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2:1~4)."
위 스캔 이미지는 토착왜구 섬소년이 행2:4의 <다른 방언>에 대한 해석 근거로 행2:8~11에서 15개 지역의 실제 지방언어로 제자들의 말을 알아들었음을 들고그렇기 때문에 오순절날 제자들에게 임한 <다른 방언>은 <외국어>다!이렇게 주장하고 있는 중입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
어떤 사건의 진실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어느 한 쪽에 치우친 관점으로만 살펴 볼 것이 아니라
다양한 측면에서 증거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한 의미를 찾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경신학적 관점에 성령의 방언, <다른 방언>을 제한하기 위해서
본인 보고싶은 것과 듣고 싶은 것만 취사선택하여
마치 이것이 말씀의 의미인 양 한다는 점입니다.
오늘은 그런 편협적이고 인본주의적인 해석 방법을 박살을 내고
신경신학의 저질적 육체적 한계를 깨부숴 보겠습니다.
2. 성경이 기록된 방식에 대한 몇가지 예시
① 하나님이 창조하신 지구가 평평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온 우주를 지구를 중심으로 창조하시고,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붙이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고하되 이스라엘 목전에서 가로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찌어다 하매
태양이 머물고 달이 그치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도록 하였느니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기를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 하지 아니하였느냐(수10:12~13)."
지구도 평평하게 창조하신 것처럼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찌니라
누가 그 도량을 정하였었는지, 누가 그 준승을 그 위에 띄웠었는지 네가 아느냐
그 주초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이 돌은 누가 놓았었느냐(욥38:4~6)."
그러나 사실은 지구는 우주의 한 변방에 있으며,
둥근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신 걸까요?
신경신학적 관점에서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라고 주장하는 꼴입니다.
② 뱀이 입을 열어 사람 말을 하고, 나귀가 입을 열어 사람 말을 할까요?
성경은 발람이 타고 가던 나귀가 입을 벌려 사람의 말을 했다고 기록을 합니다.
"자기의 불법을 인하여 책망을 받되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것을 금지하였느니라(벧후2:16)."
베드로 사도가 말씀하신 것은 민수기 22장의 사건을 말씀하신 것인데,
민수기22장 28절에서는 이렇게 기록을 합니다.
"여호와께서 나귀 입을 여시니 발람에게 이르되 내가 네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번을 때리느뇨(민22:28)."
하나님이 나귀 입을 여시니 나귀가 발람에게 말을 한 것처럼 묘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이를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했다"라고 적은 것입니다.
그런데 민수기 22장을 보면 다른 장면도 나옵니다.
바로 발람이 나귀에게 말을 하고,
나귀가 이를 알아듣고 이해하여
다시 발람에게 대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귀가 발람의 말을 듣는 것은
하나님이 나귀의 귀를 열어 주셨기 때문일까요?
나귀가 발람의 말을 듣고 이해하는 것은
하나님이 나귀의 뇌를 열어 주셨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발람이 나귀의 말을 했다는 것일까요?
그런 기사는 왜 없을까요?
창세기를 보면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했던 뱀이 하와에게 말을 합니다.
그러면 창세 때 뱀은 사람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아니면 하와가 뱀의 말을 했을까요?
③ 생각하기
자~!
우리는 발람의 나귀와 하와에게 말을 했던 두 동물이 말한 것의 공통점과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나귀와 뱀은 사람 말을 할 수 없는 피조물입니다.
이것은 팩트입니다.
둘째, 그런데 이 두 동물이 동일하게 사람과 말을 했다고 성경은 기록을 합니다.
나귀는 하나님이 그 입을 여셔서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말을 했고,
뱀은 사탄의 말을 하와에게 했습니다.
즉 두 피조물 다 영적 존재의 말을 전하는 매질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귀는 하나님께 쓰임 받았고,
뱀은 사탄에게 쓰임을 받은 것입니다.
발람이 느끼기에는 나귀가 사람 말을 하고,
하와가 느끼기에는 뱀이 사람 말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을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기자는 발람과 하와의 입장에서 기록할 수 밖에 없으므로
그 인지한 바대로 기록을 했습니다.
만약 그 때 제3자가 그 상황을 진술해 주었더라면,
아마 기록이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뱀의 소리와 나귀의 소리 같은 육체적인 현상에 대해서도 기록이 되었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④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성경에는 그 영적인 현상과 육체적인 현상 두 가지 모두를 기록한 증거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오순절 날 성령강림 사건입니다.
성령이 강림하시자 제자들은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을 말했고,
<경건한 유대인들>은 그 방언의 내용을 영으로 알아 들었으며,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은 입술의 발성만 듣고 낮술에 취했다고 조롱을 했다고 기록을 합니다.
오순절 날 영으로 하나님께 하나님의 큰 일을 아뢨던 제자들과
같은 성령 안에서 영으로 이 것을 들은 경건한 유대인들이
방언이 끝난 후 함께 대화를 했다면,
제자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큰 일을 <사람 말로 말했다> 할 것이고,
경건한 유대인들은 너희가 하나님의 큰 일을 <사람 말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할 것입니다.
여기서 끝나면 성경은 제자들이 사람 말로 하나님께 하나님의 큰 일을 말했다라고 기록을 할 것이고,
경건한 유대인들은 제자들이 각국 자기 나라 말로 하나님께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한 것을 들었다라고 기록을 하는 것으로 끝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서두에 말씀드린 토착왜구 섬소년의 주장은 그 타당성을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토착왜구 섬소년이 야바위꾼마냥 살짝 숨긴 기록이 있습니다.
성령 강림 사건이 일어난 바로 그 자리에 경건한 유대인들과 함께 있었던
성령받지 못했던 토착왜구 섬소년같은 무리들의 증언입니다.
그 무리들이 증거하는 말은 <경건한 유대인들>이 증거한 말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또 어떤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행2:13)."
다른 점을 눈치 채셨나요?
<경건한 유대인들>은 제자들이 하는 말을 듣고 각기 우거하는 자기 지방 말로 알아들었고,
<그 밖의 다른 무리들>은 "너희는 낮술에 취해 주절거리는 소리를 해댔다. 너희들은 미쳤다!"라고 말했다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 밖의 다른 무리들>도 15개 각 지방에서 올라온 자들도 있고,
성전에서 장사하는 <유대인>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다른 방언>이 실제적인 외국어였다면 그들이 제자들의 방언을 사람 말로 알아듣지 못할 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경신학이 주장하는 바,
마치 지구평평설을 말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주장이라는 것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3. 결론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 기록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 말씀을 듣는 자가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수준과 방법으로 말씀을 하셨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어떤 객관적인 사실을 밝히고 창조 원리를 설명하는 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사람이 가장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듣는 사람의 눈높이 맞춰서 기록해 주신 것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지어지고 어떤 원리로 작동이 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고 무엇을 목적으로 말씀을 주시느냐 하는 것이 중요 문제입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객관적인 현상이나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밝혀보려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지구가 평평한 것처럼 말씀이 되어졌다고
진짜로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발람의 나귀가 사람의 말을 한 것처럼 기록되어 졌다고
진짜로 나귀가 사람의 말을 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입니다.
정말 이렇게 밖에 설명이 안되는 인간의 언어의 한계를 실감하여야 할 것입니다.
영의 말은 언어도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뜻이 온 만물에 퍼지는 신령한 언어인데,
이를 소리와 단어로 표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사람의 언어는 구음이고, 음절이 있어서
사람의 신경 정신적 내용을 그대로 담아내기도 벅찬데,
하물며 하나님의 <다른 언어>를 사람의 언어, 외국어로 담아낸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 <다른 언어>가 바로 사람의 구음의 언어인 외국어와 전혀 다른 새로운 언어라는 것이고,
베드로는 그 현상이 바로 요엘서로 예언된 말세에 부어주시기로 작정되신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면 일어날 일이었음을 증거하시는 것입니다.
"때가 제 삼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하였느니라(행2:15~21)."
그러므로 육체의 한계를 인정하고 기록된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성령의 조명하심을 받아 그 뜻하신 바 바른 의미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첫댓글 에라이 뿌리깊은 골수영지버섯 먹고 헛소리하는 구라짱아
제자들이 영의 언어로 말하고
청중이 영의 귀가 열렸다고 해석하는 것이야말로 너만의 구라세계에서 통용되는 사고방식이야.
glossa가 뜻하는 것은 영의 언어가 아니라 인간의 언어요 지역에 한정되는 지역언어라는 뜻이야.
외국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알아듣지 못할 소리로 지껄인다"고 한 것 자체가 내면적인 영으로 들린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성경 자체가 증언하는 것이다.
사도행전 2장을 그런식으로 이해하는 인간은 성령 강림의 역사성 자체를 부인하는 영지주의적 오류야.
바벨탑에서 언어를 혼잡케 하여 흩으신 하나님께서 오순절 성령감림으로 회복하고 통일하는 구속사적 의미를 왜 부인하는 것이냐.
구라질 하느라고 머리 쓰며 횡설수설 할 시간에 영지주의적 해석방식에 회개부터 해라.
'글롯사(Glōssa) = 생물학적인 혀에서 출발하여, 혀로 구사하는 '사람의 말', '언어', '특정 민족의 사투리나 국언'을 뜻하는 객관적 명사로 고대 그리스어 문헌에서 광범위하게 쓰였다.
우리가 외국어 단어장으로 쓰는 글로설러리: 용어집이 바로 글롯사야.
글롯사는 영혼의 언어가 아니라 어원적으로 분명히 광범위하게 흔히 쓰인 객관적 명사야.
그럼 영의 언어인 <새 방언(막16:17)>도 인간의 언어요 지역에 한정되는 지역언어라는 뜻입니까?
<카이노스 글롯사>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말의 뜻은 인간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최대치가
<이전의 인간적인 언어와는 다른 질적으로 전혀 새로운 언어>라는 뜻으로
인간의 언어가 아니라고 가르치고 있는데,
그 언어가 다시 인간의 언어여야 하는 이유와 근거는 뭡니까?
인간의 언어가 혼잡케 되었으니 하나의 영의 언어로 통일하는 구속사적 의미를
부정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새 날이 되면 각기 자기언어로 말하되 다 알아듣게 되는 것입니까?
아니면 원래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나누던 영의 언어로 말하지 않아도 의사가 전달되는 그런 언어이겠습니까?
하나님나라♥탐구님도 저 토착왜구 섬소년처럼 신경신학주의자입니까???
@crystal sea 어허 그건 너님의 생각이야.
이봐라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려면 가장 어려운 벽이 뭔줄아냐?
바로 언어의 벽이야.
예수를 모르는 사람이 영의 언어를 내면적으로 알아듣는다고?
너의 그 가정 자체가 틀린거야.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도 못하고, 영접도 못한 사람이 어떻게 영이 열리냐?
이것도 예정론 기적이냐?
바로 그 언어적 벽을 허물게도 하고 세우기도 하시는 것이 하나님 아니시냐?
복음 그 자체를 모르는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예수를 증거하게 하기 위해서 듣는 사람의 나라말 즉,방언을 통하여 복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주신거라고 이 빙구야
좀 합리적인 선에서 성경을 받아들여라
합리적 이성의 뜻은 알지?
@하나님나라♥탐구
에이고~! 이 한심한 사람아~!
우리가 지금 믿는 자들에게 임하는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나누고 있는데,
뭔 믿지 않는 자들의 전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나요?
하나님은 당장에라도 구원받기로 예정하신 자들을 구원하실 수 있으시나
그들을 구원하시는 방법으로 전도의 미련한 방법을 정하셨으니(고전1:21),
사람이 사람의 언어로 그리스도 예수님의 구원자 되심을 선포하게 하시고
선포된 말씀을 믿어 구원에 이른 자에게 성령의 임함이 있게 되는데,
성령을 받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은사 중 하나가 바로 영의 언어인 방언인 것입니다.
도대체가 뒤죽박죽 잘난체 하느라 수고가 많으십니다만은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며
식언하시는 하나님도 아니시며
사람이 좌지우지하실 수 있는 분도 아니시라는 것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방언이 전도의 방편으로 주시는 사람의 언어라고 생각했다면
틀렸습니다.
성령의 방언은 믿는 자가 하나님께 아뢰므로 이를 알아들을 자가 없어 비밀이 되는 영의 언어를 말하는 것이지
믿지 않는 자에게 들려주는 외국어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전도는 애써서 외국어를 배워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선포케 하는 미련한 방법인 것입니다.
저는 1992년 3주 전도학교에서 제 곁의 형제가 성령세례를 받고 중국어 방언의 은사를 받은 것을 직접 보았습니다. (공과대학생이라 중국어는 전혀 못하는 친구였는데 갑자기 중국어로 복음을 전하고 중국어로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제가 몽골 초원에서 말도 타고 복음도 전하는 환상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2년 후, 1994년 김일성이 죽고 3일 후, 저는 몽골전도여행을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그 예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2011년에는 한 사모님이 영어방언의 은사를 받는 것을 직접 보았습니다. (이분도 공대출신 사모님이십니다) 그런데 성령세례를 받으시고 1시간 동안 영어로 기도하는 것을 직접 보았습니다. 물론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도 있지요. 그래서 통역의 은사도 주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형제님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주를 경외함으로 말씀드립니다.
성경적 방언은 영의 언어로써 사람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어서 비밀이 되는 언어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통변의 은사가 필요합니다.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발성되어 통역이 필요없는 것은 성경의 방언이 아니고 빙의 또는 입신(?)입니다.
귀중한 방언 사례군요
분명한 언어체계로 복음을 전달하여 예수를 증거하는 일은 합리적 이성에 위배되지도 않고, 인격을 사용하여 성령께서 역사 하시는 지극히 상식적인 범주입니다.
초월적 경륜을 경험하는것은 은혜로운 일이지만
이상한 신비체험 자체를 쫓는 일은 곧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귀한 댓글에 박수!
@하나님나라♥탐구
하나님나람♥탐구님
성령의 방언이 전도의 방편으로 주시는 은사라는 근거 구절을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아무리 사도 바울께 여쭤봐도 사도 바울께서 알려주시는 것은
성령의 방언은 믿지 않는 자들의 표적이라 하시며,
성령의 방언은 통역이 되지 아니하면 이를 알아들을 자가 없어 서로에게 야만이 될 뿐이라 하시는군요!
그러시면서 방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수가 없어서
듣는 이들에게 믿음을 가지게 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방언은 전도의 도구가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방언으로는 전도를 할 수도 없다고 하시는데,
하나님나라♥탐구님은 방언이 전도의 방편이라 하시니
말씀의 어떤 근거를 가지고 있는 듯 합니다.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거짓이면 버리시구요!
@crystal sea 시끄러!
@하나님나라♥탐구
대답 못혀?
@crystal sea 실제로 선교현장에서는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성령의 역사가 벌어집니다. 그리고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발성되어 통역이 필요없는 것은 성경의 방언이 아니고 빙의 또는 입신(?)입니다.' 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쩌나요? 실제로 선교현장에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복음을 들은 사람이 변화되고, 선교지의 무당과 영적 전쟁에서 주께서 그렇게 역사하시고 있답니다. 우리의 지식과 경험으로 하나님을 제한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coramdeo
누가 그것을 부정하나요?
나도 꿈으로 예언을 받았고 예수님을 만났고 그대로 이루어 지는 것을 체험한 사람인데 그걸 모를 리가 있겠어요?
그러나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은
성령의 방언을 나누고 있잖습니까?
귀신이 무당에게 빙의하여 사람의 입술을 어거하여 죽은 사람이 직접 말을 하는 것처럼 하는
"빙의" 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하나님께 아뢰므로 이를 알아들을 자가 없어서 비밀이 되는 방언"에 대해서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에 정의되어 있는 성령의 은사로써 방언에 대해서 말하는데,
자꾸 방언을 외적인 입술의 발성에 관점을 맞추는 빙의현상처럼 설명하는 것이 과연 가한 일이냐?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