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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달러와 금 관련 경제소식들 원문보기 글쓴이: 리콜레토
십여 년 전에 메모해 놓은 거, 그냥 두서없이 올립니다.(연속적으로 몇 편 올리겠습니다.)
본 내용들은 기록된 자료들을 통하여, 과거 실제 사례를 적은 것이오니, 잘 참고하시고, 현 상황에 맞게 현명하게 해석하시고 잘 판단들 하시어, 다가올 극심한 혼란 시기를 지혜롭게 잘 헤쳐 나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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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퍼시 일반적인 것들 (실제 생활상을 중심으로)
하이퍼시 일반적인 과정
먼저 물가가 급등-->지폐를 갖고 있는 사람은 물건을 긁어 모으는 경쟁을 벌이게 됨-->대중들은 거의 극히 적은 양의 생필품 이상을 구입할 충분한 돈을 확보할 수 없다-->수입의 명목가치는 올랐지만, 급등하는 물가를 결코 따라잡지 못하게 됨므로 시간이 흐를수록, 돈은 더 부족하게 되고, 혹시나 있을 저축은 당연히 급속한 구매력 저하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막대한 액수의 돈을 굴릴 수 있는 자만이 급등하는 고가품들을 구할 수 있고, 그 물건들은 화폐가치가 하락하더라도 최소한, 가치를 보전하거나 그 이상의 구매력을 획득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일반 서민층은 담보자산의 추가담보에 의해서만 대부를 받을 수 있게 하여, 과도한 양의 지폐를 찍어내더라도 그것은 소수의 특권층에게만 유리한 상황이 됨.
●돈찍기의 진정한 목적: 아주 단기간의 부의 집중적인 이동(대중--->특권층)
.초기: 건전한 부의 탄생. 대상이 넓어짐-->그러나 역시 근본은 돈놀이 하는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된다는 사실.(물론, 이단계에서는 소위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도 생활이 어느정도 여유롭게 되는 중산층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은 사실)->일단 건전하게 보임. 교역의 확대현상.
ㆍ중기: 이제는 돈놀이 하고, 실물자산을 보유할수록 자산의 크기가 늘어남-->서서히 실질 구매력이 떨어지고, 빈부의 격차가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함
.말기: 급격한 돈찍기를 실시하면서, 느리고 오랜기간 동안 대중의 부를 은밀히 훔쳐갔던 부의 양보다, 더 많은 양의 부를 아주 짧은 기간에 노골적으로 탈취해 감-->결국 대중은 모든 것을 잃음.
---> 한마디로 신용화폐제도 자체가, 편의성이라는 이면 뒤에는, 대중들의 피와 땀을 수탈해 가는 근본적인 의도가 숨어 있는 듯함.
"인플레이션은 계획된 술책, 즉 권력의 중심에 있는 소수의 인물들이 권력을 확대하고 동시에 빠른 시간 안에 막대한 재산을 축적하기 위해 용이한 특수한 수단이라는 가능성도 믿지 않는다."-앤드루 덱스터화이트(프랑스의 불환지폐인플레이션저자)
.1865년 소비자 물가지수 102-->1914년말 100(뉴욕연방은행 소비자물가지수)--> 즉, 금.은본위등의 실물을 바탕으로 한 화폐제도 하에서는 장기간에 걸쳐 디플레 현상도 일어날 수 있었지만, 1913년 연준 창설이후에는 전과정이 과거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장기간에 걸쳐 인플레 현상을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음.
.인플레초기에는 으례 점진적인 물가상승에 편승한 기만적인 번영과 경제성장으로 나타남-->이같이 점진적인 관리 할 것으로 간주--->그러나 종국에는 재난을 몰고옴.
●인플레의 진행4단계(맥스샤피로의 인플레 세계사)
1.통화및 은행신용의 대대적인 팽창 2.재정적자의 발생과 누증 3.인플레에 대비한 현물확보경쟁(희귀우표수집부터 기업흡수까지) 4.권력가나 새도가에게로 급속한 부의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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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퍼시 실제 생활 예(1)
.1993년 유고슬라비아: 6천조% -내전중 전비조달, 조폐국 24시간 가동 -1년간 화폐개혁 20회
.1945년 헝가리: 4천조%
.1923년 바이마르공화국(독일): 220만%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의 실제 예(1923)
.한 여자가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집을 팔았다-->그러나 몇주 후 한 덩어리의 빵을 사기에도 충분하지 않았다.
어느 한 독일가계의 지출구성비의변천(1912~1923)
임대료 먹는것 전기.난방비 기타지출
1912~13 30.2 30.3 4.8 34.7 1913~14 27.1 30.7 6.8 35.4 1914~15 22.4 34.2 4.7 38.7 1915~16 21.4 42.5 4.4 32 1916~17 18.1 48.6 2.1 31.2 1917~18 17.7 42.7 5.5 34.1 1918~19 13.1 55.5 4.9 26.5 1919~20 6.8 58.1 11.6 23.5 1920~21 4.8 47.8 8.8 39.1 1921~22 2.3 59.3 10.8 27.6 1922.1분기 3.8 55.2 4.3 36.1 2분기 2.6 47.2 21.5 28.7 3분기 1.2 69.3 9.3 20.2 4분기 0.4 64.7 15.7 19.2 1923.1분기 0.5 53.6 13.1 32.7 2분기 4.6 35.7. 6.1 53.6 3분기 0.2 91.6 3.6 4.6
.독일 하이퍼시 어느것을 소비하는 지 보여주는 자료이다.
.상기자료에서 비중이 작아지는 것들은(특히,임대료)
돈이 없어서 지출을 못하는 경우로 해석.
.즉, 수입의 대부분이 시간이 흐를수록 먹는 것에 지출비중이 커짐을 볼 수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먹는 것이 비중을 차지하고, 결국 마지막에는 먹는 것 이외에는 지출을 할 수가 없다.
-->결국 하이퍼가 진행될수록 생존의 문제로 직결될 수 있음을 볼 수가 있음.
-->즉 임대료보다 음식의 가치가 훨씬 중요하고, 먹기 위해서 집을 팔아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라는 점이다.
-->이 말은 땅이나 집을 임대를 해서 벌어 들이는 것보다, 차라리 직접 농사를 짓고, 불필요한 집을 팔아서 하이퍼 생존에 필요하고, 자산의 가치를 보존할 수 있는 그 어떤 것 들(?)로 대체하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는 한 예라 할 수 있음.
*짐바브웨이 예(2000년대중후반)
.1트럭돈--1000억달러---계란3개
.원래 식량 수출국-->1990년대 초반 백인 소유농장 몰수-->무가베 본인과 친인척으로 분배-->농장관리 도외시-->농업기반 붕괴-->식량 수입국으로 변함.-->여기에 콩고내전에 파병을 하면서국가경제가 극도로 어려워짐.
-->결국 2006년부터 돈찍기를 본격하면서, 하이퍼인플레에 접어듦.
.1964년 영국으로부터 독립. .1990년대 6000개 백인농장 몰수.
.무가베본인및 친척등에게 토지분배 .농업기반 붕괴및 식량수입국전환(월내 식량수출국이였음)
.2006.2월 20조달러 프린팅-->imf자금상환
.2006.6월 60조달러 프린팅-->공무원.군인월급3배인상
.2006.8월 1000:1화폐개혁단행-->가소비(어떻게 될지모르니, 미리 다써버리는 현상)
.물가상승율 (전년대비증가율 의미함)
1996년 16.40%
98년 46.7
99 56.9
2000년 55.2
01년 112.1
2 198.9
3 598.7
4 132.7
5 585.8
6 1281.1
07년 108844.1
.분석: .굳이 하이퍼 기간을 분류하자면,
하이퍼초기:1996~2000년도,
중기:01~04년,
말기:05~7년
.하이퍼는 곧바로 진행되지 않는다. 오랜기간을 들여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
-->즉, 상당히 오랜기간동안 고물가 현상이 지속될 수 있다. (고물가기간:독일의 경우는 1912~1922년정도 약 10년정도, 짐바브웨이는 96~04년 약9년정도)
.고물가 기간이 과거의 예 에서 처럼 얼마나 갈지 모르기때문에, 무리한 레버리지 전략은 극히 위험 할 수 있음을 알 수 있고, 고 실업으로 인한 지출감소와 생계비지출 급등으로 자산을 불리고 말고의 그런 개념이 아니라, 오로지 생존의 문제로 귀결될 수 있음을 예상해볼 수 가 있음.(가장 최후의 표현을 쓴다면, 먹는 것이 제일 중요함)
.귀중한 보물이 무슨 소용있겠는가? 오로지 먹기 위해서 모든 것을 헐값으로 내던질 수가 있다-->집도, 희귀품도, 가보도 아무리 귀한 것이래도, 생존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현재 중산층들의 삶을 예상해 볼 수 있는 가장 가혹한 모습임)
.반대로 어떤 누군가에는 엄청난 기회임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그 기회를 이용하는 부류는 극히 드물 것이다.
.엄청난 부의 이동이 이루어 질 수 있음을 예상할 수 있음.(중산층-->5~10%특수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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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10월 현재 이란상황 (미국 공조한 서방경제 제제실시->서방의 이란산 석유금수 조치로 수출타격) 여기에, 은행금리를 통제하면서 통화공급을 늘려 인플레이션을 가속화 함)
(아래는 각종 기사자료 내용)
.이스라엘의 공격위협과 맞물려,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이란의 가계와 기업이 은행의 리알화를 인출, 금과 외화등 경화 구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10/3일(현지시간) 이란 외환시장에서 리알화 시장환율은 36,000리알까지 치솟음--->일주일전 달러당 25,500리알이던 것과 비교하면 약 40%떨어짐-->연초대비 약 80%나 하락함.
.내일치 환율을 예측할 수 없으니 장사를 할 방도가 없다. 리알화가 아닌 달러화로 거래.
(의문->만약에 기축통화인 달러가 이란의 리알화의 운명에 처한다면(미 국채 붕괴), 달러화를 대신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화폐가치가 폭락하면서 이란 국민의 생활고는 더욱 심각해짐.
.9개월전 12만 리알로 야채,과일등 생필품을 채워 왔지만, 지금은 30만 리알이 필요하다ㅡ-한 시민의 푸념
.지난 7월에 닭고기 값이 2달새에 3배오름-->인플레이션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 곳곳.
.이란 정부 공식물가 상승율은 연초대비 21%--->그러나 시장 실질상승율은 70%
.통화위기가 심해지면서, 자국화폐를 달러나 금등으로 바꾸려하고, 병원과 환자들은 외국에서 수입하는 약품을 제때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만약에 달러몰락하여, 국제무역이 끊긴다면? 그리고 각국의 지폐들의 운명은? 그리고, 그 지폐통화들을 대체 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심각하게, 그리고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할듯)
.초기에 적용해오던 생필품에 대한 국가의 각종 보조금을 줄이면서, 석유,가스,전기,수도요금등, 공공요금은 적게는 4~5배, 많게는 수십배가 오르고(가스비가 가장 많이 오르고, 휘발유 값은 5배) 상대적으로 먹을 거리의 가격은 적게 오른편--약 30% 정도, 이사기간이 겹치면서, 전월세가 30%정도 오름-->과거의 하이퍼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음. 이것은 본격적인 하이퍼가 아닌 초기현상으로 해석.
.이러한 상기의 과정을 통해서 중산층이 하층으로 전락하고, 빈부의 격차가 더욱더 벌어지고 있음.
.환율로 인한 하이퍼 상황으로 햬석할 수 있음-->즉 환율급등, 생필품값 급등의 하이퍼 초 중기 상황 -->그러나 반대로 해석하면, 달러입장에서는 구매력 급등, 즉 극심한 디플레현상
.개인적판단: 이란상황은 국제정치관계에서 특수한 상황이므로, 결국에는 과거의 하이퍼의 예서처럼 극단적으로 흐르지는 않을 것 같고, 잘 해결될 것으로 짐작하고-->오히려, 이란이 국제사회에서 중동 맹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듯하다. 물론 정권이 바뀌던 안바뀌던지와 상관없이.
*이탈리아--물물교환 식당 등장
.물론 이탈리아 경우는 다르다. 그러나 어떻든 이 상황에서도 달러화는 최고의 안전자산이다. 자국내에서는 극심한 디플레 현상이지만, 달러화에 대해서는 역시 이란과 마찬가지로 하이퍼 상황임.
.위기가 오는 나라의 내부적으로는 디플레던 하이퍼든간에, 외부적으로 안전자산이라고 인식되는 극심한 하이퍼상황(즉, 안전자산이 급등한다는 의미이고, 그 나라의 통화는 급락한다는 의미이다)이 맞다.
--> 우리가 이 부분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과연 달러기축이 망한다고 했을시(미 국채 붕괴시) 우리가 숨을 곳이 어디인가를 늘 끊임없이 생각을 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하이퍼시 실제생활예(2)
*로마
.디오클레티안의 법전시대(301~305년):
밀가격 1아르타바당 330데나리--->335년:21,000데나리(63배) --->338년:36,000데나리(100배)--->342년:75,000데나리(227배) --->350년:500,000데나리(1515배)--->45년사이에 150,000%오름
(여기까지 이집트에서 발견된 공식문서) 한마디로 로마 전 과정을 통하여, 주화의 금의 함량을 떨어뜨리는 방법을 통하여, 현대의 양적완화의 전철을 밟음.-->결국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로마의 국운이 쇠퇴해 가는 과정에 계기를 더해줌.
*프랑스
1789프랑스 혁명후 삼부회의(실질주도세력:3계급-평민이라지만 사실은 신흥 자본가세력임) --->아시냐 지폐발행(정부가 지불보증하는 이자가 붙은 지폐)-->종국에는 이자없어짐. 제1계급(성직자)의 토지 국유화--->토지를 구매하는 사람들에게 5년에 걸쳐 아시냐로 지불케 하여, 아시냐의 공신력을 높임(물론 이 과정에서 피해는 오로지 교회와 성직자뿐, 이익자는 부르죠아-자본가들)-->공신력이 높아진 아시냐를 얻기 위해(즉, 헐값에 내놓은 토지를 사기위해 금화 루이와 은화 리브르를 기꺼이 내놓음. -->지속적인 화폐남발
과도정부(1792~1795:로베스피에르 공포정치)-->1796나폴레용 혁명정부가 들어서기까지 1790년부터 지속적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과다하게 아시냐 발행을 통해, 특권층 (대부분 제3계급, 소위 신흥자본가군 그룹-브르조아)들이 대중과 성직자, 그리고 정부의 재물을
노골적으로 수탈해가는 과정이였음.
생필품가격:1790년-->1793년: 빵2.5수->15수, 양초:13->44, 댤걀:10->50수, 양모1마:20->65 포도주.담배는 네배정도 인상(이 수치는 사형에 이르는 강력한 가격통제정책하에서임) -->빵가계나 석탄판매소 앞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짓고 상품을 구하기가 어려웠음. -->1795년 가격통제철폐로 물가는 걷잡을 수 없음.
기본생필품 가격상승률(1795년4월~1796년3월):11790년.6월을 기준으로 작성됨.
1795년 4월 9배
5 11배
6 13
7 21
8 27
9 31
10 42
11 54
12월 129
1796년1월. 114
2. 190
3. 388
.1795년 공식적인 아시냐의 은화에 대한 가치하락:
1월:22%-->2월:17%, 5월:7.5%-->8월:3% -->12월:0.125%로 하락함--->결국 연말에는 구매수단으로써 가치를 잃음.
.물가앙등은 가격 상한선이 풀린뒤 급격히 6달동안 진행되었고, 그리고 그 다음달에는 훨씬 더 빠른 놀라운 정도의 앙등이 지속됨.-->빵.버터,석탄,달걀 등의 품목을 포함한 생필품의 가격은 3,655%숨막히는 상승율 을 기록-->한아름 아시냐를 갖게 되면 곧바로 생필품 구하러 다님->95년말에는 거의 매일 2배수준으로 뜀ㅡ->기근이 횡행.
.지나치게 많은 화폐는 적은 생산을 낳는다-->농부들이 가격이 더오를 때까지 농산물 출하하기를 거부함으로써 품귀현상은 더욱 악화됨. 군수품 징발 대리인들이 시장가격보다 낮게 밀을 강제로 가져갔기 때문에 배고픈 대도시 주민들이나 투기꾼들이 가격을 새로 높은 수준까지 기다리면서 밀을 숨겨놓음. 너무 오래 숨겨놓은 밀은 사람이 먹지못할 정도로 도정업자에게 넘어가, 그것으로 만든 빵에 구더기나, 썩은 오물이 있어도, 시민들은 이것 저것 가릴 형편이 아니였음.
-->거듭되는 수입의 인상에도 불구하고, 파리의 가구 대부분은 1795년과 1796년초에 하루에 한 사람이 소비하는 4온스의 빵을 구입하는데, 수입의 3분의 2 이상을 써야 했다. 하룻밤 사이에 현금의 구매력이 급격히 떨어지므로 임금의 일정부분을 현물로 지급하겠다고 약속하겠지만 그 약속은 거의 지켜지지 않음.
.1795년 12월말에는 빵이 1파운드에 80리브르에 팔리는 등 물가가 총알처럼 치솟자 고정된 연금에 의존 하고 있었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내다팔거나 죽음을 기다렸다. 노인이나 낙오자들은 센강에 투신해서 편안한 길을 찾는 일이 점점 더 빈번해졌다.
.한편으론, 부를 축적한 사람(신흥 부르죠아)--> 탄약 제조업자, 군대가 소비하고 파괴하고 소모하는 모든 물품을 항상 상승하는 가격으로 공급했던 납품업자, 신흥은행가, 신용거래로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협잡꾼, 시민들이 절박하게 필요로하는 생필품을 투기대상으로 삼는 투기꾼 등 -->이 신흥백만장자들은 충분한 양의 지폐를 확보하고 정부가 불하하는 토지, 처형된 왕당파의 몰수재산, 모든 보석류, 은.금화.귀금속을 사들임. 그러고도 충분한 양의 화폐가 남음.
-->이들 특권층은 아시냐발행의 가장 가까운 취득자이기도 했고, 1795년4월 아시냐 발행을 취소한다고 대중 앞에서는 공표하고도, 측근들은 지속적으로 몰래 발행에 부를 갈취함.
-->그리고, 1795년말 유통되고 있는 아시냐를 흡한다는 명목하에 시중가보다 터무니 없이, 낮은 가격으로 엄청난 양의 많은 공공토지를 공매함-->그러나 매입자 대부분이 국민회의 대표인 부르죠아였음.
. 결과적으로 의회를 장악한 부르쥬아 손으로 국가의 재산, 대중들의 재산이 단기간안에 급격히 이동됨.
-->돈 찍기의 유일한 목적: 막대한 국가재산과 대중의 자산을 권력과 연계된 특권층의 수중으로 신속히 이전시키는데 있음.
*독일 에피소드1: .50대 독일 과부 1919년 스위스로 여행 떠나서 엉덩이 뼈를 다쳐 스위스서 살다 2923년가을 4년만에 집에 돌아옴.-->은행에서 온 3통의 편지.
-->첫번째 내용:1920년중반에 보낸 것으로, "상당한 액수에 달하는 귀하의 예금을 다른 곳에 투자했으면 좋겠다."(예금액은 60만마르크->1919환율로 따질때 7만 달러정도)
-->두번빼 편지:1922년 9월의 소인이 찍힌 내용, "귀하의 예금은 금액이 너무 적어서 우리에겐 더이상 이해타산이 맞지않다. 죄송하지만 빠른 시일내에 찾아가는 것이 좋겠다"
-->3번째 편지:그녀가 돌아오기 몇주 전, 1923년도가을, "연락이 없어 구좌를 폐쇄함. 현재 보유하고 있는 소액권이 없어, 여기 100만마르크 지폐를 동봉함."
-->재밌는 것은, 그 봉투에는 100만마르크 우표가 붙어있었다.
에피소드 2. 형은 술주정뱅이->부자가 됨--->나중에 병이 쌓여 병을 팔아 여유로운 생활을 했다. 동생은 저축왕-->가난뱅이가 됨-->그 돈은 휴지가 되어 거지가 됬다.
에피소드 3. 손수레에 가득 돈을 싣고, 맥주를 마시러 갔는데, 돈은 그대로 둔채 수레만 도둑맞음.
.이처럼 독일의 초인플레는 역사상 통화혼란이 극에 달한 사건임.
*1922년에는 제국은행은 담보를 국채에서, 일반기업채과 은행채권등, 상업채권까지 범위를 확대함
-->이것으로 특정기업, 개인에게 시중금리보다는 너무나도 싼 정책저금리 혜택을 받음 -->한마디로 거저 무에서 유를 창조--> 헐값에 나온 귀중한 자산들을 마구잡이 탈취->이 산더미 같은 돈은 1922년 후반기부터는 독일의 대기업가와 자본가들에게 집중됨.
.시중금리 50%일때-->5%로, 75%일때-->8%, 300%일때-->18%로 대출받음. -->화폐발행의 절반정도가 특수그룹의 손으로 넘어감.
.1913년기준-->1923.3월 도매물가지수:4,827배-->6월에 24,618배-->7월말에 183,510배 -->8월 1.695.109-->9월 36,223,777로 치솟음.
.오스트리아의 한 작가의 자서전 내용
깨진 유리창을 갈아 끼우려면 옛날의 집 한채값을 주어야 했고, 책 한권의 값이 예전의 100대의 인쇄기를 갖춘 인쇄소의 값보다 더 비쌌다. 100달러만 주면 쿨필스텐담에 있는 6층집을 몇채 살 수 있었다. 몇몇 청소년은 항구에서 주운 비누 한개를 팔아 몇달동안 차를 타고다니며, 왕같은 생활을 했다.
-->결국 대부분의 농민과 상인은 마르크화를 받고는 아무 물건도 팔려고 하지 않았다.-->물물교환이 활발해졌고 1923년 말이 되자 독일경제는 중세시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1달러에 4조마르크가 넘음. -->1922년과 1923년을 통해 거의 모든 노동력이 7~8자리 숫자에 가까운 주급을(전쟁전에는 두자리) 받으면서도, 빈곤이하의 수준을 함.
-->빵1키로에 2시에는 150억, 3시에는 250억으로 변함.-> 1923년말이 되자, 식당은 대부분 문을 닫음. 사람들이 음식을 사먹을 돈도 없음은 물론, 식당주인도 계속적인 물가급등을 감당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