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학 졸업자 취업률이 IMF 외환위기 직후였던 1998년 보다 낮았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어렵사리 입학을 해 4년간 취업 준비를 해도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기가 힘든 요즘 세태. 사회 전반에 걸쳐 청년실업의 걱정이 끊이질 않고 있다.
야구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10개 구단은 통틀어 110명의 신인을 선발했다. 그 중 대학선수는 38명으로 신청서를 제출한 270명 중 14%에 그쳤다.
15년 가까이 한 길만을 걸어온 230여명은 이제 다른 삶을 찾아 나서야 한다. 하지만 운 좋게 프로 행 막차에 오르기도 한다.
운동을 계속할 수 있는 유일한 루트는 연습생으로 입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쉽지 않다. 팀 마다 충원 인원도 적을 뿐 더러 특정 포지션만 고르는 등 조건에 부합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혹시 테스트 소식 뭐 들으신 거 없나요? 구단에서 직접 연락이 온다던데... 아직 아무런 소식도 받지 못해서요. 답답해서 연락 드렸어요.”
신인 지명회의 행사 후 하루 이틀이 뒤 이런 문자를 받곤 한다. 대부분 대졸선수들이다.
그나마 ‘시한부’로 내년 시즌 프로에서 첫 선을 보이게 되는 이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웃는다. 현재(10월15일)까지 연습생으로 입단이 확정된 대졸 선수는 31명으로 확인되고 있다.
대졸은 언제든지 고졸은 내년 1월부터 가능
연습생은 대졸 - 고졸 상관없이 뽑는다. 다만 영입 시기는 다르다. 대학선수는 지명 행사 직후 곧바로 데려올 수 있다. 하지만 고졸은 올해 12월 31일까지는 데려올 수 없다.
이는 무분별하게 데려오기 보단 대학 진학을 유도해 대학야구계도 살리고 더불어 선수 기량 향상의 기회를 주자는 취지가 담겨져 있다. 구단들이 합의 한 사항이다.
그런데 이것이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예 대학 입학 원서조차 준비하지 않은 채 ‘곧 죽어도 프로’라며 구단과 접촉 해 구두계약을 맺는 경우가 나오곤 한다.
가끔 SNS에 구단 로고를 떡하니 올려놓고 연습생으로 가게 됐다고 밝히는 고졸 선수들이 있다. 조용히 있어 주길 바라는 구단입장에선 안절부절 할 노릇이다.
그러나 공개하지 않아도 알 사람들은 다 아는 일. 이 부분에 대해 대학 지도자들은 할 말이 많다. 쓸 만한 자원을 모조리 프로가 쓸어가 대학야구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한다. 매년 그래왔다. 그러나 해가 바뀌어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미지명의 고졸 선수가 대학진학을 하느냐 포기하느냐는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어찌됐건 공식적으로 고졸선수를 연습생으로 데려올 수 있는 건 이듬해 1월 1일 이후부터 가능하다.
지명행사 후 스카우트들은 또 다른 작업에 돌입한다. 아슬아슬하게 밀린 대졸 선수들을 낚아채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 해당되는 선수들은 십중팔구 ‘이렇게 데려갈 거면 지명 해 주지’ 라며 불만과 서운함을 감추지 못한다.
직접 연락을 받는 이는 그나마 다행이다. 테스트를 거치거나 몇 주간 전전긍긍한 끝에 행보가 정해지는 이들에 비하면 말이다.
넥센, 8명으로 최다 두산 - LG - SK 대졸 연습생 사절
넥센은 10개구단 가운데 가장 많은 8명을 뽑았고 그 뒤를 이어 한화 7명, KIA 5명, 삼성-kt-NC이 각각 3명씩 롯데 2명 순이다. 두산, LG , SK는 단 한 명도 뽑지 않았다.
포지션별로는 투수와 내야수가 9명으로 가장 많고 포수 8명 외야수 5명이다.
구단별 육성선수 선발 현황은 다음과 같다.
# 삼성 안창하, 김영덕 안주형
삼성은 8월 27일과 28일 이틀간 테스트를 실시, 3명을 합격자로 선발했다. 안창하, 김영덕, 안주형이 그 주인공이다.
안창하는 2011년 충암고가 황금사자기 우승을 꿰찰 당시 변진수(현.두산)과 배터리를 맞췄던 포수. 고교선수답지 않은 근성 있는 투수 리드 능력과 강한 어깨, 투지 등 강한 인상을 남긴 바 있다. 그러나 원래 꿈은 마운드에 서는 거 였다. 건국대 진학후 그는 투수로 변신했다.
작년엔 3경기 5이닝을 던져 1승 평균자책점 1.80 올해는 10경기(27과⅓이닝)3승 2패 방어율 4.00을 기록했다.
“테스트에 투수가 거의 스무 명 정도 왔는데 저 하나 뽑혔어요. 프로 최고의 팀의 일원이 되어 너무 기쁘고 뿌듯해요.”
(왼쪽부터) 안창하 - 김영덕 - 안주형
김영덕도 포철공고시절 공수를 겸비한 포수로 유명했다. 대학 진학 후는 매서운 방망이 덕분에 지명타자로 자주 출전하다 어느 순간 마스크를 벗고 외야로 전향했다.
“요즘 멀티가 유행이잖아요. 상황에 따라 포수로 앉을 수도 있지 않겠어요? 시켜만 주시면 뭐든 해야죠.”
작년부터 타격이 살아나가 3할 중반대의 타율을 유지했다. 삼성은 우타자 부재로 신인을 뽑을 때 가급적 우타자를 선호해 왔다. 김영덕은 182cm 90kg의 한 방이 있는 우타자라는 점, 거기에 언제든 포수 마스크도 쓸 수 있다는 점이 합격의 이유가 아닌가 싶다.
삼성은 정규시즌 1군 내야수들의 체력 안배 카드로 백상원, 김재현 등 대졸 내야수를 적절히 기용해 재미를 봤다. 내년엔 이성규(인하대)김성훈(디지털서울문예대) 두 대졸 내야수가 가세한다. 여기에 또 한 명이 조심스레 이름을 올린다. 안주형이다. 영남대 출신 2루수로 1학년 때부터 4년간 주전으로 뛰었다. 체격(177cm 73kg)이 크지 않지만 꾸준히 활약했다는 점이 좋은 평을 받았다. 작년엔 3할 5푼대의 고타율을 기록했으나 올해는 극심한 타격 부진이 미지명의 결과로 이어졌다.
올해 입단한 연습생 중 단연 돋보이는 행보를 펼친 넥센 허정협 선수
# 넥센 박승주, 박근만, 김진건, 이동건, 김종덕, 김태완, 박경택, 조민성
넥센은 2년 연속 가장 많은 대졸 연습생을 확보했다. 달라진 점을 꼽자면 작년엔 7명 중 6명을 야수자원으로 꾸렸으나 올해는 투수와 포수를 나란히 3명씩 데려갔다는 점이다.
작년에 입단한 대졸 연습생 7명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행보를 보인 건 허정협(외야수)이다. 퓨처스리그에서 올 시즌 19개의 홈런을 쏘아 올리며 한동민(상무.21개)에 이어 홈런 2위에 올랐다. 디지털서울문예대 시절 이미 군 문제를 해결한 터라 기대감이 더 드높다.
올해 넥센이 선택한 8명 가운데 우수한 체격조건을 갖춘 김진건.박근만 이 주목을 끌고 있다.
김진건은 공주고 시절 1루수로 활약했으나 홍익대 진학 후 권유로 투수로 전향한 좌완. 185cm 88kg으로 최고구속은 143km/h까지 나왔다. 다만 경험 부족과 제구와 밸런스가 불안한 편. 스스로 혹독한 훈련을 통해 실력을 키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강한 의욕을 드러냈다.
“(김)재영이가 워낙 잘 던져줘서 우승도 하고 좋았죠. 솔직히 지명은 기대할 수 없었죠. 이렇게 가게 돼서 정말 너무 기쁘고 감사해요. 많이 던지지 않아 어깨만큼은 싱싱하거든요. 어깨 빠져라 던져 보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해외파는 11월 이전 미리 합류가 가능하다.그래서 박근만도 일찌감치 화성 2군 선수단에서 생활하고 있다.
박근만은 부산이 고향인 우완투수로 일본에서 고교 - 대학을 나와 지난 8월 초 정수민, 이케빈, 남태혁 등과 나란히 해외파 트라이아웃에 참가한 바 있다.
“외국에서 5년 이상 거주한 경우는 2년간 국내 리그에서 뛸 수 없다고 하기에 그 기간 공익근무를 하며 입단 준비를 했었죠. 투수. 타자 다 자신 있는데 그래도 투수 쪽에 미련이 남아 투수 하기로 정했어요.”
183cm 100kg의 육중한 체격조건으로 구속도 140대 중반으로 빠르다. 다만 투타를 겸업한 탓에 마운드에서 긴 이닝을 던져 보지 않았다는 점이 풀어야 할 숙제. 현재 그는 화성2군 선수단에 조기 합류 체중 조절과 체력을 끌어올리는데 집중하고 있다.
“지명 기대하고 테스트까지 참가했었는데.. 좀 부족해 보였나 봐요. 여기서 착실히 하나하나 배워 투수로 꼭 성공할래요. 지켜봐 주세요.”
넥센 마운드의 새로운 활력소가 될 이동건 포수
심동섭 - 유창식과 호흡을 맞추며 광주일고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이동건(인하대.포수)는 여느 선수들과 다른 조건 하에 연습생 계약이 체결됐다. 넥센 구단은 체격이 왜소해 선수로는 부적격하다고 판단, 고교시절 투수들을 편하게 이끌어 최고의 구위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했던 점을 높게 사 젊은 투수 훈련의 도움을 줄 불펜포수로 뽑은 것이다.
“야구를 했다고 꼭 선수로 성공해야 하는 건 아니죠. 저도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그것도 좋은 대안이 될 것 같아 뜻에 따르기로 했어요 팀이 필요한 조력자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모르죠. 잘하면 선수로도 등록 될 수도 있고. 제 선택이 최선이라고 믿을래요.”
# NC 문성용, 이민준, 도태훈
신생팀 우선지명, 특별 지명 등으로 젊은 선수들을 다량 보유할 수 있었던 NC는 지난해 연습생을 고졸 몇 명만 뽑았을 뿐 대학선수는 받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는 무려(?)3명을 영입했다.
“다섯 구단에서 동시에 연락이 오더군요. 그럴 거면 지명 좀 해주지. (문)성용이에게 상황이 이런데 어디 가고 싶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NC 가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러라고 했죠.”
차동철(건국대)감독은 지명행사 직후 휴대폰이 불이 났다며 호탕하게 웃었지만 얼굴엔 씁쓸함이 완연했다. 문성용은 광주 유니버시아드 대회 태극마크를 달았던 포수. 대회 당시 컨디션 난조로 마스크를 김융(성균관대.삼성9라운드지명)에게 넘겨주고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차동철 감독은 이 대목이 못내 아쉽다.
“제가 못해서 벌어진 일이니 어쩔 수 없죠. 그래도 하위순번이라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했었는데.... 이제 시간도 많이 흘렀고 다 잊었어요. 가서 잘 해야죠.”
185cm 93kg이라는 다부진 체격조건을 지닌 문성용은 투수의 맘을 헤아리고 편하게 해 주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대신 2루 송구나 포구 능력은 좀 더 가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다. 타격은 기복이 좀 있는 편이다.
(왼쪽부터) 이민준 - 문성용 - 도태훈
사이드암 이민준도 공룡팀 일원이 됐다. 올 시즌 초반까지만 해도 그의 이름 석 자는 스카우트 지명 후보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구속이 떨어지고 제구까지 흔들리는 등 과거의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총체적인 난국 그 자체였다. 그래도 나쁘지 않은 체격조건(184cm.86kg)에 걸맞게 파워를 강화시켜 볼 구위와 구속을 끌어 올린다면 충분히 제 2의 박진우 혹은 최금강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 NC 스카우트들의 시각이다.
최금강, 강장산. 박진우. 이들의 공통점은 연습생으로 NC에 입단, 정식선수로 등록 되어 불펜의 요긴한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남모를 노력과 땀의 결실이라 하겠다. 이민준에게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민호(NC.우완)와 고교동기 도태훈(동의대)도 고향 팀 옆집 NC 입단이 결정됐다. 184cm85kg 우투좌타 도태훈은 부산고 시절 중장거리 타자로 스카우트로부터 눈도장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동의대 진학 후 성장세가 주춤했다. 3루수로서 두드러진 장점을 보여주지 못한 점이 아쉽다.
“올해 대학선수를 많이 뽑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가 있어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막상 이름이 불리지 않으니까 앞이 막막하더군요. 고등학교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이요. 그래도 다행이다 싶어요. 야구를 관둔 애들도 많거든요. 마지막 기회다 여기고 죽기 살기로 할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