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暴雨)
地獄烏雲滿天蓋(지옥오운만천개)-지옥 같은 먹구름 하늘 가득 덮어놓고
罪者覺醒頭上雷(죄자각성두상뢰)-죄지은 놈 정신 차리라는 듯 머리위에 큰 뇌성
兩水黑風江倒立(양수흑풍강도립)-양수리(兩水里) 검은 바람에 한강물 곤두서고
八堂怒濤如魔舌(팔당노도여마설)-팔당댐(八堂堰) 성난 물결 악귀의 혓바닥 같네
天心廣深無價心(천심광심무가심)-하늘은 넓고 깊어 댓가없는 어진 마음이라
旱時給雨結實光(한시급우결실광)-날가믈면 비주고 만물의 결실 햇빛 주는데
人間地球氣汚病(인간지구기오병)-인간은 지구를 대기오염으로 병들게 하고
銀河晴天導彈孔(은하청천도탄공)-은하수 맑은 하늘 미사일로 구멍 내면서
人間自滅業罪路(인간자멸업죄로)-인간 스스로가 멸망의 길을 닦고 있으니
天地造罪何處恕(천지조죄하처서)-하늘과 땅에 지은 죄를 어디서 용서 받을까
농월(弄月)
뇌성벽력 폭우에 벼락 맞을까 떠는 놈 없는가?
지금 밖에는 우산이 뚫어질 정도로 세찬비가 내리고 있다.
TV에서는 남부지방 호우(豪雨) 경보가 브라운관을 꽉 채우고 있다.
필자가 사는 이곳 북한산 아래에도 굵은 빗줄기가 쏟아져 우산아래 비옷과
고무신을 신고 빗속을 걸어 보았다.
필자는 카페에 글을 쓸 때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생각한다.
약 40년 전 어떤 글에서 읽었는데
“노인과 바다를 형용사가 풍부한 한글로 썼으면 더 재미가 있었을 것을---”
이라는 내용이었다.
헤밍웨이가 종군기자여서 “노인과 바다”에 형용사를 많이 사용 안하고
일부러 담백하고 간결하게 썼는지 모르지만----
우리나라는 사계절 기후라 천혜(天惠)로 다양한 기후 현상과 같이 산다.
계절에 따른 정서(情緖)와 감정(感情)이 카멜레온 몸색처럼 따라 변한다.
이렇게 감정에 풍부한 영양을 공급받는 환경에 살면서 세계적인 문학가가 없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필자는 노벨문학상을 탄 일본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雪國)”
을 읽고 “이정도의 글은 우리나라에서 충분히 나올 수 있는데---”
(필자가 문학인이 아니라서 이런 말을 하는지는 몰라도--)
하는 안타까움이다.
우리 문자는 한자(漢字)의 뜻글과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에 일상(日常)의
언어 속이나 시문학(詩文學)에서 한자(漢字)의 뜻 영향을 피할 수 없다.
한글의 소리와 한자의 뜻이 합쳐져 다양한 형용사가 표현되고 있다.
예를 들어
모(母)-갑골문자 해석에서 “어미모(母)”는 유방(乳房)이 두 개 있는 여자란 뜻의
한자(漢字)다. 사각형 안에 있는 아래 위 두 점(点)을 말한다.
매(妹)-계집여(女+아닐미(未)=아직 철들지 않은 여자다
가(嫁)-다른 집(家)으로 시집간 여자다. 출가(出嫁).
고(姑)-오래된 묵은(古)여자라는 뜻이다. 아버지의 여 형제로 오래도록 본 여자다.
기(妓)-재주를 가진 여자로 기생을 뜻한다.
비(雨)를 뜻하는 “우(雨)”부수의 글자만 보아도 어느 정도의 비인지 알 수 있다.
비(霏)-비인지 안개인지 분간을 못할 정도의 비
삽(翣)-게으름피우기 좋을 만하고 여자 친구나 첩(妾)생각나기 좋을만한 비
목(霂)-맞으면 옷 속에 스며 흐를(沐)정도의 비다
임(霖)-마치 숲(林)속의 나무들과 대나무처럼 주룩 주룩 내리는 장대비다.
패(霈)-한강물이 범람하듯 쏟아지는 억수 비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시베리아의 냉기류(冷氣流)와 남태평야의 열기류(熱氣流)가 오다가다
마주치는 지역에 자리한 한반도인지라 비가 여름철에 많다.
자연히 비에 대한 문화(文化)가 발달할 수 있는 지리적 환경이다.
우리국민이 예사로 생각해서 그렇지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비에 대한 과학이 역사적으로 발달하여 왔다.
비가 내린 량을 측정하는 측우(測雨)기록이 세밀하고 과학적인 것은 세계가 알고
있다.
조선조의 비 내린 량을 기록한 측우(測雨) 기록인 “풍운기(風雲記)”에 비가 내리는
강우세(降雨勢)의 강약(强弱)까지 8단계로 구분해서 기록하고 있다.
비내리는 종류는 아래와 같다
미우(微雨)-보슬보슬 내리는 이슬비
세우(細雨)-가늘게 내리는 가랑비
소우(小雨)-량이 조금 내리는 비
하우(下雨)-우하득다(雨下得多)로 조금 많이 내린 비
쇄우(灑雨)-부슬부슬 내리는 비다
취우(驟雨)-소나기를 말한다. 날이 말짱하다가 별안간 쏟아지는 비
대우(大雨)-많은 량의 큰비 호우(豪雨)라고 한다(호우 주의보)
폭우(暴雨)-갑자기 많이 쏟아지는 비
뿐만이 아니다.
각 도(道)로 하여금 비가 땅속 얼마만큼 스몄는가 하는 우택도(雨澤渡)까지
측정하여 농정(農政)을 베풀도록 했고, 홍수에 대비하여 강물마다 수표(手標)를
세워 수심을 측정하고 폭우가 내리면 강물의 유속(流速)을 재어 봉화대(烽火臺)로 그 속도를 연락해줌으로써 하류지역에서 홍수에 대비케까지 했던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장충단공원에 보존하고 있는 청계천 수표교(水標橋)다.
또한 비의 고마움과 비의 두려움을 다른 어느 나라보다 절감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신라 때부터 비신(雨神)을 모시는 산천단(山川壇)을 팔도의 명산(名山)과 이름 있는
강(江)가에 짓고 임금과 말단 고을 원님까지 제사를 지냄으로써 하늘에 순종했다.
조선 영조(英祖)의 명(命)으로 홍봉한(洪鳳漢) 등이 쓴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의 기록에는 사상(史上) 가장 컸던 비 피해는 신라
진평왕 때에 3만 3백60호가 부서졌고,
1천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홍수라 기록되어 있다.
고려 명종 16년의 안변(安邊)의 홍수(洪水)다.
조선 영조(英祖) 5년의 관북(關北)홍수다.
큰 홍수가 있을 때마다 임금이나 해당 감사나 현감은 입고 먹는 것을 절제하고
백성의 세금을 감(減)하였다.
통치자는 딱딱한 목침(木枕)을 베고 누더기 이불을 덮고 잠으로써 백성을 위해
정치를 잘못한 부덕(不德)을 하늘에 자책했던 것이다.
이런 것을 지금 정치하는 집권층이 옛일로 넘겨버릴 일이 아니다.
망원동에서 세종대왕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비가 내리니 백성이 농사를 짓게 되어 기쁘다”면서 “희우정(喜雨亭)” 정자이름을
지었다.
대통령은 국민을 위하는 마음이 있다면
“희우정(喜雨亭)”을 복원할 생각은 없는가?
비오는 날 떠오르는 생각이다.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