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적산 아리랑
오메
저 산이 걸어오네
솔개재에서 놀던 여인들이 북산 망적봉우리 손짓했단다
달떠온다 달떠온다
오늘 갈지 낼갈지 모르는 세상
저 진도아리랑 징한 사랑
모든 사라지는 것들에 바치는
매김소리가 왜 해마다 늘어나는지
해창언덕 해신당느티나무에 물어보게
소포만 대흥포 뛰쳐나와
지 흥에 미쳐 겨울을 나는 숭어떼같이 개
옹을 차고 오르던 너내리 청년들이
담쟁이 푸른잎사귀로 달라붙었던
진도도호부 진도읍성 그날 밤
보국안민 약무옥주 달빛마람 두른 사내들
입에 낫을 물고
니가 심고 내가심 타는 호박넝쿨
망적산 관방 담장 넘어갔다네
오메오메
산이 산을 부르고
소나무가 소나무를 부르던 을미년에
박중진부대 산너머 몰려오자
아리아리랑
서리서리랑이 호박넝쿨 젖가슴
구음살풀이 승천고랑에서
고막뫼 떠오르자
솔개재 오바 큰년 장가 아짐네들이
저 산이 염장으로 걸어가네
일심으로 손목이 끊어져도 나는 못놓겠네
저 달이 수리봉에 떴다지도록
오메오메 했다더라.
아리아리랑 서리서리랑 아라리가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신축년 8월29일
흰소를 찾아가는 시절 속의 신우대
박남인은 쓰다
진도아리랑은 다시래기꾼들의 새벽을 위한 노래다. ‘청천하늘’에 아무리 잔별이 많다해도 집에갈 생각이 없는 큰애기들.
왜구들이 굴포리 보전 갯벌, 장구포, 창포리 들물따라 들어오던 시절의 철마산 망적산 아리랑을 부른다. 에브네 선상족. 임진왜란때 이들은 바다길잡이 역할을 했다. 수역 전두 수유리 월평 내산월. 일부는 80년 이전까지 군내면이었다. 염장 장구포는 임회면 소속이었다.
오메 저 망적산 아래 달이 뜨면 가고시마 오도열도 오메 저 산이 걸어오네.
솔개재에서 밤이 새도록 놀던 여인들이 북산 망적봉우리 손짓했단다. “달떠온다달떠온다” 오늘 갈지 낼갈지 모르는 세상 허리춤에 칭칭 감고 ‘놀다가세 놀다가세’
진도아리랑 매김소리가 왜 해마다 늘어나는지 해창언덕 해신당 느티나무에 물어보게. 망적산에는 마제(馬祭)를 올리던 마제단이 있었다 한다. 비단같은 말들이 달리던 목장마을 건장한 목동들도 간재미처럼 납작 엎드려 서촌바다 닻배를 타러 갔을까.
소포만 대흥포 걸군농악하는 병철이가 지 흥에 미쳐 겨울나는 숭어떼같이 개옹을 차고 오르던 신흥 매향리 너내리 청년들이 담쟁이 푸른잎사귀로 달라붙었던 도호부 진도읍성에 달라붙던 무장(無腸)공자 뻘기들. 나도 서해부 수술하고 무장거사가 되었다. 구곡간장 아픔도 잘랐다.
그날 밤 밧줄을 든 동학개미, 화랑기 보국안민 약무옥주 달빛마람 두르고 감물중우바지 갈옷 입은 모심기하던 사내들. 죽어서도 어차피 한 세상. 모든 게 다시래기다. 아리랑은 돌고 도는 노래다.
저 달도 꽉 다문 침묵이 쌓인 읍성담헐. 입에 낫을 물고 남천교 놀다 사직단에 절하고 니가 심고 가심 타는 호박넝쿨로 타는 세상
망적산 관방 담장 넘어갔다네 오메오메 이 산이 저 산을 부르고 솔개재 푸른 모가지 어쩌란 것이냐 소나무가 소나무를 부르던 을미년. 1894년 12월 말 진도읍성은 동학교도, 동학군으로부터 다시 수성군에게 탈환되어 수 백명이 살해되었다. 그러나 누구에게 어떻게 살해되었는지 그 구체적인 학살 과정에 대해서는 전혀 밝혀내지 못했다. 단지 1906년 4월 목포의 하급 농업관리 사토마사지로가 직접 삿포로농업학교로 보내줘 그해 9월 20일 경 면화재배생황 조사 ‘시찰’을 하였다.
“명치 27년(1894년) 한국동학다우 봉기. 진도는 그들이 가장 창궐했던 곳이었는데, 그들을 평정하고 돌아올 무렵에 그 수창자 수백 명을 죽여서 시체가 길을 가로막고 있을 정도였다. 수괴자는 효수하였는데 이 촉루는 그 가운데 하나로 그 섬을 시찰할 때 채집한 것이다.(좌등정차랑. 박맹수 정리)(삿포로 농학교)제 9기 졸업생.( 94년 7월 박중진은 수성군에 잡혀 처형되어있었다.) 12월 26일 23,000여 명의 농민군은 해남에서 진도와 제주도로 도망치게 된다. 26일(95년1월 21일) 그곳에서 수 백명이 살해당했다.(매일신문 95년 8월 3일자 조간.)
홋카이도(당시 삿포로)대학 인류학과 지하실 6구의 유골 중 하나가 진도에서 채집된 두개골. 박맹수 유학생(현재 원광대학 총장)이 진도를 찾아왔다. 나는 읍 일학식당에서 박주언 선생과 함게 만났다. 진도 송현. 박중진부대 호남 서남해안에서 배를 타고 내려와 산너머(산월리)에 오자 아리아리랑 서리서리랑이 젖가슴 구음살풀이로 승천고랑에서 망적산 물 흘러 고막뫼 떠오르자 진도읍과 서촌 사이에 있는 고개 솔개재 오바 큰년 장가 아짐네들이 ”저 산이 걸어가네소리치며 “일심으로 손목이 끊어져도 나는 못놓겠네 저 달이 수리봉에 떴다지도록 오메오메 했다더라.-신축년 8월29일 흰소를 찾아가는 시절 속의 신우대 박남인은 쓰다
아리아리랑 서리서리랑 아라리가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내 Galaxy에서 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