이나 도랑에 책이 빠져서 곤욕을 치룬 적도 많았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갈 즈음에야 겨우 운동화에 가방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우리 세대에는 ‘가방’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공부를 상징하는 대명사가 되었지요.
새로 산 가방도 1년이 채 지나기 전에 끈이 끊어져서 실로 꿰매고,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친구들도 많았지요.
그러니까 가방끈과 교육적 혜택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난 가방끈이 짧아서 그런 어려운 말 잘 몰라.”라고 하기도 하고,
“얀마, 가방끈 길다고 세상사 다 아니?”라고 하면서 가방과 공부의 등식을 깨버립니다.
‘가방끈’이란 “어깨에 메거나 손으로 들 수 있도록 가방에 달아 놓은 끈”을 말합니다.
두뇌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도 노인 세대는 항상 가방이나 가방끈을 교육과정과 연관지으려고 합니다.
한편으로 일부러 가방과 교육을 부정하려고 하는 표현도 있습니다.
특히 ‘고스톱’이라는 화투놀이를 할 때 많은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표현으로
“가방 크다고 공부 잘 하니?”라고 하는 표현을 씁니다.
‘광’을 너무 좋아하지 말라는 표현이지요.
단순하게 ‘삼 점’ 나는 것이 필요하지 큰 것 바라다가 망한다는 표현을 그렇게 바꾸는 겁니다.
참으로 문장을 재미나게 만들 줄 아는 민족이 아닙니까?
하기야 요즘 아이들이 가지고 다니는 가방을 보면 천차만별입니다. 무슨 가방이 그리 비싼지요.
가방 장사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욕먹을 수 있지만
실제로 가방을 만드는데 그리 큰 수공이 들어가는 것 같지는 않지만 가방 값은 입이 벌어질 정도입니다.
요즘은 노인도 백팩을 메고 다닙니다.
나이 드신 선배들이 “애들같이 그게 뭐냐?”고 하지만 지고 다니니 편하기는 합니다.
손에 들고 다닐 때보다는 힘이 덜 드는 것이 사실이잖아요.
이제는 가방끈의 개념도 바꿀 때가 되었습니다.
공부 열심히 해서 길게 만드는 가방끈의 의미가 사라지고 있으니까요.
등에 지고 다니는 가방을 선호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가방끈’이나 ‘큰 가방‘의 속뜻이 의미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의 젊은이들은 작은 노트북 컴퓨터 하나만 들어 있으면 만사 끝이잖아요.
세월이 변하듯이 언어의 의미도 결국은 변하게 마련입니다.
가방끈 긴 것을 유난히 좋아하는 우리 민족이었는데,
이제는 지식을 추구할 필요가 없어지고 있어서 그런지 모릅니다.
휴대전화만 열면 세상의 모든 지식이 다 들어 있으니 가방 큰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지식을 폐하더라도 지혜로운 늙은이가 되고 싶은데,
말을 많이 하면 꼰대라고 하고, 말이 너무 없으면 바보라고 무시합니다.
나이 들면 인생은 가방끈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도...
법률을 가장 잘 아고 학벌마저 좋은 이들이 우르르 모여있는 국회의사당과
서초동 법조 거리를 오고가는 이들이 존경받고 신뢰받는 시대가 아닙니다.
국회의원들이 과학자를 비아냥거리고 전문가에게 호통치는 사회이기 전에
나이 든 이들이 존경받고, 어린이는 밝게 뛰노는 상생의 사회를 그려봅니다.
고맙습니다.
-우리말123^*^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