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하루
오늘은 하양 장날이다. 끝자리가 4와 9가 들어가는 날이다. 시골 오일장인 셈이다. 대형할인점을 일주일에 한 번씩 가서 장을 일주일 치를 봐온다. 남편이 서울에서 내려오면 마트에 가서 장을 함께 봐준다. 무거운 것을 들어다 주니 고마운 사람이다.
아이들이 어려서는 회사 일로 너무도 바빠서 함께 장은 보지를 못했다. 아파트 상가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했다.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걸리고 해서 장을 보고 소아청소년과를 다니고 유치원을 보냈다. 지나고 보니 어떻게 했는지 꿈만 같다. 아이 둘을 키운 시간이 거짓말처럼 지나갔다.
남편도 이제 여유가 생겨서 애들은 다 컸지만, 주말에 내려오면 손을 잡고 마트에 가서 장을 봐준다. 그동안 바빠서 하지 못했던 것을 다 해준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가면 성격이 꼼꼼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서 카트에 담는다. 장바구니에 옮겨 담아서 완벽하게 집까지 배달한다. 내가 하는 것이 늘 어설퍼서 가만히 있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라고 주저앉힌다.
큰애가 대구에서 시험을 봐서 새벽부터 일어나 아침을 준비했다. 졸업하면서 취업 준비로 긴장된 시간을 보내고 있는 큰아들이 안쓰럽다. 젊은 날의 소중한 경험이라고 위로한다. 아무튼 결과가 좋게 나오길 바르는 엄마의 솔직한 심정이다. 새벽잠이 많은 남편도 자식 일이라 일찍부터 일어나서 준비한다. 대구에서 시험을 보니까 고속도로로 올려서 가면 시간은 충분하다. 애쓰는 아들에게 따스한 밥과 국을 차려주었다. 마음이 편치 않으니 많이 먹지는 못하지만 한 수저라도 뜨고 가니 마음이 편하다.
시험장에 내려주고 근처 계명대학교로 산책하러 갔다. 대구에서 가까운 곳에 살면서도 계명대학교는 처음이다. 캠퍼스가 예쁘다는 것은 소문으로 들었는데 인연이 없었는지 오늘 처음 가본다. 아들 시험장이 근처라서 온 김에 둘러보기로 했다. 이른 아침이라서 사람들이 없었다. 방학이라서 학생들은 보이지 않고 나무와 예쁘게 지어진 이국적인 건물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곳이 교회였다. 건물이 근대적인 느낌으로 인상적이었다. <아담스 채플관>이라는 교회 건물이다. 궁금한 것은 못 참으니 검색했다.
<아담스 채플관>은 대구 시내 최초로 파이프오르간이 들어온 곳이라고 한다. 대 예배실 정문에 있는 파이프오르간은 무려 3,779개의 파이프가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한 번씩 연주할 때도 있어서 웅장한 파이프오르간의 소리를 운 좋으면 들을 수 있다고 한다.
교회 앞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문득 예배를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기도하고 싶고 파이프오르간 소리를 듣고 싶었다. 남편도 말없이 내 손만 꼭 잡고 하늘을 보고 있었다.
영화 속에 나오는 풍경을 만났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이다. 이른 아침이라서 더욱더 싱그럽게 보였다. 생기가 넘친다. 마치 아름다운 정원을 걷는 기분이 들었다. 이국적인 건물과 아름다운 풍경이 어우러진 대학교 캠퍼스에서 젊은 날의 시간을 추억하며 즐거운 순간을 사진에 담았다.
숲길을 내려오다가 우리 또래 부부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먼저 인사를 건네는 정겨운 부부였다. “네 안녕하세요, 길이 미끄러우니 조심하세요.” 라고 화답을 했다. ‘우리도 손잡고 가자. 우리 집사람은 손을 잡으려고 하지를 않아요.’하면서 아내의 손을 잡고 오르고 있었다. 우리는 기분 좋게 웃었다. 웃음소리가 한참 들려왔다. 이렇게 선한 행동은 전염이 된다.
오늘이 24일이니 하양 장날이다. 시골 장에 가면 축 늘어진 삶의 실타래가 팽팽해지면서 활력이 생기고 살맛이 난다. 생생한 삶의 현장을 만난다. 그곳에서는 명품 시계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명품 옷을 입었다고 누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냥 새우젓 한 그릇에 5천 원이고 가지도 한 소쿠리에 3천 원이다, 콩나물 3천 원어치 사면서 덤으로 한주먹 더 담아주는 맛에 절로 행복해진다.
족발도 사고 꽈배기도 샀다. 설탕을 많이 뿌려달라고 하니, ‘설탕은 한다라이 있으니 듬뿍 뿌려다.’하면서 크게 웃는 꽈배기 언니가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다. 호박잎도 사고 ‘고등어 한 손에 3천원, 두 손에 오천 원’ ‘유명한 자인 갈치도 있어요.’ 인정스러운 할머니 목소리에 비릿한 생선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자인 갈치가 하양 장에서도 이름을 날리고 있다.
튀김 하나에 8백 원씩, 식용윳값이 올라서 튀김값도 너무 올랐다. 사고 싶은 대로 바구니에 담기에는 손이 떨렸다. 큰애가 좋아하는 고구마튀김, 작은애가 좋아하는 김말이, 남편이 좋아하는 고추튀김. 내가 좋아하는 새우튀김을 바구니에 담으니 그것도 8천 원이 넘었다. 까만 봉지를 양손에 나눠서 들고 오는데 괜스레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우리 사고 싶은 것 다 샀는데 지출이 얼마인지 내기할까?” 자동차 안에서 계산기를 꺼내서 숫자를 눌렀다. 예상한 결과의 숫자가 나왔다. 많이 산 것 같은데 그래도 생각보다 덜 썼다. 저녁에는 하양시장표 밥상을 차렸다. 아이들에게 시골 시장 스케치도 해주고 남편과 계명대학교에서 데이트한 것도 자랑했다. 시험을 잘 지르고 온 아들에게 좋아하는 튀김과 족발과 닭발을 차려냈다. 시험 본다고 애썼다고 힘껏 안아주었다. 오늘은 이야기가 많은 하루였다. - 2022년 7월 24일 -