짊어진 짐 부려놓듯 시집을 묶는다.
지금 오랜만에 맨몸의 시간이다.
홀가분하면서도 허술한 구석이 보여 개운하지 않다.
하지만 그마저도 툭 털어낸 맨몸이다.
- <시인의 말>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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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사람 같다/ 이광
신명은 어찌 못 해 산에 들에 죄다 풀고
부아가 치밀 때면 회오리 들이민다
사람이 그리운 날은 애먼 창만 두드린다
때로는 갈 데 없는 떠돌이로 터벅댄다
너 떠나 텅 빈 길을 구르는 가랑잎이
바람의 발꿈치인 양 가다 서고 가다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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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빙/ 이광
개울도 흐르다가 발 시릴 때가 온다
다시 올 봄은 멀어 지그시 눈 감으면
안으로 스미는 냉기
물살 차츰 굳어간다
사뿐히 밟고 오는 발소리에 가슴 뛴다
세상일 잠시 잊고
저 아래 길을 둔 채
못 가네, 사랑 없이는
꿈을 꾸는 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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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 이광
달그락 문을 열던 기억마저 잠가둔 채
서랍장 구석에서 은신 중인 열쇠 하나
현관에 쓰던 것일까 손에 잠시 맡겨본다
번호키로 바뀌면서 주저앉은 열쇠처럼
세상의 문에 맞춰 깎아내고 다듬던 꿈
주머니 찔러 넣은 채
고개 숙인 젊은이들
내게도 열쇠 없어
헤매던 날 있었네
문 앞에서 돌아서던 바람 찬 날 있었네
사람이 열쇠인 것을 깨친 날이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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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그림자/ 이광
늦은 밤
둥그런 달
환하니 외려 섧다
너 혹시
혼자라고
외로움 타는 거냐
여길 봐
지상의 귀갓길
너와 함께 가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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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잠자리/ 이광
팽목항 기사 담긴 신문지 덮어쓰고
지하도 한편에서 잠 못 드는 한 사내
이거 원
날도 따시고
술도 한잔 걸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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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새로운 교감
이광 시집/ 바람이 사람 같다/ 책만드는집/ 2018
바보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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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9.25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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